11.03.월 [워홀+461]_ 여행의 여파
하루 종일 빨래만 돌린 것 같다. 먹을 게 없어서 장을 봤는데 넉넉하게 보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라 예산은 빠듯한데 월 초라 많이 아껴 써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라피가 케밥을 사줘서 그걸로 점심, 저녘을 해결 할 수 있었다. 보통 케밥을 먹는 사람들은 칩포틀을 많이 먹는데 나는 오히려 여기가 양도 많고 맛도 더 나은 것 같다.
11.04.화 [워홀+462]_ 휴가 후 휴식은 필수
훈련 같은 여행의 여파 탓일까. 여전히 종종 졸렸고 미친듯이 배가 고팠다. 생각보다 어제 장 봐 온 음식들을 금방 다 먹어버렸다. 남은 날들은 어떻게 하지? 다녀온 지 이튿 날이 돼 서야 짐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달력을 넘기는 데 12월 마지막 한 장만 남은 게 보였다. 올 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밀린 일기를 쓰고 가계부를 정리하는데도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쌓였다. 휴가 후 이틀 동안 쉬고 일 하러 가는 게 정말 다행인 것 같다.
11.05.수 [워홀+463]_ 역시 인생은 실전이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 버린 나. 오후 출근 덕에 긴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당시엔 열 받았는데 막상 따지려니 영어 공포증 때문에 미루던 국세청 전화 업무도 도전. 챗지피티랑 대본 만들고 벌벌 떨면서 전화했는데, 몇 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상담원이 말하는 바가 들렸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라고. 계속 관련 표현을 쓰다 보니 확실히 영어가 늘고 있음이 느껴졌다. 새로운 언어를 빨리 체득하는 방법은 뇌가 그만큼 언어가 긴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라고 느껴야 한다는데. 대본이 없어도 될 만큼 유창하게 늘어난 영어 실력을 보면서 그 말이 사실임을 느꼈다.
11.06.목 [워홀+464]_ 똥개도 자기 나와바리 안에서는
우리나라 속담에 그런 말이 있다. '똥개도 자기 구역에서는 힘 깨나 쓴다'고. 이제 런던은 어엿한 내 구역이 된 것 같다, 루턴으로 왔을 때부터 느껴지는 편안함과 집에 도착했을 때의 그 반가움을 보면.


오후 6시 밖에 안 됐는데도 깜깜한 밤처럼 어둠이 나지막이 깔린 영국 런던. 그래도 외국을 다닐 때와 달리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누가 위협한 데도 용감하게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깔깔.

저녁은 은의 레스토랑에 놀러 갔다. 뉴진쓰가 전부터 같이 가자고 했는데 기회가 안 됐다가, 이 번엔 정말 맘 먹고 왔다. 분명 우리 동네로 알 고 있었는데 은근히 가는 데 오래 걸렸다. 그래도 도착하고 나니 생각보다 멋지고 큰 곳이라서 놀랐고, 음식도 맛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중동식당에서 파는 김치를 먹어 본 적 있으신가요? 볶음김치인데 한국에서 먹는 거랑 별 차이 없는 맛이라 신기했다. 론다에서 먹었던 가지튀김을 상상하며 가지요리도 시켜봤다. 그 때 먹었던 단조롭지만 바삭했던 요리와는 확연히 달랐지만 이건 이거대로 신선하고 부드럽고 맛있었다.


메인 요리는 양 구이였는데 끝까지 뼈를 긁어 댈 정도로 맛있었다. 고기에서 뼈를 발라내주는 친절한 뉴진쓰. 무드 없는 남자친구랑 다니다가 오랜 만엔 이런 따뜻한 손길을 받아보니 너무 감동이잖아요. 흑흑.



