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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10월 여덟 번째 일기 (10.17~10.18)_ 배를 꽉꽉 채우는 중

by 킹쓔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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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목 [워홀+79]_ 고기파티 먹부림파티


 요즘 뭘 엄청 먹어대는 느낌. 호르몬이 돌 때라 식욕도 왕성한데, 일할 때 힘들고 지쳐서 그런지 보상 심리로 계속 뭘 먹게 된다. 

도올 생각나는 중국삼겹살 / 대충 구운 애플파이

 그리하여 오전 내내 먹고 뒹굴거리다가 저녘에 일을 나갔습니다. 사장님이랑 업무분담 이야기 나온 이후부터 구직 활동을 살짝 놓게 됐다. 밖에 나가봤더니 하늘 아주 맑고 좋네. 

이 정도면 나름 맑은 런던하늘

 

저녘밥은 불고기

  저녘근무가 끝나고 사장님과 드디어 만났다. 하지만 이번 주 일요일날까지 또 답이 미뤄졌다. 일도 늦게 끝나고 얘기도 좀 했더니 열 두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왔다. 반나절만 일했는데 왠 종일 일하다 온 기분이 든다. 


10.18.금 [워홀+80]_ 열 받을 땐 먹습니다.

 

 오늘은 안경부터 운동화까지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왔다. 오전 오후 풀 근무에 브레이크 타임 때는 외부 촬영까지 있는 날 이기 때문이다.

준비 완료/ 수퍼바이저님이 주신 간식

 하지만 촬영 펑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장님이 바쁘셨는지 캔슬된 걸 늦게 전달 받았고... 그렇게 붕 떠버린 나의 브레이크 타임. 이럴 줄 알았으면 노트북 가져왔을텐데... 뭐- 쉬는 시간 생겨서 좋네. 주변 산책이나 하자.

태봉이가 좋아하는 영국 빨간 전화부스

 지난 번에 가려다 못 간 웨이트로즈로 출발. 거의 백화점 수준으로 엄청 크네. 바로 옆에 테스코도 있고, 여기 사는 사람들은 좋겠어. 대신 집값 엄청 나겠지. 

 확실히 식료품 질도 다르고,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동네에는 잘 없는 새우나 홍합같은 해물부터 레드올리브까지, 부내 나네 부내 나. 눈 돌아가서 사고 싶은 거 진짜 많았는데, 잔고가 진짜 하나도 없어서 2파운드짜리 빵이랑 치즈하나 사서 나왔다. 예전엔 한인식료품 오세요에 환장했던 나. 이제 영국 좀 살았다고 취향도 달라졌네. 

 

Waitrose & Partners · 174 St John St, London EC1V 4DE 영국

★★★★☆ · 슈퍼마켓

www.google.com

 

4파운드로 떼우는 끼니

 우리나라로 치면 신세계푸드처럼 나름 고급 식료품점 웨이트로즈. 막스앤스펜서랑 비슷하게 금액대가 조금 높지만 품질도 보증된 편이고, 선택 폭도 넓어서 쇼핑하기 좋다. 은근 관광스팟에서 흔한 막스에 비해 웨이트로즈는 좀 덜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마스카포네치즈도 세인즈버리나 아마존보다, 조금 비싼 대신(약 0.5파운드 정도) 부드럽고 느끼하지 않다. 

제법 맛있었음

 여기 사람들은 서서 뭘 먹거나, 야외에서 먹는 걸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식사는 갖춰진 곳에서 앉아 편안하게 먹어야 하는 우리나라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느낌. 그냥 끼니를 떼우는 데 의미를 두는 건가, 외식 물가가 워낙 비싸서 그런가 아니면 공원이나 벤치처럼 공공 휴게공간이 잘 되있어서 그런가. 하튼 뭐 그 덕에 나도 와서 잘 쉬고 가는거지 뭐.

