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워홀

26년 4월 세 번 째 일기 (04.13~04.21)_ 닿을 듯 닿지 않는 하늘

킹쓔 2026. 4. 2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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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3.월 [워홀+623]_ 오늘도 하늘은 맑음

 

짙고 샛파란 영국 하늘

 계속 미루던 CV를 오전에 마치고 출근을 했다. 다행히 평일이라 일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영국의 하늘은 한국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섬나라 기후의 영향으로 구름이 더 아래에 형성되고, 평지가 많아서 그렇게 느껴진다고 한다. 닿을 듯 닿지 않는 하늘 같은 영국.


04.14.화 [워홀+624]_ 연하게 물든 하늘

 

내가 좋아하는 찬란한 하늘 빛

 출근하는데 하늘 색깔이 너무 예뻤다. 적당히 뽀얀 구름과 연한 푸른빛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휴가 일정 논의도 잘 끝나서 한 결 마음이 놓였다. 랜드로드에게 답장도 받았다. 집세 인상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큰 금액이 아니라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어찌 됫 든 잘 마무리를 해 가고 있구나. 


04.15.수 [워홀+625]_ 틈새 하늘

 

 CV를 넣다 잠깐 쉬고 있는데, 커텐 사이로 비추는 하늘이 너무 예뻤다. 가만히 누워서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들과 흩어지는 구름들을 보고 나니 마음이 아련해졌다. 이제 곧 이런 풍경들도 보기 힘들어지겠지. 

늘 아름다운 우리집 창문 풍경

 오후에는 아이엘츠를 다시 봐야 하나 고민이 됐다. 남들은 휴가 때 여행을 가는데 굳이 이 돈을 내고 아직 오퍼 온 곳이 아무데도 없는데 비자 신청 준비를 걱정하는 게 우습게 느껴졌지만. 뭐 하는 데 까지 해봐야지. 


04.16.목 [워홀+626]_ 질러! 아이엘츠!

 

 지난 밤도 중간에 잠이 깼다. 뒤척이다 곧 다시 잘 수 없음을 깨닫고, 영국에 더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검색을 해봤다. 여기서 석사를 하는 방법부터, 독일 석사까지. 그러다 배우자 비자도 보고.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이 남편감이라도 뽑아야 하나 걱정도 되고. 왜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은 걸까?
 
 뭐라도 당장 하고 싶은 마음에 결국 아이엘츠(영국공인영어시험)를 등록했다. 취업 비자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건 크게 스폰서(회사)와 영어 성적 증명서다. 회사를 찾는 과정에 지치다 보니,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오퍼 하나 없는 상황에서 영어 시험이 무슨 소용이냐 싶으면서도. 아예 잡히지 않는 취업보다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결과가 나오는 공부라도 하고 싶었다. 추후 귀국 후에 다시 영국회사들에 지원을 하더라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시험은 일주일 뒤에 보기로 했다. 10년 전에 아카데믹에서 오버롤 6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조금 하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얘기했고, 챗지피티로 풀어본 모의고사 결과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무엇보다 출국과 휴가를 앞두고, 이 일에만 오래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비를 다 털어 거금 257파운드(한화 약 60만원 정도)를 결제했다. 사실 환율 계산을 잘못했다. 영국에만 있다 보니 파운드 환율에 익숙해져서, 26만원 정도로 착각해버린 것이다. 한국이랑 얼마 차이도 안 날 뿐더러, 스피킹감 살아있을 때 빨리 봐버려야겠다고 신나서 결제 했는데...


04.17.금 [워홀+627]_ 후회...하고 있어요

 

 시험 등록 다음 날, 아이엘츠 주관사에서 모의 테스트 무료 제공을 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왜 이 시험을 쉽게 봤을까? 모의고사 점수가 엉망이었다. 4까지 나온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자신 있었던 리딩은 제일 보기 싫은 영역이 됐다. 글자가 눈에 안 들어왔고, 두 시간이 넘게 집중해야 하는 게 고문처럼 느껴졌다.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시험

 리스닝도 마찬가지였다. 들리긴 또렷하게 잘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헷갈렸다. 특히 시험 특성 상 스펠링 하나만 틀려도 오답 처리가 됐는데, 여전히 숫자나 철자가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다. 그건 라이팅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의사소통에 큰 지장이 없었기에 제일 자신 있었던 스피킹 영역에서는 문법에 맞는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처음 영국생활을 시작했던 킹스크로스, 올 때 마다 여러 감정이 느껴진다

 내 영어 실력에 실망스러웠다. 뭘 믿고 그렇게 자신 만만했던 걸까. 무식한 게 용감한 걸까. 대체 2년 동안 뭘 한 거냐 정말. 워홀 생활에 회의감이 들었다. 마땅한 커리어 개발을 한 것 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어도 안 되고, 그런 주제에 꿈은 높고.  


04.18.토 [워홀+628]_ Sweet things!

