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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10월 열 두 번째 일기 (10.25~10.26)_ 꿀꿀한 기분에서 꿀꿀 돼지로

by 킹쓔 2024.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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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금 [워홀+87]_길다 길어 금요일

 

 언제쯤 내 빨래를 만날 수 있을까? 여전히 멈춰버린 세탁기를 뒤로 하고 출근을 했다. 이 정도면 옷에 영혼이라도 깃들 시간이 아닌가.

미친아들놈이라니, 안 빌릴 수 없잖아

 조금 일찍 나가서 지난 번 대출했던 시집을 반납하고 얇은 소설책을 빌렸다. 확실히 고전시는 모르는 말도 많고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 조금 어려웠다. 과연 이건 몇 줄이나 읽을 것인가.

 

 출근 길 갑자기 촬영 지원을 요청하시는 사장님. 오늘 브레이크 타임 때 가야한다는 얘기를 몇 시간 전에 말해주시다니. 원래 센트럴로 나가서 책도 읽고 눈썹도 사고 이것 저것 뭐 좀 해볼랬는데...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사장님이 주신 카드를 잃어버렸다. 분명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는데 버스를 타려고 보니 온 데 간 데 없었다. 혹시나 싶어 쓰레기통까지 다시 털었고, 가게를 샅샅이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약속 시간이 다 되어 하는 수 없이 출발했다. 허겁지겁 온 탓에 인터뷰는 매끄럽지 못했고, 화면에 개인정보가 자꾸 걸리는 바람에 영상도 거의 잘 못 뽑았다.

 복귀하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또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어떻게 얻어 낸 교통카드인데, 그걸 잃어버린담. 그것도 일반 오이스터카드(영국식 티머니)도 아니고 입출금 전용카드인데 더 죄책감이 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온 메시지/ 보이는 메시지

 그 와중에 한국에선 오대산 친구들이 내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회식 중이었다. 휴- 나도 보고싶구나 친구들. 한국이 킹왕짱이야. 한국에서 카드 잃어버렸으면 이렇게 걱정도 안될텐데. 정류장 옆 장난감 가게 쇼윈도로 "난 굉장한 사람이야"이라는 글이 보였다. 나는... 언제쯤 굉장해 질 수 있을까?

 

 버스를 탔는데 귀여운 강아지를 만났다. 영국에선 버스에서 강아지를 보는 게 흔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개똥이나 냄새는 안 난다. 낑낑대는 강아지를 보자 옆 좌석에 애기들은 그 소리를 흉내내며 놀려댔다. 그러면서 갖고 있던 과자를 쏟았는데, 줍지 않았다. 그걸 어느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깔끔한 강아지와 깔끔하지 못한 사람들

 코너에서 보호자로 보이는 엄마가 왔지만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거나 제지하지도 않았고 흘린 과자를 보고 치우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여자는 히잡을 두른 걸로 보아 무슬림으로 추정됬다. 공공장소 예절이나 질서 같은 것에 굉장히 관대한 그 문화권. 영국에 와서 자꾸만 특정 종교나 국가에 대한 편견이 늘어간다. 

 

 돌아와서도 계속 카드를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CCTV까지 확인해봤지만, 사장님만 귀찮게 했을 뿐 딱히 효과는 없었다. 그렇게 반 쯤 포기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어떤 남자가 뭔 가를 들고 왔다. 식당 근처 문 입구에 떨어져 있는 카드를 발견하고 주인을 찾아주라고 가져다 준 것이다.

 

 가게 안에서 잃어버린 줄 알고 안전한 상태라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던 것이다. 거리에는 소매치기가 많은 영국 특성 상 사장님께 더 대역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죄송무새가 되기로 했다. 내 잘못이 아닌 실수를 지적 받을 때도 그냥 굳이 변명하는 느낌이라 말을 아꼈다. 손님도 많아서 정신없는 와중에 자꾸만 카드 분실 건에 대해 죄책감이 마음 한 구석을 짓눌렀다. 

  그러니까 세탁기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잠겨있던 문이 열리길래, 입고 있던 옷 까지 벗어서 돌렸는데 또 문이 잠긴 채로 작동이 멈춰졌다. 또 고장이라니. 나는 오늘 종일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에너지가 고갈 된 상태였다. 세탁기마저 날 괴롭히면 안됐다. "Doesn't it work again? Bad luck!"이란 슈룹의 농담 섞인 한 마디에 정말이지 짜증이 났다.

