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5.월_ 이것 저것 알아보고
심지 생일을 다시 해주려고 이것 저것 알아봤는데, 그냥 그때 그걸로 끝내기러했다. 워커힐 호텔 예약이 생각보다 어려웠고 다시 준비하기엔 어려움이 은근 많았다.
대출은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가능한데가 많았다. 뭐야 어렵지 않잖아 하고 넘겨버렸다. (왜 그랬을까 싶다.) 이것 저것 알아보느라 바쁘게 시작한 월요일이었다.
ㅅ이 타로를 봐줬다. 곧 승급식이래서 얼른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내 손은 나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역시나 카드는 "temperance(금주, 절제, 자제)". 네네 쉴게요, 아주 푹 쉬겠습니다.
02.06.화_ 싱숭생숭
수영이가 떡을 보냈다. 테디뵈르 생크림 카스텔라 소금빵 이후로 부터 요즘 카스테라에 빠져있는 나... 정말 너무 맛있었다. 많이 달긴 하지만 진짜 계속 땡기는 맛이다. 대신 물 엄청 먹힌다. 사람들이 자꾸 손흥민떡이냐고 묻는데 순흥 인절미라구요 여러분. 가독성이란 중요하구나. 폰트와 띄어쓰기의 무게를 피부로 느꼈다.
드디어 3월 비자센터 예약했다! 이제 3월 14일까지 신체검사하고 잔고증명서만 만들면 된다. 뭐 상황은 나쁘지 않다. 이것 저것 유튜브랑 인터넷을 뒤지던 중에 39살에 유학 간 유튜버를 발견했다. 남 얘기같지 않아서 괜히 울컥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래도 다들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 가자 수진아. 두렵고 불안하고 현실이 발목 잡고 안 놔줄 것 같지만, 그래도 하고 싶단 네 마음은 막을 수 없는 것 같아보이니까.
02.07.수_뭘해도 나쁜 년인걸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엄마한테 설명했는데,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듯 하다. 모르겠다 이래나 저래나 못된 년이면 그냥 하고싶은대로 하고 나쁜년 하련다.
02.08.목_ 통 큰 친구들
수영이가 월차라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분명 난 쌀국수 하나면 된다고 했는데, 사이즈 업해서 짜조 추가하고 오토김밥도 사오고 닭강정도 사온 큰 손 그녀. 심지어 그래놓고 쌀국수는 국물만 먹고 싶고 면은 안 먹고 싶데서 당황... 이걸 죽여 살려... 밥 먹고 아이스크림 사러 갔는데 8천원어치 샀다. 누가? 나, 그녀의 친구가... 역시 친구는 끼리끼리인가....
저녘에 심지네 가는 길! 노래 틀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거 나와서 설레고 좋고 흐흐흐! 매일 최신 트렌드 따라간다는 애들이 왜 투어스는 모르는데... 신유 귀엽다구....
크리스마스 이후로 빠진 미나리. 거의 꽃다발처럼 들고 가서 고이고이 구워먹었다. 삼겹살 목살 조금이랑 닭도리탕까지, 나름 육해공이네. 오랜만에 심지네서 먹는 식사 좋다. 심지네집인데 다들 나가시고 우리 셋만 먹었다.
심지가 만든 닭도리탕 맛있었다. 몇년 만에 먹는 거야. 당면이 없어서 아쉽긴 했다. 그래도 닭가슴살 먹어주는 사람 있어서 좋았다. 인스타에서 본 감자전 했는데 별로 인기가 없었다. 참나 이것들이 내가 아픈 손으로 해줬것만... 수영이는 기름 얼벅쳤다고 싫다고 하고 심지는 먹어주는 척 했다. 식사하면서 황야를 같이봤는데 나쁘진 않았다. 마동석 나오는 거라 좋았는데, 너무 징그러운 거 많이나와서 수영이 아니면 안봤을 것 같다.
02.09.금_생도랑 불암산
요즘 왜 이렇게 늘어져 있는게 좋지. 거의 매일 먹고 누워있고 가축같은 하루의 반복이랄까. 에너지가 없는건지 의욕이 없는건지 알 수 없지만 뭐 그렇다. 너무 안 움직이는 것 같아서 생도 꼬셔서 불암산에 일몰등산을 갔다. 거의 3,4년 전에 아차산이후로 처음인 우리의 등산. 정말 모험이였다.
가는 길 까지는 되게 좋았다. 날씨도 맑고 풍경도 예뻤다. 물론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틈은 없었다. 휴, 얘랑 가면 여유로운 등산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큰 착각이었다. 등산동 사람들이랑 가면 평속 2정도 나오는데, 생도 이자식은 허리업업하며 뛰어다니더니 평속 4까지 나왔다. 힘든 이유가 있었네. 이건 타고난 피지컬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냥 20대의 쌩쌩함일까?
