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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9월 첫 번째 일기 (09.01~09.02)_ 시간은 덧없이 흐르고

by 킹쓔 202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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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일 [워홀+33]_ 벌써 9월이라니

 

화창한 런던 날씨

 요즘 줄곧 집에만 있는 것 같아 설렁설렁 나와봤다. 요즘 계속 플메들한테 얻어 먹는 바람에 나도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일요일마다 열리는 콜롬비아 꽃시장으로 나갔다.

 

Columbia Road Flower Market · Columbia Rd, London E2 7RG 영국

★★★★★ · 꽃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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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북적이는 꽃시장

 

파힐 사줄까 고민했던 야자나무주걱과 코코넛주걱

 

아기자기한 왁스플라워와 귀여운 디피

 

세련된 편집샵에서 그리스식 산양유를 사봤습니다.

 

엄청 맛있어보이는 초콜렛과 알록달록한 타일디피

 

윗집 이쉬다를 위한 꽃한송이

 

브릭레인 마켓 근처 농구코트

 

여기도 북적대는 브릭레인마켓

 

고급 자기가게와 고급쵸콜렛

  미루고 미뤄보던 생초콜렛 사먹기. 그냥 구경만 하러 들어갔다 시식 먹고 바로 샀거든요. 완전 로이스랑은 천지차이였다. 입에서 살살 녹는맛. 주인분도 너무 세련된 모습에 멋진 영어를 구사하셨다. 

 

Dark Sugars · 141 Brick Ln, Bethnal Green, London E1 6SB 영국

★★★★★ · 초콜릿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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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쉬다에게 꽃을 주러 올라갔는데 주방에 쿠말이 있었다. 뭐하냐니까 경찰 아저씨 기다린단다. 도난신고를 했는데 아침에 오겠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안 온다고. 물건을 잃어버린 것 보다 이렇게 계속 시간을 보내야하는 과정이 좀 스트레스라고 했다. 
 
 굉장히 심심해하면서 내 일은 언제 끝나냐길래, 두 시간 정도 후로 텀을 둬서 그 때 끝날 것 같다고 말해줬다. 사실 딱히 뭐 엄청난 걸 하고 있진 않았는데 좀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여유롭게 보내다가 쿠말이랑 테스코에 물을 사러 갔다. 가는 길에 사무사도 먹어보고. 나는 그냥 직관적으로 싸 보이는 1파운드짜리(5L) 물을 샀는데, 쿠말이 옆에 2L*6개 들이가 더 싸고 마시기 용이하다고 그걸 추천했다.

쿠말이 사준 사무사

 저번에 한 달에 식료품에 사용하는 돈이 얼마냐고 하길래 주에 50파운드 정도 사용한다고 했더니, 본인은 훨씬 더 저렴하게 생활 중이라며 이것 저것 절약하는 법을 알려줬다. 확실히 저쪽 사람들은 셈이 빠르네. 가끔 기브앤 테이크라며 뭔가를 줄 때마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렇게 계산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거 치곤 나에게 너무 잘해주지만 세상에 댓가없는 친절이 없으니까. 가끔 그 애가 많은 걸 도와주고 내 생활에 녹아들 때마다 너무 남에게 의존적으로 변하는 건 아닌지 겁도 난다. 새로 들어온 일본인 플메 얘기를 하면서 한국인 여자친구가 같이 있던데 밑에 내려가서 인사할 거냐고 묻길래, 사실 내가 아무나 좋아하는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좋냐고 해서 그냥 내 바운더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본인은 그 바운더리에 있냐는 말에 좀 머뭇거리게 됬다.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던 그도 조금은 분위기를 잡으며 진지하게 우리 친구 아니냐고 물어서 조금 미안해졌다. 물론 요 최근 그 애가 많은 걸 도와주고 여러 부문에서 영향을 미치며 젖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여기서 진지하게 누군가를 만나서 관계를 맺기는 조금 겁이 난다.