이제는 어엿한 바 매니저가 된 은덕에 다양한 칵테일도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뉴진쓰가 식사도 사줬다. 좌 매니저 우 슈퍼바이저사이에서 행복했던 시간이었네.
11.07.금 [워홀+465]_ 쉬는 날에 회사 가는 사람이 누구냐고?
보통은 달력에 근무일을 체크 하는 편인데, 여행 다녀와서는 피곤해서 못했다. 그 바람에 날짜를 헷갈려서 데이오프날 출근을 했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고 그들도 처음일텐데, 온 김에 일하고 싶으면 일 해도 된 대서 했다. 깔깔. 언젠가 인터넷에서 쉬는 날 출근한 직장인 썰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내가 될 줄이야.

어쩌다보니 근무자가 없는 바람에 얼터레이션팀에 착출 되어 간 나. 나이가 지긋한 요코씨랑 한국,중국,일본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은 참 흥미로웠다. 미국에서 결혼해서 영국으로 이주한 그녀에게 영미권 문화의 다른 점도 듣고, 인생 선배로써 결혼하면 좋은 점이 있냐고 물어도 봤다.
요코는 결혼에 대해 조언을 해줬는데, 배우자는 '남자다운 남자'를 찾으라고 얘기했다.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남자다움'이란, 넓은 어깨나 큰 키, 무뚝뚝하거나 힘이 쎈 성격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인내하고 버티는 사람.' 그게 바로 결혼하기 좋은 남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김라피는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런 면에서 나도 그렇게 좋은 배우자 감은 아니고. 요즘 주변에서 결혼하는 커플들이 많아지면서 나 또한 결혼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다.
11.08.토 [워홀+466]_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래
오랜 만에 만나자 마자 한 판 한 우리. 별 것도 아닌데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될 것을. 그도 나도 서로에겐 한 참 부족한 사람들인 것 같다. 어차피 같이 붙어있으면 죽고 못 살 거면서, 꼭 사소한 걸로 감정을 불 태우는 우리는 서로를 너무 많이 사랑하는 걸까?
11.09.일 [워홀+467]_ 리오, 넌 진짜 남자다
리오는 역시 멋진 놈이었다. 나름 열심히 클로징(매장 마감)을 했는데 H가 와서 이것 저것 트집을 잡을 때부터 집에 일찍 가긴 글렀다 싶었다. 쪼그만 그녀는 늘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절대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하다 하다 옷걸이 방향까지 지적을 했다. 뭐- 이러면서 많이 배우겠지.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정리가 끝나자 레이아웃을 바꿔야 한다며 섹션의 반 절이 넘는 곳을 정리 해 달라고 추가로 요청했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그게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지 몰랐다. 리오와 다른 친구들의 대화를 듣기 전까지는. 어리둥절한 나를 보고 리오는 걱정하지 말라고, 널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끝까지 도와줄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리고 리오는 정말 끝까지 마감 정리를 도와주었다. 12시간이 넘게 근무했으면서, 내일 또 근무해야 하면서, 그리고 수퍼바이저가 나를 도와주는 일을 멈추고 다른 업무를 하거나 퇴근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곧 승진 시험을 앞두고 있는 그들의 평가는 굉장한 영향을 끼친 다는 걸 알면서도.
그거 아니 리오? 한국인은 빚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란거? 은혜를 입은 나는 오늘부터 네게 충성충성충성이다.
11.10.월 [워홀+468]_ 인내심 훈련
영국에 살면서 가장 갖춰야 할 소양은? 바로 '인내심'이다. 퇴사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바뀌지 않은 택스코드와 싸우고 있는 나. HMRC(영국 국세청)에 물어 보면 이전 회사 P45가 미 발급 상태라 하고, 전 직장 전화해보니 한 달 전에 발급했는데 무슨 소리냐 하고, 현 직장은 자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하고.

블로그는 서버 문제인지 사진이 계속 안 올라가고, 그 나마 쓴 글 마저 두 번 넘게 날려버리고. 갑자기 인터넷이 문제가 생겨서 끊기고. 정말 화가 불처럼 오른다. 도서관에 가서 인터넷이라도 잘 잡으면 다를까 싶었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외출은 무리 인 걸 깨달았다.
다행히 이게 생명과 직결되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 망정이지, 만약 절단이나 심장 등 응급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나라는 정말... 그래도 아직은 더 머물고 싶은-덜 질려버린-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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