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5년 2월 마지막 일기 (02.26~02.28)_ 갑작스런 한국 행

킹쓔 2025. 3. 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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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6.수 [워홀+211]_ 불현듯 닥친 그 날

 

 어제 저녘엔 너무 졸려서 머리도 못푸르고 잤다. 요즘 지속된 업무로 꽤나 피로가 쌓인 모양이었다.
 
 아침엔 수영이에게 연락이 왔다. 부쩍 나빠진 상황를 전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보고 싶다면서. 한번도 그런 적 없던 애가 그러니까 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마음이 안 좋아서 조안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괜찮을 수도 있을거라고 했다. 괜히 수영이의 오바쌈바에 장단 맞춘 것 같아 머쓱했다. 별 일 아닌데 우리 둘이 괜히 마음 약해진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감 때 시간을 잠깐 확인하는데, 그 문자를 봤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는데 손이 막 떨리고 얼굴이 욹그락 붉그락 했다. 사장님이 오시자마자 지금 한국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휴가를 길게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데 계속 목소리가 떨렸다. 가게 밖을 나서자마자 엉엉 눈물이 터졌다. 
 
 집으로 가는 길이 참 길었다. 평소 같았으면 가뿐하게 느껴졌을 길이 참 길게만 느껴졌다. 항공권을 결제하는데 카드가 되지않아 애를 먹었다. 당장 공항에 가야하는데 -그런 급한 상황에서 자꾸 더 헤맸다. 어찌저찌 티켓을 사서 공항에 가려 는데 버스를 잘못 타서 더 마음이 초조했다. 그 와중에 라피가 가기 전에 보고 가면 안되냐고, 왠지 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끊고 공항에 갔다. 출국 수속부터 게이트까지 다 온 뒤에야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꼭 돌아와야 된다고, 그렇게 믿겠다는데 좀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02.27.목 [워홀+212]_ 한국 도착!

 

 사실 공항에서 출발 할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도 익숙했던 한국인들이 내가 아는 말로 떠들어 대는 그 환경이 꽤 낯설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국인데도 막상 도착하니 시시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입국장에서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울었다. 내가 탄  비행기가 국적기인 아시아나라 편하게 왔다고 했는데도 고생이 많다며 울었다. 야윈 엄마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피카츄밭으로 변한 내 차

 

한국와서 먹은 첫 끼

 수영이도 나를 보자마자 울었다. 내가 없을 동안 다들 많이 힘들었나보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니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다. 다들 너무 슬프니까. 


02.28.금 [워홀+213]_ 없다 없어 다 없어

 

 어제는 집에서 잤다. 아빠도 없고 라면도 없고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아침에 그나마 발견한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데 기분이 이상했다. 집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갈 땐 묘한 불편함마저 느껴졌다. 이렇게 텅 빈 집에서 아빠는 혼자 참 외롭겠구나. 

냉동실에 식량 쟁여둔 과거의 나야 고마워

  

 교통카드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방에 있던 네 개의 교통카드 중에 작동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정신없이 오는 바람에 한국 신용카드도 안 챙겨왔는데. 삼성페이도 안되서 너무 불편했다. 

 뭐가 그리 급하셔서 그렇게 빨리 가셨을까. 탄생과 죽음을 함께하는 시간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영국을 떠나서부터 내내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상황이 그래서 그런가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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