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5월 네 번째 일기 (05.13~05.19)

킹쓔 2024. 5. 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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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월_성장의 시간


 괜히 엄마에게 성질을 부렸다. 그게 엄마의 잘못 만이 아니란 것도 알고, 엄마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도 알지만. 그렇게 화를 내놓고 맘이 편하지도 않아서 미안하다고다시 전화를 걸었다. 정말 못난 딸이구만 나는.

 오늘로 성수역에 3일째 출근도장을 찍는다. 왜긴, 줄줄이 팝업 신청해놔서 그렇지. 과거의 나여, 욕심을 좀 버려. 이번엔 N2 아로마 명상 테라피인데, 원래 하고싶던 싱잉볼은 매진되서 대신 신청했다. 며칠 째 연이은 스케줄로 진짜 가기 귀찮고 기분도 안났는데, 당일 취소는 안된다고 해서 꾸역꾸역왔다.  

 엄마랑 한 판하고, 피곤하고, 잔뜩 짜증나고. 이렇게 난잡한 마음상태라니 명상이 딱 필요한 날이네. 아주 알맞은 준비자세야. 별 기대가 없었는데, 구성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수업 초반엔 호흡법을 익히고, 오렌지향을 맡으며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기억을 찾아봤다. 영종도에서 오대산이랑 릴스를 찍었던 기억, 운해와 함께 맞았던 새해 첫 날, 쉬자고 신신당부 해놓고 앞장 서서 올랐던 청계산까지. 떠올린 기억들이 다 산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라 푸릇해지는 기분이었다.

 명상이 끝나고는 식사가 제공됬는데,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라길래 ’둘다 내가 싫어하는 거잖아‘하고 떨떠름했는데, 꽤나 맘에 들었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걸 보면 그 식사가 맘에 들었던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적당히 배도 부르고 날도 어두워졌는데, 괜히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체육관에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조금 거리를 돌다 아까 찾아봤던 이자까야로 들어갔다.
 

 술을 시킬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와를 하나 시켰다. 적당히 달달하니 내 입맛에 딱 이었다. 고등어초밥은 숯불로 구워주는데 깔끔하니 맛있었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혼자 먹는 술이라니, 나도 이제 찐 어른인건가.

 

 

 

 


 배불리 먹고 나니 살짝 나른해졌다. 늘어진 이 기분을 들고 지하철을 따라 건대까지 걸었다. 낯익은 주유소가 나오고 자주 가던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다닐 수 있는 길, 밤늦게 다녀도 안심되는 거리,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길을 잃어도 두렵지 않을 안정감.

 문득 몇 달 후, 영국에서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의 답답함, 익숙지 않은 거리, 지치고 힘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려나? 길을 잃고 헤매면, 위험에 처하면 어쩌지? 그러다 망하면, 내가 한 결정을 후회하면?

 뭐 하기사 지금도 더 물러날 데도 없는 걸. 이미 충분히 바닥인데. 웃긴 건 자꾸만 최악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별로 대단히 슬프거나 서럽지 않다는거다. 나이를 먹어선가, 점점 굳은 살이 배기는 걸 수도?

 그냥- 전이라면 눈물콧물 쏙 빼고 죽네사네 하고 있을 상황도 그리 개탄스럽지 만은 않더라구. 그럭저럭 좋은 점을 찾아내 감사할 줄도 알고 상황에 맞는 해결책도 세우려고 하는 걸 보면. 나 조금은 어른된 거 맞는 거아냐? 으른이면 혼자 독립하는 연습도 해봐야지. 낯선 땅에서 부딪히고하면서 더 배우면 되지.

 그러니까 나는 지금, 성장 중인 것 같다. 힘든만큼 성장한다는 말을 믿는다. 기나긴 이 어둠의 터널이 끝나면, 분명 빛을 만날 것이다. 어디에 있든 반드시 길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 나는 해내는 사람이니까. 모든 게 잘 보이지않는 어두운 밤, 꿈을 꾸는 성장의 시간 속에서.


05.14.화_ 클린식단

 

 혜의 스토리를 보고 나도 갑자기 메밀면이 먹고 싶더라구. 포케랑 같이 두 개 시켜서 아주 알뜰하고 건강한 식사를 하며 보낸 화요일이었습니다. 


05.15.수_산뜻한 산행

 

 출근보다 더 일찍 일어난 아침. 오랜만에 가는 용마-아차산. 2주만에 산행이라 두근두근 긴장되는 구만. 조금 신기한 게, 매일 가던 산이라도 새 코스로 가면 또 새 산 같단거다. 길은 여기가 훨씬 좋네, 다음엔 여기로 와바야겠다. 

 용마봉에서 아차산으로 이동할 때 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시 산쟁이들 부지런햐. 그 중에서도 더 부지런했네 우리는. 

