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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10월 세 번째 일기 (10.06~10.08)_혼자서도 잘 해보려고요.

by 킹쓔 202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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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일 [워홀+68]_네, 저는 지금 노력 중입니다.

 

 며칠 째 미뤄두던 인스타 활성화 방안을 작성했다.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아서 시작했는데, 금세 3시간이 금방 갔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대학생 때 공모전을 준비하던 그 열정 넘치던 젊은 시절의 내가. 너무 오랜만이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완전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감도 남아있고, 꽤 오랜시간 집중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도 있었다. 아직 살아있네.

의미없는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나

 잠깐 쉴 겸 점심을 먹으러 주방에 올라갔다가, 또 사갈 덕에 기분이 상한 채 돌아왔다. 파힐과 둘이 밥을 먹으며 끼기덕대는 그들 사이로 괜한 소외감이 느껴졌다. 대화하는 데 별 어려움 없던 윤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였을까? 더욱 더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발단은 식사를 마친 사갈이 내 친구들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 질문부터 시작됐다. 이 전에 친한 친구 이름을 말한 적이 있음에도, 내가 말해준 적 없다고 우기는 데 기분이 상했다. 얘한텐 왜 항상 내 결백을 증명해야 되지?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 답을 피해버렸더니, "your friendship is in one-side."란다. 너는 늘 자기에게 물어보면서, 본인에 대해선 절대 말하지 않는다고. 
 
 그 한마디에 울컥했다. 그래 정확히 봤네. 확실히 우리가 쌍방향적인 우정은 아니지. 혼자 밥을 먹기 싫다는 너를 위해 말 없이 네 곁을 지켜주는 것도, 어디 가재 놓고 말 없이 약속을 깰 때마다 바쁜 네 사정 고려해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도. 이 관계를 위해 내가 노력하는 데 비해, 넌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거짓말치지마", "농담이지", "넌 부자니까"라는 말들로 상황을 쉽게 쉽게 넘어가려고 하지. 남자친구도 아닌데 난 왜 이런 감정 소모를 하고 있는가. 얘가 뭐라고. 

현대 미술관 화이트채플 갤러리

 뭐긴 뭐야. 친구지. 여기서 내 유일한 옵션이라 더 잘해주고, 더 기대하고, 더 실망해서 그렇지. 정이 고파서 그런 너에게 매달리고 있는 내 처지가 우스워 그 말이 더 서럽게 와 닿은 거지. 지금 나 뭐하는 거냐. 요동치는 감정을 접어보겠다고 밖으로 나섰는데, 폭우가 쏟아져서 근처 미술관으로 비를 피해서 들어갔다. 조용하고 좋구만. 

 

화이트채플 갤러리 · 77-82 Whitechapel High St, London E1 7QX 영국

★★★★☆ · 미술관

www.google.com

 우울한 기분을 달래고자 오는 길에 케이크를 하나 샀다. 3파운드(한화 약 5천원 내)짜리 애플 바닐라 케이크를 사서 첫 월급을 기념하며 혼자 초에 불을 붙였다. 인스타에선 체육관 승급식을 끝내고, 여럿이 모여 회식을 열고 있는 친구들 사진이 올라왔다. 월급 받으면 친구들에게 한 턱 쏴야한다고 하니, 그럼 난도스에 같이 가자던 사갈의 말이 떠올랐다. 문득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조금 서글퍼졌다. 

첫 월급 기념 파티

 나는 늘 주변 사람들과 함께였다. 친구, 가족, 아는 사람 등등등. 그래서 아마 지금처럼 오롯이 홀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더 낯설고 힘이 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시간들이 내 내면을 더 깊고 단단하게 해주겠지. 그러려고 여기 온 거잖아. 조금은 외롭고 약간 힘들 때도 있지만, 이를 기회 삼아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련다. 언젠가 이곳에서의 시간들을 추억하며 그리워할거란 것도 알기에. 


10.07.월 [워홀+69]_  오랜만에 기분이 좋군요!

 

평화로운 한낮의 런던 풍경

 오늘은 오전 오후 풀 근무 날. 브레이크 타임 동안 시내 구경 나왔지롱. E45 바디로션 싸고 좋다고 해서 사러 나왔는데, 수퍼드러그는 조금 더 비싸고 부츠는 품절이네. 그렇다면 다른 지점으로 가면 되지.

영국 국민바디크림 E45를 찾으러 다니는 중

 지난 날 뭣 모르고 영국 화장품 시장 무시했던 나.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테스터는 기본이고, 다양한 제품과 세일 프로모션 중인 올리브영과 비교했을 때 부츠는 너무 별로 였다. 하지만 그냥 내가 작은 지점을 갔을 뿐. 이렇게 시내 큰 지점에 나오니 거의 백화점만큼이나 육아용품, 의약품부터 분야별로 제품이 다양하고, 여러 프로모션이 진행 중이었다. 

