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2.목 [워홀+4] _ 조금은 기분좋아졌스
이젠 제법 시차 적응을 했는지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뭐 중간에 한번 깨긴 했지만, 아주 만족스러워. 물 속에 있는 것처럼 일렁이는 어지럼증도 제법 나아졌다. 파스 붙여놔서 그런지 무릎 상태도 좀 괜찮고. 어제는 숙소에서 전자렌지를 사용할 수 있는 라운지도 발견했다. 아싸-이제 따뜻한 거 먹을거다 완전 많이.
아침은 미리 사둔 바나나랑 숙소 카페에서 녹차를 주문해서 먹었다. 영국에 와서 차를 마시지만, 블랙티가 아닌 녹차를 먹는 걸 보면 아직도 한국과 영국에 반쯤 걸친 기분이다. 여기게 특별히 맛있어서 먹는다기 보다는 책상이 필요했다. 라운지는 아침엔 조식 뷔페를 운영해서 이용이 힘들거든. 그나마 피신 온 게 여기랄까? 그래도 뭐 2파운드에 서너시간 앉아있다가니 뽕은 뽑으니까.
아참- 차는 애플페이로 결제했다. 두근두근 레볼루트의 첫 사용! 한국에서도 안 쓰던 애플페이를 여기와서 처음 써보다니 흐흐. 오늘 일정은 숙소 근처 유스턴 뷰잉 말고는 없다. 근데도 아무 일정도 없다는 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짬이 난 김에 밀린 블로그 포스팅을 하니 금방 11시가 되었다.
아침을 건너뛰었으니까 점심은 먹고 싶은 걸 먹기로 했다. 천칼로리가 넘는 파이브가이즈 등장이요, 한국에 있을 때도 안 먹던 햄버거를 여기서 다 먹네.
세시까지 뷰잉을 오라던 부동산중개인은 끝까지 연락이 없었다. 주소를 줘야 가던지 말던지 할 거 아녀…? 뭐-어쩌겠어. 조금은 어이없는 마음을 안고 킹스크로스역 광장에 앉았다. 사람들 구경도 하고 뷰잉할 집도 더 둘러봤다. 입구에는 시칠리아 사람들이 <진짜 음식>마켓을 열고 있었다. 진짜 음식이라...먹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대충 간편식으로 끼니를 떼우는 런던 음식들이 그렇게 느껴 질 수 도 있겠다 싶네.
웨이트로즈에서 일파운드짜리 우유랑 쿠키사서 앉아있는데 왠 인도인이 전화로 깁비마이머이백이라로 두 시간째 소리를 질렀다. 역무원도 와서 말리는데 끄덕 없었고, 계속 돈이나 달라 고함을 질러댔다.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상대의 말에 내가 바로 성난 간디라나 뭐라나. 그는 절박한데 사람들은 다 웃고있는 아이러니.
슬슬 다른 뷰잉시간이 다가와서 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세인트 판크라스역에서 만난 라뒤레. 여기서 기차타면 바로 올림픽도 볼 수 있는데, 난 못 가니까... 얘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샌드위치 마카롱의 원조로 불리는 요 녀석, 파리에서 맛있게 먹던 기억이 있다. 한 입 베어물자 스물스물 그 때의 추억이 올라오네.
이번 플랫은 숙소 근처인데 보기도 전부터 이미 맘에 들었다. 일단 이 근방이라는 점이 가장 최고다. 교통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 지리가 꽤 친숙해져서 아는 곳도 많이 생기고,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근거리에 마트도 많고, 유치원이랑 초등학교가 있어서 치안도 좋아보였고 공원도 있네. 너무 맘에 든다. 집을 보기도 전인데 큰 문제가 없으면 그냥 계약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들만큼.
그리고 뷰잉은 성공적이었다. 3층이라 너무 높지 않고, 채광도 적당했으며, 화장실 수압이나 주방 상태도 괜찮았다. 의자는 정말 많이 낡았지만 책상이나 옷장도 다있고 방 크기도 괜찮고.
집주인은 루마니아인인데 2~3주에 한 번씩 집에 왔다 갔다 하고, 평상시엔 인도 남자애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인상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냄새나는 닭장 같던 첫 집과 비교했을 때 매우 훌륭했다. 뷰잉이 끝나자마자 바로 계약을 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제발- 집주인도 나를 맘에 들어해서 이 계약이 성사되기를. 이제 집 문제로 그만 고민하고 싶어.
확실히 뷰잉을 가까운 곳으로 가니 숙소랑도 걸어서 올 수 있고 좋았다. 그만큼 시간적 여유도 있어서 일기 쓰다 자려고 했는데 보안회사에서 일하는 스코틀랜드 여자애를 만났다. 이야기하는 걸 즐기는 그녀에게 붙잡혀 약 세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 4배속을 틀어놓은것처럼 두두다다 쏟아내는 말들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나름 재밌었다.
뒤이어 들어온 대련대학 교직원인 중국 남자애랑 런던의과대학을 다니는 인도 남자애도 대화에 참여했다. 워홀 때문에 왔다고 하자, 그들은 런던의 집세는 정말 살인적이라면서 내가 본 집 값들은 다 그 정도면 싼 편이라고 했다. 디온 남편 스티브도 런던 말고 근교에서 일을 구하면 훨씬 더 돈을 많이 벌거라고 했는데- 근교에 일 자리가 있을까? 뭐 왕창 벌어가겠단 생각으로 온 건 아니니까.
사실 집세를 보니 나도 조금은 걱정된다. 게다가 현지에서 살아본 사람들이 말리니까 더더욱. 그치만 뭐 전혀 예상 못했던 바도 아니고... 일단 해보고 얘기하자. 그래도 오늘은 꽤 기분이 좋다. 내가 원하던 집도 만나고, 완벽히는 아니지만 사람들이랑 영어로 소통도 했다. 조금씩 내가 원하는 것에 가까워지고, 뭔가를 해내고 있는 기분이랄까?
부동산 중개인한테 딱지 맞은 사람치고 이렇게 멀쩡한 걸 보면, 조금 멘탈이 단단해진걸까? 어쩌면 달다구리도 잘 먹고 잘 쉬어서 그럴수도 있다. 겁먹지 말고 안되면 그 때 가서 얘기하자. 내일 그 집 계약 안되도 암울해하지 말기. 혹시나 모를 사태를 위해 내일 뷰잉 스케줄 세 군데는 취소하지 않았다. 아따 바쁘겠구만. 딱 일단 세달만 해보자보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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