 

 오늘 근무는 정말 고됐다. 요즘 회사 내부에서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푸쉬가 많은 것 같다. 세레나가 5분에 한 번 씩 와서 잔소리를 했다. 뭐 이것 저것 자주 지적을 하는 편이긴 했지만, 원래 이렇게까지 달달 볶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늘 웃으며 말하던 밀카도 영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평소라면 웃으며 넘어갈 작은 실수에도 날카롭게 굴었다. 다행히 커릴과 니샤의 도움으로 빨리 조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 지쳐있었는데, 주변을 살피면서  자키가 다가 왔다. 둘째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쉬 소리를 내더니, 양손 한가득 캔디를 주고 황급히 사라졌다. 껄껄. 귀여운 자키. 받자마자 기분이 좋아져서 밑에 층에 조쉬한테 나눠주러 다녀왔다. 조쉬도 받고 좋아해서 기분이 더 좋아졌다. 

기분을 업시켜줄 달다구리들

 그리고 백 만년 만에 장을 보러 갔다. 요즘은 영 의욕이 없어 끼니 챙기는 것 마저 귀찮았다. 거의 편의점 마감 할인 제품을 사먹으며 끼니를 떼웠더니 잔고가 걱정됐다. 건강도 챙길 겸 퇴근 길에 장을 보러 갔다. 가는 길에 기분전활 호텔 초콜렛에 들러 쉐이크를 샀다. 비싼 거라 그런가 정말 크림이 미쳤다. 크림은 묵직하고 담백하고 적당히 단데, 음료인 화이트 바닐라는 너무 달았다. 그래도 비싼 거라 다 먹었다. 다음엔 다크쵸코로 꼭 먹어봐야지.

아빠 생각나서 산 매운새우깡

 집으로 오는 길은 버스를 탔다. 15분 정도 되는 딱 한 정거장 반 정도의 거리인데. 늘 걷던 그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그냥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구름이 비춘 하늘이 너무 예뻤다. 버스 값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예쁜 하늘 본 값으로 치지 뭐. 


04.19.일 [워홀+629]_잘 볼 수 있을까?

 

 9시에 시험 준비를 했는데 하루가 금방 갔다. 모의고사 몇 개보니 벌써 밤 9시가 됐다. 그래도 아직 라이팅 템플릿을 다 못 외웠다. 이번 시험 잘 볼 수 있을까...?

열공의 흔적


04.20.토 [워홀+630]_ 결국 또 응급실

 

 이 전부터 느껴지던 손 통증이 또 심해졌다. 확실히 일을 한 날은 더 그렇다. 전 날은 자기 전에 엄지가 뻗뻗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밤이 되니 또 엄지와 검지 사이가 부어오르면서 통증이 왔다. 손가락을 구부리는 게 힘들어질 정도라 서둘러 퇴근 하고 A&E(Accident & Emergency, 영국 응급실)로 갔다. 

 

 한국에 있을 땐 살면서 딱 한 번 갔던 응급실. 영국에 오닌 이게 몇 번 째 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밤에 온 건 처음이었는데, 난동 부리는 취객과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대기실에 정말 진이 빠졌다. 그 와중에도 시험 걱정이 돼서 라이팅 템플릿을 외우고 있던 나, 존경한다 정말.

 

 사실 초반에는 등록 대기가 많지 않아 진료를 금방 볼 줄 알았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4시간이 넘도록 호명이 되지 않아, 혹시 환자 명단에서 이름이 누락된 건지 확인했다.  더 웃긴 건 직원의 대답이었는데, 네 시간이 아니라 정확히는 세 시간 반 밖에 안됐으니 걱정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고약한 냄새나고 지저분했던 영국 응급실

 결국 네 시간이 넘어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붕대를 감아주며 파라세타몰을 정기적으로 먹으라고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종종 생각하곤 한다. 혹시 영국 의료계는 파라세타몰 회사들의 엄청난 로비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감기든 부상이든 소화불량이든 늘 진단 끝에 그놈의 파라세타몰(진통제의 일종) 타령을 듣는다. 심지어 붕대는 아마존에서 사는 게 좋을 거란다. 확실히 질이 떨어지긴 했다. 

처음 느끼는 새벽의 한적한 킹스크로스


04.21.화 [워홀+631]_ 환자의 요양 휴가날

 

 따뜻한 바닷가에서 모히또 쪽쪽 빨면서 보내는 여유로운 휴가를 꿈 꿨 건만. 남은 건 시험 준비와 아픈 손이구나.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길 작정이라 얼른 나가서 미터기용 코인부터 만들어왔다. 나간 김에 김치도 사고.  

 이 손으로 시험은 못 볼 것 같아서 시험 연기를 신청했다. 다행히 정상 참작이 되어 잘 처리가 되었다. 하. 진즉 이럴걸.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쫄렸나. 시험은 무조건 여유 있게 신청하자.  연기할 수 있었다. 어제는 응급실 때문에 잠을 설 쳤는데, 아침에는 이 문제 때문에 전화하고 메일 보내느라 잠을 설쳤다. 변경 확인 메일을 하자마자 긴장이 확 풀어져 낮잠을 잤다. 

 일어나서는 또 공부를 했다. 날이 너무 좋은데 휴가날 너무 공부만 하는 것 같아 근처 맥도날드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갔다. 전에 먹고 싶었던 한정판 미니에그 맥플러리를 먹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또 먹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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