애프터 앤 비포

 일례로 한국에선 유료였던 브로우바 서비스가 영국에선 무료체험이 가능했다. 물론 풀 서비스는 아니지만 샘플도 제공되고 나름 만족 스러웠다. 구경 중에 베네피트 직원이 다가와 혹시 브로우 테스트 받아보지 않겠냐고 했고,안 그래도 눈썹 그릴 거 찾던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어떤 스타일을 원하냐고 물어서 화려한 스타일을 말하고 싶었는데, 단어가 생각 안 나서 그냥 'Splendid'라고 말했다. 잘 알아들었나 몰라. 어쨋든 그녀는 여러 가지 솔을 가지고 와서 정성 스럽게 내 눈썹을 그려줬고, 꽤 맘에 들었다. 인상이 좀 더 강하고 또렷해졌다고 할까? 저녘시간에 손님들을 맞을 때 더 자신감 있게 대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Boots · 107, 115 Long Acre, London WC2E 9NT 영국

★★★★☆ · 미용용품점

www.google.com

 

퇴근 길 비오는 런던 풍경

 손님이 많이 없어서 근무가 일찍 끝났다. 버스를 타고 오니 집에 오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간만에 기분이 꽤 좋은 날이다. 저녁 때 받은 밥도 가져가고, 식당에서 남은 반찬도 가져가고, 아까 공짜로 받은 베네피트 마스카라도 들고가고. 

소소하지만 기분 좋아지게 만든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성취감을 느껴서 기뻤다. 런던에 와서 매 번 취직에 실패 할 때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들인 노력이나 시간이 모두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근데 사장님이랑 SNS활성화 방안을 얘기하면서, 나도 어딘가에서 필요한 사람이고 쓸모있음을 인정 받는 기분이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인정과 성취감이란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건가. 그래서 남의 눈을 의식하고 더 신경을 많이 쓰는 건가? 아니면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만큼 진심으로 노력했으니까, 그게 좋은 결과를 내서 기쁜 것 같기도 하고. 뭐 쨋든 간만에 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고, 이렇게 계속 성취감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 


10.08.화  [워홀+70]_ 분명 쉬는 날인데 바쁩니다...?

 

 물랑루즈 데이티켓 사가는 사람 진짜 누구냐. 10시 정각부터 대기탔는데도 못타서 억울. 아마존 프라임 세일이래서 멤버십 재가입해가면서까지 분한마음 쇼핑으로 달래보려는데, 사려던 한국 화장품은 도저히 못 사겠다. 세일 가격인데도 원래 사던 것 보다 배로 비싼 가격. 

물랑루즈 꼭 보고말리라/ 자꾸만 부서지는 시계스트랩/ 비싼척 하는 달바

 차라리 다른 걸 살게...대신 한국에서 못사던 크로커다일 시계가 반값 세일 하길래 냉큼샀다. 안그래도 기존에 한국에서 받은 시계가 스트랩이 자꾸 떨어져서 힘들었거든. 두 세번씩 본드로 붙이는데도 감당이 안되서 포기. 어떻해...새거 사야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밖에 나가야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5도를 웃돌던 일 평균 기온이 오늘은 17도 가까이 올라갔다.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절대 꺼지지 않는 히터덕에 오늘도 내 방은 찜질방이네. 밖으로 나가자. 이런 날 나가야지 뭐. 사장님한테 내일 브랜드 슬로건 말하려면 또 보고서 작성해야되는데, 가계부도 써야하고, 밀린 일기도 써야하고. 할 건 많은데 시간은 없네. 

오늘도 해가 떴다가 저뭅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왔습니다. 집은 너무 덥고 창문을 열면 시끄럽고, 책은 읽고 싶고 해서요. 근데 여기도 엄청 시끄러웠다. 런던도 대도시라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만큼, 또라이도 많다. 갑자기 들어와 소리를 질러대는 아저씨와 그가 가고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을 보며 특정 인종에 관한 편견이 생겨나버렸다.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요즘 플랫에서 지내면서도 내 기준에선 너무 웃긴 꼴을 많이 봐서 그런가.   

 어제 아흐메드가 밤에 고기를 너무 맛있게 구워먹길래요, 그거 무슨 부위냐고 물었지. 시칠리안 스테이크란다. 아이스랜드에서 세일하길래 사왔는데, 그 냄새도 그 맛도 안나는 것 같네. 조리법이 잘못됬나. 내일 또 촬영까지 왠 종일 일할 거 생각해서, 하루 종일 먹은 것 같다. 

 

 옆방 일리앙은 엊그제부터 신곡을 들려준다더니 도무지 기미를 안 보이네. 이래놓고 또 새벽 두시가 되서 뚱땅뚱땅 기타치면서 노래하겠지. 맨날 나한테 "What's wrong?"만 외쳐대던 그도 새벽에 그렇게 하는 게 잘못된 거란 건 아는지, 노래 너무 좋다고 문 열고 크게 불러달라니까. 지금은 밤이라 나중에 들려주겠단다. 하하. 나 근데 진짜 노래 맘에 들고 듣고 싶어서 요청한 거긴 했는데 깔깔. 

 

 열시가 다 되가는데 가계부도 못 쓰고, 브랜드 카피라인도 못 정했네. 이력서도 못 넣었는데. 성임이 말대로 할 게 너무 많네. 됬어- 잘 쉬었다고 생각하지 뭐. 쉬는 날인데도 여전히 바쁜 화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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