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24년 8월 열 네 번째 일기 (08.25~08.27)_ 영국 친구네 방문기

by 킹쓔 2024. 8. 31.
반응형
08.25.일 [워홀+26]_ Fawsley Hall Hotel & Spa; Finally, I met her 

 

 오늘은 드디어 디온을 만나러 가는 날. 그거 아세요? 아침 4시부터 이불 빨래를 돌렸는데 9시가 넘어가도 안 끝나던거? 분명 세 시간이라고 했는데...하튼 길게 비우는 김에 이불 좀 널어 놓고 갈랬더니 안타깝구나.  

출처: 아래 영상채널 / 버스가 멈췄다/ 롱벅비로

 

 다른 건 냅뒀어도 식사 교육은 철저히 했다는 디온말이 떠올라서, 출발 전에 영국 테이블 매너 공부했지롱. 금방 갈 줄 알았는데 버스고장나서 서고... 롱벅비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구만. 영국 가정에 방문할 땐 와인 선물이 좋다는데, 알찌라 아는 게 있어야지. 햇반이랑 뭐 이것 저것 챙겨갔더니 가방도 너무 무겁고...

 

 아 참, 디온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부터 알던 영국친구다. 한류에 관심이 많고, 디온 딸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몇 번 우리집에서 자고 간 적도 있을만큼 나름 가까운 사이다. 오자마자 보고 싶었는데, 8월에 행사가 많아 바쁜 그녀를 드디어 보러 가게 되서 조금 들떴다. 나도 나름 여기서 친구가 있답니다 호호.

 노스햄프턴으로 가는 사람은 앞칸으로 타라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뭐 나는 롱벅비 가니까 해당사항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기가 거기라네. 노스햄스턴 바로 옆이 롱벅비역인거, 사실 도착해서야 알았구요. 후후 그래도 가는 길이 나쁘진 않았다. 풍경도 예쁘고 양떼들이 뛰노는 것도 보고. 가방이 아주 무거운 것만 아니면 나쁘지 않았던 기차여행길. 영국와서 첫 기차여행이라 조금 설레기도 했고. 

드디어 만난 디온네 레이디/ 첫 영국식 잉글리시브렉퍼스트

  집에 도착하자 마신 영국식 블랙티. 우유는 뭘로- 설탕은 몇 스푼- 취향 없는 나는 주는대로도 잘 마시는데. 흐흐. 영국에 와서 처음 먹어보는 웰컴티구만요. 디온이 남편 스티브가 좋은 호스트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알차게 촵촵 준비 해놨을지 몰랐지. 스티브 당신, J지?

 본격적으로 애프터눈티를 즐겨보러 팔시호텔로. 영국에서 온 이래 정말 첫 애프터눈 티구만. 사실 한국에서도 이런 건 경험해본적이 많지 않아서 조금 색다른 경험이었다. 고급호텔답게 확실히 디저트가 담백하고 유지방맛이 풍부했다. 아유 이런데를 다 와보고 출세했네 출세했어.

 

Fawsley Hall Hotel & Spa · Hall Hotel, Fawsley, Daventry NN11 3BA 영국

★★★★★ · 호텔

www.google.com

 차를 마시면서 호텔 벽에 붙어있던 왕족들의 초상화를 유심히 보게 됬다. 아무래도 역사랑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런 것들이 좀 흥미롭게 보였으니까. 눈치 빠른 스티브씨가 초상화 속 인물들이 설명된 프린트와 내가 선호하던 디카페인 차를 직원에게 요청해서 챙겨주셨다.

 2차는 레이디바에서 술을 마셨다. 레이디바는 디온네 강아지인 레이디의 이름을 딴 정원 속 조그만 부스다. 거기서 사이다랑 진이랑 잭다니엘도 먹어보고 뭐 하튼 여러 술 다 먹어본 것 같다. 꽤 취해서 음료를 쏟는 등의 실수를 하긴 했지만 다행히 정신줄은 잘 붙잡고 있었다. 

 저녘으로는 중국음식을 시켜먹었다. 진짜 얘네는 밥을 안 먹는 것 같다. 이게 점심이자 저녘인 첫 끼다. 밥보다 차나 술을 더 자주 먹는 느낌? 근데 디온네 둘째 딸인 엘리가 배고프다며 피자를 시켰다. 오늘 먹고 싶었던 거 해보고 싶었던 거 다해보네 참말로. 친구가 좋긴 좋구만.


 

08.26.월 [워홀+27]_Royal leamington Spa ; Summer Bank Holiday 

 

  몰랐는데 오늘이 그 뱅크할러데이지 뭐에요? 영국 중앙은행이 쉬는 날을 기준으로 회사들이 함께 쉬는 대체 공휴일 같은 개념이랄까? 5년 전엔 이스터쯤에 경험해 본 적 있는데, 이렇게 또 다시 겪게 되니 정말 내가 영국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는구나.  

