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9.금 [워홀+528]_ 생일 축하 합니다
남들은 뭐 별거냐는 생일. 나한텐 그 하루가 참 소중하고 의미 있는 날이었다. 늘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고,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축하 받을 때면 잘 살았다 하는 마음에 뿌듯해지고 행복감을 느꼈다.



그런데 올 해는 조금 다른 날이었다. 매 년 행복한 시간들만 보냈는데. 지금 보니 그 때마다 친구들이 멋진 하루를 만들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생긴 기대를 올 해는 좀 잘라주고 싶었나. 수영이가 파리랑 런던이랑 헷갈려서 알람도 잘못 맞춰 놓는 바람에 내가 먼저 축하는 안 해 줄 거냐는 추궁을 들었다 (참고로 그녀는 관광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오늘은 당연히 라피와 보낼 줄 알았는데. 생일날 마저 늦어버린 라피와 한 바탕. 어제 마감 후 늦지 않으려고 밤을 새다가 잠깐 졸아버렸다는 그 말도 변명처럼 느껴졌다.
생일 같이 보내고 가려고 여행 날짜도 바꾼 건데. 오늘만큼은 그러지 말았으면 했거늘. 결국 갈 데 없어서 뉴진쓰한테 갔다 바빠보여서 다시 근처 성당 갔다 그냥 집으로 왔다. 하필 또 휴가까지 써서 시간은 많은데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는 오늘. 서러워.


다들 나를 잊은 건지 애들이 있었다면, 한국이었다면 달랐을텐데 싶어 방에서 펑펑 울었다. 빈 속에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는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실 주변에 얘기도 안 했고 다른 사람들이랑 놀라면 충분히 놀 수 있었다. 그런데 그냥 호르몬도 그렇고 요즘 마음이 많이 복잡해서 그랬던 것 같다.
다행히 저녁때는 라피와 시간을 보내면서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내 생애 처음으로 케이크 초도 한 번 못 불고 끝날 줄 알았는데. 정말 미운 구석이 많은 녀석이지만 나에겐 누구보다도 그가 필요했던 것 같다.


하필 내일 여행 가는데 케이크랑 꽃을 사와 버린 내 남자친구... 생일 케이크는 꼭 칼로 썰어야 한다고 홀 케이크로 사오는 고집. 이런 거 나는 괜찮은데, 그냥 제 시간에만 왔으면 됐을 것을. 우리 서로 각자 생일 때 한 방 씩 먹였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는데 진가가 있는 남녀 구만.


저녁은 매 번 지나가다 구경만 한 중국집에서 먹었다. 중간에 머리카락이 나왔는데 무시하고 먹을 정도로 너무 맛있었다. 생일 날이라고 먹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했는데도 고작 초콜렛 두 개 사는 간이 작은 생일자. 바로 나에요.

생일날이라고 멀티플렉스 극장을 예약한 김라피씨.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뿐이라 덕분에 전세 낸 기분이었지 뭐에요. 뭐 어찌저찌 너무 슬프지 않게 만은 끝나버린 생일. 이제야 남들이 왜 생일이 별거냐며 체념해버리는 지 알 것 같았다. 특별한 날인이 일상처럼 지나면 조금 슬프니까 기대를 안 하게 되는 마음. 한국의 친구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생일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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