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9.수 [워홀+204]_ 서울의 하늘은 맑나요?
오늘 서울은 그렇게 맑다고 하는데, 볼 수 없네 안타까워라. 가끔 런던 하늘도 제법 맑지만 고국의 쨍-한 햇살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먹을 거 없어서 티엔티엔에 갔는데 세일하는 게 많아서 좋았다. 너구리도 세일하고 비비고도 세일하고. 밀키스도 했다. 그건 안 샀지만. 아무튼 무슨 한류, 코리안 웨이브 세일 프로모션 중이란다. 그래 한국 최고다.
오늘은 주방 스텝 중 한 명인 우메시 생파를 했다. 휴 다이어트 해야되는데 계속 케이크 먹지 으휴.
오후엔 사장님께 새로운 업무를 제안드렸다. 먹고 살길이 급해서 일단 질러 놓긴 했는데, 정말 잘 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정말 거의 맨 땅에 헤딩 수준이니까. 하기사 뭐 늘 완벽하게 잘 갖춰진 환경에서만 살아왔나.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도 완벽히 해내는 능력을 기르려고 여기 왔으니까.
그래서 밤늦게까지 시장 조사를 하고 기획서를 작성했다. 왠지 대학생때라 돌아간 것 같아서 좀 신선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이렇게 무리할 수 밖에 상황이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뭐 난 항상 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이었으니까.
02.20.목_[워홀+205] 신나는 월급날
아침부터 게일 스콘이 너무 먹고 싶었다. 비싼 건 아는데 그만큼 맛은 있거든요. 그런데 울위치에서 살 때보다 조금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 여기 영국 프랜차이즈도 점바점 차이가 큰가. 아니면 잘못 계산 된건가. 평소에는 그렇게 잘 받던 영수증을 오늘은 왜 안 받았을까 흐흑.
GAIL's Bakery Exmouth Market · 33-35 Exmouth Market, London EC1R 4QL 영국
★★★★☆ · 제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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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는 특이한 손님이 오셨다. 주문을 하는데 위트가 넘치던 그는 장난끼 어린 목소리로 자기는 한국 콜라를 먹고 싶다고 했다. 후후. 하는 수 없지 내 실력을 뽐내는 수 밖에. 마침 한가하던 때라 콜라에 태극기를 그려줫는데, 너무 좋아해서 뿌듯했다. 그런데 태극기 그리기 생각보다 어렵답니다? 한국인으로써 반성할게요 깔깔.
일하는 내내 사진을 건지려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새로 진행하는 업무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자꾸만 욕심내서 사진을 찍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만 하고 주변 사람들을 은근 닥달하기도 한 것 같아서 좀 미안하네.
사실 오늘 오전부터 약간 일이 있었다. 요즘 사장님이 많이 바쁘셨는지 업무 분장에 이슈가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잘 이해하고 넘어갈 법 한데 신규 업무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슬프고 많으면 많은 대로 짜증나고. 인생이란, 참 쉽지 않구나.
그래도 월급이 들어와서 신이 났다. 한동안 거지꼴로 살았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 게다가 이번 달에는 제법 페이가 괜찮아서 월세를 잘 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급여 알람을 보기 전 까지만 해도 잔뜩 짜증이 났었는데, 좀 마음이 풀렸다. 역시 금융 치료가 짱이구만.
02.21.금 [워홀+206]_ 힘들어도 낭만을 찾을 줄 아는 사람
오전 내내 신규 업무 때문에 바빴다.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내내 매 시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내내 긴장된 상태로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오랜 만에 뭔가에 집중한다는 건 좋은 일처럼 느껴졌다.
저녁 근무 때 커피를 마시고 나시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같이 일하던 죠앤이 필터를 가져왔고, 핸드드립으로 커피 한 잔을 내려줬다. 밖에 비도 오니 재즈가 적당하겠다며 아이유 재즈까지 틀어주는데, 느슨한 템포의 음악과 커피를 마시니 오랜만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신나서 커피를 찍는 나를 보고 조앤이 말했다. 수진씨는 힘든 상황에서도 낭만을 찾을 줄 아는 사람 같다고. 나는 줄 곧 사람에게서만 좋은 모습을 보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성격이 어떤 환경을 볼 때 까지 확대 된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보려는 경향이 조금 강해졌다고나 할까.
차를 마시는 동안 그녀가 인상 깊은 얘기를 하나 더 전해줬는데,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미 성숙한 사랑과 성숙한 사랑의 차이였다.
