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3.일 [워홀+75]_외노자의 런던 쇼핑하기
새벽에 진희가 영통해줘서 원격 결혼식 참가하고 왔습니다. 우리오빠 참 늠름하구만. 이렇게 또 한 명을 보내네. 잘가요 새신랑씨.
외국에 있다보니 정말 이런 것도 남 일 같다. 현장에 있었더라면 눈물 한 바가지 흘렸을 것 같은데. 어제 밤새 릴스 올리고 나니 오늘은 좀 여유로워서 옥스퍼드 스트릿으로 나갔다.
지난 번에 봤던 버버리 향수 찾으로 갔는데 리버티에는 버버리 폐점한 지 오래라네. 생각해보니 존 루이스였던 것 같아서 구경하다가 이동.
나온 김에 유니클로랑 H&M도 가보고. 날이 쌀쌀해져서 그런가 외투 사고 싶네. 무스탕도 예쁘고 숏패딩도 예쁜데 내 지갑엔 예쁜 돈이 없구나 흑흑.
당 떨어져서 그런지 초콜렛집들이 왜 이렇게 눈에 띄나. 런던에는 참 고급 초콜렛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제나 스위스 초콜릿이 인기가 많은 듯하다. 런던 여행 기념품이나 지인 선물로도 괜찮은 듯. 그나저나 스위스 초콜렛은 정말 비싸구나. 그램 당 10파운드가 넘다니. 돈 주고 사먹긴 부담스러워서 옆에서 시식하는 거 따라 받아먹어봤네.
시식하면 빼놓을 수 없는 휘타드. 여기 핫초콜렛 너무 맛있다. 한국에선 압구정인가 신사에 매장 하나 밖에 없는 것 같던데, 영국은 홈타운이라 그런가. 포트넘앤메이슨보다 매장도 자주 보이고 가격도 나름 합리적이라 사 먹기 부담없고. 선물하기도 좋고.
나는 왜 이렇게 시계가 좋지. 지난 번 가죽 스트랩 찢어진 이후로 실리콘이 더 눈에 들어오네. 이런 네모 시계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쵸콜렛도 비싸고 시계도 비싸고 뭐든지 비싼 스위스는 부자 나라네. 그런 부자회사들이 있는 여기 옥스포드도 마찬가지고.
지나가다 보이는 무지에서 주방용품 몇 개 샀더니 40파운드가 나왔네. 주방용품은 자주 오래 쓰는거라 좋은 거 사야된다고 생각했는데, --.9 가격에 홀려서 사다보니 거지 꼴을 면하지 못하겠어요. 괜히 마케팅에 놀아난 기분이기도 하고.
영국하면 빠질 수 없는 러쉬. 비누거품 팩토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애기들 참 귀엽잖아. 흐흐 사실 나도 가서 만져보고 놀았다. 가지각색 매력적인 향기에 취해 물건 여러 개 골랐다가 헤어 에센스 하나만 사서 나왔다. 은근히 생각보다 잘 안쓰게 된단 말야.
오늘 나온 목적 빅씨. 문 닫기 30분 전에 올라가서 얼른 바디로션 두 개 챙겨서 나왔다. 원래 안 쓰던 거 써볼랬는데, 사람들이 맨날 방에 올 때마다 향수 뭐 쓰냐고 물어서 어쩔 수 가 없네. 또 제가 워낙 빅씨 처돌이기도 하구요. 메일로 세일 엄청 한데서 왔것만 정작 체감상 크게 싸다고 느껴지는 건 많이 없었다.
가게 나오면서는 잭스의 빅토리아 시크릿 노래 들으면서 나왔다 껄껄. 상술인거 나도 아는데 가끔은 상술에 얹혀가고 싶구요.
집까지 버스타고 갈까 하다가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밖에서 외식할 돈 아껴서 집 가서 먹으려고 하는 거니까 비싼 지하철 타도 봐주기로 해요. 1파운드 차이에 덜덜 떠는 나... 진짜 외노자 답다.
오랜만에 만난 요리사 파힐. 사갈이 없어서 혼자 밥 해먹고 있길래 심심할까봐 곁에 있어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있는게 더 불편해보이길래 그냥 내려왔다. 월급 받게되면 같이 밥 먹자고 해봤는데 늘 흔쾌히 승낙하지만 절대 곁을 주지 않는 녀석. 그래 뭐 우리 사이가 그렇지 뭐.
10.15.월 [워홀+76]_ 한식당에서 일하는 외노자
한식당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은 한식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것! 이건 외식물가 비싼 영국에서 굉장한 장점이 된다. 그런 점 때문에 계속 일하는 워홀러들도 있을 정도니까.
그래도 항상 아쉬운 점은 있다. 한국을 떠나서 온 곳이 한국식당이라니. 같은 식당이라도 차라리 다른 문화권에서 일했으면 언어라도 늘고 체험하는 폭도 다를텐데. 내가 워홀을 온 목적이 바래지는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일은 하는데 중간중간 그 점이 좀 씁쓸하거나 현타 올 때도 있다. 그치만 뭐- 어쩌겠어 지금 여기가 내 유일한 옵션인걸.
오늘은 한국시간으로 이자랑 카드결제날인데 도와주기러 한 엄마가 연락이 안됬다. 인터넷도 안 터져서 은행앱도 안 열리고 겨우겨우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야 해결했다. 하- 대체 언제까지 계속 이런 생활을 해야되나. 호르몬이 맴도는 시기라 그런지 울컥 짜증이 났다.
브레이크타임때는 도서관에 갔다. 책들 많은 곳에 가면 기분이 좀 나아지니까. 내 수준에 맞는 책은 애기들이 보는 책이라, 항상 유아도서 코너부터 가게 된다. 의자도 딱 내 키에 맞아서 좋았다.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카드가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기존에 갖고 있는 걸로는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애기들 책 몇 권을 읽고 있는데, 또 무슬림 모자가 왔다. 그리고 또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땡깡을 부리는 아들과 그걸 지켜보는 어머니. 플랫에서 지내면서 느끼는 건데,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문화권은 소음에 너무 관대하다. 그런 동네 분위기에 지쳐서 여기로 온 건데. 정말 피곤하구만.
허기진 배를 채우려 초콜렛을 샀다. 한국에서도 먹어보고 싶던 토니스 지금 먹어봅니다. 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린트처럼 깊은 맛은 없는 듯?
오늘 근무는 월요일답게 비교적 수월하게 끝났다. 그치만 월요일까지 제안드렸던 조건을 고민해보고 답변을 주신다는 사장님은 근무가 끝날 때 까지 연락이 없으셨다. 그래그래 이젠 뭐 사실 어찌되도 상관 없을 것 같다. 그냥 다 내려놓게 되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퇴근 길이면, '외노자'라는 내 처지가 더 와닿게 느껴진다. 밤 11시. 늦은시간이 다 되어서 퇴근하지만, 1파운드를 더 아끼기 위해 간편한 지하철 대신 한참 더 걸려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모습이 정말 영락 없이 궁상맞아 보인달까?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공간. 싫다 정말.
외국 나오면 낭만 가득하고 화려한 삶을 살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이게 현실인 걸. 외노자의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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