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7.화 [워홀+50]_ 무언가로 가득찬 하루
드디어 한국에서 택배를 받았습니다! 아침 9시부터 밥도 안 먹고 기다렸거든요. 지난 번 아마존 택배분실 사건 이후로 쫄려서 배송시간 뜨자마자 내려왔다. 하튼 여기선 택배 받는 것도 일이다, 일. 새삼 한국 택배 시스템의 편리함을 또 한번 느끼고.
사실 이 작은 박스 하나 때문에 많은 일이 있었다. 포장부터 주소 기재까지 영어가 서투른 은진이에겐 이게 여간 스트레스 받는 일이 아니었나보다. 이번이 마지막 택배라고 으름장을 놓는 은진이에게 왜 이렇게 속좁게 구는 거냐고 말다툼을 여러 번 했고, 세관에 걸려서-심지어 그 요청서가 문자나 메일이 아닌 우편으로 와서- 관세도 물고 예정 날짜보다 늦게 도착하기도 했다.
여하튼 총 15일씩 걸려 받아본 물건들은 하나하나 정성이 서려있었다. 옷들은 대부분 진공 포장 되어있었고, 다른 물건들 또한 모두 에어캡으로 여러 번 감싸져있었다. 걱정했던 다이소 주방용 가위도 포장을 뜯지 않은 덕에 무사히 통과했다. 은진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국>영국 EMS 국제택배 배송기간
작성: 킹쓔
날짜 | 일정 | 비고 | |
0 | 09/02 | 한국 우체국 EMS 사전접수 | 사전 접수 시 할인. 방문수거 요청. (수령인 주소, 물품 종류 등 미리 알아야 함) |
1 | 09/05 | 한국 발신인 주소지 방문. 택배 수거 | 물품가액 11만원(그 이상시 보험료 추가) 총 15kg_ 배송료 약 19만원 지불 |
2 | 09/11 09/13 09/14 |
택배 영국 도착 관세 부과 통지서 우편 수령 관세 지불 |
참고: 13,14일 토요일 일요일 관세(Clearance fee) 33파운드 레볼루트 결제 관세 지불 후 수령일 지정 (지불 후 영업일 기준 다음날 수령 가능) |
3 | 09/16 | 택배 영국에서 수령 |
사실 몽벨가방을 제일 기다렸는데, 의외로 걔가 주는 만족감은 크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고민하다가 품절의 품절대란을 뚫고 산 고가의 가방임에도 불구하고. 물건이 나빴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주는 임팩트가 더 커서였다.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포장된 옷들, 한국에서 추억이 서려있는 물건들, 그런 것들에 서려있는 아빠와 은진이의 사랑. 그런 게 조금 더 내게 큰 행복감을 선사했다. 역시 물질 만으로는 안되는 무언가가 있고, 나는 그 무언가를 더 선호한다는 걸 깨달았다.
짐 정리를 하다가 예약된 자궁경부암 검사를 위해 GP로 왔다. 사실 출국 직전에 한국에서 검사를 받았던 터라 별 필요는 못 느꼈지만, 여기 의료시스템도 경험해볼겸 예약했다. 물론 내 소중한 의료보험비도 한번씩 써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장을 보고 있는데 트라이얼 중인 한식당 사장님이 혹시 오늘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가야지 지금 내가 한 푼이 아쉬운 판국에. 급하게 잡힌 약속 때문에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식사를 준비해서 먹었다. 이제 평소에 즐기던 여유로운 식사랑은 안녕이구나.
한가롭던 어제에 비해 오늘 트라이얼은 너무 정신이 없었다. 단체손님이 하나 있었는데 다른 손님들도 몰려서 혼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 차갑지 않은 맥주를 내보내거나, 주머니에서 휴대폰 더미를 덜렁거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수퍼바이저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같은 한국계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나고 자란 덕에 유창한 영어와 다른 마인드를 갖고있는 그를 대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이러면서 무슨 현지인들도 얻기 힘든 오피스잡을 하겠다고 난리쳤던거야 나는...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보름달이 보였다. 한국의 추석은 잘 흘러가고 있으려나. 꽉 찬 달만큼 오늘은 이런 저런 것들로 가득 찬 하루를 보냈네.
09.18.수 [워홀+51]_간만에 바쁜 하루
어제 밥을 안 먹고 잤다. 근무 끝나고 야식 먹는게 습관되는 것 같아서 안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로 너무 배가 고파서 아침은 거하게 차려 먹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사갈이 자기 오늘 오프라고, 시간 괜찮으면 밖에 나가잔다. 멀리는 못 갈 것 같아서 동네 주변을 둘러보자고 했다. 매일 서쪽으로만 산책을 가서, 이번엔 동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저렴한 상점도 구경하고, 도서관에서 책도 빌렸다.
