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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10월 두 번째 일기 (10.04~10.05)_ 몸은 쉬는 중, 마음은 쉬지 못하는 중

by 킹쓔 202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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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금 [워홀+66]_ 불금의 도서관 투어 

 

든든한 아침상

 아침은 중국새우라면을 먹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영양학적으로 나쁘지 않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풍족하게 먹었지. 잘 먹었으면 움직여야지 싶어서 휘트니마켓에 갔다. 가서 책도 반납하고 아이스랜드 구경도 했다. 계란이랑 휴지같은 특정 공산품은 좀 싼 것 같은데, 다른 건 뭐 그냥 그렇네.

watney market iceland & charity shop

 앞에 Charity shop도 있길래 가봤는데, 물건들이 다 귀신 붙어올 것 같은 비주얼이라 그냥 나왔다. 한국에 있을 땐 내가 이런데다 기부하는 입장이었는데 말이야. 참나 사람일은 역시 모르는거야.

 

Iceland Supermarket Stepney · 1/11 Watney St, London E1 2PP 영국

★★★★☆ · 슈퍼마켓

www.google.com

  책 구해놓고 안 읽는 습관은 여기서도 여전했다. 결국 반납 전에 부랴부랴 좀 읽었지 뭐. 채광 좋은 곳에 앉아 책도 보고 하니 굉장히 삶이 여유로워진 기분이구만. 

오랜만에 좋은곳에서 하는 독서

 가을도 오고 책도 더 읽고 싶어서 시집을 물어보니까 여긴 없다고 화이트채플 도서관으로 가보란다. 그리하여 오늘은 도서관 투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위트니마켓보다 화이트채플 도서관이 훨씬 더 넓고 자료도 더 풍부했다. 오디오 도서도 있고 큰 활자책도 있어서 더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닌데, 책이 많은 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렸을 때 부터 그랬다. 백화점 문화센터인 수영수업이 있는 날이면 나는 아래층 서점으로 도망가곤 했다. 소심한 나를 억지로 물에 집어넣는 수영 선생님의 스파르타 수업과 포기를 모르던 엄마의 교육방식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랐으니까. 그래서인지 이 머나먼 타국에서도 책들의 숲에 숨어 잠시나마 평화를 만끽하나 보다. 

 

Idea Store Watney Market · 260 Commercial Rd, London E1 2FB 영국

★★★★☆ · 공립 도서관

www.google.com

 

Idea Store Whitechapel · 321 Whitechapel Rd, London E1 1BU 영국

★★★★☆ · 공립 도서관

www.google.com

 아시안 관련서적과 책 한권을 빌려서 집으로 왔는데, 수리공 아저씨들이 방문을 두드렸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들이 정말 반가우면서도 달갑진 않다. 아니 미리 얘기라도 해줘야할 거 아닌가. 정말 이 나라들의 시간개념이란.  
 
 종종 고장나는 콘센트를 확인하러 온 아저씨에게 난방 강도를 조금 줄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추워 죽겠다던 전과 달리, 요즘은 라디에이터덕에 너무 더워서 생활이 힘든 지경이 됬다. 이 정도면 거의 방 안에 계란에서 병아리가 부활할 지경이라고. 

철철끓는 라디에이터와 사랑이들끓는 편지들

 사장님이 직원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요청하셔서, 그것도 꺼낼 겸 여름옷도 집어 넣고 싶어서 짐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예전 편지들도 발견하게 됬는데, 괜히 또 그리움에 눈물이 났다. 나의 앞날을 살펴주고 축복해주던 사람들 덕분에 그래도 내가 잘 살고 있구나. 보고싶은 사람들.

사고싶은 것 / 결국 산 것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정수기 브리타를 샀다. 지속적으로 나가는 물 값을 아껴야 하기도 하고, 5리터 짜리 페트병을 매번 들고 오는 것도 지쳐서 말이다. 나중에 돈이 많아지면 꼭 체리포레누아케이크를 사먹어야지. 먹고 싶던 피자는 냉동피자로 대체했다. 삼겹살인 줄 알고 보쌈해먹으려고 샀는데, 베이컨이었다. 

푸짐한 저녘상

 결국 짜디짠 쌈장 베이컨이 되어버렸네. 아직 장이 없어서 윤에게 쌈장을 빌렸다. 어제 생일이었던 그녀 덕분에 미역국도 한 그릇 얻어먹고. 내일이면 떠나는 그 애. 또 나 혼자 이 외로운 빌딩에 남겨지겠지. 유일하게 언어장벽 없이 소통할 수 있던 사람이 간다니- 조금 쓸쓸해지네.

