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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3년 9월 두 번째 일기 (09.10~09.15)

by 킹쓔 2023.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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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일

 대망의 시합날. 전략이 뭐냐고 묻는데 그런 게 없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없습니다. 전략을 짤 만큼 깊이있고 자신있게 아는게 아니라서요. 휴, 내가 이 구역의 제일의 빅걸인줄 알았는데. 애뚱이였네. 세상은 넓고 나보다 큰 사람들은 많구나. 

보자마자 겁먹고 잔뜩 쫄아놓고 시합은 또 본능적으로 잘했다. 생각보다 해볼 만 했고,  싸움꾼기질도 꽤 있었던 나란사람. 결과는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많이 배웠다. 체력도 좀 더 기르고, 기술도 포지셔닝 연습도 더 해야겠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던 세미나 초반에 비해 첵관 사람들이랑도 많이 가까워졌다. 다들 영롱한 메달을 들고 집으로 갔지만 내 맘은 조금 씁쓸했다. 

아쉽지, 그렇지만 이게 끝은 아니니까. 과정이다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거니까.  이번 시합 끝나면 다신 이렇게 안하려고 했는데, 한 번 해보니까 또 해보고 싶네. 낄낄.

그거 5분 싸웠다고 집에 가자마자 뻗었다. 정말 선수들은 어떻게 사는거래.


09.11.월

 시합 끝나면 미뤄뒀던 일을 엄청 열심히 할 줄 알았는데 피곤해서 쉬기 바빴다. 저녁 일정을 비워둬서 아침부터 심심하다고 해놓고 점심시간 내내 자버렸다... 정말 몸이 예전같지 않다.


09.12.화 : 파주, 5C
점심, 푸른집 - 밭일 체험 - 하니랜드 - 저녁, 옥상 바베큐 - 산책, 모쿠슈라

 벌써 벼가 노랗게 익다니. 완연한 가을이구나. 아침에 파주 온 김에 현이랑 미룽이랑 불러서 놀았다. 분명 매일 먹을 거로 가득차있던 엄마집이 하필 오늘은 먹을 게 없어서 푸른집 가서 쌈밥정식을 먹었다. 여기 와서 밭에 야채 놔두고 돈 주고 쌈 사먹는다고 엄마가 알 면 정말 극대노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편하게 차려진 상차림이 싫지는 않았다. 고기도 뭐 나름 맛있었고. 한번도 웨이팅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좀 기다려서 문제였지만.

들깻잎이 많은 곳이 우리밭이라는데 사방천지가 들깻잎이라고요

 밭 찾기 너무 어려워. 엄청 헤맸다. 그래도 결국 돌고돌아 찾긴 찾았다. 이젠 주소 없이도 잘 찾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애들이 설렁설렁하겠다더니 금세 가지랑 오이가 수북히 쌓일정도로 손이 빨랐다. 역시 똘똘한 사람들이라 뭘해도 잘 하는구나.

가을인데 아직 덥다 여름처럼

 밭에서 딴 걸 집에다 내려두고 쉬겠다는 애들을 데리고 하니랜드로 갔다. 5년만에 나도 처음인 이 곳. 주차장에 차를 대니 2명 이상만 놀이기구가 작동한다고 했다. 거긴 우리 뿐이었다. 직원 한 분이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타고 싶은 기구를 태워주셨다. 흡사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 실장님이 최지우 한 사람을 위해 놀이기구들을 운행하듯이, 나만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었다.

표정부터 만만치 않던 코끼리와 그걸 탄 미룽, 포즈는 흡사 나폴레옹

 회전 코끼리를 탔는데 생각보다 스릴 있었다. 꽤나 만족스러웠는데 그 다음 탄 관람차는 좀 실망스러웠다. 청룡열차인줄 알았는데 그냥 모노레일이라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나씩 다 따로 타려다가 애들이 같이 타자고 해서 한 차에 함께 탔다. 사람이 많이 타서인지 엄청 더웠지만,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들을 보니 가을의 평화로움이 느껴지긴 했다.

무척 더웠던 안, 풍경은 예뻤다.

