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5년 1월 마지막 일기 (01/27~01/31)_돈은 없어도 삶은 알차게

킹쓔 2025. 2. 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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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7.월 [워홀+181]_  장보고 김볶밥 만들고

 

 쉬어가는 월요일, 따뜻한 햇살 맞으며 바깥 나들이를 했다. 집 근처 조금만 나가도 번화가를 경험한다. 별별 상점이 가득하네. 이게 바로 센트럴 사는 맛인가. 

영화관, 팬시점, 옷가게까지 가득한 우리 동네

 

 

Vue Cinema London - Islington · 36 Parkfield St, London N1 0PS 영국

★★★★☆ ·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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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녘은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영국에서 김치 구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유독 오늘은 구하기 힘들었다. 얼마 전 갔던 소호에서도 품절이었는데, 여기 오세요에서도 배추김치가 없었다. 설날인 탓인가. 

 결국 세인즈버리에서 일본회사가 만든 김치를 샀다. 아- 나 종가집이나 씨제이아니면 안 먹는데, 어쩔 수 없지.  Yukata라는 일본회사가 만든 코리안 김치는 볶음김치와 신김치의 중간맛이 났다. 김치볶음밥 만들기 딱 좋아!

 밥이 너무 퍼진 관계로 김치볶음밥보단 그냥 고깃집에서 먹는 볶음밥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너무 맛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금방 그릇을 비웠다. 내일까지 먹을 거 남겨둬야 되는데. 


01.28.화 [워홀+182]_잘 먹고 운동하고

 

 오늘은 돼지고기강된장볶음을 만들었다. 남는 쌈장이 있어서 처리할 겸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내가 했지만 정말 잘했지 뭐야. 혼자 먹기 아쉬워서 라이언것도 한 그릇 더 만들었다. 가리는 거 없이 아무거나 다 잘 먹는 그. 난 이런 사람이 참 좋더라. 저녁에 수업 가서 줘야지.

간돼지고기볶음과 리코타치즈샐러드

 저녘은 버섯볶음이랑 리코타치즈 샐러드. 요즘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서 과자를 끊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 단 게 너무 당겨서 소스를 좀 쳐 먹었다. 진짜 금단 증상처럼 단 게 당기지만 그래도 건강을 위해서 참아야지. 

 식사를 마치고는 간만에 주짓수를 하러 갔다. 지난 번 보다 사람이 많았는데, 오히려 파트너는 많이 안 바뀌었다. 처음엔 키 크고 몸통 큰 샘이랑 했는데 진짜 갈비뼈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거짓말 안하고 2m는 넘을거야, 분명히.  그리고 이 후에는 중국계로 보이는 요시랑 운동을 했다. 그녀는 여자가 별로 없으니 자주 놀러 오라고 했다 히히- 그럴게요.

 라이언이 끝나고 한 잔 하러 가자고했는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연달아 3일 근무가 있기도 하고, 술이 별로 안 당겼다. 돈도 없고, 체중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 놓고 배고파서 버스 타기 전에 막스앤스펜서에서 먹을 걸 사서 우걱우걱 먹었다. 아- 밤에 뭐 먹으면 안 되는데.


01.29.수 [워홀+183]_다시마가 없는 너구리처럼

 

 그거 아세요? 영국 너구리엔 다시마가 없다는 사실, 그것도 모르고 한참 헤맸잖아. 다들 이제 어디 서나 쉽게 한국 음식을 구한다지만, 아니에요. 여기 건 한국 거랑 조금씩 맛이 다릅니다. 아마도 할랄 탓이겠지. 그래 기업들이여 돈 되는 무슬림을 노 려라- 자국민은 버리고.

다시마 없는 영국 너구리 라면

 식사 후에는 성임이가 준 책을 봤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모두 내 얘기 같아서 전부 공감하면서 봤다. 특히 아래 글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요즘 내가 느끼는 심정이 잘 표현된 부분이었다. 효율과 논리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생존이 중요한 외국 생활에서, 굳이 없어도 되는 예민한 감성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이 고스란히 느끼는 감정들이었다. 