흥청망청쓰다 드디어 파산핑

 이제 진짜 딸랑 3파운드 남았다. 두 달동안 영국에서 살면서 느낀 건, 여기선 먹고 살 걱정은 안하는데. 어디서 살 지는 항상 고민이된다. 이놈의 엄청난 집세, 다음 달엔 어찌감당한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좋게 생각하자. 걱정한다고 뭐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긍정회로를 돌리며 부엌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깨지는 파열음이 났다. 파힐이 냉장고를 열다 문쪽에 올려둔 내 커피를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사장님 부모님이 오셨을 때 준 스타벅스 커피였는데, 나름 귀한 거라 아껴두고 있던 거 였다. 깨진 플라스틱 사이로 순식간에 커피가 새어나와버려 결국 한 모금도 맛보지 못했다.   
 
 보통 본인이 실수했으면 미안하단 말 부터 먼저해야 되는 거 아닌가? 파힐은 문을 열자 커피가 떨어졌다며 왜 그걸 거기다 뒀냐고 따져물었다. 움직이다가 동선만 겹쳐도 "sorry."라고 말하는 놈들이 왜 이런데선 사과에 인색하지. 냉장고 문 쪽은 좁은 공간이라 안정적으로 뒀다 할 순 없지만, 며칠 전까지 한번도 떨어진 적 없었는걸.
 
 그냥 더 말하기 싫어서 "그러게 내 잘못이네, 냉장고에 내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라고 대답했다. 구겨진 내 인상을 보고 그제서야 파힐은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 밥 먹다 봉변당한 것도 나 인걸. 사람이라면 미안해야지. 심리적인 거리가 있던 파힐 대신 애꿎은 사갈한테 저녘 먹던 거 마저 먹게 자리 좀 비켜달라며 짜증을 냈다. 
 
 커피 잘 먹지도 않고, 심지어 한국에선 쳐다도 안 보던 레토르트 커피인데도 조금 아쉽고, 좁아터진 냉장고에 짜증이 났다. 일 며칠 쉬는 동안 마음이 아주 여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10.05.토 [워홀+67]_ 첫 월급이 들어왔습니다

 

  역시 돈이 최고다. 점심이 지나서 지난 달 급여가 통장에 꽂히면서 마음이 한 결 여유로워졌다. 물론 아직도 집세는 커녕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일단 뭐라도 들어온 거니까. 식당에 제출할 비자 카피를 하러 도서관에 들렀다가, 나온 김에 그동안 안 가봤던 동네 북쪽으로 구경을 갔다. 

한국인에겐 신기한 MDF변기 /라텍스장갑 사고 싶었는데 비싸네

 아는 게 도둑질이라고, 건설용품 도소매점만 보면 왠지 한번 들어가보게 된다. 여기는 화장실이 건식이라 MDF로도 변기를 만드는구나. 페인트 제품 카달로그 보면서 전에 일하던 데랑 색상 번호 비슷한 것도 신기하더라구.

 다음 장소는 테스코 익스프레스, 스리슬쩍 구경하다 어제 파힐이 깨먹었던 내 스벅커피 발견. 3파운드나 하던 거였어? 어유 생각보다 비싼 거 였네. 하 갑자기 먹지도 않던 커피가 괜히 아쉬워지는 구만. 

9파운드 폼롤러를 사면서도 고민이 많은 나

 미루고 미루던 폼롤러를 샀다. 필요 없을 거라고 우기면서 안 샀는데, 가자미근이 너무 당긴다. 그래도 첫 월급 받았으니 이 정도는 사도 되지 않을까? 심지어 반값할인하는 거라구...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이번 주는 아프다고 내내 쉬어서 돈 들어올 구멍이 없는 걸. 

서서히 저무는 해

 

선홍빛 노을과 비슷한 스테인드 글라스

 가을에 다가서면서 부쩍 일몰 시간이 빨라졌다. 여기 올 때만해도 9시쯤 해가 졌는데, 요즘은 6시쯤 되면 해가 떨어진다. 오랜만에 노을을 보니 기분이 좋구만. 

 저녘은 핏자. 어제 산 냉동피자에 이것 저것 토핑을 가득 올려보았다. 이렇게 토핑가득한 한국식 피자가 그리웠다고. 확실히 오븐이 있으니 이런 것도 해먹을 수 있고 좋구만. 오늘도 집세 제대로 뽕뽑는 중입니다.


 저녘을 마친 사갈이 산책을 하재서 오랜만에 함께 밖으로 나왔다.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건 다들 내 맘 같지는 않구나라는 점이다. 그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원하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린 친구보다 그냥 '좋은 이웃' 이 적당할 것 같다. 가끔 산책이나 같이하고, 음식이 많이 생기면 서로 나누는 딱 그 정도의 사이.

 

 사실 애초에 그가 내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나 있었나. 어쩌면 그의 계속된 친절에 기대어 내가 혼자서 너무 많은 걸 바라고 기대한 건지도 모르지. 외롭고 힘든 이 타지생활에 정서적 결핍과 안식처를 만들고 싶던 그 욕심이 결국 이런 서운함과 실망을 불러왔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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