- 저자
- 에리히 프롬
- 출판
- 문예출판사
- 출판일
- 2019.09.01
미성숙한 사랑은 "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 지만, 성숙한 사랑은 "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 라고.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그동안 내가 겪은 사랑들을 생각해보니 그것들은 조금 더 미 성숙한 사랑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요즘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일까? 이 또한 나중에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지려나?
02.22.토 [워홀+207]_ 일하고 놀고 일하고
어젯밤에는 고작 세 시간을 잤다. 그 부족한 잠 속에서도 계속 열심히 일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긴장 속에서 깨어나니 조금 현타가 왔다. 잠깐이라도 일이 아닌 다른 걸 하고 싶었고, 월급도 들어온 김에 장을 보러 갔다.
그동안의 돈 없어 느끼던 설움을 복수라도 하듯이, 나는 장 보는 데만 60파운드(한화 약 12만원)를 썼다. 막스앤스펜서, 웨이트로즈, 오세요, 세인즈버리를 종일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렇다고 딱히 뭐 사고 싶었던 거 원 없이 막 산 것도 아닌데, 라피는 조금 걱정된 말투로 말했다. '' 돈을 많이 쓰든, 적게 쓰든 금액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예산 안에서 돈을 써야 하는 거지.''
알죠, 선생님. 그런데 제 욕심에 비해 예산은 너무 부족하거든요. 나는 짜증 대신 네가 있을 때 장을 봐야 무거운 걸 덜 들 수 있지 않겠냐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일을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한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마감도 해야 하고 사브리나 생일 파티에도 가야 하던 상황이라 고작 그 한 시간 잔 게 굉장히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더 능력 발휘가 잘 된 편이었는지 30분만에 급하게 마무리를 하고, 서둘러 파티 장소로 향했다.
가기 전엔 할 일도 많고 몸도 안 좋아서 고민 했는데, 막상 가보니 또 재밌었다. 이 전에 봤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대화를 시작했다. 영국 생활 2년 차인 선배님도 만나고, 여자친구가 있는 팀도 만나고, 다음 주에 만날 티미와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몇 달 전 쩌리 마냥 구석에 숨어있던 파티꽝 나. 이제 효율적으로 파티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네.
The Ladybird Bar (Cocktail Bar & Club) · 70 Upper St, London N1 0NY 영국
★★★★☆ · 칵테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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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 쯤, 나는 파티를 떠났다. 해야 할 일이 여간 신경 쓰였고, 혼자 있을 라피가 신경 쓰였다. 나를 데리러 온 라피와 라이언을 서로 인사 시켜줬는데, 제법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들을 보며 조금 뿌듯했다. 깔깔. 내친구랑 내남친의 조합 재밌구만. 팍팍한 런던 생활에 단비 같은 둘.
돌아오는 길에는 강가에 잠시 앉아 있었다. 늘 추위 때문에 다가가지 못했던 곳인데, 이제 제법 날이 풀렸는지 벤치에 앉아있을 만 했다. 하긴 2월 말이니- 제법 따뜻해 질 때도 됐지.
시티 로드 베이슨 · 영국 런던
★★★★☆ ·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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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3.일 [워홀+208]_ 아직 겨울은 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는 오랜만에 수영이와 통화를 했다. 대화의 대부분은 주로 어머님 얘기였는데 듣는 내내 마음이 미어졌다. 수영이가 카톡으로 보낸 최근 사진도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정도였다. 썸네일로만 언뜻 본 그 모습 조차도, 선뜻 크게 보기를 누르지 못할만큼, 큰 변화가 있었다.
오후에는 스콘이 먹고 싶어서 게일즈를 갔는데, 품절이라 살 수 가 없었다. 30분 거리에 다른 지점을 갔는데- 거기도 품절이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2시간을 헤맸는데, 수확이 없어서 허탈했다. 내가 호텔 케이크나 고급 파티쉐 베이커리처럼 뭐 대단한 거 바란 것도 아닌데, 무슨 스콘 하나 구하기가 이렇게 힘드나.
이런 불운은 밤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라피의 크래커였다. 과자가 먹고 싶다던 라피를 위해 사람이 날라가겠다 싶을 정도로 바람이 부는 날씨인데도 밖에 나갔다. 15분 거리 마트를 가는데도 굉장히 멀 게 느껴질 만큼 강한 바람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간 마트는 문이 닫혀 있었다. 구글에는 분명히 영업 중이라 써있었는데 깔깔. 일요일은 정말 뭘 하기가 힘들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이 뒤로 밀릴 것 같은 바람에 추위를 느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봄이 왔다고 생각했데, 아직 겨울인건가.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았다. 뼈가 앙상할 정도로 죽음에 가까워지는 지인의 모습을 봐서 그런지-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업무 스트레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밤에는 자꾸만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이상한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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