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월 [워홀+97]_les 'Miserable'
밥을 먹다가 밥맛이 뚝 떨어져 강제 다이어트를 했다. 라면 끓여서 먹는데 사갈이 주방으로 올라왔다. 오랜만이라 반갑게 인사를 건넸더니 시큰둥했다. 파힐도 그렇고 둘다 요즘 표정이 안좋길래 무슨 일 있나 물어보니, 파힐이 나한테 화가 났단다. 내가 내 냉동실 칸에 있던 본인 파라타를 꺼내놓고 못 먹게 만들어서.
우리 플랫의 공용 공간은 방 별로 칸이 나뉘어져 있다. 화장실도 그렇고, 주방에 수납함이나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부터 냉동실 칸에 자꾸만 내가 모르는 물건이 놓아져 있었다. 그게 생닭이나 생선 같은 것들이라 꽤나 불쾌했고, 며칠 간 참다 못해 싱크대로 빼 버렸다. 친절하게 단카방에 물건 뺀다 내 칸 좀 내가 쓰자고 말까지 해줬는 걸. 매니저인 파르토도 다음부턴 이렇게 말해주지말고 쓰레기통으로 버리라고 했을 정도인데.
뭐지? 오히려 사과 받아야 할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어이가 없었다. 어느 부분에서 본인이 화를 낼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걸까? 지난 번 내 커피를 깨 먹었을 때도 사과 한 점 없이 뻔뻔하더니, 정말 무슬림 혐오증이 생기려고 한다.
사갈은 화를 내는 파힐 입장도 이해하고, 네 입장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나를 대하는 태도는 무척 냉랭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켜 귀가 찢어질듯하게 큰 소리로 영상을 틀었다. 정말 이들에겐 공공예절의 개념이란게 없는걸까. 도저히 같은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서 먹던 라면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방으로 내려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 일도 아니다. 그냥 정말 왠 미친놈들이네 하고 넘기면 될 일인데, 그게 안 됐다. 같이 밥을 먹고 놀러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날들이 떠올랐다. 서로 상대를 생각하는 시선이 전혀 달랐구나. 난 첫 월급 타면 같이 식사하자는 약속 못 지킨 게 맘에 걸렸는데, 이런 사소한 걸로 손절 당하듯 대해지다니. 왜 그렇게 쉽게 마음을 줬을까 싶어 씁쓸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러 소호로 나갔다. 제목이랑 딱 맞네 (cf. Miserable; 비참한, 우울한).
뮤지컬 레미제라블 후기
작성 : 킹쓔
특징 | 비고 | |
가격 | 54파운드 | Today Tix에서 3일 전 예매. Red member 할인 (4파운드) |
좌석 | Stall T 13 | 무대 기준 1층 뒷편 거의 중간석 |
극장 | Sondheim 손데하임 극장 | - 티에트리로드 입구, 차이나타운 바로 옆 위치 (찾기 쉽고 식사하기도 좋음) - 보안검사 까다로움 |
뮤지컬 | - 무대가 크지 않음. - 대사 대부분 노래로 구성 |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면 줄거리를 이해하기 힘들수도.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대충 알아들을 듯 |
추천 | - 클래식한 뮤지컬을 보고싶다면 - 레미제라블의 유명한 넘버들을 직접 듣고싶다면 |
영화 레미제라블과는 다른 매력이 있음 |
영국에 오기 전부터 줄곧 보고 싶던 뮤지컬이라 정말 기대가 컸다(그리고 실망도). 너무 보고 싶던 작품이라 50파운드라는 거금을 주고 예매했다. 이게 그나마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레미제라블은 데이시트나 할인이 따로 없음)
Foyles · 107 Charing Cross Rd, London WC2H 0EB 영국
★★★★★ ·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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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리스 시어터 · 113 Shaftesbury Ave, London W1D 5AY 영국
★★★★★ · 공연예술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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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차이나타운도 들려봤다. 맨날 뮤지컬 보러 가거나 소호 지나갈 때마다, 들어가보긴 좀 부담스러워서 지나만 갔었거든. 사람들이 긴 빵을 물고 다니길래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니 뒷 편에 가면 차이나타운 베이커리에서 살 수 있다고 알려줬다.
가게로 들어서자 중국사람인줄알고 중국말로 말을 걸길래, 나도 중국어로 대답하고 물건을 샀다. 흐흐. 대답할 때 보니까 중국인 아닌 거 티나지? 히히. 그래도 오랜만에 중국어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중국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은 적은 많지 않지만, 상해에 있을 땐 좋은 기억이 있어서 포근한 감정도 있다. 외할머니네 같은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향감성.
Chinatown Bakery · 7-9 Newport Pl, London WC2H 7JR 영국
★★★★☆ · 중국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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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데 두 중국인 여자애들이 "쟤 좀 봐, 요우티야오 먹고 있어."라고 소리쳤다. (그녀들에게는 불행히도) 내가 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어서, "이거 맛있어, 저기 팔아. 사 먹어봐."라고 대답해줬다. 내 대답을 듣고 토끼눈이 된 두 소녀들. 그래 아직 내 중국어 안 죽었어.