가끔 난 이녀석이 없으면 어떻게 적응했을까 생각해본다. 늘 책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사갈 덕에 도서관을 등록 하고 무료로 책을 빌렸다. 내가 완전 신나하자 기념촬영을 찍어주겠다는 그와 그걸 거부하는 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급하게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이거 먹고 또 트라이얼을 하러 가서 근무 전 부대찌게를 먹었다. 오늘부터는 식사가 제공된다. 유후-
단체손님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근무는 그렇게 빡세진 않았다. 덕분에-한잔하자는 동료들의 제안을 거절하고-집까지 여유롭게 걸어왔다. 밤 공기를 맞으며 한 시간 정도되는 거리를 걷다보니 마음까지 상쾌해졌다. 아침부터 저녘까지 오랜만에 적당히 바쁜 하루를 보냈네.
09.19.목 [워홀+52]_쉬는 하루
오늘은 간만에 일이 없는 날. 고작 월화수 3일 서너시간씩 일했을 뿐인데, 노동 없는 이 하루가 이리도 달콤한지. 밀린 블로그 쓰려고 했는데, 플랫 와이파이 고장이라는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네. 어쩐지 어제 넷플릭스 보려고 할 때부터 안되더라.
대신 방 정리 좀 하고 가구 배치도 바꿔보려고 했으나 실패. 침대를 옆으로 붙이면 더 넓어 보일 것 같았는데 공간 상 제약이 있어 실패. 대신 윤의 조언에 따라 책상을 오른쪽으로 붙여봤다. 걸리적거리던 캐리어도 한 쪽으로 치우고.
어제 받은 지리산 들기름 막국수랑 등심을 구워 먹고. 간식으로는 윗집아재가 준 자두랑 크림이 유통기한 얼마 안 남아서 후딱 처리 해 버렸다. 노작거리고 있는데 사갈이 산책 가재서 준비하고 나갈랬더니, 다른 사람도 같이 부르는 거 어떻냐고 해서 작은 언쟁이 있었다. 나는 왜 얘 앞에서만 이렇게 감정적이 되는걸까..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은 고작 한 달 남짓인데. 내가 너무 얘한테 기대하는 바가 큰가 싶기도 하고.
어쨋든 작은 소동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마트로 갔다. 장을 보면서 사갈이 내가 일하는 곳에 대해 묻길래 찾아오려나 싶어서 대답을 안했다. 근데 그냥 내가 거기까지 걸어 다닌다고 하니, 얼마나 먼 거리인지 걱정하는 맘에 물어본 거였다. 돈을 아끼고 싶다고 했더니 사갈이 계산대에서 내 우유를 결제했다.
그렇다. 그는 그냥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다. 가여운 남은 두고보지 못하는. 그를 보면 오지랖 넓은 나를 보는 것 같아 가끔 울림이 많다. 거울치료를 당하는 기분이랄까?
오후쯤은 갑자기 플랫 단카방이 생겼는데, 그건 요즘 부쩍 지저분해진 주방을 깨끗하게 쓰라고 쪼기 위함이었다. 정작 어지럽혀놓은 사람들은 그 메시지에 아무 대답이 없었고, 애꿎은 미트로만 주방렌지를 열심히 닦았다. 요 며칠 엉망이 된 키친을 잘 보았기에 올 게 왔구나 싶었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추궁을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꿀꿀할 땐 쇼핑이 최고지. 얼마 남지 않은 잔고를 지켜보겠다고 미루던 쇼핑을 갔다. 진짜 내일 먹을 게 거의 없으므로 필수 불가결한 소비라고 말하고 싶다. 가서 네슬레 초코브랜드보면서 미룽씨도 생각나고, 애사비보면서 콩밤님들도 생각나고 했다.
지난 번 태봉이 추석이니까 보름달을 보라는 미션을 줬는데, 그 이후로 달만 보면 자꾸 콩밤씨들이 생각났다. 영국 달도 정말 알 차네.
장을 보고와서 주방선반을 정리하는데, 아흐메드가 일 자리는 어떻게 되가냐고 물었다. 휴- 그냥 잘 안된다고 했더니 링크드인을 써보라고 추천해줬다. 당장 프로필을 완성라하려고 했는데 와이파이가 안 되지 참.
얼마 전에 깨진 휴대폰 액정을 그냥 두고 썼더니, 자꾸 손에 나도 모르는 생채기가 났다. 안되겠다 싶어서 오늘 당장 보호필름을 갈았다. 그러면서 느낀 건데 고칠 게 있으면 빨리빨리 고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요 며칠은 나름 그동안 미뤄왔던 고칠 것들을 해결하며 사부작 사부작 대고 있다. 특히 나쁜 습관들을 바꾸려고 한다. 건강과 매력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 중이고, 미루지 않기 위해 투두리스트(To-do list)를 사용 중이다. 꾸물거리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아침마다 휴대폰 대신 시계로 시간을 체크하고 바로 할 일을 한다. 인스타나 숏츠보는 시간을 줄이고, 조금씩이라도 영어로 된 책을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뭐- 이렇게 나름 사부작 사부작 뭘 해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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