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5월 마지막 주 일기 (05.27~31)

킹쓔 2024. 6. 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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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월_ 명암이 확실해서 서글픈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는 너무 깜깜해서 가로등이 켜져있었다. 담장 너머로 축쳐진 무언가가 있어 살펴봤더니 붉은장미였다. 웨딩로드에 장식된 꽃 같구나. 중랑천 장미축제가 곧 시작된다던데. 아가씨, 왜 축제에 안가고 여기에 계신가요? 

야레야레 못말리는 아가씨

 감악산 일출 때도 그랬다. 한쪽은 짙은 어둠으로 깜깜해서 아직 새볔인가 싶다가도, 다른 한 쪽은 해가 가득 차오른 환한 아침으로 햇살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열 발자국도 안되는 같은 공간인데도 서로 다른 공간처럼 보여서 신기했는데, 그거 산에서만 그런거 아니구나.

미묘하게 다른 두 사진

 명암이 뚜렷한 건 이 하늘 뿐만은 아닐거다. 어딘가에선 환희로 가득차 아무걱정없이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어딘가에선 어둠에 막막한 이들도 있겠지. 누구나 전자이길 꿈꾸지만, 후자가 더 많을 것 같은 건 동질감을 느끼고픈 내 욕심일까.


05.28.화_ 푸른 하늘 은하수

 

 푸르다, 푸르구만. 여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맑고 청량한 하늘을 볼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지. 이리 예쁜 하늘을 보니 산에 가고 싶다. 야등의 계절이 온 것 같기도 하고.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게, 인스타 보니 온통 산에 가고 싶어서 드릉드릉 하는구만. 으유으유 이 산쟁이들 정말. 

출처 : 등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스토리

 알바지원은 싸그리 떨어졌다. 어째서인가. 실험지원도 쿠팡물류도 다 짤리고 나니, 내가 축구공인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얼마 전 인스타에서 본 과일 롤케이크를 먹으면 나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가기엔 너무 멀구만. 대신 생도 졸라서 집 앞 케이크라도. 옆에서 한 입 먹고 말랬는데 크림도 부드럽고 아주 맛있었다. 


05.29.수_그저 그런 하루

 

 집 앞에 택배가 쌓여있었다. 한동안 가볍던 주머니 사정때문에 찾아주는 이 없어 서럽던 참 인데, 내 이름 앞으로 뭐가 오긴와서 좋았다. 하나는 수영이가 보낸 거북이약과였고, 다른 하나는 차주 건강검진 대비한 장 청소제였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싫다. 정말. 

 저녘 먹으며 집에서 빈둥대고 있는데 생도가 옷 좀 갖고 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운동복이 없어서 퇴근 후 필테수업에 못 갈 것 같데서 갖다주러 갔다. 도와줬으니 맛있는 거 사준다고 마트에 가서 뭐 골라보랬는데, 쌀과자가 너무 비싸서 안샀다. 원래 저거 4-5천원 하던건데, 왜렇게 배로 받아 먹는담?


05.30.목_ 책 읽기가 주는 평안함

 
 금전적으로 여유가 될 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여유로우면 금전적으로 힘들다. 지금처럼. 만날 사람은 많고, 같이 놀고싶은 맘도 굴뚝 같지만 한 푼이 아쉬워숴 거절할 수 밖에 없는 내 사정, 오죽하겠습니까. 착잡한 마음을 안고 들어간 곳은 서점이었다.
 
 서점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렸을 적에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과 함께 자란 덕인지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적에도 나는 종종 서점으로 숨고는 했다. 

아하아하 절로나오는 심리, 사회문제 코너

 6-7살쯤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수영센터에 다녔다. 물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자 강사는 킥판을 눌러 억지로 물에 집어넣었다. 그 기억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이후 수영장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가기 싫다며 떼를 쓰는 내게 끈기부족이라며 꾸짖었고 센터로 끌고갔다. 나는 수업에 가는  대신 센터 아래 서점으로 갔다.
 
 거기서 셔터가 내려갈 때 까지 책을 읽었다.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악당들을 무찌르기도 하고, 시련에 부딪혀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직원이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며 종종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는 했고, 번번히 혼이 났지만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 때문일까? 여전히 마음이 답답할 때면 서점을 찾고는 한다.

 알라딘에 와서 동화책을 몇 권 읽었다. 아무생각없이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잠깐은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있는 조용하고 예쁜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싶다. 날씨 좋을 때 선선한 바람 맞아가면서, 따뜻한 말들이 가득한 시나 에세이를 읽으면 딱 힐링 일텐데. 

 배달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얄팍한 시급만큼 내 선택도 많이 제한된다는 거다. 지금 이거 하면 배달 몇 건 뛰어야해, 그거 사면 음식 몇 개 날라야하나 계산하는 내 모습이 불쾌했졌다. 이거 하나 먹는다고 세상 안망한다며 케이크를 하나 샀다.

 

 매번 이 카페를 지나갈 때마다 쇼케이크를 보며 성냥팔이 소녀처럼 침만 꿀꺽 삼켰는데, 하나 먹으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도 중요하잖아. 그냥 하는 충동 소비에 뭐 이리 많은 의미부여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말은 이렇게 해도, 케이크 하나는 정말 신중하게 골랐다. 요즘은 두바이 쵸콜렛이 유행이라서 피스타치오 케이크를 샀다.

 

 책 읽기가 주는 평안함처럼, 잠시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래서 다 단거단거 하나보다.  


05.31.금_김무열처럼

 

 김무열 너무 멋있다. 칼리도 하고 카포에라도 해서 좋았는데, 역경을 딛고 성공해서 더욱 멋있다. 환경탓하면서 망가지고 자기 악행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만 가득한 요즘, 더 빛나는 사람이다. 윤승아랑 알콩달콩 잘 사는 거보면 션 닮은 사랑꾼 관상이 있나보다. 나도 김무열처럼 싸움도 잘하고, 언젠가 이 역경을 견뎌내고 잘 해냈다고 대견스러워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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