쿠말이 차려준 저녘밥상

 사실 액면가가 먹어보여서 그렇지 그 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걸. 물론 한국에 있었다면 전혀 꿈꿀 수 없는 조합이지만 우린 제법 좋은 친구관계를 맺고있다. 그는 나보다 현명하고 셈에 빠르다. 요 최근 주변에서 나를 제일 잘 도와주고 있는 사람. 하지만 딱 거기까지. 깊은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진 못하겠다. 난 머무르다 곧 떠날 사람인걸, 또 누군가를 떼어내고 싶진 않다. 여전히 겁이 많구나. 한국에 있을 때도 선긋기 장인으로 유명했는데 여기와서도 이러는구만.
 
 벌써 9월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이제 곧 세달 후면 24년도 마무리가 되는 거구나. 그런 거치곤 또 갑자기 너무 더워져서 이게 뭔일인가 싶기도 하고.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얼른 은진이가 한국에서 보낸 택배가 왔으면 좋겠다.


09.02.월 [워홀+34]_ 잠 못드는 밤은 계속 되고

 

 어제 가계부를 정산하고 나서 약간 위기감이 들었다. 다음 달 까지 일 자리를 못구하면 여기서 더 이렇게 생활하는 건 힘들수도 있겠구나. 아낀다고 아낀 것 같은데 생각보다 구직 기간이 오래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요 최근 잠을 좀 설치게 됬다. 

꼭두새벽의 런던 모습

 그래서 출근하는 쿠말을 정류장까지 바래다 줬다. 새벽 다섯 시에 일하러가는 부지런쟁이. 그나마 있는 식구 비슷한 사람한테 이런 거라도 해줘야 내 맘이 좀 편할 거 같아서. 꽤나 좋아하는 그를 보며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평소에 못보던 새벽풍경도 이렇게 보고- 잘했네 나.

 아침을 먹으려고 보니 누가 내 칸에 뭘 잔뜩 넣어놨길래, 어떤 자식이 남의 칸에 물건을 막 쟁여놨나 했다. 알고보니 이쉬다가 일하는 데서 치킨이랑 콩수프를 사서 나 먹으라고 넣어놓고 간 것. 참나 안 그래도 치킨 먹고 싶었었는데 정말 좋았다. 쿠말이 어제 만들어놓은 닭가슴살까지 합쳐서 치킨파티네 치킨파티야. 

 사실 우울감이 조금 들어서 방에서 조금 누워있었다. 자꾸 부정적인 감정에 젖어들고 눈물이 났는데 엄마랑 수영이가 전화해서 이것 저것 묻길래 괜히 걱정만 시킨 것 같아 미안했다. 냉장고도 정리하고 기운 좀 차릴겸 장조림을 만들어봤다. 

 어제 쿠말이 한국애들은 요리할 때 주걱을 안 쓰냐고 묻길래, 그냥 내가 뒤집개 살 돈이 없는 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곧장 캐비냇에서 주걱을 꺼내주는 녀석. 참나 파힐이 알면 혼날텐데 껄껄껄. 어쨋든 그래도 확실히 조리도구가 생기니 요리가 한 결 쉬워졌다. 갓 만든 장조림에 흰밥이랑 김을 반찬삼아 저녘을 먹었다. 오랜만에 한국음식 먹으니 기분도 한 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기운차린 겸 근처 스벅에 CV를 몇 개 더 뿌려보았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은 외국생활을 할 때 유리하다"는. 정도 많고 그만큼 외로움도 많은 나는 사실 그런 면에선 조금 부적격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의 생활은 만족스럽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가끔 외로움이 파도처럼 너울거린다. 일상을 함께 보내던 가족들과 친구들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가볍게 여길 수 만은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아무리 여기 사람들이 잘 해줘도 가끔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난 것처럼 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밤이 깊어지면 고독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는데, 그럴 땐 이불을 꼭 끌어안고 내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어본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잘 될거니까 자신에게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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