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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5년 1월 네 번째 일기 (01.16~01.18)_ 힘을 내요 미스 김

by 킹쓔 2025.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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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6.목 [워홀+170]_ 간만의 리프레쉬

 

 아침부터 받은 선물 같은 메시지. 늘 유쾌한 그녀의 연락은 언제나 반갑네. 무거운 시간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위트와 소소한 일상도 가볍지 않게 여길 줄 아는 사람. 하루 하루 버텨가는 일상에 속도 없는 말을 하는 이들 속, 진정으로 따뜻한 인사를 건네 받은 느낌이랄까. 덕분에 뭉클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쿨내 터지는 그녀

 

 사실 집에서 느그적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왜냐고? 내 친구 선물 사러 가야 되거든요. 테이트모던이랑 빅토리아알버트뮤지엄 중에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결국 여기로 낙찰. 현대미술의 깔끔함보다는 세련된 고전미가 잘 어울리는 미룽쓰를 위해 VnA를 왔습니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 Cromwell Rd, London SW7 2RL 영국

★★★★★ ·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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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은 전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도시이다. 전통있는 유물들 위주인 대영박물관부터 자연사박물관,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즐비한 테이트모던까지 다양한 전시들을 대부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여러시대의 유적과 예술품들이 갖춰져 있는데, 다른 전시관들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

 영국에 오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고요와 기품이 어우러지는 그 곳에서 나는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서 그 때의 기분을 조금 느꼈다. 오래된 세월을 품고 있는 물건들은 그 자체 만으로 큰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여러 사람들의 삶이 녹아 어떤 에너지를 새겨 놓은 것 처럼.

맘에 들었던 두 작품과 공간: 초기 피아노와 그림을 구경하는 커플들

 

왠지 누군가 떠오르는 초상화와 엘프 그림

 

빅토리아앤 앨버트뮤지엄의 한국관

 빅토리아앤앨버트뮤지엄에는 한국 전시관도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고 작지만. 통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유물들. 한국관이 이렇게 작은 이유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관심을 적게 가져서일까? 아니면 우리나라가 지원을 덜 해서 일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화려한 일본 전시관, 커다란 중국 전시관

 

오늘의 드레스코드, 핑크앤라일락

 전시를 대강 둘러 본 후에는 기념품샵으로 갔다. 뭘 살지 정말 고민 많이 했는데, 결국엔 에코백을 골랐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부피가 작다는 점이 가장 컸다. 선물을 대신 전해줄 분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기 때문일까.

꽤 괜찮았던 카드부터 자꾸 귀여워지는 카드들

 처음엔 맘에 드는 편지지가 없어서 대충 괜찮은 걸 골라 샀다. 그런데 갈 수록 더 괜찮은 상점들이 보이고, 구경하면 할 수록 더 예쁜 카드를 발견하게 됐다. 정말 인생이란- 아이러니의 연속이구만.

 

Medici Gallery · 26 Thurloe St, South Kensington, London SW7 2LT 영국

★★★★★ · 카드 판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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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수같은 내 동생의 선물

 그리고 하나 뿐인 사랑스러(웁지만은 않)은 내 동생의 선물도 샀다. 요즘은 통 연락을 안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유일한 혈육이니까. 휴- 너는 알까? 이 선물의 대가로 며칠 동안 형편없는 날들을 보내야 한다는 걸.

 저녁은 건강한척 하는 프랜차이즈점 레온에서 먹었다.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성임이에게 편지를 썼다. 원래는 런던의 부촌인 사우스켄싱턴에 온 만큼,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겨보고 싶었다. 그치만 선물 사느라 안 그래도 너덜거리던 지갑 더 거덜났거든요. 다음에 또 와서 즐기면 되지. 그 땐 좀 더 여유로워져 있기를.

 

LEON South Kensington · 46 Thurloe St, South Kensington, London SW7 2LT 영국

★★★★☆ · 패스트푸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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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라피덕에 오늘도 또 그 동네로 갔다. 이럴거면 대체 이사를 왜 한 걸까요.. 다행히 집으로 가는 버스가 거기까지 쭉 이어져서 차비가 따로 들지 않았다. 히히 사실 이걸 노렷지.