불암산 백세문 코스의 특징은 은근 길다는 거다. 정말 다 온듯 다 온듯 다 안왔다. 이러다 일찍 도착하는 거 아냐? 했지만 크나큰 착각이었다. 아직 정상 계단에 도착도 안했는데 여명이 깔려버리더라.
뭐 그래도 시간 맞춰서 일몰을 보긴 봤다. 딱 정상은 아니더라도 나름 정상 부근에서 본 거니... 일몰 등산 성공이라고 치자. 위에서 현주랑 사람들을 만나서 사진도 찍고 재밌었다. 생도가 자꾸 교포인척 허세영어를 써서 좀 부끄럽긴 했지만 뭐 오랜만에 못 보던 사람들도 보고 즐거웠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사람들을 놓쳤다. 규정을 어기지 않았단 생각에 마음이 편하면서도 잘 내려갈수 있을까 싶어 살짝 불안했다. 상계역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항상 헤매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야등은 시야가 좁아져서 더 힘들다. 서둘러 내려왔는데 대책없는 생도는 밥 먹고 가자고 난리였다. 뭐, 그 덕에 불암정도 가보게 됬지만.
생도는 정말 내 동생이었다. 불빛이 있다고 무조건 그 방향으로 가는 그 단순함. 그 것의 최후를 여러 번 경험했던 나는 벼랑엔딩을 피하기 위해 신중해졌다. 멧돼지만 안 만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자고 가자는 몽지를 살살 달래서 침착하고 안전하게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둘이 있으면 길 잃어도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책임져야 될 사람이 늘어난 기분이랄까?
다행히 지나가던 아저씨께 도움을 요청, 간신히 잘 내려왔다. 알고보니 그 분은 산악회 회장님이었다. 20년째 불암산을 타셔서 눈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하셨다. 낯 선 사람을 아무나 따라가면 안된다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 분과 함께 내려가다보니 상계역 공원 뒷쪽길로 하산했다. 처음 내려오는 길이라 신기하고 놀랍고 그랬다.
회장님은 캠프라인을 엄청 추천하셨는데, 내 등산화가 잠발란이라고 하니 놀란 듯 갑자기 말씀을 아끼셨다. 아마 속도도 느리고 길도 잃고 하니 거의 등산 초짜인 줄 아셨나보다. 뭐, 사실 몇 번 다녔지만 늘 길눈이 많이 어둡기도 하고... 정말 감사한 그 은인님은 우리에게 사탕까지 주시고 유유히 떠나셨다.
엄청 헤맨 것 처럼 느껴졌는데, 트랭글을 보니 한 3-40분 정도 밖에 더 안걸렸다. 연휴기간이라 버스도착정보가 안 떠서 택시타고 왔다. 어쨋든 뭐 잘 내려왔다. 불암산은 이제 진짜 산을 잘 아는 사람들이랑 같이 가야겠다.
02.10.토_평화로운 휴일
드디어 심지가 준 LA갈비를 구워먹었다. 어제 진짜 졸린데도 핏물빼고 재워둔 거 정말 잘했네. 고기는 맛잇었다. 은진이가 산에 같이 가줬으니까 장 보러 가는 것도 함께해야 한데서 이마트를 따라갔다왔다. 차 없어지고 정말 오랜만에 가는 건데 지갑도 없고 갑자기 간 거라 제대로 뭘 사진 못했다.
수영이가 놀자고 해서 갈비를 구워먹고 나왔다. 차려준 거 별로 없는데 잘 먹어서 뿌듯했다. 내일 영종도 안 내키면 안 가도 된데서 그럼 안간다고 했더니 돈 때문에 안가는 줄 알고 필참시킨 그녀. 오랜만에 나온 노원은 썰렁했다. 설날이라 그런가 우동집도 오뎅집도 다 문을 닫아서 아쉬웠다. 배 부른 상태여도 못 먹게 되니 아쉽더라.
간만에 극장이라 팝콘도 사봤다. 관도 작으면서 cgv 관람료가 롯데보다 2천원 정도 더 비싸서 노원으로 왔다. 아가일이랑 웡카랑 고민했는데, 아가일은 상영회차가 한 번 뿐이라 그냥 웡카로 봤다. 예쁘고 환상적인 영화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찰리 초콜렛의 윌리웡카가 더 매력있었다.
02.11.일_서해 나들이(영종도- 오이도)
심지가 또 늦었다. 밥 해오느라 늦었다는데 그렇게 맛있진 않았다. 물이 너무 많아서 국물에 담궜다 급하게 뺀 밥 같고 너무 달았다. 핫앤쿡 등산동에서 핫하던데 다음에 제대로 먹어봐야겠다. 김오빠가 준 것도 아껴놓다가 유통기한 지나서 못 먹었는데, 언제쯤 제대로 먹어볼 수 있으려나.
