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4년 12월 여섯 번째 일기 (12.23~12.26)_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킹쓔 2024. 12. 2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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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월 [워홀+145]_ 크리스마스 디너

 

 라피가 계속 콜록 거렸다. 감기가 온 것 같다고 몸이 안 좋다는데, 괜히 내 탓인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저녘 땐 컨디션이 좀 나아보이길래 파이브가이즈를 데려갔다. 살면서 한 번도 안 가봤다니 또 이 으르신이 알려줘야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타워브릿지 파이브가이즈

 

런던브릿지 근처 야경

 혹시 몰라서 근처 막스앤스펜서에 들러서 디온거 프레스코도 미리 샀다. 매 년 이브부터 성탄절까지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고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집에 와서는 <라라랜드>를 봤다.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또 새벽에 잤다. 으유 진짜 언제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회복하려나.


12.24.화 [워홀+146]_ 드디어 디온네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때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걸. 그게 더 짜증이 났다.

 성질나 죽겠는 와중에 쇼룹이 소포를 전해주고 갔다. 스위스에서 온 플루리나의 크리스마스 선물. 매년 이렇게 명절을 챙겨주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참 고맙네.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라피랑 노작거리다 보니 두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그래도 여유 있게 나온 거라 늦지는 않았다. 그리고 역 근처에 상점이 열려 있는 걸 보았다. 젠장, 나 왜 개고생한거지? 껄껄. 손도 없으면서 또 꽃까지 샀다. 얼른 앉고 싶어서 예정 시간 보다 한 시간 일찍 기차를 타고 디온네로 향했다.

양 손 한 보따리 들고 갑니다

 

가는 길에 만난 핑크빛 하늘

 

아기자기 예쁜 디온네 크리스마스 장식들

 영국인들은 정말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것 같다. 9월 말부터 시에서 거리를 예쁘게 장식하고, 각 가정들은 창문부터 집 안까지 온갖 귀엽고 화려한 참들을 달아 성탄절 분위기를 즐긴다. 

 식사도 굉장히 풍성한데, 이브 저녁은 스티브가 만든 애플크럼블을 먹었다. 오븐에서 갓 나온 크럼블을 크림과 함께 먹으니 정말 맛이 있었다.

술도 빠질 수 없구요

  식사 후에는 게임도 했다. 요즘은 오락기 대신 휴대폰과 티비를 연결해서 게임을 한다던데, 진짜 그러고 있어서 신기했다.

  안그래도 게임고자인데 영어라서 더 어려웠다. 승부는 고사하고 규칙 이해하는 것도 꽤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잘 해냈다. 그리고 머라이카 부부가 왔다. 게임도 꾸벅꾸벅 졸아가면서 했는데 손님 상대하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 머라이카는 아직 내 CV가 인사팀에 있고, 지원했던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니 진행상황을 계속 알려주겠다고 했다.

 

 물론 그 말을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다. 그래도 뭐 지친 알바살이에 이제 곧 직장인 될거라는 꿈 하나 품고살면 좋잖아. 마치 주머니 속 고이 간직한 로또당첨의 꿈처럼. 

 


12.25.수 [워홀+147]_ Have a merry merry Christmas

 

끊임없이 쏟아지는 선물 패키지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는 선물이 가득했고, 그 중엔 내 것도 있었다. 아무것도 준비 못한 내가 민망해질정도로 선물 보따리는 황송했다.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묻길래 숟가락이랑 수정테이프면 된다고 했는데, 고기 시즈닝부터 클렌징워터까지 정말 실용적인 물건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인삼토너가 제일 맘에 들었고, 사고 싶었던 클리니크 크림도 좋았다. 그 외에도 마트에서 사려다 못 산걸 많이 받아서 정말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던 수정테이프와 그 외 선물들

 대충 끼니를 떼우는 줄 알았는데, 디온네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었나 보다. 스티브랑 디온이 끼니마다 손수 만든 요리를 꺼내 주었다. 마치 셰프처럼 음식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면서. 

지역 특산물 로제와인과 알래스카산 연어 샐러드

 

요리왕 스티브

 

크리스마스 디너: 새우 싸우전드 샐러드, 요크셔푸딩, 웨지감자, 크래커

 

일어나서는 일기를 썼습니다

 너무 조용하고 아늑한 탓인지 디온네에서는 매 순간 잠이 쏟아졌다. 거의 밥만 먹으면 사물놀이패마냥 상모를 돌리면서 졸았다. 이젠 제법 편해졌는지 먼저 올라가서 눈 좀 붙이겠다고 하고 계속 잤다. 


12.26.목 [워홀+148]_ 평화로운 박싱데이

 

 26일은 박싱데이(Boxing day)로, 크리스마스날 받은 선물 꾸러미를 확인하며 쉬는 날이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박싱데이까지 쉰다. 심지어 기차까지 운행하지 않아서, 내일 새벽 첫 차를 타고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티브가족 선물싸고, 밥도 싸먹고

 그런고로 디온은 뭔가 구경시켜줄 수 없어서 안 타까워 했지만, 여태껏 피곤하게 지내온 내겐 딱 맞는 시간이었다. 얼마 전 밤새 구토를 할 정도로 숙취에서 회복하지 못했고, 제대로 못 잔 탓에 그냥 쉴 수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가다가 만난 예쁜 집, 귀여운 고양이, 신난 보보

 그래도 너무 집에만 있는 것 같아서 저녘엔 엘리를 따라 산책을 갔다. 이웃집 개 보보를 산책시켜주고 오는 길에 귀여운 고양이도 만나고, 이것이 바로 힐링이지. 

엘리 차 타고 드라이브

  한국에선 '무슨 차를 타느냐'를 따졌는데, 영국에선 '차라도 탈 수 있느냐'로 질문이 바뀐다. 교통체증과 각종 통행료를 매기는 탓에 런던에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특히나 외노자인 내 주변에선 더더욱. 그래서 여기와서 차를 탈 때 마다 너무 신났다. 

 저녘에는 크래커에 각종 치즈를 발라먹었다. 혼자라면 시도 해보지 않았을 여러 가지 치즈나 칠리잼, 칠리릴리즈 같은 각종 소스를 경험해 보는 시간은 참 흥미로웠다. 

 

 어쨋든 올 해 크리스마스는 참 특별했다. 아무생각없이 혼자 보낼 줄 알았던 명절이었는데, 디온과 스티브의 환대 속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영어가 부족해서 소통하는 데 가끔 어려움을 겪지만 (특히 이번엔 몸이 피곤한 탓인지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도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은 통하는 것 같다. 이런 친구를 두다니 나 정말 행운아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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