 

 그치만 30분이면 끝난다던 그의 레포트 작성은 두 시간을 훌쩍 넘어버렸다. 약속 시간 몇 분 전에야 마감해야 할 과제가 있는 걸 알았다며 허둥지둥 거리던 녀석. 옆에서 쓰는 걸 지켜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요즘 대학생들은 과제를 저렇게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어쨋든 성공적으로 제출을 끝낸 그. 시간이 늦었으니 우버를 불러주겠다고 하고 버스가 다니는데 왜 꼭 거기에 돈을 쓰냐며 작은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그는 버스를 같이 타고 집에 데려다 주었다. 연하남이란 귀엽구만.


01.17.금 [워홀+171]_ 흘러가는 운명에 몸을 맡겨보아요

 

 드디어 새 집에서 하는 첫 출근 길. 밤에 지나갈 때도 예쁘다 생각했지만, 낮에 봐도 예쁘네 예뻐. 정말 예쁜 동네야.

낮이나 밤이나 예쁜 우리 동네

 일터에는 나와 동명이인이 있다.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모든 면에서 나와는 좀 다른- 똑똑하고 야무진 그녀는 여기서 더 만나기 힘든, 귀한 동년 배다. 그렇기에 가끔 또래의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속내를 비추며 이야기 하고는 한다.

 

 오늘의 주제는 '운'이었다. 우연히 나온 컨츄리꼬꼬 노래를 듣던 중, 신정환 얘기로 물꼬가 틔였다. 물의를 일으켰지만 제법 잘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나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운에 의존해가며 살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제법 큰 죄를 저질렀지만 별 대가를 치루지 않고 살아가는 반면, 어떤 이들은 조그만 잘못도 크게 빈축을 사 영영 모든 것을 잃고 마는 느낌이라며, 권선징악이란 동화책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운이란 게 무한정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사람은 늘 본인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얻게 되어 있다고, 의도적인 잘못을 했다면 그걸 운으로 덮고 넘어가려 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어쩌면 이번 생에 값을 치르는 게 가장 싸게 먹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더불어 운이란 좋은 일과 나쁜 일 또한 모두 정해진 양이 있기에, 기쁠 땐 기쁨에 계속 취해있지 말고, 슬플 댄 슬픔을 흘려보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행복과 시련의 양은 정해져 있음을 기억하고 일희일비 하지 말라고.

고요한 런던의 밤거리

 작고 작은 그 말들은 요동치는 파도 속에 있던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명석한 두뇌 만큼이나 삶에 대한 태도도 멋진 그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느꼈던 하루였네.

새벽 세시, 런던 베이글 맛집 Beigel Bake

 퇴근 후엔 브릭레인으로 갔다. 원래라면 걸어가려고 했는데, 샤워하니까 너무 피곤해서 그럴 수 없었다. 얼마 안되는 버스 비가 왜 이렇게 아깝든지. 아유- 돈 아껴야 하는데 쓸 일만 산더미처럼 쌓였네.

 

Beigel Bake · 159 Brick Ln, London E1 6SB 영국

★★★★☆ · 베이글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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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8.토 [워홀+172]_ 친구의 친구를 만나러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은 귀한 손님을 만나러 가는 날! 한번도 본 적 없는 성임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말로만 듣던 똑똑하고 쿨하고 멋진 그녀. 한국에서도 못 만났는데 영국에서 만나다니, 정말 신기하고 놀라워 호호.

 같이 여행 중인 남자 친구분도 뵙고, 점심도 먹으러 갔다. 레스터스퀘어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는데, 웨이터가 너무 불친절해서 팁을 하나도 안 줬다. 아니 메인도 인원 수 대로 시키고, 주문도 정중하게 했는데, 왜 이렇게 당당하게 싸가지 없는거죠? 중간에 말 자르고 인사도 안하고 틱틱대던 점원. 그 댓가는 노팁이다.

초면인데 구면처럼 즐거웠던 시간

 진짜 듣던 대로 똑똑하고 당차고 멋지고 온갖 매력은 다 뿜어내는 그녀.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한 없이 맑고 착한 이까지. 이 먼 곳에서 인연이 되어 만난 게 너무 신기했다.

