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4.금 [워홀+178]_불금은 아닌 편금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된다. 말라비틀어져가는 지갑사정에도 굶어 죽지 않고 있는 건, 식당에서 조금씩 먹을 걸 얻어오기때문이다.
일을 안 나가니까 금요일도 주말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밀린 일기도 쓰고, 심지 생일 축하도 했다. 시험 끝나고 일찍 온다던 라피는 한참을 연락이 없었다. 아침부터 전화도 안 받길래 혹시 계속 자고 있는 걸까 걱정했는데, 그냥 폰을 두고 간 거였다. 게다가 컨닝 혐의를 받아서 해명하느라 정신 없었다고. 그의 캠퍼스 라이프 버라이어티하구만.
01.25.토 [워홀+179]_ 밖으로 나가 노올자
분명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시계를 보니 세시가 다 되어갔다. 영국의 겨울은 일몰이 빨라서 하루가 더 짧게 느껴지는 기분. 이대로는 아쉽겠다 싶어서 토튼햄코튼 로드쪽으로 쇼핑을 나갔다.
라피가 같이 머리따고 나가자고 했지만, 늙은이는 너무 힘들구나. 패션에 관심이 많은 그와 달리, 이젠 그런 분야에 흥미가 좀 떨어진 나. 그냥 대애충 머리 조여메고 볼 일보고 돌아오는게 편한 나이라.
왜 항상 돈이 없을 때 살 건 많을까. 유산균도 사야하고, 장 볼 카트도 사야하고, 바디로션도 사야하고. 돈은 없지만 나에겐 신용카드가 있다오... 부디 다음 달에는 추가소득이 생기는 날이길.
그래도 양심상 외식은 하지 않았다. 쇼핑은 네시간동안 했지만 밥 먹을 돈은 없는 우리, 주린 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겨우 저녘을 먹었다. 저녁은 라피표 라면. 물론 평소 먹던 거에 비하면, 엄청 맵고 짜고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나, 불닭의 나라에서 온 한국인. 이 정도는 뭐 거뜬하지.
01.26.일 [워홀+180]_ 한가로운 주말 끝
새벽부터 일어나서 오븐구이하고, 장조림도 했다. 다음 주는 다행이 근무 일수가 조금 늘어서 끼니 걱정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이걸로 화요일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리고 카드 마지막 한도로 체중계를 샀다. 사실 크게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어제는 꼭 사야겠다고 생각되서 주문했다. 수영이나 엄마나 영상통화 할 때 마다 요즘 부쩍 살찐 것 같다하고, 라피도 전에 볼 때마다 체중이 많이 오른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그건 내가 가장 잘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지만-확인이 필요했다.
불행히도 진짜 좀 찐 걸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식당 일 이라는 게 워낙 고되고, 또 사람들끼리 간식을 나눠 먹다 보니 군것질이 습관이 됐다. 일이 없는 날은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 게 돼서도 그렇고.
게다가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끔 '굶어 죽을 수 도 있다'는 공포에 사로 잡히곤 한다. 한국에선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여기에선 어느 날 갑자기 일이 끊기고 돈이 없어 끼니를 잇지 못할 날을 걱정하게 되거든.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배에 음식을 구겨 넣곤 하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그 결과 고스란히 체중이 증가했지 뭐.
빼자- 신년맞이 다이어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4kg만 빼자. 아니-군것질부터 줄이자. 호르몬이 돌 때라 단 게 진짜 당겼는데,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나니 단 거의 유혹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점심 때는 라피랑 산책을 했다. 정확히는 어디 가는 그를 역까지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갑자기 그래서 계획이 뭐냐고 그가 물었다. 오늘 계획? 밥 먹고 일 하기? 라고 대답하니까 미래 계획이 뭐냔다. 뜬금없이 들어 온 질문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내 맘 속 깊은 곳에 있던 불편함을 삐죽 끄집어냈다.
안다- 최근 나는 구직활동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는 거. 부푼 꿈에 뭉클했던 초기의 나와 달리, 요즘의 나는 뭔가 놓아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숨어버렸단 표현이 맞겠다. 부족한 영어 실력, 뒤떨어지는 커리어, 바닥난 자존감. 세상 밖으로 나가기보단 그냥 이 상태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치 그걸 꿰뚫어보는 듯 그가 던진 질문은 나를 참 불편하게 했다.
밤에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장조림을 만들다 계란 껍질이 손에 박힌 거였다. 지난 번 한국에서도 이런 적이 있어서, 지민이가 도와줬는데. 아무도 없는 영국에선 이 작은 일조차 당황스러웠다. 유리도 아닌 계란 껍질이 어쩌다 손에 박힌 거냐고. 결국엔 바늘로 잘 뺐다. 그게 손바닥을 찌를 때 마다 건물이 무너져라 비명을 질러댔지만.
라디에이터도 고쳤다. 며칠 전부터 고장난 라디에이터로 시베리아같던 방이 찜질방으로 바뀌었다. 전에는 방갈리안 테크니션이 왔었는데, 여긴 독일 테크니션이 왔다. 키가 크고 관절 마디가 굵은 그 아저씨는 친절하지만 단호하고 조금 무서웠다. 아무튼 집주인 국적따라 오는 기술자도 다른 거 조금 당연한데 웃기네.
다음 주는 바쁠 것 같다.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일정이 가득 차 있네. 주말동안 잘 충전해서, 첫 달 마무리를 잘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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