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월 [워홀+83]_ 반나절만 일한 월요일
아무래도 알리는 한국사람이 다 되었음이 틀림없다. 두부 강정을 이렇게 맛있게 만들다니, 접 때 김치볶음밥도 그렇고, 어쩌면 한국사람보다 더 한식을 잘 만드는 것 같아. 확실히 경력이란게 무섭구만.
처음으로 오전 근무만 한 월요일. 대게 월요일은 풀타임이었는데, 신나네. 일 끝나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파서 쓰촨요리 전문점에 들어갔다. 바깥에 메뉴판 보고 생각보다 저렴해서 들어갔는데 먹고나니 30파운드가 넘게 나왔다. 내가 먹으려던 건 6파운드짜리 훈둔(만두국의 일종)이었는데, 돼지고기 조림이 이렇게 비쌀 줄 몰랐지.
그냥 맛있게 먹었으면 된 걸. 또 그 돈 썼다고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내 형편에 이래도 되는 건가. 이 돈이면 장을 세 번을 보고 뮤지컬을 한 번 볼 수 있는 돈인데, 너무 배고프다고 생각 없이 쓴 거 아니냐고. 한국에 비해 너무 비싼 영국 외식 물가.
그래도 중국식당이라 양은 확실히 많았다. 고기 다 못 먹어서 포장 요청했더니, 용기도 고급진 걸루 주더라. 내가 쓰던 파운드랜드 1파운드 컨테이너랑은 차원이 달라. 역시 홀본(Holborn) 식당들은 고급지구만. 그런데 사천요리식당와서 마파두부나 매운 요리 안 시키고, 슴슴한 거 시킨 나란 사람 좀 바보 같기도?
시내 나온 김에 타파통을 사러 프라이막에 갔는데 도시락통 밖에 없었다. 식료품점에는 팔 지 않을까 싶어 웨이트로즈를 가려다, 막스앤스펜서가 근처에 있길래 거기로 갔지.
확실히 막스앤스펜서나 웨이트로즈 제품들은 아마존이나 세인즈버리 거랑은 좀 다르다. 웨이트로즈 마스카포네치즈는 아마존 것 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인위적이지 않은 맛이 나고, 막스앤스펜서 모짜렐라 치즈는 더 연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어쩔 땐 고무씹는 것 같은 세인즈버리 치즈보다.
그래서 그런지 돈도 많이 나오지. 장 다 봐 놓고 결제가 안 되서 당혹스러웠다. 몇 개 사면 10파운드 정도 나오는 세인즈버리보다 두 배인 20파운드가 나왔네. 웃긴 건 참고 또 참아서 고른 건데 왜 이렇게 많이 나오나. 그것도 모르고 난 인터넷 연결 문제인지 알았는데 잔액 부족이었지 뭐야. 하 정말... 월급이 들어오면 무얼 하나~
집에 오는 길은 일부러 원래 타던 버스가 아니라 다른 버스를 탔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냥 평소와 다른 풍경을 보고 싶어서. 그리고 고맙게도 보랏빛 하늘부터 여러 예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뭔가 마음이 지친다. 어제 사장님한테 차인 여파가 꽤 오래가는 건가 집에 와서도 조금 피곤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하늘 무너진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죽치고 있나. 힘내라 별 거 아냐.
10.22.화 [워홀+84]_ 화를 가라 앉히는 화요일
새벽에 잠이 깼다. 며칠 전 부터 시끄럽게 하는 옆 방 때문에. 방 문을 열고 "It's too late. Be quitet."라고 말했다. 지난 번 부터 인사를 해도 씹고, 새벽 5시까지 떠들어대는 녀석 때문에 열받아있던 차에, 꿀꿀한 기분까지 더해져서 성질을 내게 됬다.
그런데 그 놈이 아니었다. 그 싸가지 없는 자식 대신 "I'm sorry. Buy I just came back now"라고 말하는 순둥이가 있었다. 당황하고 미안한 마음에 아무 말 못하고 방으로 다시 들어 잠을 잤다. 그리고 꿈을 꿨다. 서울로 돌아가는 꿈. 그렇게 가고 싶던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엄마도 바쁘고 심지도 바쁘고 다들 바빠서 만나주질 않았다. 나는 그런 그들을 기다렸다. 꿈에서마저도 만날 수 없는 우리.