 새 모자 쓴다고 노랑으로 다 깔맞춤했는데, 내 피부는 고구마색이 되었네. 아넷사 톤업 선크림 갖다버릴까? 세시간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쉴 거 다쉬고도 2시간 반 만에 하산. 급하게 가느라 무릎 보호대 놓고가고, 손 때문에 스틱 안썼는데도 아주 가뿐하게 잘 다녀왔다. 제법 성장했구만. 뿌듯하이. 

 

 

 

 열시 반인데도 와글와글한 콩밭. 어딜가나 대기가 많아서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순두부라면 대신 서리태콩국수를 먹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쇼핑백도 미어터지는 짐

 참새는 방앗간을 못 지나치고, 나는 다이소를 못 지나치지. 올영이랑 다이소보면 무조건 들어가봐야 할 것 같은 기분, 비단 저만 그럽니까? 다이소에서 정리용품이랑 이것저것 바리바리사서 집으로 갔다. 이럴거면 손 아프단 말은 왜 한거야?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더라. 이때다 옳다구나 싶어서 휩드 배쓰밤 풀어서 목욕타임. 앞으로 욕조없는 집으로 가면 목욕할 기회도 없을 거 걸랑요. 끝나고는 무화과 바디버터 싹싹 긁어서 온몸에 떡칠하기. 왠종일 휩드만 쓰는구만. 이 원고는 어떠한 경제적 댓가도 지원받지 않았습니다. 그냥 팝업 다녀와서 사은품 받거나 내 돈 주고 산 거 쓴겁니다. 

 갑자기 외로운 맘이 벌컥 들어서 비빔밥을 먹었다. 재료를 왕창 넣고 한 그릇 비비는 한국인만 아는 그 카타르시스가 있달까? 야등 가서 사람들이랑 비빔밥 해먹고 싶다.  

 밥도 다 먹었으면 일 해야지. 화장대부터 수납장까지 요즘은 열심히 짐 정리를 하는 중이다. 옷장정리 할 때도 종종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렇게 뭐가 많은데 왜 쓸만한 건 없다고 느껴질까? 그만 사고 있는 것 부터 써야지. 


05.16.목_ 왕년의 위장튼튼이를 그리워하며

 
 사람들이 말했다. 장염이고 독감이고 걸리면 너무 힘들어서 마치 코끼리 10마리가 밟고 지나간 기분이라고. 그리고 그 때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들의 아픔에 크게 공감 할 수 있겠다.

 

 어제 끽해야 용마 아차산타고 왔는데,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된 탓이었던건지 몸의 마디마디가 무겁고 힘들었다. 밤새 배가 아파서 고생하다가 아침에 문 열자마자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의사마저 불친절해서 더 맥이 빠졌다. 이보시오, 저 여기서 한 시간 기다렸거든요? 아픈데 더 힘 빠지는 구만.

 


05.17.금_ 흐드러지는 건 꽃 뿐만이 아니였다.

 

 점심 때 마음이 답답해 밖으로 나갔다.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바람에 흩날려버리는 꽃잎처럼 어지러웠다. 내가 처한 상황이 힘들긴 하지만, 죽을정도로 힘든 건 아니니까 삼킨다. 입 밖으로 내면 엄살처럼 들릴까봐, 앞으로 얼마나 더 악화될지 모르는데, 죽는소리는 그 때 해도 늦지 않을까싶어서.  

 거리에는 정말이지 만개한 꽃들로 가득했다. 어지러운 내 맘과는 달리 너무 활짝 예쁘게피어서 조금은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복통이 계속되서, 종합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위부터 장까지 쓱 한번 훑고 가면서 도대체 그 원인이 뭔지 파악해봐겠다. 

 오자마자 자고 있는데 은진이가 파스타를 만들었다. 새벽에 아프단 말에 무심하게 굴었던 게 조금 미안했던지, 본인돈으로 건강검진도 해준다고 하고 제법 신경이 많이 쓰였나 보다. 


05.18.토_오일팔베이비 탄신일

 

 오늘은 수영이의 생일. 거의 근처 주말이나 이렇게 생일 당일에 모이는 건 너무 오랜만이네. 아아주 일찍부터 준비한 수영이가 심심하데서 카페에서 먼저 기다렸다 출발을 했다. 또 배가 아플까봐 무서워서 뜨거운 차를 식혔는데, 너무 뜨거워서 찬물로 식혀먹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차 두잔의 효과는 엄청났다. 

 

 애들이 탄 버스를 놓칠까봐 전전긍긍 했고, 느껴지는 요의를 참았다. 말썽쟁이 같은 그 녀석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말란듯이 승차 후에 폭발했다. 운행 중 미세한 진동에도 폭풍같은 울림이 왔고 결국 중간에 내렸다. 정류장 바로 앞이 스벅이라서 잘 해결할 수 있었다. 거기서 사고친 거니까 여기서 수습해도 된다고 해줬으면...

