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화 [워홀+98]_ 영국, 좋은걸까?
얼마 전 옆 방 파딘에게 쥐가 옷을 갉아먹었단 얘기를 들었다. 그 이후로 방에서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리거나 원인 모를 구멍이 보이면 극도로 긴장하게 된다.
아침엔 정말 우울증 환자처럼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빵 하나로 두 끼를 때울 정도로. 휴대폰 보는 것 마저 귀찮아서 그냥 누워있었다. 진짜 출근하기 싫었는데 그래도 일을 하니 좀 기분이 나아졌다. 몸을 움직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젠 큰 실수 없이 해낼 만큼 성장한 모습을 봐서 그런가.
근데 식당만 가면 목이 아프다. 독한 소독제들 때문인지 캔들라이트의 유독가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조심해야할 것 같다.
사장님이 일하다가 대뜸 영국이 좋냐고 물어보셨다. 그리고 이 질문 한 마디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냥 스몰톸하려고 냅다 던진 질문인 것 같은데, 그냥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런 비루한 생활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버텨보려는 걸 보면 분명 싫은 건 아니겠지. 유럽이랑 가깝고 영어권이라는 것 빼고는 아무 기대 없이 와서 그런가, 그래도 실망할 일이 많았지만. 학을 뗄 정도로 싫은 건 아닌 것 같다. 진짜 나는 왜 영국에 게속 머무르고 싶어하는걸까…
11.06.수 [워홀+99]_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
그건 쥐가 맞았다. 아침부터 침대 밑에서 부시럭 대는 소리에 침대 밑을 보니 작고 검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까무라진 채로 집을 나왔다. 그렇게 아니길 바랬것만.
그래도 일은 해야해서 부리나케 식당으로 왔다. 오늘은 외부 촬영만 있는 날. 하지만 바쁜 가게 사정 때문에 사장님은 같이가다 내리셨다. 결국 또 혼자서 진행. 아직은 영어가 어려운 내게 인터뷰랑 촬영을 동시에 진행하는 일은 쉽지 않아 두려움이 앞섰지만, 뭐 이렇게 점점 용감해져가는거지.
트라팔가 광장 · Trafalgar Sq, London WC2N 5DS 영국
★★★★★ · 대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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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내를 좀 둘러볼까 했는데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나온 김에 막스앤스펜서에서 마스카포네 치즈도 사가려고 했는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서 쥐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남은 이틀 동안은 계속 일을 해야 해서 시간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Waterstones · The Grand Building, Trafalgar Sq, London WC2N 5EJ 영국
★★★★★ ·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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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역 · 영국 WC2N 5DP London, 런던
★★★★☆ ·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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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st control 말로는 방 문틈 사이로 쥐가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꽤나 벌어져 있는 것 같긴 했다. 어쨋든 방에 이제 방에 쥐는 없는 것 같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래서 조이에게 빠른 조치에 고맙다고 연락하고, 밖에 내둔 짐을 다시 들여놓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침대에 누웠는데 조그만 검댕이가 지나가는게 보였다. 설마 내가 또 헛것을 보는 건가 싶었는데, 작고 귀여운 생쥐 한 마리가 옷장 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들쥐(rat, 생쥐보다 크고 무섭게 생김. 그리고 해충 등을 몰고 다녀 더 심각한 존재)는 아니었다. 말은 이렇게 침착하게 하지만 이미 난 괴성을 지르고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더 미치겠는 건, 이 곳 사람들의 반응이다. 쥐를 무서워하는 나를 신기해하며 다들 방에 쥐가 있다고 했다. 그걸 견디는 사람들만 여기서 살 수 있는 거였다. 윗 집 무하메드가 쥐 때문에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봐야했다. 진도 이번 주가 지나면 새로운 플랫으로 옮긴다고 했다. 보증금까지 포기하고 갈 정도면 둘은 꽤나 그 문제에 시달린 모양이다. 나는 과연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을까?
조이에게 전화해서 여기서 더 머무를 수 없다고, 새로운 장소를 아마 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옆 방이 비어있으니 거기서 자라고 했다. 아흐메드가 쓰던 방은 다행히 문을 포함해서 벽이나 바닥에도 큰 틈이 없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대신 차도와 떨어져서 굉장히 조용했다. 침대 매트리스가 엄청 푹신해서 허리가 아플 정도였지만, 눕자마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쥐 때문에 온 신경을 쓴 탓인가.
그리고 새벽 세 시. 잠겨있던 방문이 열렸다. 누군가 쳐들어왔다는 두려움보다는 분노가 앞서 누구냐고 소리부터 대뜸 질렀는데, 파르토였다. 오늘 새벽에 이 방에 새로 묵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열었다며, 내가 있는 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하 나도 내 방 가서 자고 싶다. 왜 이러고 있는걸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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