꿈에서 분주히 돌아다니지 않은 덕분인지, 오랜만에 10시까지 푹 잤다. 점심을 먹고 주방 찬장을 정리했다. E-visa를 신청하고 노팅힐에 가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비자신청이 쉽지 않았다. 증명사진을 찍어 올려야 하는 부분에서 계속 승인이 거절 당했다. 30번도 넘는 거절로 한시간은 훌쩍 넘어갔고, 결국 난 이상한 사팔뜨기 사진으로 승인을 받았다.
킹쓔's 영국워홀 꿀팁! BRP> E-visa
준비물: 여권이나 BRP, 휴대폰, 증명사진을 찍을 얼굴
올해부터 영국 BRP가 E-visa로 변경되었습니다. 기존의 실물카드로 우리나라 외국인신분증 역할을 하던 영국
BRP는 웹사이트를 통한 전자문서로 변환되었습니다. E-visa 신청기한은 본인의 BRP 유효기간과 연관되어있으니, 확인 후 영국 이민청을 통해 신청하시길 바랍니다. 영국 E-visa 발급 기간은 신청 후 하루 정도 소요됩니다.
더 이상 스탠드를 들고 다니며, 흰 배경을 찾아 다니기 지쳤었다. 눈 감고 있거나 이상하게 뜬 것만 정상이라고 판단해주는 AI 미친거 아니냐고. 이 사진을 찍으려고 한 시간동안 머리랑 화장까지 풀 셋팅했지만 결국 왠 범죄자 한 명이 드러앉았다. 다 헛수고가 되었네.
어제부터 계속 퍼져있다. 약속이 뒤 엎어진 데에 대한 화가 아직도 남아있는 건지 호르몬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이 우울함과 무기력으의 늪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쉬는 날을 날리면 아깝다 싶어서 집 근처 타워브릿지라도 나갔다. 사실 거기도 걸어서 40분 정도라 가까운 건 아니지만 또 먼 것도 아니니까.
참새가 방앗간 지나칠 소냐. 가는 길에 수퍼드러그 있길래 또 예의상 들러줬다. 살면서 무언갈 이렇게 아껴 써 본 적 있던가. 특히 화장품은 다 떨어지기 전에 항상 잉여분이 가득했는데... 부유하던 한국생활이 그립구만. 7파운드 아끼겠다고 눈썹 사기는 미루지만, 먹는 데는 돈 팍팍 쓴 나... 훌륭하다 훌륭해.
6시쯤 나왔는데도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요즘 런던에서는 6-7시면 날이 저무는 것 같다. 곧 12월이 되면 3시부터 깜깜해진다고 하는데 그 때되면 진짜 활동시간이 많이 줄어들겠네.
얼마 전부터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온 파이브가이즈. 인스타에서 보니까 타워브리지뷰 보면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이 지점으로 왔지롱요. 오는 김에 밀쉐까지 먹어주고, 땅콩은 가져는 왔지만 먹지는 못했다... 집으로 수거. 햄버거 진짜 반 만 먹어도 배부르네, 천 칼로리는 가뿐히 넘겠다. 휑한 표지판에 방명록 그림도 하나 남기고.
오늘은 용기내서 사람들에게 말도 더 많이 걸어봤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진도 찍어달라고 해보고 스몰토크도 걸어보고. 성언니가 말했지. "큰 일을 성공시켜 얻는 기쁨보다, 작은 일로 부터 꾸준히 얻는 성취도 중요하다"고. 영어로 말하긴 어렵고, 그래서 더 낯선 사람들에게 말거는 게 겁나지만, 조금씩 해내봐야지.
사진을 보다보니 살이 포동포동 오른 얼굴이 보였다. 아니 요즘 그렇게 힘들게 일 하는데, 왜 자꾸 배가 나오는거에요? 답을 알고 있긴 합니다... 많이 먹으니까요. 일 하는 날은 야식부터 간식까지 아주 알차게 먹고, 일 없는 날은 몸 보신 한다고 먹고, 혹시 또 굶을까봐 누가 주는 거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먹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부턴 정말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 아니 간식 만이라도 끊겠다. 그런 핑계로 가는 길에 까뇰리 냠냠... 저번에 먹었던 케이크 맛있어서 샀는데, 이 집은 파이는 잘 못하는 구만. 그래도 확실히 좀 걷고, 예쁜 것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니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이 활기찬 기분으로 내일부터는 진짜 건강하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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