 볼 일을 보고나니 맑은 하늘이 보였다. 이다지도 푸른 하늘이라니, 오늘 누가 비 온다고 한거야? 흐림도 아니고 깨끗하구만. 똑같은 버스를 타고 애들이 기다리는 계림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충무로에 왔는데, 여긴 여전히 길을 찾는게 복잡하다. 

 혹시라도 또 배가 아플까봐 물에 씻어서 먹었다. 떡은 왜 이렇게 쫄깃하던지, 더 먹고 싶은 걸 꾹꾹 참았다. 다행히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다. 밥을 먹고 싶었는데, 볶음밥은 평일만 된다고 해서 아쉬웠다. 

 

 

 

 지나가며 보기만 했던 뚜레쥬르 제일제당사옥점. 확실히 본사직영이라 그런지 빵들이 종류도 다양하고 신선했다. 케이크도 가격대비 고급진 맛이 났다. 아... 왜 나 배가 오늘 아프냐. 눈 앞에 빵을 두고 참아야한다니. 못참지. 마늘닭 먹을 땐 나름 잘 절제했는데, 빵집에선 눈 뒤집고 먹어버렸다. 

생가보다 별로였던 피스타치오/ 부드러운 딸기생크림케이크/ 베니스 생각이 났던 코르네.

 

 

 

 

 심지가 신나서 가자고 한 다음코스는 DDP 헬로키티50주년 전시회. 산리오사의 독도후원 사실을 알게된 후로 이 회사의 모든 캐릭터들에게 정이 떨어졌는데, 심지는 그렇지 않나보다. 뭐 캐릭터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회사가 잘못했지. 입장료가 2만원이나 하는데, 너무 부실했던 전시회. 아냐 친구가 행복했으면 됬지 뭐. 

 

 

 

 저녘엔 나나님과 합류. 한번 쯤 가보고 싶었던 옥경이네 건생선에서 다 같이 한 잔. 물론 제 잔은 물 잔이었구요. 비싼 가격에 비해선 그닥 만족스럽지 못했던 곳. 역시 인스타맛집이나 방송맛집이라고 모두 내 입맛에 맞는 건 아니구만. 

 

 

 

 식사 후엔 카페 메일룸으로. 해리포터가 연상되는 펍 느낌의 카페. 주문하면 열쇠를 받고 해당 우편함을 열어 음료를 가져갈 수 있게 해놨다. 인테리어는 예쁘고 음료도 나쁘진 않은데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건 아닌듯. 그래도 신당역이나 근처에 온다면 가봐도 좋을법한 곳.

 

 

 

 

 3차까지 갔는데 집 근처라 도망은 못갔다. 자리를 지켰지만, 내일 체육대회가 있으니 제발 보내달라고 애걸복걸 결국 11시 15분에 부리나케 튀튀. 예측불가였던 몸으로 뭘 많이 했던 수영이 생일날 끝. 


05.19.일_서른이 넘은 자의 체육대회 

 

맑은 날 떠나는 체육대회 / 빵빵한 웰컴 기프트

 '서른 두 살의 체육대회라니.'라고 원이 불평했다. 다 비켜. 난 서른 여섯이다. 여기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 찾는거면 내가 이 구역의 짱일거야. 진짜 관장님만 아니었으면 정말 쉬고 싶었는데. 이게 뭐라고 잠을 설치다 결국은 5분 지각해서 차를 타고 갔다. 

  오랜만에 와 보는 잠실실내체육관. 여기 언제 왔었는지 기억도 안나네. 주짓수대회도 아니고 서울시민체육대회로 여길 다시 올 지는 상상도 못했구요. 아이돌 체육대회 응원 온 기분도 나고. 

 

 원래 어제 모여서 했어야 할 연습을 이제야 해 봅니다. 실내체육관이래서 좋아했는데 결국은 연습은 땡볕아래하는 현실. 사공이 많아서 웃겼던 연습. 물론 저도 그 사공 중 하나였습니다. 

 

 

  다들 누가 운동하는 사람들 아니랄까봐 쉬는 시간인데 족구하고 뛰다니더라구. 힘 빼지 말래놓고 열심히 노는 사람들. 청춘이구만 청춘이야. 그래도 2인 3각팀은 2등 했다니 놀랍구만. 

열정그녀와 지친그녀가 있던 2인3각팀

 

 내가 있던 공 튀기기팀은? 망했지 뭐. 연습 때보다 더 못했던 참혹한 결과. 그래도 버스타고 갔다 버스타고 와서 편하긴 했다. 

 

 집에 와서도 계속 짐 정리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쉴 틈없는 일요일을 보냈다. 그래서 그런지 낮잠을 잤는데도 밤에 잠이 잘 왔다. 아 정말 몸 어딘가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닐까, 요즘 왜 이렇게 기력이 딸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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