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25년 1월 두 번째 일기 (01.05~01.10)_ 생일 그리고 이사

by 킹쓔 2025. 1. 16.
반응형
01.05.일 [워홀+159]_오랜만에 라이언과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치고 고향에서 돌아온 라이언. 바쁘지 않으면 얼굴 좀 보자는 말에 또 한 걸음에 달려나온 나. 사실 한 걸음은 아니고 느적데다 늦게 나와서 늦었지만 깔깔.

근사한 커피 로스터리 전문 카페

 

 

Origin Coffee at The British Library · The British Library, 96 Euston Rd., London NW1 2DB 영국

★★★★☆ · 커피숍/커피 전문점

www.google.com

 일단 카페에서 만나서 음료 하나 충전해주고요. 커피 전문점에서 마차라떼 먹는 나. 어떤 데? 엄청 안 달고 건강한 맛이었던 이 집 마차라떼. 어찌나 카페인이 짱짱한지 전 날 거의 밤샜는데도 잠이 안 왔다.

희미해진 타투이스트님의 걸작품

 한동안 못 봤던 라이언과 근황 토크. 한 순간에 친구에서 적이 되어 도어스토퍼 설치한 이웃 얘기부터, 8살 귀여운 타투이스트의 작품까지. 소소하고 작은 일상을 나눴다.

비 오는 날 런던, 펍

 차 한잔 마시고 나선 바에 가서 사이다를 시켰는데, 몸이 안 좋았는지 술이 잘 안 받았다. 평소에 잘 먹던 파인트 사이즈가 왜 이렇게 부담스럽던지. 거의 죽 한 사발을 마시는 줄 알았잖소.

 

The George & Vulture · 63 Pitfield St, London N1 6BU 영국

★★★★☆ · 호프/생맥주집

www.google.com

 

모노폴리를 알려주는 라이언

 그리고 라이언이랑 보드게임을 했습니다. 바에 <MORE OR LESS> 게임이 있어서 해봤는데 5번 다 져서 딱밤 맞았네. 진짜 세게 안 때린 거 아는데 좀 아팠어요, 이것이 블랙벨트의 힘인가요? 그 다음엔 가져온 모노폴리를 했습니다. 부르마블의 나라에서 온 나. 제법 잘 풀어가나 싶었더니 한 판도 못 이겼구요.

제법 기네스를 즐기는 나

 그 다음 간 바에서는 기네스에 블랙커런트를 추가 해 먹었습니다. 스티브가 알려준 방법인데 살짝 달달하니 넘 괜찮았다. 집안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라이언, 어느 집이나 다 고충은 있구나. 문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있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한 우리. 일가족의 구성원으로써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The Griffin · 93 Leonard St, London EC2A 4RD 영국

★★★★☆ · 호프/생맥주집

www.google.com

 

희귀 레어템 잭다니엘 허니

 가는 길엔 라피가 부탁한 잭다니엘을 샀다. 미디움 사이즈 허니 사려는데 진짜 구하기 힘들었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위스키를 먹어봤다 흐흐. 맛있었냐고? ....흠... 그냥 알찔이에겐 사이다가 최고인듯요.  


01.06.월 [워홀+160]_ 마지막 요리

 

 이사 날 앞뒤로 풀근무가 껴있는 관계로, 저번주부터 짐 싸는 걸 서둘렀다. 그리고-이제는 여기서 하는, 아마도 마지막 일지도 모를-요리를 했다.

반쯤 싸둔 짐과 예쁜 저녘 하늘

 사실 내가 한 건 아니고 라피가 했지, 껄껄. 다진고기로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물어보길래 라자냐는 어떻냐고 제안했지롱. 그거 만든다고 마트가서 실컷 재료 샀는데, 토마토 소스만 깜빡한 거 실화냐구요. 

제법 야무진 그의 요리

 그리하여 약간의 토마토 케첩을 첨가한 라자냐가 완성되었습니다. 지방을 선호하지 않는 그의 취향 덕에 아주 건강한 버전의 라자냐를 먹게되었네. 하하.