또 다른 지나가는 중국인들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사진 작가처럼 열심히 찍어준 친구들 고마워. 동북아는 하나네! Were the one~
Sondheim Theatre · 51 Shaftesbury Ave, London W1D 6BA 영국
★★★★★ · 공연예술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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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데하임 극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소지품 검사가 철저했다. 오기 전에 옆에 오세요에서 김치를 샀는데 밀봉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반입금지품목이라 보관함에 맡았다 가져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위키드랑 물랑루즈에서도 김치 파우치 있었는데 별 신경안썼는데, 여기는 참 열일하네 싶었다.
나는 1층 T열 13좌석이었고, 50파운드를 지불했다.(해당 자리 원가는 54파운드, Tix Redmember 4파운드 할인 적용) 여태껏 갔던 극장들은 대부분 좌석이 무대를 중심으로 가로로 펼쳐져있어 멀리 떨어진 좌석도 무대를 감상하기에 힘들지 않았다. 한번도 might miss certain moments란 말을 실감해본 적 이 없는 걸.
그러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상영 중인 손데하임극장은 좌석이 세로로 퍼져있는 느낌이라 공연의 일부가 잘 보이지 않을 때 도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일 이츨을 왔다 갔다 거리는 씬이 몇 개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 고개도 위 아래로 왔다 갔다 해야했다. 전체적인 공연뷰를 원한다면 1층 보단 2층 좌석이 더 관람하기 좋을 것 같다.
처음 공연을 보는데 극장도 무대가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연극을 상영하던 곳이었다는데, 확실히 딱 그 정도 사이즈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보다 보니 왜 이 극장에서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공연 특성 상 대사의 90% 이상이 노래로 전달되기 때문에 (대부분 대사들이 속사포랩처럼 지나가기때문에 영어를 왠만큼 잘하지 않는다면 알아듣기 힘들수도), 극장 공간 구조 상 무대에서 객석으로 노래가 훨씬 더 또렷하게 잘 들렸다. 다른 뮤지컬들이 무대연출 중 시각적인 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면, 앙상블이나 솔로가 많은 레미제라블은 음향연출에 훨신 더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또한 관객들 대부분이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라이온킹>, <위키드>, <물랑루즈>등은 다양한 인종과 현지인들이 많았는데, 유독 레미제라블은 일본이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게 느껴졌다. 그래서 관크도 많이 당했다. 공연 중에 촬영 금지라고 누누히 얘기했는데, 공연 시작하자마자 플래시까지 터뜨리며 촬영하던 중국인 관광객들... 직원들은 왜 저지하지 않나요... 내 김치 파우치는 그렇게 칼같이 압수하셨으면서...
그리고 나는 일생일대의 바보 같은 짓을 해버렸다. 1막이 끝난 건데 공연이 다 끝난 줄 알고 퇴장해버린 것이다. 2시간 반이 상영 시간인데, 2시간이 지나있길래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하고 나왔다. (줄거리도 거의 끝처럼 보이긴 했다.) 어쩐지 김치 찾아간다고 할 때 다시 들어올거냐고 묻더라고...왜 자꾸 그렇게 묻나 싶었지. 근데 보통 인터미션이라고 방송이라도 해주던데 여기는 그런 거 얄짤 없더라구요.
- 저자
- 빅토르 위고
- 출판
- 스타북스
- 출판일
- 2021.08.06
그래서 다시 볼 거냐고 하면 모르겠다. 왜냐하면 <레미제라블>을 영화로 봤을 때는 훨씬 더 화려한 연출로 보는 맛이 있었는데,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그냥 정말 연극 같다고 할까...소설은 훨씬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 평점
- 8.4 (2012.12.19 개봉)
- 감독
- 톰 후퍼
- 출연
-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에디 레드메인, 사챠 바론 코헨, 사만다 바크스, 아론 트베이트, 이자벨 알렌, 다니엘 허들스톤, 스티븐 벤트, 팀 다우니, 콤 윌킨슨
영화로부터 레미제라블을 접한 지라 영화 속 배우들이 너무 박혀 뮤지컬 배우들이 낯 설게 느껴졌다. 그치만 마리우스 친구역이랑 자베르는 진짜 키 크고 얼굴 작더라. 런던에서 뮤지컬 볼 때마다 막 도파민 세로토닌 터지는 게 느껴졌는데, 이번엔 그냥 그랬다.
아무튼 <레미제라블>은 하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길래 이유가 궁금했는데, 보고 나니 알 것 같다. 런던 뮤지컬이 고민이라면 오랜 전통의 클래식한 뮤지컬을 보고싶다면 <레미레라블>, 화려한 무대연출이나 세련된 뮤지컬을 보고 싶다면 <물랑루즈>, <위키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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