 

 한참 연애에 관심이 많아진 요즘이라 두 분의 인연 형성 과정 같은 아주 사적인 얘기부터 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이야기까지, 아주 흥미롭고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Nonna Selena Pizzeria · 18 Woburn Pl, London WC1H 0LN 영국

★★★★★ · 피자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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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Babka · 44 Great Russell St, London WC1B 3PA 영국

★★★★★ · 커피숍/커피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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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  재차 관람을 간다는 이 귀여운 커플을 뒤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가는 길에 근처 서점인 리뷰앤북스토어도 들렀다. 간만이구만 여기. 처음 런던 왔을 때 심지 선물 사러 왔었는데, 지금 또 오니 감회가 새롭네.

내겐 좀 특별한 런던리뷰북스토어

 

 

London Review Bookshop · 14-16 Bury Pl, London WC1A 2JL 영국

★★★★★ ·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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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엔 벌써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아직도 바람이 찬데, 계절은 벌써 봄의 한 곁에 들어서고 있구나. 한국에서 온 선물을 보니 내 마음도 싱그럽게 피어나고.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라이언한테 놀자고 연락이 왔다. 혹시 세 시간 있다 만나는 건 안되냐니까 두 시간으로 줄여보란다. 그리하여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두 번째 외출을 나갔습니다. 이거 흡사 한국에 있을 때랑 비슷한 패턴 같은데? 하루에 두 탕 뛰기. 여기 서나 거기 서나 쉽지 않네.

 느적대는 나의 게으름을 참고해서 우리 동네까지 온 그. 이 정도면 내가 한 잔 샀어야 했는데 정말 돈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얻어먹었다. 히히. 점심도 얻어먹고 저녁도 얻어먹고, 히히 미안 내가 다음 번엔 꼭 살게. 

 

Old China Hand · 8 Tysoe St, London EC1R 4RQ 영국

★★★★★ · 호프/생맥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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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차이나핸드는 런던에는 흔치 않은 개인펍이었다. 대부분은 주류회사들의 산하에 있거나 프랜차이즈 계약을 통해 맥주회사의 관리 하에 있는데, 여기는 개인이 운영하는 독립적인 가게다. 이런 곳은 처음이라 기대가 컸는데 맥주에서 누린 내가 나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효모발효가 잘 안 된건가.

그래도 피아노, 게임, 다트까지 나름 재밌었던 펍

집으로 돌아와서는 짐 정리를 했다.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뭘 그렇게 사서 쌓아두기만 했는지 참. 잊고 있던 물건들이 많았다. 혜진씨가 준 선물 꾸러미를 정리하다 발견한 성임이의 편지도 그랬고. 아까 받았을 땐 몰랐는데. 책 안에 이게 있었네.

이미룽씨가 전한 책과 편지

 편지에는 30파운드(한화 약 6만원)과 함께 애정 어린 성임이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요즘 나를 보면 대단히 잘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며. 전보다 많이 단단해졌음이 느껴진다고. 용기 낸 행동에 뒤따르는 책임이 있음을 배워가며,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동봉한 돈으로는 런던에서 맛있는 생일 케이크를 먹길 바란다고. 만약 이미 먹었다면, 곧 축하하거나 기념할 일이 생길테니까 그 때 꼭 써 달라고. 한 자 한 자 정말 덜하거나 더할 바 없이 완벽히 녹아있는 그녀의 따뜻한 맘. 

 

 1g도 넘지 않는 이 편지가 얼마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거다. 요 최근- 줄어든 벌이나 성과 없는 구직 활동 시기를 보내며, 내 자존감은 그에 반 비례해 내려가고 있었다. 몇 달 전 더 높은 위를 외치며 불평하던 날들이 지금 보면 꽤 괜찮았던 시기였던 것처럼, 어쩌면 인생에서 큰 불행이 없는 시기가 행복한 시기가 아닐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할 줄 모르는내게 성임이가 준 책과 편지는 많은 생각을 변화 시켰다.

 

 책의 메시지처럼, 어쩌면 버겁다고 느끼는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살면서 꼭 필요한- 그러나 쉽게 얻기 힘든- 소중한 것들이 곁을 지키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니. 

 

 그리하여 미스 김은 힘을 내고 있습니다. 멀리 서도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이들의 따뜻함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을 통해 정서적 허기를 온전히 충족하면서. 언젠가 이 마음에 보답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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