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4.월 [워홀+258]_ 돈 없어도 잘 살아요
오늘은 날이 좋아서 라피랑 캐치볼을 하러 갔다. 라피는 마르고 매일 빌빌대서 운동신경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왠 걸. 너무 공을 잘 던졌고, 오히려 날 가르쳐 줄 정도였다. 참나- 왜 이런 걸로 자존심이 상하는 걸까.
그 기분도 잠시. 또 오랜만에 운동이라 설렜거든요 호호. 거의 한 마리의 강아지가 되어 "물어와 볼!" 하면 공 향해 뛰어가던 나. 던지기 연습부터 받기까지 자세 제대로 교정 받고요. 하- 삼십분도 안돼서 땀 범벅이 됐다. 이럴 거면 샤워는 왜 하고 나온걸까 현타 오는 거, 파스타 먹으면서 눌러줬구요.
엠지샷 찍고 싶다고 설쳤는데, 내가 찍은 사진들 마다마다 머리카락 쪼금 나오다 마는 거다. 답답한 리얼엠지씨가 한 방애 찍어준 사진. 근데 노숙자 아저씨는 왜 같이 찍은 거니...
끝나고는 동전통을 털어 장을 봤다. 팁으로 받은 코인들을 세어보니 7파운드(한화 만 사천원 정도)가 되어서 그걸로 저녁거리를 봤다. 흐흐 돈은 없지만 나름 잘 살고 있다. 공원에서 운동도 하고, 도시락도 싸 들고 다니고, 동전 털어서 장도 보고 뭐 이 정도면 됐지 뭐. 빈곤 속에서도 풍요롭게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04.15.화 [워홀+259]_잘 먹어야 해
오늘은 휴가비 들어오는 날. 돈 들어오자 마자 제일 먼저 달려 간 곳은? 바로 새로 생긴 독일 빵집!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사 먹었는데 너무 맛있잖아. 영혼까지 쏙 빼놓을 정도로 맛있는 프레젤... 역시 마트 공장빵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한국빵이 디저트쪽에서 맛있다면, 유럽빵은 식사빵에서 그 진가를 드러내는 것 같다. 담백하고 고소한데 풍미가 가득해서 하나의 예술작품을 먹는 느낌이랄까.
지나가다 고양이 사료 프로모션 발견. 수영이 주려고 열심히 들어줬는데, 내 고양이 아니면 안된다네. 심지어 무료 증정도 아니었어...
어제 남은 토마토랑 바질, 양파 저민거에 올리브오일이랑 발사믹 뿌려서 먹었더니 맛있다. 콜드 파스타로 먹어도 손색 없구만. 용가리 치킨 생각나서 아이슬랜드에서 산 치킨너겟도 너무 맛있고. 키위에 요거트 뿌려 먹었더니 또 끝내주는 디저트가 되었다. 흐흐. 인생 뭐 있나 먹고 살라고 하는 건데 뭐. 그런 의미에서 오늘 참 잘 먹었다!
04.16.수 [워홀+260]_ 화창한 날에는 피크닉을 갑니다
날이 너무 좋아서 러셀 스퀘어로 갔다. 마트에서 과자 몇 개 사서 돗자리 깔고 앉았는데, 별 거 없던 그 시간들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
러셀 스퀘어 · Russell Sq, London WC1B 5EH 영국
★★★★★ ·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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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목 [워홀+261]_국제도시로써 런던과 서울
오늘은 오랜 만에 외부 촬영을 하러 갔다. 오늘의 인터뷰이는 인도네시아계 영화 음악 작곡가 청년. 인스타에는 사진들로 가득하길래 사진 작가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진은 부업이고 작곡이 주 업무란다.
런던에 와서 느낀 점은 여긴 정말 날고 기는 인재들이 많다는 거다. 한국에선 그렇게 접할 일이 많지 않았는데, 특히 예술 분야 쪽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 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흥미로운 건 그 뛰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제3세계 출신이었다. 물론 내 경험을 일반화 하기엔 얄팍하긴 하지만, 어떤 이에 따르면 ''날고 기는 그들이 더 날고 싶어서 여기로 오는 거.''라고 했다. 국가가 개인의 역량을 펼칠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꿈이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더 큰 도시인 런던으로 오는 거라고. 대부분 사람들에게 영어는 크게 낯설지 않은 언어가 되었으니까.
하이드 파크 · 영국 London,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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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애들이 몰려오다보니 로컬이 살기 힘든 도시가 돼버린 것 같다. 흘러 들어온 그들로 인해 경쟁은 심화되고, 일자리는 부족해지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일도 일어난다. 그러다보니 외국인 혐오 범죄나 폭동 같은 것도 일어나는 거겠지.
서울이 아무리 글로벌화되고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 런던에 비하면 먼 것 같다. 우리나라는 한국어라는 언어 장벽 때문에 영어에 비해 접근성이 좋지는 않겠지. 하지만 또 그런 사실에 감사하기도 하다. 어떤 이의 표현에 따르면 ''유일한 단점이자 장점인 한국어의 장벽''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의 서울이 되기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물론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서울이 '우리의 서울' 로 남기를 좀 더 바라는 편이다.
04.18.금 [워홀+262]_해피 이스터
월요일은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명절인 부활절(Easter)이다.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큰 이스터 할러데이시즌은 달걀과 토끼로 장식된 귀여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휴가철이라면 기쁘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워홀러인 나는 휴가철이 조금 싫다. 왜냐하면 휴가철이라서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내 근무 일 수도 줄고, 내 벌이도 줄게 되니까...하튼 그래서 조금 걱정이 많았는데, 라피가 이스터 선물이라면서 장 본 것들을 계산했다. 깔깔. 돈도 없어서 꽃도 꺾어왔으면서 웃겨 아주.
04.19.토 [워홀+263]_ 한가로운 이스터 세러데이
오늘은 이스터 할러데이시즌이라 손님이 없었다. 그래서 나나미랑 뉴진쓰랑 같이 일을 했는데 여유롭고 나름 재밌었다. 일본인인 나나미는 어리고 귀엽지만, 당차고 든든한 친구다. 얼마 전에 서비스 차지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 내가 왜 그 금액을 지불해야하냐?''는 무례한 손님이 있었는데,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나나미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날 지켜줬을 거란다. 깔깔. 귀여워 정말 역시 성숙도는 나이에 비례하는 게 아닌 듯?
04.20.일 [워홀+264]_가끔은 우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답니다
호르몬의 영향일까? 아침에는 정말 우울했다. 몇 주 전부터 시작된 알러지는 피곤한 컨디션 탓에 더 기승을 부렸다. 코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딸기코처럼 변해있었고, 손도 댈 수 없이 아팠다. 무릎을 포함한 온 관절도 욱신욱신거리며 통증으로 자기 존재의 여부를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이의 소식을 때문에 심적으로 더 흔들렸다.
워홀러들에게 그런 날들은 주기적으로 것 같다. 잘 하고 있나. 지금 난 뭘하고 있는걸까. 이렇게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마구마구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울함에 잠식될 사람이 아니지! 그럴 때 일수록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어제 나나미가 준 라면에 뉴진스가 추천해 준 오일도 한 방울 넣어서 근사한 한 끼를 만들었다. 살구잼이랑 크림치즈도 사서 오대산 크래커도 만들었다. 그걸 하나씩 집어먹으며,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믹 영화를 봤더니 시간을 보냈더니 다행히도 기분이 좀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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