 타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건 꽤나 상징적인 행위다. '식(食)'은 생존과 직결된 부분으로써, 먼 옛날 원시시대부터 우리는 살기 위해 먹었고, 때로는 먹기 위해 살았다. 그만큼 그 원초적인 욕구를 함께 충족시키고 공유함으로써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음식을 직접 만들어 대접하는 건, 관계에 있어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상대의 취향- 더 나아가서는 그에 연결된 가치관 등을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그래서 라자냐는 맛있었냐고? 네-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토마토맛은 거의 나지않고 육즙은 사라진 아주 건강한 미트파이를 먹는 느낌이었지만, 그 공백은 누군가의 정성으로 다 채워졌으니까. 


01.07.화 [워홀+161]_ 넘어가는 하루

 

 어제는 누군가 아프다는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가볍게 남일처럼 넘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더 무거웠다. 한 몸처럼 여기는 벗(友)의 일은 나의 일이기도 했으니까. 

 

 오늘은 점심근무만 서고 왔다. 와서 짐도 더 싸고 이것 저것 하려고 했는데 또 하루가 훌쩍 갔다. 그래도 전에 어느 정도 싸놨으니 또 잘 해결되겠지.

 


01.08.수 [워홀+162]_ 축복받는 나의 생일

 

 점심 근무를 마치고 도서관에 있는데, 수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심지랑 셋이서 그룹콜을 열어서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줬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무신경한 수영이가 케이크를 준비하고 12시에 딱 맞춰 전화했다는 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거니까.  

그리고 멀리서 손편지를 보낸 미진쓰

 저녘 근무땐 여러 일이 있었다. 유독 짜증을 많이 내던 사장님에게 조금 지쳤고, 그걸 받아내야 하는 내 자신의 위치에 조금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같이 근무하던 동료와 나누던 얘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친구와 놀고 온 해맑은 녀석이 철없어 보였다. 그에게-어쩌면 나를 향한 말일 지도 모르는-날선 말들을 내뱉으며, 내 안의 불안함이 사라지길 바랬다. 말다툼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감정이 격양된 라피가 방을 나서려고 했다. 내가 따라 나서려고 하자 방에 있으라고 명령했다. 

 

 짐도 싸야하고 12시가 지나 내 생일인데 꼭 하필, 꼭 오늘, 이래야만 하는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서 실망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지만서도 제법 서운하게 느껴졌다. 그 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케이크를 든 라피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정말 생각도 못했던 서프라이즈라 어안이 벙벙했다. 부끄럽다며 노래 부르기는 한사코 거절한 라피와 라쉬.

라피가 준비한 생일케이크와 선물

 내게 생일이란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지는 달이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행복한 시간, 그 날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특히 작년엔 더 많은 이들에게 축하를 받았기에, 한 편으로는 올해 생일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매 년 함께 보내던 이들 없이, 아무도 없는 이 땅에서 홀로 보내야 할 이 날이- 여태껏 보냈던 날들과는 다른 그 간극에 조금은 서글플까봐. 

 

 그렇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섭섭지 않은 축하를 받았다. 한국에서 보낸 따뜻한 마음들과 영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나의 생일은 (한국과 영국시간 차 덕에) 이틀 내내 떠들법석했다.  

 

 케이크는 맛있었다. 미트라부부와 케이크를 나눠먹으려고 했는데, 그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모로코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버린 그들. 아까 왜 방으로 초대했나 싶었더니, 일찍이 인사를 하길 잘했다 싶었다.

생일이라 저녁을 또 먹었습니다

 파티가 끝나고 거의 두시가 되서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열두시가 다 되서 집에 돌아왔는데, 마음이 초조했다. 대충 다 싸놨다 생각했는데도 끝없는 짐을 보며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붕뜬 나를 진정시키며 라피가 짐 싸는 걸 도와줬다. 그리고 한 시간 만에 짐 정리가 끝난 듯 했다.


01.09.목 [워홀+163]_ 생일날 하는 이사

 

 그렇게 두 시간 자고 이사를 시작했다. 좋았던 날도 슬펐던 날도 많았던 6개월, 다행히도 계약 기간을 무사히 채우고 가는구나. 

정들었던 나의 첫 런던 집이여

 

마지막으로 창문에서 하는 인사, 안녕

 원래는 버스로 옮기려고 했는데, 쇼분이 우버를 부르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휴 다들 우버 알아보라고 했는데 귀찮아서 미루다 결국 첫 할인도 못 받고 탔습니다. 

우버 엑스트라를 불렀는데도 넘치던 내 짐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쳤다. 입구를 못찾아서 기사님이 한참 헤매셔서 팁도 더 드렸다. 휴- 정말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하거늘. 