 그래서 조금 속도감있는 스윙댄스를 탔는데, 우리 모두 뻗었다. 진짜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운행을 멈춰달라고 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너무 힘들어서 다들 벤치에 누웠다. 직원분께 45분쯤 다시 타겠다고 했는데 옆에 계속 계셔서 다음 기구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직업정신 투철하신 그녀.

스페이스 스윙이후 모두 전멸, 그래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그녀.

 

적절한 표지판 밑에 앉은 야옹이와 하늘 위에 열린 완두콩, 김두콩 보고싶다.

 

(좌) 성임이가 타자고 한 바이킹 / (우) 내가 타야된다고 한 바이킹

 범퍼카를 탔다. 성인이 되서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타는 범퍼카는 조금 웃겼다. 보험금 무서워하지 않고 고의로 내는 3중 추돌 사고. 신나는 걸. 마지막으로는 바이킹을 탔다. 제법 붕붕 뜨는 느낌이 들어 제일 만족스러웠다. 

노래가 없어서 아쉽다고 했지만 정말 리드미컬 하게 걸어다니던 현이

 놀이공원을 좋아할 것 같던 성임이는 넋이 나가보였다. 오히려 안 좋아할 것 같았던 현이가 제법 신나보여서 좋았다. 예전에 영상 속 어렸을 때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동심으로 돌아간 구공이들. 하지만 이젠 놀이기구 다섯 개 타면 뻗는 체력이 되었구나. 

애기들이 울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회전목마, 다들 힘들군요.

 애들이 지쳤는지 집 오자마자 다들 자버렸다. 저녁 준비를 하느라 옥상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느꼈다. 대체 몇 번 이 계단을 왔다갔다 하는 거야. 다음부턴 김오빠부터 싹 다 한 번에 초대해야지. 대파티다. 고기를 구워먹는데 중간에 랜턴이 나갔다. 꼭 거치대도 갖고와야겠다. 

슈퍼샤이 아니랬는데 아무리봐도 슈퍼샤이였다.

 모쿠슈라에 갔는데 문을 닫았다. 그래도 밤 기운을 받아 제법 걸었다. 심지한테 야채를 나눠주고 집으로 왔는데 피곤이 몰려왔다. 불면증에 걸렸던 과거는 정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09.13.수

 온 몸이 무겁다. 진짜 너무 피곤하고 쉬고 싶었는데 내가 예전부터 뱉어놓은 말이 있어서 건대까지 갔다. 쌀국수는 맛있었고 대화도 매끄러워서 시간이 금방갔다.

나는 매우 순진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다. 앞 뒤 안가리고 퍼줘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기 쉬워보이는 그런 순진한 존재. 그래서 다들 걱정해주는 건가.

사람은 입체적이라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면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또 어떤 인물에 대해 느끼는 바가 대부분 비슷하기도 하고. 인간이란 참 흥미로운 존재야.


09.14.목

 오늘은 병원데이. 점심은 정형외과가고 저녁은 피부과 가고. 일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한 주 더쉬자는 의사선생님. 네 그럽시다. 뭐 이 정도면  나름 싸게먹혔네. 밥 뭐먹을까 한참 고민했는데, 고민이 무색하게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쪼개서 얼큰 수제비를 먹었다. 배 안 고픈줄 알았는데 먹다보니 잘 들어가네.

 

 태어나서 처음으로 네일샵에서 젤 네일을 해봤다. 운동 쉬는 동안은 한번 쯤 해보고 싶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가서 고른 거 치고 제법 잘됬다. 하늘색이라 너무 여름스럽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가을 신상색이라고. 언니가 솜씨는 나쁘지 않은데 친절하지 않아서 포스팅도 하려다 말았다. 굳이 다시 가고싶지는 않은 곳. 

 카드 결제날은 매번 이런 식이다. 그래도 이제는 울지 않는다. 제법 덤덤해졌다. 뭐 어떻게든 흘러가겠지. 버스 정류장에서 꽈배기랑 치즈볼을 물고 베어 먹었다. 어쩌겠어 잠깐이라도 이렇게 풀어야지. 수 천번 여러갈래 생각이 들어도 나는 내 몸뚱이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인 걸 잊지말자.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뭐.


09.15. 금

 

오늘은 무조건 쉰다. 회사 책상도 치우고 밀린 빨래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물도 끓이고 할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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