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7.월 [워홀+181]_ 장보고 김볶밥 만들고
쉬어가는 월요일, 따뜻한 햇살 맞으며 바깥 나들이를 했다. 집 근처 조금만 나가도 번화가를 경험한다. 별별 상점이 가득하네. 이게 바로 센트럴 사는 맛인가.
저녘은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영국에서 김치 구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유독 오늘은 구하기 힘들었다. 얼마 전 갔던 소호에서도 품절이었는데, 여기 오세요에서도 배추김치가 없었다. 설날인 탓인가.
결국 세인즈버리에서 일본회사가 만든 김치를 샀다. 아- 나 종가집이나 씨제이아니면 안 먹는데, 어쩔 수 없지. Yukata라는 일본회사가 만든 코리안 김치는 볶음김치와 신김치의 중간맛이 났다. 김치볶음밥 만들기 딱 좋아!
밥이 너무 퍼진 관계로 김치볶음밥보단 그냥 고깃집에서 먹는 볶음밥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너무 맛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금방 그릇을 비웠다. 내일까지 먹을 거 남겨둬야 되는데.
01.28.화 [워홀+182]_잘 먹고 운동하고
오늘은 돼지고기강된장볶음을 만들었다. 남는 쌈장이 있어서 처리할 겸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내가 했지만 정말 잘했지 뭐야. 혼자 먹기 아쉬워서 라이언것도 한 그릇 더 만들었다. 가리는 거 없이 아무거나 다 잘 먹는 그. 난 이런 사람이 참 좋더라. 저녁에 수업 가서 줘야지.
저녘은 버섯볶음이랑 리코타치즈 샐러드. 요즘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서 과자를 끊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 단 게 너무 당겨서 소스를 좀 쳐 먹었다. 진짜 금단 증상처럼 단 게 당기지만 그래도 건강을 위해서 참아야지.
식사를 마치고는 간만에 주짓수를 하러 갔다. 지난 번 보다 사람이 많았는데, 오히려 파트너는 많이 안 바뀌었다. 처음엔 키 크고 몸통 큰 샘이랑 했는데 진짜 갈비뼈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거짓말 안하고 2m는 넘을거야, 분명히. 그리고 이 후에는 중국계로 보이는 요시랑 운동을 했다. 그녀는 여자가 별로 없으니 자주 놀러 오라고 했다 히히- 그럴게요.
라이언이 끝나고 한 잔 하러 가자고했는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연달아 3일 근무가 있기도 하고, 술이 별로 안 당겼다. 돈도 없고, 체중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 놓고 배고파서 버스 타기 전에 막스앤스펜서에서 먹을 걸 사서 우걱우걱 먹었다. 아- 밤에 뭐 먹으면 안 되는데.
01.29.수 [워홀+183]_다시마가 없는 너구리처럼
그거 아세요? 영국 너구리엔 다시마가 없다는 사실, 그것도 모르고 한참 헤맸잖아. 다들 이제 어디 서나 쉽게 한국 음식을 구한다지만, 아니에요. 여기 건 한국 거랑 조금씩 맛이 다릅니다. 아마도 할랄 탓이겠지. 그래 기업들이여 돈 되는 무슬림을 노 려라- 자국민은 버리고.
식사 후에는 성임이가 준 책을 봤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모두 내 얘기 같아서 전부 공감하면서 봤다. 특히 아래 글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요즘 내가 느끼는 심정이 잘 표현된 부분이었다. 효율과 논리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생존이 중요한 외국 생활에서, 굳이 없어도 되는 예민한 감성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이 고스란히 느끼는 감정들이었다.
