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토 [워홀+102]_한 거 없이 바쁜 것 같잖아
아침엔 간만에 수영이랑 통화를 했다. 왠일로 오늘은 제법 말할 때마다 공감도 잘해주는 녀석. 저번 주 봉사활동에 나갔단 얘기를 했더니, 그 정도면 그래도 여유가 생긴 거라며. 2년 잘 버티다 올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단다. 껄껄 얘가 그런 말 하는 날도 있고 참.
점심 겸 저녘은 라이스페이퍼로 떡볶이를 해먹었다. 옛날에 은진이가 다이어터용이라고 이렇게 해줬었는데. 나는 두부며 라면이며 남는 재료 몽땅 넣어다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한 건 너무 맛이 없었다. 도저히 못 먹겠어서 반 정도 먹다 포기했다.
어떻게든 장 보는 거 미루려고 했는데, 너무 집에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야채도 다 떨어져서 세인즈버리에 다녀왔다.
그리고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 새벽 네 시가 되었다. 왜 이러고 있냐고? 이게 다 망할 인터넷 때문이다. 밤새워 편집 한 영상은 계속 날라가고, 블로그 글도 날라갔다. 무슨 바람의 날이냐고, 계속 날라가게.
사실 12시부터 시작했으니까 밤 샌 거 까진 아니다. 그리고 한 거 없이 하루를 보냈다 생각했지만, 오전엔 쥐 해방 기념 청소하고 , 요리도 하고, 장도 보러 가고 뭘 계속 하긴 한 것 같다. 확실히 해가 빨리 떨어지니까 하루가 훅훅 가는 것 같다.
11.10.일 [워홀+103]_ 현지인과 이방인
엊그제 새벽까지 편집을 한 이유는 바로 오늘이 무지 바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일정이 세 개있었는데, 다행히 두 개가 취소되고 한 개만 남았다.
취소된 하나는 오전에 있던 가드닝 자원봉사였는데, 시청에서 활동 중단을 요청해서 단체가 와해 되는 중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세르지오랑 저녘 약속이었는데, 갑자기 세르지오가 배탈이 나는 바람에 취소됬다. 그는 매우 미안해했지만 나는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그래서 남은 일정은 딱 하나. 라이언과 함께하는 이스트 런던 탐방! 우선은 스피탈필드의 카페부터 시작했다. 잘 알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곳이 많았다. 확실히 현지인과 다니니 새로운 곳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살다 온 라이언을 확실히 한국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문을 했는 데 음식이 나오지 않자, 원래 유러피안 서비스는 좀 느리다며, 한국과는 다른 세상이라고 농담을 건냈다. 영어교사출신답게 대화도 맞춤형으로 맞춰줘서 대화 하는 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맛집이나 좋은 카페도 잘알고 있었다. 한국카페들보단 못하지만 런던에도 제법 괜찮은 데가 있다며 여기 저기 소개해줬는데, 그 중에 한 곳이 여기 옥자였다. 한국 사람이 하는 데를 한국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영국인이라니.
쿠키를 산 다음에는 좀 걷기로 했다. 브로드웨이 마켓으로 가는데 라이언 걸음이 너무 빨라서 쫓아가기 조금 따라가기 버거웠다. 키는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걷지. 역시 블랙벨트는 보법도 다르구만.
브로드웨이는 브릭레인마켓보다 규모가 더 컸다. 음식도 더 다양하게 팔고, 식료품점도 훨씬 더 프리미엄제품들이 진열되있었다.
라이언이랑 벤치에 앉아서 그릴샌드위치를 먹었다.-사실 난 아무것도 사지 않아서 라이언이 본인이 산 샌드위치를 나눠주었다- 파리바게트 얘기도 하고, 부산 얘기도 하고. 내가 아는 얘기라 그런지 너무 재밌었다. 우린 가끔 한국말도 했다. 혹시나 말이 안 통할까 싶어 걱정했던 것 보다는 괜찮았다.
라이언이랑 런던 얘기를 하다가 펍에 가본 적 있냐고 했다.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다고 했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펍은 일종의 술집이지만, 영국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카페보다 펍에서 낮부터 맥주 한 잔 하는 사람들도 많고, 스포츠경기를 관람하거나 책을 보기도 한다.
나는 펍에 가려면 얼마정도 필요하냐고, 비싸냐고 물었다. 그는 "너 정말 펍에 가본 적 한번도 없구나."라며 오늘 꼭 펍에 나를 데려가야겠다고 했다. 마치 새로운 세계를 알 지 못하는 외국인을 답답해하는 한국인처럼. 일단은 간단하게 한 잔 하자며 미켈러로 갔고, 하프파인트의 사이다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내 인생맥주였다. 진짜 너무 맛있었다. 깔끔하고 적당히 달고 완벽한 청량함. 맥주 한 잔이지만 술이 들어가니 말하기에 자신감이 붙었나. 우리는 주짓수에 대해서 얘기했다. 한국 주짓수와 유럽 주짓수의 차이도 신기했다.
또 공감되는 점도 많았다. 블랙벨트한테 탭 받고 싶어하는 화이트부터 운동 후 겪는 잔 부상의 후유증들까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싶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아이리쉬펍이었다(왜 상호명에는 <스페인>이 들어가는 지 모르겠지만). 홀 중앙에는 가수가 라이브 공연을 했는데, 마치 에드시런 뮤비의 한 장면 같았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홈 바. 본인 최애 술집을 소개시켜주고 싶어하는 그를 따라간 곳은 스페인 분위기가 낭낭한 조그만 바였다. 바텐더도 스페인사람이고 가게 이곳 저곳에서 스페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나중에 주희 데려와야지.
집으로 오니 열 시였다. 배가 고파서 라면 두 개를 끓여먹었다. 술 먹어서 배가 고픈건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 한 끼도 제대로 안 먹었다. 역시 외국애들은 안주빨 없이 술만 잘 마시는구나.
그래도 확실히 현지인이랑 함께 하니 재밌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항상 내가 뭔가를 소개해주는 역할이었는데, 오늘은 그 반대였다. 현지인에서 외국인이 되었을 때 느끼는 기분이 이거였구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매일 버스만 타고 지나다니던 곳이었고, 익숙한만큼 잘 아는 곳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의 안내를 받고 다른 길을 걷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로컬이 알려주는 많은 것들은 외국인인 내게는 꽤 흥미로웠고, 금세 지나가버릴 정도로 즐겁고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술 먹은 거 진짜 오랜만이었고. 재밌네 영국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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