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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9월 두 번째 일기 (09.03)_ 런던 시내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by 킹쓔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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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화 [워홀+36]_ 친구들과 첫 나들이 ; Horizon 22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 한 번하고, 프렛 몇 군데에 다시 지원도 해봤다. 가는 동안 심지랑 은진이가 전화가 와서 반가웠다. 아마존 택배를 기다리느라 플랫 입구에 서 있었는데 사무실로 가는 쿠말이랑 마주쳤다. 파힐도 일이 있어서 갈 수 있을지 말지 알 수 없다고, 본인이 없어도 입장 가능하다고 했다. 다 바쁘니까 혼자 가란 말 인줄 알고 설렁설렁 걸어왔더니 애들이 뒤늦게 왔다. 
 
 호라이즌 22(Horizen 22)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로, 58층 아래의 높이에서 한 눈에 런던 시내를 볼 수 있다. 사전예약하면 무료 입장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유료이고, 예약자가 많지 않다면 워크인도 가능하다. 물론 나는 쿠말이 얼마 전 부터 존버탄 덕에 예약자로 편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스카이가든에 비해 예약경쟁이 덜 치열하고, 더 멋진 뷰를 감상 할 수 있어서 런던에 오는 사람들에게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추천되는 곳이다. 

한국친구들이 매일 잠실타워랑 헷갈려하는 더 사드

 

Horizon 22

Horizon 22 is London's highest free viewing platform with 300-degrees views of London and it's most icon landmarks.

horizon22.co.uk

 

발 아래서 비추는 런던시내

 전망대 아래에서 내려다 보이는 뷰는 정말 멋졌다. 매일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던 런던 시내가- 내 두 발 아래에 다 보일 정도로 앙증맞아진- 색다르게 보였다. 둘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얘기하는데, 꼭 개발지구를 논의하는 부동산 업자들처럼 보였다.

 

 종종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면 쿠말이 영어로 번역해서 알려주곤 했다. 내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파힐한테 계속 영어로 말하자고 한다. 샤갈 쿠말 너 이 짜식- 하튼 눈치 정말 좋아. 정말 이런 놈을 친구로 둬서 좋구만. 

건물 옥상 마저 깨끗한 런던의 고층빌딩들

 

아래쪽부터 블랙페어 브릿지, 밀레니엄 브릿지, 런던교, 타워브릿지

 파힐이 사진을 찍어 달래서 몇 번 찍어줬는데, 썩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맘에 안드냐는 말에 원래 파키스탄 사람들은 다 이런단다. 그냥 크게 별 반응이 없다고.
 
 쿠말은 머릿 속에 온통 그녀 생각 뿐이라 멍한 거냐고 놀려댔고, 파힐은 매일 10시간씩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즐거울 수 있겠냐고 말했다. 깔깔- 그냥 공부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 걸까 정말 대단한 녀석들이야. 파힐이랑 계속 쿠말을 놀려대다 보니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가 조금 편해졌다.

삼십 평생 처음 배운 미니볼

 처음 해봤지만 미니볼 놀이도 재밌었다. 파힐은 힘캐고 쿠말은 지능캐라 차분히 게임을 풀어나가려는 게 흥미로웠다. 둘 다 저렇게 다른 데 어떻게 이렇게 같이 잘 사는거지? 그리고 확실히 쿠말은 파힐이랑 있을 때 더 꾸럭미가 넘쳤다. 조금 어색하지만 애들이랑 어울려 웃고 떠들다보니 즐거웠다.

 점점 더 까불이가 되는 것 같은 쿠말에게, 파힐이랑 있으면 넌 조금 다른 사람 같아보인다고 했다. 파힐 말고도 암자라는 애가 있는데, 셋이 절친이라 모두 뭉치면 더 즐거워서 유치해 진단다. 나한테도 한국에 그런 친구들이 있다고 했더니, 우리 셋도 이미 충분히 그런 사이 아니냐며 또 서운해지려 한단다.

 장난처럼 너스레를 떨던 쿠말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자기도 혼자 있을 때의 심정을 잘 안다고, 그래서 네 기분을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꽤나 큰 울림을 줬다. 그저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던 내 진심은 가끔 사람들에게 다른 의도로 의심 받았지. 그런 내가 이제 똑같이 상처를 주고 있었구나. 그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 때마다 그 저의를 의심부터 하던 나는 조금 머쓱해졌다.

 우리는 런던브릿지에 가서 조금 사람구경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서 밥을 먹기로 했고, 저녘은 비리야니를 만들어먹었다. 샤갈이 몇 번 요리를 해줬지만 역시 이 구역 요리왕은 파힐이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한 그릇을 해치웠다. 식사를 만드는 동안 윗층에 새로 이사온 진이 요리를 했다.

 진이 오일을 빌려달라고 하다가 셋이서 영어로 이것 저것 얘기를 하는데, 감히 껴들 엄두가 안났다. 게다가 기분 탓일지 몰라도 왠지 강하게 선을 긋는 그 애가 달가워 보이진 않았다. 꽤 그럴듯한 브리티쉬 액센트로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던 그 애가 딱 본인이 원하는 만큼만 말하던 게, 왠지 조금은 잰 채 하는 것 같아 보였달까. 그리고 일본인을 조심하라던 예나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고. 어쨋든 요즘 밥을 조금 많이 먹는 것 같다. 살이 조금 붙는 기분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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