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워홀

26년 1월 아홉 번 째 일기 (01.21~01.25)_ 성숙해지는 중 입니다.

킹쓔 2026. 1. 26.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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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1.수 [워홀+540]_ 사랑이 변하나요

 

 나는 그를 많이 좋아한다. 외로운 타향에서 그는 나의 연인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며, 가족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내게 큰 존재였다. 몇 번의 이별을 시도하면서 그를 떠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 또 상처 받고, 다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는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돈이 없어도 내게 오던 사람이었다. 처음엔 약속 시간을 미루다, 점점 약속을 깨기 시작했고, 나중엔 점점 만나자는 말도 줄어 들었다. 매일 꽃을 사다 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는 어디로  간 걸까? 그의 다정한 말과 넘치는 사랑에 반해 이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말 뿐인 그의 사랑에 지친다. 


01.22.목 [워홀+541]_ 잃고 나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일까

 

 요즘은 통화를 해도 혼자 울다 끝나는 것 같다. 그는 우리 관계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자기는 단지 시간이 좀 필요한 것 뿐이라고 얘기했지만,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조금 멀게 만 느껴졌다. 이 관계에 불만이 있으면서 떠나지도 참고 머물지도 못하는 용기 없는 내 자신이 더 초라해진다.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달을까? 어쩌면 난 더 이상 그에게 소중한 게 아닐지도. 


01.23.금 [워홀+542]_ 마음이 힘들면 몸이 힘들어요

 

 새벽녘에 잠에서 깨 가슴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건 다짐하는 단계부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별 일 아니라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지난 이별을 떠올려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카톡을 보니 결혼을 앞 둔 친구들이 청첩장을 보내왔다. 다들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러는 걸까. 

 

 만약 괸계나 비자 문제가 해결되고 안정된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가끔씩 이렇게 몰려오는 고독함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건지,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모든 게 조금 버겁고 힘이 들어서 수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근 전이라 직원 휴게실 코너에서 통화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꺼이꺼이 울었다. 

고마운 그녀

 덕분에 브레이크 타임을 갖고 있던 직원들이 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구석에 있어서 잘 모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디바니가 괜찮냐고 묻더니 카드를 조용히 카드를 건네고 사라졌다.

 

 공과 사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힘들면 그럴 수도 있다며 나를 위로 했다. 근무가 시작하고 나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을 시작했는데, 리오가 잠깐 보자고 했다. 사무실로 갔더니 나 빼고 방에서 모두 나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슨 큰 잘못을 한 건가 놀라서 있는데, 무슨 일 있는 지 걱정돼서 부른 거라고. 혹시 말하기 불편할 까봐 다들 내 보낸 거라고 했다. 

 

 내가 별 일 없다고 말하자 캔디를 몇 개 주어주더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네 자신을 잘 보살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러고 다시 일하러 돌아갔는데 에즈라가 다시 잠깐 보자고 사무실로 데려가더니 또 잠깐 다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러자 리오가 찾아와서 잘 해결했다고 얘기 해줬다. 멋쩍게 걱정돼서 면담하려고 했다는 에즈라. 많은 애정과 관심 고맙습니다...

 

 영국사회를 경험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여기선 딱히 무슨 일이 없어도 "Are you ok?", "you alright?", "All good?"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 곳에서 눈물 바람까지 보였으니, 하루 종일 괜찮냐는 말과 포옹을 수십 번도 더 받았다. 무슨 일 인지 궁금해 하거나 가십거리로 소비하기 대신 상대를 생각하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주는 모습이 인상 깊고 참 고마웠다. 다들 나보다 어린 나이인데 더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퇴근 후에는 라피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요즘 그냥 본인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것 때문에 잠시 시간이 필요했던 것 뿐이라고 우리 관계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며칠 사이 인데도 꽤 야위어 온 그는 얼굴이 많이 상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도 좀 지친 상태였는지, 그의 사정을 듣고 나서도 언제까지 나는 이해만 해야 하는 건가 답답한 마음부터 들었다. 


01.24.토 [워홀+543]_ 그래도 조금씩은 괜찮아집니다

 

 라피와 만난 게 도움이 된 건지, 수영이와 통화를 했던 게 도움이 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좀 펑펑 울고 난 게 도움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전보다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한 없이 치덕거리던 우울함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나중에 보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일들이 당시에는 왜 이렇게 힘이 들까? 그래도 이런 과정들을 통해 삶을 더 잘 이해하고, 깊고 단단해지고 있는 거겠지? 

플루가 보낸 선물 보따리

 오랜만에 카드와 선물을 보내 온 플루. 약 10년 전 유럽 여행에서 만난 그녀는 매 년 이렇게 크리스마스와 생일을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다. 늘 정성 가득한 카드를 보내는 진한 친구. 받기만 해서 늘 미안한 나. 올 해는 나도 꼭 그녀에게 답장을 하도록 해야지. 

 헛헛한 마음 채워 볼 까 싶어서 산 한국 시장 우동. 웃긴 게 겉 포장은 한글인데 안에 뜯어보면 스프는 일본어로 써있잖아요? 한국인의 탈을 쓴 일본인이야 뭐야 좀 어이가 없지만 그만큼 우리나라 위상이 커졌나 싶기도 하고. (이전에는 한국의 인지도가 크지 않아 교민들이 대부분 일본식 베이커리나 스시 판매를 진행했다고 한다. 웨이트로즈 스시 코너의 켈리최나 와사비 사장님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 


01.25.일 [워홀+544]_다 꽝이요!

 

 그냥 단 게 먹고 싶어서 밑에 슈퍼나 갈까 하고 나왔던 나. 심지어 화장실 슬리퍼 신고 와서 구멍 사이로 자꾸 빗물이 들어왔다. 이렇게 빵집까지 갈 줄 몰랐는데 일단 가봅니다. 동네 맛집인데도 멀게 느껴져 방문을 미루기만 했는데, 요즘 너무 게으름뱅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맘 잡고 왔거늘, 웬만한 메뉴는 다 품절이라네. 저 멀리 줄 선 사람들을 보일 때부터 알아봤다. 그래도 옆에 인테리어 용품 팔길래 조금 구경하다 왔다.

게으른 자여, 먹지도 말라!

   

주말에도 일 하느라 현타 온 것 같은 직원

  지난 번 포르투칼 여행 때 만난 친구가 브리스톨에서 런던을 왔다고 같이 먹자고 했는데, 거기나 갈 껄 그랬나 싶었다. 왠지 오늘은 꼭 외식을 하고 싶었다. 빵집 사냥은 실패했지만 락샤맛집 딜리버리 도전. 영국 와서 처음으로 배달앱 깔고 주문해봤는데 정말 운이 없는 날인걸까. 배달 기사가 어찌나 신명나게 들고 왔는지 봉투가 다 터져 국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먹는 것보다 치우는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고 하면 오바일까. 정말 아쉬운 하루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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