 

 가끔 이렇게 갈 곳 없이 떠도는 나를 보면, 홍콩의 '가정부 소녀들'이 생각난다. 맞벌이 가정이 흔한 홍콩에선 수많은 외국인 소녀들이 입주 가정부들로 일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가족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비좁은 홍콩 주택 구조 상 그들이 머무를 곳도 없고, 노동법 상 하루의 휴게시간이 제공되어야 하므로 일요일이 되면 머물던 곳에서 잠시 나가야 한다. 자유시간을 얻었지만 갈 곳도 할 것도 딱히 없어 길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그들은 육교 근처에 떼를 지어 무리를 이루게 된다.

 

 쉬는 시간이 생겼는데도 딱히 갈 곳도 할 것도 없었다. 당장 여기서 뭘 더 하면 앞으로 일 다닐 차비도 없는 걸. 벤치에 앉아 빵이나 먹고 있으니까 왠지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고. 여기 동네가 워낙 또 있는 집 자식들이 많아서 더 비교되기도 하고. 

 

  내가 일하는 파링던(Farringdon)은 시티오브런던(센트럴, 시내)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다. 그만큼 고급 상점들부터 학교, 멋드러진 건축 사무실이나 레고, 테스코 등 유수의 기업들이 즐비한 곳이다. 

파링던역 근처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 16 Clerkenwell Grn, London EC1R 0QT 영국

★★★★★ · Orchestra

www.google.com

 

자전거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과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

 그래서 더 명암이 뚜렷히 대비된다. 누군가는 세련되고 멋드러진 차림으로 여유있게 거리를 누비고, 누군가는 누추한 옷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린 채 생계를 위해 목숨 걸고 있는 모습이. 나는 그 중에 어느 쪽 일까?

길거리에서 만난 런던 사람들

 

 퇴근 길에는 버스가 또 연착됐다. 망할 런던 버스. 일찍 끝나면 뭐하나 여기서 시간 다 까먹는데. 1파운드라도 더 아끼겠다고 이러고 있는 모습에 조금 짜증이 났다. 이런 기분에 소금 뿌리듯 축축히 내려버리는 비. 게다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계약서까지 꿀꿀한 기분을 완성하는데 한 몫 했다.

 

 이젠 아무 상관없다 했지만 질질 끌리고 있는 이 판에서 더 초조해지는 건 나 뿐 인 것 같은 사실이 조금 씁쓸했다. 게다가 아직도 서빙 업무가 능숙하지 않은 모습도 좀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냅킨 달라는 말을 못 알아들을 때나 (영국에선 냅킨을 ' serviette'라고도 한다. 손님이 번역기를 돌려주셨는데 그마저도 '구출하다'로 나와서 더 헷갈렸다.) 테이블 확인을 안 하고 서빙했다가 메뉴를 누락하기도 하고. (뭐 이건 내 직접적인 실수는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그 덕에 공짜 음식을 먹긴 했다. 물론 그렇게 먹은 게 기분 좋고 맛있게 먹기는 힘들었고.) 조금 만만이 봤던 이 일에서조차 삐걱대고 있는 내 모습에 침울해졌다.

 

 그런 기분을 지우고 싶었던 건지, 집에 오자마자 브라우니랑 과자를 해치웠다. 밤 열 두 시 에. 사실 채워야 할 건 이런 게 아니라 용기나 자신감, 애정 같은 거란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뭐- 그런데 이 상황에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 한국에서 주짓수하고 등산 다닐 때가 그립구만.

 

 그래도 본격적으로 업무 맡기 전이니까 쉴 수 있어서 좋다 생각할래. 주입식 럭키비키. 쉬는 동안 영양 보충 잘 한다 치고 이렇게 먹부림으로 하루를 마무리 해봅니다. 이건 단지 지나가는 과정이라 여기면서. 지금 이 상황이 내 정착지는 아니라고 믿으면서. 오늘 같은 날들이 단단하게 하고, 그런 변화가 또 다른 성장을 가져오면, 이런 고생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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