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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9월 네 번째 일기 (09.05~09.07)_ 쓸쓸하고 그리운 런던의 가을 날

by 킹쓔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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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목 [워홀+38]_ 쓸쓸해지는 가을 날

 

 어제 얘기 들어보니, 샤갈 생일이 8월이었다고 한다. 참나- 그럼 최근이잖아? 왜 말 안했냐니까 보통 생일 잘 얘기 안한단다. 참말로- 또 생파 전문이 나서야 하나. 여태 얻어 먹은 게 있는데, 그냥 넘어가긴 좀 그래서 케잌집을 검색해봤다. 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도 여기 케이크 먹어보고 싶기도 했고.

 근데 생각보다 케이크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그냥 카페만 들어가면 조각케이크 천지 빛까리로 파는데, 여긴 의외로 브라우니나 쿠키만 주구장창이지 생일 케이크는 홀(Whole)로 미리 주문해야된단다. 젠장 큰 거 사긴 좀 부담스러운데. 덕분에 계획에 없던 브라우니만 사서 왔네. 하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아쉬우니까 흐흐흐.

 

The Lily Vanilli Bakery · The Courtyard, 18 Ezra St, London E2 7RH 영국

★★★★☆ · 제과점

www.google.com

 

 샤갈이 어제 저녘에 퇴근 후에 산책하자고 해서 기다렸는데, 또 연락이 없었다. 물어보니 지금 퇴근해서 들어왔단다. 아니 그럼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정말 이자식들은 도대체 약속개념이 왜 그런거야- 성질이 났지만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주방에서 천진난만하게 친구 암자와 통화 중인 녀석들과 마주쳤다. 나름 자기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도 시켜주고 뭐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애들이 서로 치대면 치댈수록,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졌다.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던 파힐이 암자랑 통화하면서 셋이 투닥 거리는 모습을 보자 심지 생각이 났다. 하- 나도 친구들 있는데. 밥을 먹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불편한 감정을 들키기 싫어서 방으로 내려왔다. 

 

 우울한 기분을 달래려고 테스코에 아이스크림을 사러갔다. 맥주나 한 잔 할까했지만 이런 기분으로 술을 마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냥 1파운드 짜리 감자칩을 사서 벤치에 앉았다. 평소라면 밤이라 위험하다고 절대 안 했을 행동이지만, 지금은 내 기분이 너무 엉망이니까. 조금은 내버려 두었다.

 

 집에 오니 샤갈이 아까 자기네 끼리 통화해서 미안했다고 연락이 와있었다. 미안할 게 뭐람- 개넨 그냥 친구랑 통화 한 죄 밖에 없는데, 오히려 미안할 사람은 그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 나 지. 사과할 필요 없다고 그냥 나도 내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좀 슬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 보단 너가 먼저 산책 가자고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내 시간을 존중 받지 못하는 기분이라고 얘기하게 됬다. 솔직히 한국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인데, 아무 일과 없는 내겐 그런 약속 하나하나가 꽤 존재감이 크니까. 조금 서운하다고 말할 수 있잖아.

 

 이게 뭐라고 이리 서운하담. 괜히 이제 막 사귄 친구들에게 투정 부리는 느낌이 들었다. 걔네도 분명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는 부분이 있을텐데- 사이가 소원해지면 어쩌지? 맘 껏 칭얼대고 치댈 수 있는 심지 생각이 났다. 심지가 보고 싶다.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 이불을 가슴 가득 끌어 안았다. 이게 내 친구이길 바라면서.

 


09.06.금 [워홀+39]_ 아쉬운 이별을 준비하며

 

 아침엔 장을 보러 가서 뇨끼를 만들어봤다. 한국에선 엄두도 못 낼 가격인데 여기는 꽤 싸길래- 이런 건 해 먹어봐야겠다 싶었다. 조금 많이 짜긴 했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점심 때 쯤 샤갈에게 연락이 왔는데, 날 무시하거나 그럴 의도는 없었단다. 만약 그 때 퇴근해서 시간이 되면 하자는 말이 었단다. 생각보다 종종 느껴지는 언어의 장벽. 둘 중 누구도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니까. 아니 설사 그렇다 해도 한 쪽이 못 알아들으면 땡인걸. 대부분의 경우는 그게 나 지만...

 

 저녁 때 샤갈이 시간 괜찮으면 산책하자고 문자가 왔다. 어제 성질 낸 게 미안했기도 하고, 또 신경 써서 먼저 연락 준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사실 계속 집에만 있어서 밖에 나가고 싶기도 했고. 근데 밤에 또 혼자 나가기엔  약간 위험하니까. 

 우리는 근처 터키 디저트 전문점에서 바클라바를 사서, 좀 걷다가 굿맨스필드 벤치에 앉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니 그도 꽤나 이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너무 참을 성이 없었나 싶지만- 그래도 친구 사이에 그 정도는 얘기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더니, 오히려 느낀 바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참나- 녀석 정말 치이는구만. 내가 정말 인복은 있나보다.