내가 영국에 온 이유는 '조금 더 내 자신을 알기 위해' 였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동 떨어져, 조금은 어색한 내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보고 싶었다. 여기서 의존할 사람은 오롯이 나 자신 하나 밖에 없으니까. 스스로 이것 저것 도전하고 해내면서 조금 더 멋진 나를 꿈꿨었다. 그렇게 멋지게 변한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느낀 현실은 조금 달랐다. 여기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나를 더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감정이 풍부한 나- 때때로 그게 피곤할 때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그 모습이- 이제 웬만한 일은 그저 허허 하고 웃어 넘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단단해졌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생동감 없이 감정을 안으로 삼키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씁쓸할 때도 있다.
말도 제대로 못할 때도 많고. 예쁘게 말하고 따뜻하게 남들을 위로하는 내가 참 좋았는데, 여기선 그게 참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돼서 쩔쩔매는 나를 보면- 멋진 모습보다는 안쓰럽게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잘 베풀고 선물하기 좋아하던 나는 옹졸한 지갑 뒤로 숨어버리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기분도 든다.
그래서 오후엔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아무리 사정이 좋지 않아도 싫은 건 단호히 거절하던 내 모습을, 이곳에선 좀처럼 고집하기 힘드니까. 근무 후 갑작스런 사장님의 미팅에 잔뜩 긴장했었는데, 의외로 좋은 기회를 제안하셨다. 하지만 지난 번의 여파로 썩 내키진 않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내 위치, 그게 좀 더 속상하게 했다. 예전처럼 이것 저것 잴 수 없는 내 위치가, 마치 다시마 없는 너구리처럼 느껴졌달까. 액기스 없이 타국을 떠도는, 그런상태로 살아남아야 하는 김너구리.
저녁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막스앤스펜서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는데, 돈이 없어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초반에 정착하던 때 들던 생각이 났다. 곁을 함께한 누군가가 생기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무엇 하나 안 정적이지 못한 나, 문득 다시마가 있는 한국의 김너구리가 그리워졌다.
01.30.목 [워홀+184]_ 엄마가 돈을 보냈다.
엄마가 돈을 보냈다. 1파운드가 없어 마트를 배회한다던 내 말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며 말했다. 이 돈이 어떤 돈인지 알기에 차마 받을 수 없었기에, 괜스레 너털웃음을 지으며 속 빈 농담을 했다. 지난 번에 비싼 배게를 사서 그런 거라고. 식당에서 일하니까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걱정 말라고.
그렇다. 얼마 전에 나는 누군가 남긴 음식을 먹었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내 처지가 더 피부로 와 닿아 쓸쓸해졌다.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어디냐. 이젠 체면보다 내 목구멍이 더 중요한 걸.
집에 들어 와보니 전기가 끊겨있었다. 다행이 예전에 받은 팁이 있어 전기를 바로 공급할 수 있었다. 왜 하필 지금 전기가 떨어진 걸까. 지난 번 줄어든 월급의 여파가 너무 크네. 팍팍하다 팍팍해.
01.31.금 [워홀+185]_비가 온 뒤엔 하늘이 더 맑습니다
언젠가 라피가 말했다. 그거 아냐고, 비가 온 뒤에는 하늘이 더 맑다고. 단순하지만 명확한 그 말이 나는 참 좋았다. 런던의 날씨는 비가 잦은 편이지만, 그만큼 더 맑은 하늘을 볼 기회도 많다. 무지개 또한 그렇고. 그건 어쩌면- 내가 런던을 마음에 품게 된 이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잦은 시련과 사건들로 얼룩진 삶이지만, 그래서 더 또렷하고 자주 행복해 질 수 있을거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서.
저녁엔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일하는 중에 계속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흘러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전에 주변 사람이 감기를 앓아 예상했던 바였지만, 몸이 아플 걱정보다 혹시 일 하는 데 지장이 있을 까봐 더 무서웠다. 이번 달에는 정말 더 많이 일해야 하는데.
그래도 이번 주도 잘 버텼다. 넉넉하진 않지만 알차게 잘 보냈다. 지갑은 여전히 얇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지만, 내면의 나는 피둥피둥 살 쪄가는 중이겠지. 이런 상황일수록, 더 많이성장해서 돌아갈 수 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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