 어제 술을 그렇게 먹어 놓고 아침에 일어나서 헬스장에 왔다. 난생 처음 보는 운동기구도 많고 수영장까지 딸린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스티브가 타이어 돌리기도 시키고 슬레이트도 알려주고 이것 저것 시켰다. 강철부대가 되고 싶던 내꿈, 드디어 이뤄졌구만.  

 

David Lloyd Rugby · Crick Rd, Clifton upon Dunsmore, Rugby CV23 0AB 영국

★★★★★ · 체육관

www.google.com

 점심은 두 부부의 자녀들인 니브랑 셉이랑 레밍턴으로 갔다. 레밍턴은 유명한 스파도시 중에 하나 인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특유의 분위기가 있던 곳이었다. 

 스티브는 거기서 나를 위한 답시고 한식당을 찾아 데려갔다. 사실 한식당이라기보다 거의 컵밥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김치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다들 나랑 함께하는 느낌을 주겠다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도 꽤 고마운 경험이었고. 

치킨김치 뭐시기 밥

  

 암튼 제법 예쁜 카페도 가고 좋은 분위기도 느끼고 참 좋았습니다. 스티브가 사이다 먹을 거냐고 권해서 체리 올드마운트에 도전해봤다. 

제법 사진을 잘 찍어주시는 스티브

 

 

The Terrace | Bar & Restaurant | Leamington Spa · 2 Victoria Terrace, Leamington Spa CV31 3AB 영국

★★★★★ · 음식점

www.google.com

 

 돌아와서는 엘리가 강아지 산책 알바를 가길래 따라갔다. 엘리는 디온네 둘째 딸인데 너무 사랑둥이 타입이다. 사실 니브랑 한국에서 더 오래 알고 지냈는데, 차분하고 T성향이 강한 니브에 비해 순둥순둥한 엘리가 너무 귀엽고 좋았다. 따라가도 되냐니까 괜찮다고 해서 같이 근교를 좀 걷다 왔다. 

 저녘은 스티브가 만들어준 샐러드.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감자를 조금 삶아서 해주셨다 히히. 사실 스티브는 거의 우리엄마아빠뻘 나이인데 디온이 자기를 대하듯 하면 된다고 한다. 물론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는 가끔 어떻게 해야하나 혼란이 올 때도 있지만 뭐 여기는 영국이니까. 히히. 


 

08.27.화 [워홀+28]_ Home sweet home

 

 아침은 디온이 차려준 영국식 브렉퍼스트. 닭가슴살이 너무 뻑뻑하긴 했지만 버섯도 들어가고 꽤나 맛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디온이랑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어느 집이나 다 밉상은 있는 것 같다.

 원래 수요일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계속 이렇게 오래 머무르면 폐가 될 것 같아서 서둘러 집으로 오기로 결정했다. 기차에서 먹으라고 준 달다구리덕에 배고프지 않게 왔다. 

 

 오는 길이 생각보단 헷갈렸지만 뭐 그럭저럭 잘 왔다. 여기는 교외라 동양인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래서 그런지 십대 백인애들이 날 보고 낄낄댔다. 한주먹도 안되는 것들이...참나. 

 유스턴역에 내려서 레일카드랑 오이스터를 연동하려고 했더니, 네트워크카드는 해당사항이 없단다. 거의 한 시간을 10kg짜리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돌고 돌은 결과가 이거라니. 그래요- 나이 많은 게 죄지. 그래도 광장에 피아노를 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름 경쟁이 치열한 곳인데 용케 자리가 비어서 몇 곡을 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계속 시도해보니 몸이 기억하기 시작했다. 몸 속에 내장된 어떤 메모리에 의해서 더듬더듬 한 곡을 연주하니 옆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박수를 쳐줬다. 부끄러워서 황급히 자리를 떴지만, 그들의 박수는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줌과 동시에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집에 오자마자 요리를 해 먹었다. 디온네는 엄청 조용하고 깨끗히 정리 되있지만, 어쩐지 난 내 플랫이 그리웠다. 문을 열어두면 창가에 매연이 묻고 새벽 네시에도 크락션이 울릴 정도로 시끄럽지만. 열 한시 열두시에도 요리해서 먹는 시끄러운 우리 애들도 보고 싶고. 물론 쥐는 나오지만 어쩐지 이제 여기가 내 집처럼 편해졌다. 

 

 아니 난 이미 저녘 먹었는데 쇼분이 밥 하는 거 맛보라고 해서 또 먹고, 또 파힐이 자기네꺼가 더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해서 더 먹고. 오늘도 세끼를 먹었다. 뭐- 여기 있으면 굶어죽진 않을 듯. 쇼분이 젓가락 쓰지말고 손으로 먹어보라고 해서 맨 손으로 밥 먹다 손 화상 입는 줄... 깔깔깔. 재밌다 재밌어.  함께 사는 이웃사람들도 이젠 제법 나를 챙겨주는 것 같다. 이젠 나름 여기 식구가 되어가는 걸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