성이미룽이 준 책과 함께, 미라클 모닝

 내가 영국에 온 이유는 '조금 더 내 자신을 알기 위해' 였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동 떨어져, 조금은 어색한 내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보고 싶었다. 여기서 의존할 사람은 오롯이 나 자신 하나 밖에 없으니까. 스스로 이것 저것 도전하고 해내면서 조금 더 멋진 나를 꿈꿨었다. 그렇게 멋지게 변한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느낀 현실은 조금 달랐다. 여기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나를 더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감정이 풍부한 나- 때때로 그게 피곤할 때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그 모습이- 이제 웬만한 일은 그저 허허 하고 웃어 넘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단단해졌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생동감 없이 감정을 안으로 삼키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씁쓸할 때도 있다. 

스티커인줄 알았는데 손그림이었던 빵가게 일러스트

 말도 제대로 못할 때도 많고. 예쁘게 말하고 따뜻하게 남들을 위로하는 내가 참 좋았는데, 여기선 그게 참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돼서 쩔쩔매는 나를 보면- 멋진 모습보다는 안쓰럽게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잘 베풀고 선물하기 좋아하던 나는 옹졸한 지갑 뒤로 숨어버리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기분도 든다. 

 그래서 오후엔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아무리 사정이 좋지 않아도 싫은 건 단호히 거절하던 내 모습을, 이곳에선 좀처럼 고집하기 힘드니까. 근무 후 갑작스런 사장님의 미팅에 잔뜩 긴장했었는데, 의외로 좋은 기회를 제안하셨다. 하지만 지난 번의 여파로 썩 내키진 않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내 위치, 그게 좀 더 속상하게 했다. 예전처럼 이것 저것 잴 수 없는 내 위치가, 마치 다시마 없는 너구리처럼 느껴졌달까. 액기스 없이 타국을 떠도는, 그런상태로 살아남아야 하는 김너구리.

 

 저녁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막스앤스펜서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는데, 돈이 없어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초반에 정착하던 때 들던 생각이 났다. 곁을 함께한 누군가가 생기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무엇 하나 안 정적이지 못한 나, 문득 다시마가 있는 한국의 김너구리가 그리워졌다. 


01.30.목 [워홀+184]_ 엄마가 돈을 보냈다.

 

 엄마가 돈을 보냈다. 1파운드가 없어 마트를 배회한다던 내 말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며 말했다. 이 돈이 어떤 돈인지 알기에 차마 받을 수 없었기에, 괜스레 너털웃음을 지으며 속 빈 농담을 했다. 지난 번에 비싼 배게를 사서 그런 거라고. 식당에서 일하니까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걱정 말라고.

오랜만에 보는 맑은 런던하늘

 

 그렇다. 얼마 전에 나는 누군가 남긴 음식을 먹었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내 처지가 더 피부로 와 닿아 쓸쓸해졌다.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어디냐. 이젠 체면보다 내 목구멍이 더 중요한 걸. 

 집에 들어 와보니 전기가 끊겨있었다. 다행이 예전에 받은 팁이 있어 전기를 바로 공급할 수 있었다. 왜 하필 지금 전기가 떨어진 걸까. 지난 번 줄어든 월급의 여파가 너무 크네. 팍팍하다 팍팍해. 


01.31.금 [워홀+185]_비가 온 뒤엔 하늘이 더 맑습니다

 

 언젠가 라피가 말했다. 그거 아냐고, 비가 온 뒤에는 하늘이 더 맑다고. 단순하지만 명확한 그 말이 나는 참 좋았다. 런던의 날씨는 비가 잦은 편이지만, 그만큼 더 맑은 하늘을 볼 기회도 많다. 무지개 또한 그렇고. 그건 어쩌면- 내가 런던을 마음에 품게 된 이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잦은 시련과 사건들로 얼룩진 삶이지만, 그래서 더 또렷하고 자주 행복해 질 수 있을거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서. 

비 온 뒤 더 예쁜 런던거리

 

빗물에 비춰 더 예쁜 자전거들

 

가을이 지나간 겨울의 자리

 

저녁엔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일하는 중에 계속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흘러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전에 주변 사람이 감기를 앓아 예상했던 바였지만, 몸이 아플 걱정보다 혹시 일 하는 데 지장이 있을 까봐 더 무서웠다. 이번 달에는 정말 더 많이 일해야 하는데.

 

 그래도 이번 주도 잘 버텼다. 넉넉하진 않지만 알차게 잘 보냈다. 지갑은 여전히 얇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지만, 내면의 나는 피둥피둥 살 쪄가는 중이겠지. 이런 상황일수록, 더  많이성장해서 돌아갈 수 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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