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6.토 [워홀+270]_ 생일 파티는 힘들어
손님도 없는 토요일. 가게 앞에 비둘기 파티 열렸길래 가보니 누가 음식물 박스를 떨어뜨리고 갔네. 저는 비둘기가 무섭거든요! 조심 좀 합시다.
엊그제는 나나쨩의 생일 날. 사장님이 오실 줄 알았는데 안 오셔서 우리끼리 했다 호호. 오랜 만에 깜짝 서프라이즈 하려니 힘들구만. 케이크 숨겨들고 와야 되는데 그녀가 지하로 내려가지 않아서 허둥지둥 얼레벌레 내려가라고 난리. 여기서도 발 연기 폭발하는 구만. 아니 그렇게 안 바쁘다가 왜 케이크 사서 오니까 갑자기 손님이 몰리는 건데요. 정말!
뒤늦게 몰려든 인파 덕분에 예상 시간 보다 훨씬 늦게 마감을 했다. 게다가 토요일이라 할 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 라피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진짜 더 늦게 갈 뻔 했다. 인사 안 한다고 구박만 하고 물 한잔도 안 줘서 투덜대던 우리 순돌이.
기특하게도 또 이스터 에그를 사 온 녀석. 없는 살림에도 우리는 서로를 챙긴다. 부족한 형편에도 기회가 될 때 마다 각자의 끼니를 나눈다. 나는 스텝밀을 반 정도 나눠서 들고 와 나눠 먹고, 라피는 밖에서 간식이라도 받아오면 꼭 안 먹고 들고 온다. 그래서 이 관계가 더 특별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은 이렇게 해 놓고 저녁 먹고 대판 한 나. 홧김에 우리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발언을 해서 그에게 큰 상처를 줬다. 사실 요 몇 주간 관계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게 정말 사소한 계기로 폭발했다. 호르몬의 요동침 때문인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상황은 더 악화됬다. 아직은 미 성숙한 나는 언제쯤 크려나.
04.27.일 [워홀+271]_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라피와 나. 이 관계에 피곤함을 느낀 이유는 '소통의 어려움'때문이었다. 우리 둘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어려움이 있는데다, 나는 영어도 잘 못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많았다. 그런데 또 잘 안되니 곧 잘 포기해버리게 되고. 그는 그래서 그 불만들을 별 거 아닌 것 쯤 으로 여기는 바람에 더 서운함을 많이 느꼈다.
솔직히 의사표현에 답답함을 느끼는 나와 달리, 자기 하고 싶은 말은 따박따박 잘 하는 라피가 얄밉기도 했다. 서로 살아온 배경이 많이 다른 만큼, 더 많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힘든 조건이라 더 상황이 악화됐다.
참다 못한 나는 어젯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일 보자고 보챈 건 나면서, 우리가 너무 같이 붙어있었던 것 같다고. 아무래도 좀 떨어져서 시간을 갖는 건 어떻냐고 얘기를 꺼냈다. 그 말에 그는 꽤 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냉랭한 그를 보며 내가 어제 내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마음 정리를 하려고 다짐했는데, 또 한번 그가 용기를 내주어 잘 넘어갔다. 나이가 많다고 성숙한 연애를 하는 건 아니구나.
04.28.월 [워홀+272]_ 열심히 사는 척!
월요일이니까 바쁘게 움직여야지. 양상추도 썰고, 아침상도 차리고, 어제 빨아 놓은 실내화도 말리고, 발매트도 빨고, 주워온 네트도 닦고, 샤워도 하고.
커텐도 떼 다가 빨고, 서랍장도 치우고. 곧 손님이 오셔서 집을 깔끔히 치웠다. 대 청소를 하고 싶으면 손님을 초대하라던 미룽씨의 말. ㄱ 나니...? 영국에서도 아주 잘 실천 중이다.
오후에는 라피가 삼촌의 연락을 받았다. 지방에 숙식 제공이 되는 일 자리가 있으니 한 번 가보겠냐는 제안이었다. 구직에 간절하던 그는 당연히 흔들리면서도, 나에게 자기가 먼 곳으로 떠나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한동안 떨어져서 각자만의 시간을 갖자.'고 뱉은 말이 씨앗이라도 된 걸까. 그렇게 말할 땐 언제고 이제와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 조금 씁쓸했다.
저녁엔 나초를 만들었다. 라피가 하도 어제 산 김치를 먹어야 된다며 성화를 부려서 나초와 타코에 토핑으로 올려 먹었는데 제법 맛있었다. 자기가 처음 산 한국음식이니 함께 스타트를 끊어야 된다며 신난 그.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김치를 먹고 한국 여자친구까지 있으니 자기 이제 군대만 다녀오면 한국 사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삼촌을 만나고 오더니 잔뜩 들뜬 녀석. 귀엽구만.
요즘은 눈물의 여왕에 여왕에 빠진 그. 극 중 여 주가 3개월 후면 죽어서 너무 슬프다며 꽤나 과 몰입중이다. 백현우와 홍해인이 서로 좋아하는데, 왜 저렇게 어색한 사이냐며. 결혼은 역시 어렵다고 투덜대는 녀석. 깔깔깔. 잊고 있었네. 얘가 한참 애기라는 걸.
04.29.화 [워홀+273]_ 이제 능숙한 미용사랍니다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혹시나 싶어 받았는데 새로 등록한 GP 담당자였다. 휴... 언니 저 이제 다 나아가요... 아침에 거울 보면서 이제 막 알러지가 다 낫는구나. 생각하자마자 딱 전화가 온 거였다. 플랫넘버가 없어서 환자 등록이 늦어지고 있다고. 아니 그렇담 진즉에 좀 전화를 주시지 그랬나요!!!
오후에는 라피의 머리를 잘라주었다. 기장 줄이지 말랬는데 "Trust me"를 연발하며 다 잘라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곱슬머리라 나름 괜찮아보인 다는 점이다. 덜덜 떨며 가위를 들던 지난 번 과는 달리, 이번엔 꿍얼대는 그의 불만마저 능글맞게 넘길만큼 능숙하게 머리를 잘랐다. 시간도 덜 걸리고. 뒷 정리도 아주 깔끔하게 됐다. 그렇다고 잘 잘랐다는 건 아니고 호호.
저녁은 맥도날드에 갔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니까 맥플러리 먹어봤냐고 묻는 그. 아니 참나 깔깔 나를 뭘로 보는 것이야~ 누나 맥세권에 살다왔다. 그리하여 몰티져스 맥플러리를 먹어봤는데, 결론은 그냥 그랬다. 너무 묽었어. 한국 맥플러리는 좀 더 Thick한 느낌인데 여기는 약간 묽다. 입맛 없다면서 브라우니까지 야무지게 먹었네 호호.
04.30.수 [워홀+274]_알차게 보내는 시간들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 빅토리안 시대 때 런던에 관한 책을 읽었다. 물론 어린이용으로. 글자 많으면 읽기 싫거든요. 브레이크 타임을 이렇게 쓸 수 있다니 참말로 좋구만. 원래 CV 수정할랬는데 노트북 안 가져와서 생략. 그래도 풀타임 근무하고 쉬는 시간까지 영어공부한 건 정말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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