 

 아니 화 낼 기운도 없는 걸. I'm drained after working hard outside all day long. 너무 긴 금요일이다.


10.26.토 [워홀+88]_ 우울함은 토해낸 토요일

 

 아침 일찍 조이에게 전화를 걸어 세탁기 수리를 부탁했다. 주말인 거 아는데, 당장 4일 동안 갇혀있는 내 옷부터 찾고 싶었다. 이러다 세탁기 트라우마 생기겠다고. 다행히 연락을 받고 바로 해결해준 덕에 옷을 꺼낼 수 있었다. 다시 세탁기를 돌려주려는 걸 만류하고 그냥 근처 빨래방으로 들고 갔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기도 하고, 비용도 싼 편이 아니라 고민이 됐다. 그래도 세탁물에서 쿰쿰한 냄새가 조금씩 났고, 이걸 다 손 빨래로 할 엄두가 안 났다. 영국에 온 이후로 손가락 상태가 좋지 않다. 계속된 설거지와 물기를 닦아내는 동작 때문에 관절염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몇 푼 아끼자고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영국 빨래방 경험도 해보고. 내 세탁물 양이 많지 않아 생각보다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세탁기도 생각보다 좋았다. 지난 번 까만 물이 들었던 존 루이스 수건도 조금 하얘진 것처럼 보였다. 시간도 40분 정도라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플랫에 있을 때 보다 인터넷도 더 잘 터지는 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어제 촬영한 영상을 올렸다. 

그 와중에도 일 하는 나 대단.

 어제의 여파로 오전엔 정말이지 생각이 많았다. 영국 생활에 적응 하는 게 쉽지 않다고 느껴졌다. 한국인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영국식 사고 방식을 가진 그들을 대하기가 어려웠고, 플랫메이트들이나 디온도 사실 마찬가지니까. 나를 사랑해주는 내 친구들과 손쉽고 편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이 그리웠다. 여기선 추락해버린 듯한 내 사회적인 위치나 주거 환경도 miserable하게 느껴졌고.

 

 근데 또 웃긴 게 수영이랑 통화하고 나니까 좀 기분이 나아졌다. 걔가 딱히 내 말에 크게 공감해 준 것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얘기만 했는데. 친구란 그런 건 가보다.  

 

 장을 보러 가야 되는데, 나가기가 너무 귀찮았다. 야채가 얼어서 먹을 게 없다는 핑계로 라면을 먹었다. 에그마요를 했는데 빵이 없어서- 내일 치 투굿투고를 신청했다. 

 좀 피곤해서 자려다 갑자기 삘 받아서 방 청소를 했다. 미룬 거 다 해버리자 싶어서 세인즈버리로 장도 보러 갔다. 가는 길에 큰 불빛이 보여서 벌써 트리가 섰나 했더니 그냥 전등이었다. 어쩐지 우리동네에 이렇게 큰 트리가 있었나 했네.

가는 길에 발견한 예쁜 거리

 

버가가 생각나는 백조잠옷

 

장 본 것 / 만든 것

  장 보고 돌아와서 야채를 손질하는데 주방에서 사갈을 만났다. 여전히 바쁜 것처럼 보이는 그. 진짜 바쁜 걸까 바쁜 척 하는 걸까. 뭐 쨋든 냉장고 칸 없어서 걱정했는데 월요일 날 파힐 오면 장 보러 갈 거라고 흔쾌히 아래 칸을 빌려준 그. 그래 이 정도면 참 좋은 이웃이지 뭐. 먹을 거 준비하다보니 기분 좋아지는구만. 역시 난 꿀꿀 돼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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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두시에 맞춰 업로드하려고 열심히 일기를 썼는데, 휴대폰 보니 한 시여서 뭔 일이지 했다. 탁상시계 고장났나 시간 잘못맞췄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부터 썸머타임 적용 끝나서 그렇구나. 깔깔 신기하네 정말. 

 

 그래서 내일은 집에서 먹기만 해야겠다. 아침은 상추를 곁들인 아보카드, 계란, 간장밥을 먹을 거구요. 점심은 냉침해놓은 블랙티랑 오이 양파 넣고 에그마요 샌드위치 해 먹을 겁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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