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워홀

25년 12월 두 번째 일기 (12.04~12.13)_ 풍부한 듯 단조로운 일상

킹쓔 2025. 12. 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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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목 [워홀+492]_ 드디어 포트폴리오


 이번 달은 꼭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겟다는 굳은 결심! 예전에 공부하던 때처럼 열심히 하려고 스톱워치를 샀다. 사실 이렇게 라도 멱살잡고 끌고 가야하는 나의 게으름 깔깔.


12.05.금 [워홀+493]_ 런던 쇼핑 명소 옥스퍼드 스트릿

 
 쇼핑 명가 옥스퍼드 스트릿 근처에서 일하는 나. 그러나 출퇴근만 하느라 주변 둘러볼 시간이 없다면 믿으시겠어요? 맨날 가는 데라 익숙해서 구경할 맛은 안 나지만 또 막상 뭐가 있는 지는 잘 모르는 그런 거. 직장인들은 다 알잖아요?

우리나라 명동같은 런던 옥스퍼드 스트칫 (출처 까먹음 ㅠ)

 그래서 퇴근 후 미루던 쇼핑을 다녀봤습니다. 하지만 일 하느라 다 써버린 체력 때문에 몇 발자국 못 가서 포기. 몇 개월 간 사야 된다고 고민하던 워킹화를 보러 스케쳐스 매장에 갔지만, 가격 앞에서 무너졌다. 이재용도 신는다는 고워크 시리즈 너무 편해서 사고 싶은데 디자인이 너무 구려서 이 돈 주고는 못 사겠네. 어떻게야 하죠?


12.06.토 [워홀+494]_ 클럽 실패

 
 클럽 가는 줄 알고 잔뜩 신나서 단단히 준비하고 왔는데, 어제 같이 가자는 말이었다. 오늘을 위해 평소에 안 들던 귀한 가방까지 들고 왔는데. 아쉽구만.
 
 마감 업무 중에 조쉬가 코리안 아티스트 '휴고'에 대해 언급했다. 내가 모르는 한국 인디밴드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허밍으로 음악을 들어보니 혁오의 '위잉위잉'이였다. 심지어 사쿠라도 알고 있던 혁오씨. 혹시 해외 진출을 하게 되면 영어 이름으로 휴고 써 보는 건 어떠세요?


12.07.일 [워홀+495]_ 쉬는 날이 더 바쁘잖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낭낭한 우리 동네 시장. 가판대에 여러 상인들이 솜씨를 뽐내고 있네. 너무 귀여운 트리라 하나 사려고 했지만 10파운드(한화 약 2만원)라는 소리에 고이 마음을 접습니다.

 아니 근데 요즘 환율 진짜 미쳤다. 영국에 왔을 때만 해도 1파운드가 1,700원대였는데 이제는 2,000원을 넘어버렸다. 무슨 일 이냐고요. 원화야 제발 힘내주라. 나야 여기서 벌어서 쓰니 영향이 좀 덜 가지만, 한국에서 돈을 받아쓰는 유학생들은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 
 
 오늘은 직원 할인을 처음으로 써봤다. 계산대 앞에서 가격이 확 낮아지는 걸 보니 짜릿한 쾌감이 들었다. 이래서 애들이 매일 그렇게 옷을 사는 거였구나.

10년 전 심지가 해준 그 맛 구현하기 성공

일을 쉬는 날에는 주로 요리를 한다. 사실 그렇게 거창한 행위는 아니고 그냥 '끼니 준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예전에 심지가 해줬던 주먹밥 생각이 나서 그것도 만들고, 찜질방이 그리워 미역국이랑 맥반석 계란도 했다. 그런데 계란은 너무 오래 쪄서 흰자가 딱딱하게 굳었다. 라피가 한 입 먹더니 플라스틱 계란 같다고 놀려 댈 정도였다. 새로운 음식을 경험해주게 하고 싶었는데 쩝. 

찜질방 조합 미역국과 맥반석 계란


12.08.월 [워홀+496]_ 어피치도 나도 몸단장 한 날

 
오랜만에 인형을 빨았다. 한국서 부터 데려온 나의 어피치. 매번 내 쿠션이자 베개가 되느라 고생이 많다. 빡빡 씻겨줬으니 또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해보거라.

