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7.수 [워홀+8]_게하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환불원정대가 떠납니다. 유스턴역 근처 막스앤스펜서에서 결제가 세 번이나 중복됬다. 영수증 인쇄기가 고장나서 하나 밖에 안나왔고, 그것 밖에 환불이 안됬지만. 그 때 매니저가 문제 생기면 오라고 해결해준다고 했는데. 그는 자리에 없고 영수증이 없으먄 규정상 해결해 줄 수 없단다.
그래도 금액이 크지 않아서 뭐, 다행히 크게 손해는 아니었다. 이번 일을 경험삼아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을 땐 꼭 담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두자는 교훈을 얻었네.
아침은 영국 와서 첫 밀딜(Meal Deal). 유스턴역 WHSMITH에서 샌드위치랑 대충사서 먹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긴급대피경보가 떴다. 사람들은 동요했고 대부분이 안내대로 역을 빠져나갔다.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조금 신경질적인 경찰에게 혼쭐나듯 쫓겨났다. 무슨 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Emergency thing이 발견됬고 역 내 모든 승객이 대피하라는 방송만 반복됬을 뿐이다. 요즘 영국 내 극우단체들 테러랑 관련이 있는건가 싶기도하고.
런던 지하철은 너무 복잡하다. 역 하나에 뻗어나가는 플랫폼이 대여섯개씩이나 된다. 완전 어려운 건 아닌데 직관적으로 타긴 힘든 수준? 요금도 비싸면서 진짜 왜 저래다. 우리나라 고종황제 시절부터 만들어진 거라 보완과 증설을 거듭해서 그런건가?
테러의 위협을 뚫고 온 빅토리아 앤 알버트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 심지 에코백 사러 왔는데 확실히 사람들 말대로 예쁜 굿즈들이 많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만 열일하는게 아니었구만. 왠만한 서점 에코백보다 여기게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종류도 더 다양하고.
친구들에게 쓸 엽서 몇 장을 샀다. 친구가 외국에 간다니까 한 푼 두 푼 소중한 마음을 보태준 내 고마운 후원자님들. 한국에 있을 땐 현금 선물은 왠지 좀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선 정말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게 쓰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 번 말해야지, 정말 고맙습니다.
점심은 쌀국수. 빅토리아앤알버트박물관과 켄싱턴궁 사이에 있는 베트남 식당인데 맛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았다. 양은 영국치고 조금 작은 느낌이지만 뭐 가격이 적당하니까.
근데 얘네는 왜 쌀국수에 자꾸 민트를 넣는거지? 대부분 고수는 곁들이거나 아니먄 민트를 왕창 준다. 우리나라는 고수를 많이 주는데, 이건 여기서 구하기가 힘든가?
시내 나온 김에 영국여왕님이 계시는, 이제는 찰스 왕세자가 있는 켄싱턴 궁전에 가보기러 했다. 물론 들어갈 건 아니고 멀리서 지켜볼거다 히히. 입장료 너무 비싸니까 그냥 왔다 의미만 내는 정도로?
켄싱턴 궁(Kensington Palace)은 꼭 궁전에 들어가보지 않아도 공원자체로도 충분히 멋있기 때문에, 영국에 왔다면 꼭 가볼만한 곳이다. 궁을 둘러쌓고 있는 켄싱턴 공원(Kensington Park)은 영국왕실의 영향력을 보여주듯 아주 넓고 평화롭다.
주인 없는 강아지가 와서 친한 척을 했다. 강아지를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 낯선 땅에선 이런 호의도 너무 반갑다. 다만 개 물림 사고 등을 염려해서 액션을 크게 취하진 못했다. 하튼 반가워해줘서 고마워, 멍멍아. 덕분에 집에 온 것처럼 기분 좋았어.
배터리가 없어서 사진을 여유롭게 찍지 못했던 기 아쉽다. 보조배터리를 들고 다니기에 나의 어깨는 너무 약하다 흑흑. 그리고 이렇게 일정이 길어질 줄 몰랐다…
사우스켄싱턴쪽은 여왕님이 계신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부촌 느낌이 나는 동네였다. 사람들이 동쪽으로 가면 치안이 위험하다고 다 서쪽을 선호한다고 했는데, 확실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난 무조건 센트럴에서 멀지 않은 숫자가 적은 존을 선호했는데(SW1, E1등), 1존 내에서도 여기 근처는 숫자가 높지만(SW7) 제법 살기 좋아보였다.