 

 몇 주 후면 샤갈과 파힐의 플랫 계약이 끝난다. 지난 번 도난 사건 이후로, 집주인과 맘 상한 일이 있었는지. 둘은 계약을 연장할 것 같진 않다. 그래서인지 샤갈은 요 며칠 전부터 스스로도 잘 해야 한다고, 자꾸 내게 이것 저것 가르쳐주고 시켜봤다. 꼭 멀리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어렵사리 사귄 친구들과 정들자마자 헤어져야 하는 것 같아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친했다면 가지 말라고 투정도 부리고 붙잡아보고 싶은데, 뭐- 그가 말한 것처럼- 매일 볼 것 같던 사람과 멀어지고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 또한 인생이니까.


09.07.토 [워홀+40]_샤갈 생일 파티 ; John Lewis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했다. 요즘 너무 집에만 있었다. 주말인데 살살 나가보자 싶어서 오랫동안 미루고 미루던 존 루이스 백화점 방문. 번화가인 옥스퍼드 스트릿이라 상점들이 가득했다. 자라, 유니클로, DVD전문샵부터 화장품샵인 부츠까지 여기 저기 쇼핑을 했다.

한국인이라면 거울 셀카 못 참쥐.

 

디즈니샵에 들러서 사진도 찍어주고

 

밴드부터 콜라까지 선택의 폭이 넓은 영국

 

자라에서 테스터로 메니큐어도 칠하고

 

 리버티 백화점이 클래식한 느낌의 샵이라면, 존 루이스 백화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인 백화점 그 자체다.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에 각종 고급제품들을 다루는 곳으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욘 루이스 & 파트너스 · 300 Oxford St, London W1C 1DX 영국

★★★★☆ ·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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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에서 기념품을 고민 중이라면 존 루이스 타올을 추천하고 싶다. 나도 여기 수건을 사러 왔다. 면직물 중에선 이집트 코튼을 최고급으로 치는데 존 루이스 이집트 코튼 타올이 가격대비 품질이 좋다고 들었기때문이다. 샤갈이랑 파힐이 곧 떠날 수도 있으니까 가벼우면서도 실용적인 선물을 사주고 싶어서 수건으로 정했고, 사는 김에 내 것도 하나 샀다. 물론 난 작은 사이즈로... 참나 얘들아 봐바 나 부자아니야... 그냥 내거 줄여서 남들한테 쓰는 것 뿐이란다. 

깔끔한 내부의 존 루이스 백화점

 

사랑해요 엘지/ 반가워요 소니/ 역시나 좋은 다이슨

 어제 봤던 터키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도 샀다. 휴- 엄청 비싸네. 사실 내가 먹어보고 싶은 건 체리포레누아였는데, 어제 이집이 피스타치오를 꽤 잘하는 것 같아서 그걸로 샀다. 얘네 할랄만 먹는다고 해서 할랄케이크 어디서 사야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여기가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다 할랄식품이란다. 맞다- 나 무슬림들의 성지인 이스트 모스크 근처에 살고 있지.

 샤갈이 생각보다 늦게 퇴근해서 생파가 늦어졌다. 여럿이서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늦은 시간이라 부를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던 파힐은 보이지않았다. 공부에 방해될까봐 부르기가 주저스러웠는데, 쿠말이 부르니 냉큼 올라왔다. 초에 불도 켜고 노래도 불러주니 샤갈이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조금 민망했는데- 어렸을 적 이후로 생일 챙긴 적이 없었다고, 누가 축하해주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모르겠단다. 

 나도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한 애는 처음이라 조금 민망했다. 화제를 전환해서 아까 나 줄거 있다고  한 게 뭐냐니까 킷캣 초콜렛을 건내줬다. 이거 우리 은진이가 좋아하던 건데, 나도 자주 사먹었고. 근처 아시안마켓인 티엔티엔에서 비싸서 못샀던 건데 또 뭉클해지네. 샤갈은 마트에서 매니저로 있는데, 가끔 거기서 얻은 간식을 들고 와서 한 두개씩 나눠준다.

 

 많지도 않은 양인데 나눠주고,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나눠 주려는 걸 보면- 이런 나눔이 더욱 소중해진다. 내가 지금 궁핍한 형편이라 더 공감이 많이 간달까? 마치 어렸을 적에 외삼촌이 학교에서 배급받은 옥수수빵을 먹지 않고 남겨뒀다가, 막내동생인 우리 엄마에게 주었던 것처럼. 머나먼 이 타국에서 한참 어린 애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밤에 스티브에게 연락이 왔다. 지난 번 말했던 럭비경기가 다음 주인데, 올 수 있겠냐고. 내가 온다고 하면 전에 말했던 내 이력서를 봐주겠다는 마케터분도 함께 불러서 경기를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예 당장가얍죠. 그리고 럭비모임 단카방에 초대되었다. 하하- 내 생애 첫 영어단카방...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그냥 적당히 남들 말하는 거 따라하고 메시지에 하트표시를 했다.

예- 떨어뜨려주셔서 아주 감사룽뽕빵요

  카페 프렛도 메일을 보냈다. 플랫으로 이사오던 날 지원한 이력서가 이제야 검토되었나보다. 한달 전에 지원했던 입사결과에 대해 떨어졌다면서 확인사살을 시켜주지뭐야. 예- 아주 빨리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웃겨 프렛 이놈쉬끼들. 하- 환절기라 날도 쌀쌀하고 마음이 더 휑하다.가을 타는 걸까? 나는 정말 어찌되는 걸까. 취직 되는겨- 마는겨. 그래도 계속 뭘 하고 있으니 되겠지 뭐. 그렇게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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