한껏 뽀얀 피부 뽐내는 어피치/ 출근길 리본머리 자랑샷

 


12.09.화 [워홀+497]_ 짧아요 짧아

 
 런던의 겨울은 유난히도 하루가 짧다. 일이 바쁘기도 한데 해가 일찍 지니 한 것도 없이 시간이 지나버린 느낌이 든다.
 


12.10.수 [워홀+498]_ 한국인의 정이 필요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리오처럼 친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매장 정리 하고 있는데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와 수줍게 카드를 전해주는 녀석. 받자마자 감동 버튼 눌려서 눈물 한 사발 쏟을 뻔 했다. 

나의 슈퍼 슈바 리오

 매일 한글을 접하던 한국에서와 달리 여기서 만나는 한글은 정말 귀하고 반갑다. 그것도 특히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쓰여진 거라면 더더욱. 

크리스마스가 무르익은 런던 풍경

  요즘따라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더 그립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럴까. 가족들과 이런 저런 명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고국의 온정이 그리워진다. 


12.11.목 [워홀+499]_ 새 옷을 산다는 건

 

 오랜 만에 새 옷을 샀더니 기분이 좋다. 문제는 이걸 뽐낼 때가 없다는 거다. 해가 세 네 시면 져버리는 영국의 날씨 탓이기도 하고. 결국 만만한 건 라피네 놀러 가기...


12.12.금 [워홀+500]_ 잘가 테일러

 
 오늘은 테일러의 송별회. 호주로 간다 길래 영영 아예 떠나버리는 줄 알았는데. 그냥 크리스마스 휴가만 보내고 다시 돌아 온 단다. 물론 일을 그만두는 건 맞아서 앞으론 이전만큼 보기 힘든 것도 맞고. 그래도 괜히 편지 쓰고 마지막 술 산다고 했던 건 좀 민망하네 쩝. 

 지난 번 송별회 때 보다 온 사람은 극히 적었지만, 또 그 만큼 옹기종기 찐하게 놀았던 자리. 신분증 때문에 입밴 먹을 땐 그냥 갈까 했는데 오길 잘했네. 서른 다섯이 넘어서도 신분증이 필요한 건 정말 귀찮은 일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왠지 더 외롭고 쓸쓸해졌다. 런던 생활을 시작하기 전 만해도 나는 내가 파티광인줄 알았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즐거운 술자리를 상상하면 도파민 파티가 열릴 줄 알았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이런 자리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이들 속에 있을 수록 조금 더 외로워진다. 밀물처럼 몰려온 인파 사이에서 빠져나오면 썰물처럼 에너지도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 자리엔 고독함만 덩그러니 남고.

오랜만에 만들어본 주먹밥과 피스타치오 토스트

 초반에 라이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영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막상 마냥 웰컴해주는 느낌은 아니라 그들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기는 힘든 분위기라고. 공감한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 사람들이랑 지내면 지낼수록, 닿을 수 없는 사이처럼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벽이랄까. 분명 그들이 명확히 선을 긋거나 밀어내는 게 아닌데도.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나는 절대 이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12.13.토 [워홀+501]_ 나도 친구 있거든!

 
 내일 인 줄 알았던 청소는 오늘이었다. 방 밖에서 들리는 랜드로드와 클리너의 소리를 듣고 청소 일정 문자를 확인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날짜를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또 무언가를 빌미 삼아 꼬투리를 잡히기 전에 미리 짐을 다 빼놓고 싶었는데. 
 
 지난 번 일방적인 퇴거 통보 사건 이후부터, 집주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예민하게 굴게 된다. 키친에서 마주친 그녀는 또 무언가 삔또가 제대로 상해 있었다. 인사도 안 받아주고 자리를 피해버리더니 사람을 앞에 두고 클리너와 서로 말을 주고 받고는 킥킥 웃어 댔다. 그 나라 말은 글자 하나 모르는데도 왠지 내 얘기를 대놓고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멀리서도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때마침 걸려온 콩밤들의 전화, 덕유산 놀러갔다가 생각나서 전화했다는 사람들. 신나서 서운한 마음 토로하며 징징댔더니 흥분해서 욕해주니까 속이 다 풀리잖아요? 허허 매 번 잊지 않고 챙겨주고 연락해주는 거 참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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