킹쓔‘s 영국워홀 꿀팁! 런던 지명 표기법
런던 중심인 센트럴을 기반으로 크게 존1, 존2, 존3 등으로 나뉘며, 동서남북 방위를 기반으로 한번 더 나뉩니다. (영국은 남북을 먼저 세고 그 다음에 동서를 세더라구요)
Ex) 유스턴 (존1- NW1: 센트럴 북서쪽 위치)
패딩턴 (존1- W2: 센트럴 서쪽 위치, 유스턴보다는 조금 더 떨어져 있음)
저녘은 피자. 좀 더 치즈가 많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제가 메뉴를 잘못시킨 덕이겠죠? 런던에 있는 식당들은 밥을 먹을 때마다 서비스 요금(Service Charge)가 붙는다. 대개 음식의 10%정도가 별도로 붙어서 미국처럼 큰 부담이 되진 않는다. 한국에선 반찬도 서비스도 다 기본인데, 여기는 다 가격을 매긴다. 댓가를 지불하는만큼 나도 더 당당히 내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맘 편하게 직원에게 부탁할 수 있기도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패딩턴역이 있길래 들려봤다. 여기가 바로 그 영화에 나오던 패딩턴, 205번 버스를 타면 나오는 그 패딩턴이구나. (런던 205번 버스는 종점이 패딩턴역이라 안내방송마다 패딩턴행이라고 말한다)
기프트샵에서 패딩턴 인형들고 보고, 영국와서 처음으로 러쉬도 가보고. 유스턴이나 킹스크로스랑은 다른 느낌으로 화려하고 활기찬 곳이구만.
손에 거스러미생겨서 피나고 난리도 아니였는데 러쉬에서 핸드크림 바르니까 싹나았다. 우와 진짜 러쉬가 짱이구만. 영국물가로는 비싼 건 아닌데 원화로 계산하면 비슷하니, 현지구입이 엄청 싸다고만은 할 수 없는 러쉬. 그래도 월급 받으면 사러 올게!
숙소로 돌아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데스크에 가봤다. 조심스럽게 “Any mail,,,?”이라고 묻자 스텝 하나가 선반에서 봉투를 건네주었다. 체크아웃이 내일인데 드디어 NI넘버(의료보험번호)를 받고 가는구만. 이제 나도 영국에서 공식적으로 구직가능한 신분이 됬다. 워후!
매번 혹시 우편물 왔냐고, 게스트 하우스직원들을 매일 귀찮게 하기도 했고. 일주일동안 잘 챙겨준 덕에 고마움의 마음을 담아 쪽지를 적었다. 선물은 줄 게 없어서 아까 역에서 받은 춥파춥스 프로모션을 준비했고. 이것도 뭐 나름 나의 일용할 양식이었는데 나눠줍니다. 한국에서처럼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아쉽네. 과자라도 몇 개 사올걸.
방으로 돌아왔는데 내 침대 앞에 태국언니가 자기 점심 때 샀다고 빵을 나눠줬다. 외국에서 누가 주는 거 함부로 먹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나는 돈도 없고 배고픈 외노자라그런지 이런 걸 거절하기 힘들다. 참치가 들어간 빵 같았는데 뭐 나름 괜찮았다.
오늘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지막 날이라 마니한테 인사를 할까말까 고민 중이 됬다. 마니는 내가 머무르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알게된 인도인 대학생이다. 영국에서 첫 호의를 베풀어 준 사람이랄까? 루마니아 영감탱이한테 갑질당하고 침울해진 내게 오렌지처럼 달큰한 마음을 건내준 사람.
방에서 노크를 하길래 아까 본 한국인이 드라이기를 빌리러 왔나 싶었는데, 마니였다. 그는 새우칩을 전해주며 저녘 잘 먹었냐고 물었다. 아니 이 자식 내 숙소 어떻게 알았지? 난 6층이라고만 했는데. 살짝 께름칙했지만 또 반갑긴 반가웠다. 게다가 물가 비싼 이 나라에서 새우칩이라니, 정말 귀한 마음이지 뭐야. 오늘이 마지막이라 1층 라운지에서 만나서 그동안 잘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는데 조금 눈물이 글썽거렸다.
마니랑 헤어져서 슬펐다기보다는, 그냥 그 짧은 찰나에 여기 와서 일 주일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첫 날 BRP를 수령했을 때 느낀 설렘, 닭장보다 못한 곳을 보고 절망했던 첫 뷰잉, 영국 폰번호를 만들던 때의 뿌듯함, 맘에 드는 곳을 찾은줄 알고 기뻤는데 고약한 영감탱이의 갑질에 서러웠던 순간, 환상보단 비장한 각오를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직 외국인으로써 느낀 현실, 숙소 취소 했는데 계약이 흐트러져서 길 거리에 나앉을 뻔한 아찔한 순간까지.
내일이면 이제 이 임시숙소에서의 생활도 끝이다. 여기서 지내는 일주일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해냈다. 나는 깨지기 쉬운 유리멘탈인 동시에 회복도 빠른 사람이란 걸 체감했다.
그러니까 일 주일만에 나는 꽤나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젠 휴대폰 없이도 길을 찾거나 숙소로 돌아갈 수 있고, 런던 지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며, 하고싶은 말은 -비록 아직도 시간이 걸리지만- 대략으로라도 할 수 일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또한 여기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를 배웠다.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던 마니부터 보안일을 하던 아이리쉬, 대련학교 교직원 중국인, 미국계 태국인, 키 크고 스윗한 호주청년 등등. 모두 나의 앞길에 행운을 빌어주던 좋은 사람들.
그럼으로, 나의 내일을 기대해보자. 물론 앞으로도 또 깨지고 우울하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또 항상 나는 길을 찾아낼테니까. 늘 그랫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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