새로 생긴 인천 영종도 핫플 인스파이어 리조트는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심지는 너무 좋아했는데 나머지는 다 시큰둥했다. 싱가폴 마리나베이와 두바이 쇼핑센터 라스베가스 리조트 호텔들을 합쳐놓은 느낌이랄까? 성임이가 애기들이 좋아할 거라고 했는데, 심지는 애기였나보다.
영종도에 왔다면 꼭 들러야하는 자연도소금빵집도 와봤구요. 빵은 정말 맛있는데 여기 음료는 정말 별로다. 카페라떼 시켰는데 반 샷만 넣어달라고했더니 그냥 얼음물 느낌. 우유맛이 풍부한 라떼를 기대했는데 비싼 음료 가격대비 너무 아쉬웠다.
수영이가 ''서해는 똥물이라 싫다.''고 노래 부를 땐 몰랐는데, 와보니 정말 딱 와닿았다. 을왕리는 너무 갯뻘이고 하늘도 물도 너무 탁했다. 내가 생각한 바다가 아니라 아쉬웠다. 갈매기들한테 새우깡을 주는데 매운새우깡을 사서 그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뻘이 너무 많아서 신발 상할까봐 안들어가려고 했는데... 수영심지나나가 너무 바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쩔 수 없이 따라갔다. 날이 따뜻해져서 좀 있으면 못 신을까봐 신고 온 스웨이드 운동화는 정말 비싼 구두처럼 조심조심 걷게 했다.
심지가 자연도 소금빵 본점에 새로 나온 메뉴가 있다고 해서 왔다. <달임빵>이라고 마가레트처럼 보였고 비주얼은 그냥 그랬는데 먹어보니 진짜 맛있었다. 두 판 살 걸. 본 점에는 정말 사람들이 엄청 줄을 서 있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웠는데 아까 카페점에서 먹고오길 다행이다 싶었다.
을왕리는 별로 였는데, 오이도는 정말 좋았다. 서울 살면서 오이도를 처음 와 보는 것 같다. 4호선 끝자락에 있는 오이도는내게 그렇게 매력적인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보니 이렇게 좋은 곳을 왜 지금 알았지 싶다.
방파제를 따라 걸으면 바다 갈매기들을 만날 수 있다. 대이작도 배에서 만난 갈매기들이랑은 달리 오이도랑 영종도애들은 정말 느긋하고 먹을 거에도 별 욕심이 없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조개포차에 입장! 어제부터 심지랑 이걸로 실갱이하느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곳... 그래도 일몰시간 맞춰 창가테이블도 왔다. 하늘이 너무 뿌얘서 일몰은 결국 못 봤다. 항에 가서 기다렸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식당이 무한리필인데 배고파서 라면을 계속 끓여먹다보니 생각보다 조개는 많이 못 먹었다.
잠시 나나가 자리를 비운 사이 뿌앵하고 폭포처럼 눈물이 났다. 갑자기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슬펐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혹여 있을 사고사를 대비해, 늘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한다는 로지의 말이 떠올랐다.
요 며칠은 그런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다. 기대와 설렘보다는 걱정과 불안이 섞인 그런 시간들을.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몇년 전 꼭 보내달라고 아쉽다고 난리칠 땐 언제고, 아무것도 없는 타지에서 처음부터 혼자 생활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막연하지만 내가 포기해야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 이 결정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단언할 수 있는 건 오직 '가고싶어하는 마음' 하나 뿐이었다.-이것도 아는 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가장 큰 걱정은 정서적 안식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가 애들을 떠나서 생활할 수 있을지다. 지난 심리상담에서도 애들 없으면 못 산다고 할 만큼 친구에게 의존도가 큰 사람이다.
수영이는 아직 확실한 거 아니니 울지 말라고, 다 정해지면 그 때 같이 울어주겠다고 했다. 거짓말. 나만 슬플 거 다 안다. 밥 먹고 심지가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내 몫으로 반 쪽을 떼어줬다. 영국 가면 이제 이런 거 떼 줄 사람도 없는데... 누가 날 챙겨주나 하고 또 2차 폭발 뿌앵.
술에 취한 애들이랑 펌프도 하고 오락실에서 놀았다.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우린 이렇게 그대로인데 세상은 왜 이렇게 변한걸까. 난 그 가운데서 뭘했을까. 여러 생각이 든 채로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라라랜드가 생각날만큼 멋진 해변가였다. 잠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했다. 오랜만에 이런 시간에 가슴 속 뭔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90년대 인기가요를 부르면서 왔다. 평소 조용하던 수영이도 신나게 몸을 흔들며 분위기를 맞춰줬다. 역시 사람은 술을 먹어야하나? 오히려 심지는 지쳐 자느라 정신없었다. 이게 한국에서의 내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다 생각하니 조금은 뭉클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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