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워홀

25년 12월 마지막 일기 (12.26~12.31)_ 잘가, 2025년

킹쓔 2026. 1. 1.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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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금 [워홀+514]_ 남자에게 머리카락이란


 내 생애 그가 이렇게나 화낸 적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매 번 긴 머리 정리 좀 하라고 했는데 미용실 값 비싸단 핑계로 미루길래 내가 그냥 자르자고 했다. 하도 짧게 자르지 말라고 난리 쳐서 이번엔 내가 거울까지 들고 기장까지 매 번 확인하며 잘랐는데.

비포컷. 넘 화내서 애프터는 찍지도 못함.

 순간 가위질 잘못해서 한 쪽이 확 짧아졌고, 약 4센치 정도 되는 길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 본 적 없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겁을 먹은 나는 머뭇거리며 그냥 끝에만 다듬으며 눈치를 살폈다. 게다가 시간상 급하게 마무리 지어야 해서 결국 이도저도 아닌 채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남들은 다들 얼굴 작아지려고 난리인데, 그는 자기 얼굴이 너무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고 화가났다. 휴. 이게 이렇게 까지 화낼 일이냐고. 매 번 커트 후 손님 눈치를 살피는 미용사들의 마음을 알겠다.


12.27.토 [워홀+515]_ 시간 참 빠르다


 반 년 넘게 공사 중이던 도너츠샵이 드디어 오픈 했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2025년도 얼마 남지 않았어.

나중에 월급 들어오면 사먹겠습니다


12.28.일 [워홀+516]_ 료코네 놀러가자


 아끼고 아끼면 무얼 하나. 정말 멍청비용 발생. 어제 사 놓은 케이크를 깜빡하고 냉장고에 두고 오는 바람에 다시 샀다. 그거 기다린다고 일부러 야근까지 했는데.

 하여 다시 급하게 들른 케이크 집. 아니 근데 떨이도 아니고 제 값 다 주고 샀는데 생각보다 신선하지 않았던 케이크. 폴 너 이럴거니? 이렇게 부산 떠는 이유. 오늘은 료코네 집에 놀러 갑니다.

 

원 캐나다 스퀘어 · 영국 E14 5AB London, 런던

★★★★☆ ·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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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 덕분에 처음 와 보는 카나리워프. 영국의 여의도같은 곳이라는데 확실히 물가라 예쁘네. 날씨가 흐려서 조금 아쉽지만 여름엔 진짜 예쁘겠다. 

 

카나리 와프 · 영국 런던

영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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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코네 집 근처 바진

 우리집 근처 바진은 춥다고 안 가면서, 료코네 바진은 예쁘다고 신나서 뛰어다녔구요. 하필 또 전 날 파카 잠바를 빠는 바람에 혹독한 물가 바람에 다시 감기가 걸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내친구는 부자였다.

 창가로 강이 내려 다 보이는 리버뷰 펜트하우스. 지하엔 수영장도 보였다. 몰랐는데 료코 너 진짜 부자였구나.

떡은 거의 없는 떡볶이와 케이크들-단짠단짠 파티

 한국음식 먹고싶데서 만든 떡볶이. 밀키트 샀는데 코딱지만큼 들어있는 떡볶이보고 냉장고 이것 저것 재료 때려박아서 만들었다.  아까 웨이트로즈에서 양배추랑 계란 안 샀으면 큰일날 뻔 했네. 근데 여기까지 와서 재료도 사고 요리도 다 하면 그냥 내가  호스트아니냐구요 깔깔?  후식으로 케이크들도 먹어주고.

 엄청 크다는 아스다도 갔는데 문 닫을 시간이라 필요한 것 만 대충 집어서 왔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까지 찾아간 게 고생스러웠는지 버스에서 계속 상모 돌리기. 진짜 졸렸다. 

 집 와서 라피가 놓고 간 야채피자랑 내가 놓고 간 케이크를 먹었다. 고기 안 들은 피자는 안 먹겠다고 해 놓고서 비주얼에 반해서 생각보다 맛있게 잘 먹었다. 무스케이크는 너무 오래 된 느낌이 나서 가져갔으면 큰 일 날 뻔 했네. 


12.29.월 [워홀+517]_ 별 거 아닌 건, 미루지 맙시다

 

 오늘은 유독 뭘 하기 싫었다. 그래도 연말인데 게으르게 보내기 싫어서 미루던 가계부도 정리하고 집 정리도 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출근 전까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가끔 막상 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들이 하기 전에는 커 보여서 겁먹고 미루는 때가 많은 것 같다. 


12.30.화 [워홀+518]_너의 새해 결심은 뭐니?

 

 회사 사람들이랑 새해 결심을 얘기했는데, 다들 여기를 탈출하는 게 목표란다. 깔깔. 사실 나도 그래요. 내년에는 꼭 우리 다른 곳에서 만납시다. 그래도 오늘은 생각보다 곧잘 신규 업무를 잘 해냈다. 뿌듯. 

 

 퇴근 하려는데 케빈이 지금 하기 힘들거라며 말렸다. 알고 보니 취객이 난동을 부려서 경찰이 체포 중이라 사무실로 내려갈 수 없었다. 그 남자는 경찰의 체포가 너무 타이트하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그러게 아저씨는 왜 집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지 연말부터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시나요. 새해에는 부디 이런 모습 보이지 마시길. 


12.31.수 [워홀+519]_ 2025년을 보내며

 

 벌써 새해를 맞은 한국에서 신년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 너희들이 먼저 만난 2026년은 어떻니? 올 해는 보신각 대신 DDP나 잠실타워에서 카운트다운을 한다고 하는데. 다들 어디 갔으려나. 

 

 어제 미루고 미루던 릴스를 아침에야 마저 올렸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그냥 시작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올 해는 유독 더 와 닿게 느꼈다. 매 해 작년 기억들을 기념하던 일들이 올 해는 유독 귀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놓아버리면 영영 놓쳐버릴 습관 같아서 꾸역꾸역 하다 달았다. 스쳐 지나가버린 날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기억들이 가득 찬 한 해였다.

 

 좋은 기억도 많지만, 어떤 기억들은 여전히 아프다. 살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여러 번 했는데도, 늘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립지만 닿을 수 없는 마음들은 가슴 속으로 삼켜내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 혼자 보낼 것 같던 올 해 생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하루였다. 매 년 성대하게 축하를 받던 날이라 더 대비될 것 같았는데, 다행히 라피와 함께였다. 그리고 사실 생일날 이사 하느라 사실 정신 없었다. 깔깔. 

 

 다른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자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앞 날을 축복해주는 자리에도 참석했다.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더 깊은 고독에 빠지지 않았던 건 이곳에서 곁을 지켜주는 이들과 한국에서도 나를 챙겨주는 여러 사람들 덕분이겠지. 

 이제 제법 이 곳 생활에 적응을 잘 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오히려 우리집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런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편안함을 느꼈다고 하면 좀 웃길까. 그래도 여전히 이곳에서의 삶은 쉽지 않다. 갑작스러운 집 문제부터 응급실, 세금 등 외국인으로 산 다는 건 정말 안심할 수 없는 시간의 연속들이다. 그치만 포기 않고 버텨낸 덕분에 내 영어 실력도 위기 대처 능력도 한 껏 레벨 업 했다고.

 

여전히 나는 부족하지만-여전히 성장 중이기도 하다. 그러니 2026년은 어떤 소식으로 놀래 켜 줄 지 다들 기대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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