 대충 짐 정리를 하고 점심은 타코를 먹으러 갔다. 음식은 괜찮았다. 삼겹살 어쩌구 저쩌구 메뉴를 먹었는데 진짜 고기가 입에서 녹았다. 매일 서빙만 하다가 남에게 대접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Wahaca Shoreditch · 140 Tabernacle St, London EC2A 4SD 영국

★★★★☆ · 멕시코 음식점

www.google.com

 

나름 최첨단디피와 수납공간이 넉넉한 새 집

 돌아와서는 못 푼 짐을 마저 정리했다. 요 며칠간 정신이 없어서인지 나는 나사가 약간 빠진사람처럼, 뭘 해야할지 몰라서 헤맸다. 사실 요 며칠간 너무 지쳐서 혼자서 여유롭게 하고싶었는데, 라피가 얼른 하라고 채근해서 대강 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저녘으로 먹은 맥도날드랩엔 야채가 없었다.

 이사한 집과 이전 집이 멀지 않아서, 저녁엔 이전 집으로 가서 마무리를 했다. 청소를 하는동안 쇼룹과 마주쳤지만 그는 어떤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식탁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사갈에게 안부인사를 물었지만 바쁘다며 코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때 가깝게 지내던 이들인데 변해버린 온도 차에 조금은 속이 상했다. 

이 전 집에 주방과 냉장고 모두 비우기

 어쨋든 나름 큰 이벤트였던 이사를 무사히 마쳤다. 내일 근무 후에 주말에 여유롭게 사근사근 잘 정리를 마쳐야지.


01.10.금 [워홀+164]_ 애증의 존 루이스

 

 영국의 겨울은 해가 굉장히 짧다. 3-4시쯤이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일조량이 적은 탓에 '계절성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도 이 계절의 좋은 점은 해와 달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거다. 해가 짧아진 만큼 달이 떠있는 시간도 길어져서,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는 두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꽤나 오랜시간동안.

푸른 저녁, 푸른 달

  이사 후 새 집에서는 생각보다 필요한 게 많았다. 그 중에서도 침구만큼은 욕심내서 좋은 걸 사고 싶었다. 그래서 브레이크 타임 때는 존 루이스에 다녀왔다. 

 

욘 루이스 & 파트너스 · 300 Oxford St, London W1C 1DX 영국

★★★★☆ · 백화점

www.google.com

 존 루이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신세계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 정도 되는 나름 고급 소매점이다. 이집트산 수건도 팔고 확실히 세인즈버리나 테스코에서 파는 물건들과는 질이 다르다. 가구나 옷을 사진 못하지만 적어도 수건처럼 작은 건 존 루이스에서 파는 걸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내가 사고 싶던 침대보는 한화로 20만원이 넘어갔다. 고작 바닥에 까는 얇은 침대보 한 장인데도. 그래서 그냥 적당히 타협해서 세일 중인 배게와 침대보를 샀다. 합쳐서 7만원이 안됬는데도, 한도가 초과되서 이불은 사지도 못했다. 이미 눈이 높아질 때로 높아진 서른 다섯살의 나에게 바닥에 깔 이불 한 장 조차 허락치 않는 주머니 사정은 조금 씁쓸했다. 

오후 네시쯤 하늘에 걸린 달

 

그리고 석양

 퇴근 후에는 라피를 만났다. 갑자기 단체손님이 들이닥쳐 퇴근 시간이 늦어졌다. 근무시간에는 폰을 볼 수 없는 탓에 연락을 하지 못해 불안했다. 결국 약속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이 됬고, 엇갈리고 헷갈렸지만 우리는 결국 만났다. 

 저녁을 먹지 못한 그를 위해 맥도날드로 갔다. 늦게까지 문을 여는 곳이 여기 밖에 없는 탓에 들어왔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라니 중학생이 된 것 같았다. 이사 후로 자주 볼 수 없는 아쉬움과 아직은 미숙한 관계에 불안해하는 그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오늘 가게에서 생일파티가 있었다. 12명의 축하를 받으며 화려한 케이크와 행복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그립다. 이제 한국이 더 생각나지 않을만큼 이 곳에 잘 정착해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립다. 내가 뭘 하든 지지해주고, 아껴주고 이해해주는 나의 사랑스러운 이들. 특별한 날이라 더 그들의 존재가 간절해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