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월_크리스마스 같지 않던 크리스마스
12시가 되자 쵸콜렛과 핫쵸코를 준비해서 책상에 앉았다. 두근두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트리 오픈이다.
전혀 예상 못했던 인물의 따뜻한 인사와 기대했던 이에게는 짧은 글이 다수라 아쉽거나하는 마음이 교차하던 밤. 쵸콜렛에 <BIRTHDAY CAKE>맛이 있는 줄 몰랐네. 이건 무슨 맛이지. 크흠, 화이트쿠키맛이 최고다.
괜찮을 줄 알았던 아빠도 안 괜찮았을 거다. 수영이가 나만 너무 신경쓰는 거 아니냐고 했을 때, 나도 그러길 바랬지만 아니었다. 아빠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다. 또한 평생 내색하지 않을 거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결코 즐겁게만 보낼 수 없는 날일테다.
하지만 뭐 또 그렇다고 코박고 우울하게만 있는 것도 웃긴 날이지. 올 해는 캐롤도 별로 안 듣고, 약간은 크리스마스같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12.26.화_ 좌절할 기운도 없다.
엄마는 결국 눈물을 보였고, 나는 울 수 없었다. 엄마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 어디서부터가 잘못됬는 지 찾고 있을 때, 나도 함께 옹졸하고 우둔했던 내 과거를 모아가며 나를 꾸짖고 자책했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눈물이 왈칵 차올랐지만, 슥 하고 털어버렸다. 이젠 바닥에 널부러지거나 좌절할 기운도 없다. 그냥 묵묵히 내 할 도리를 다하자. 그렇게 하루를 보내자.
12.27.수_잘 지키자 나의 건강
미역국이 너무 먹고 싶어서 미역국을 했다. 제법 잘 만드는 걸. 미역이 너무 적은 것 같아 계속 넣다보니 미역죽이나 전골이 된 느낌이다. 이래서 미역이 무섭게 부는 해초구나.
ㅅ의 병문안을 갔다왔다. 운동을 오래 꽤 하던 친구가 아파서 의아했는데, 정말 아프려면 의외의 일로 아플 수 있구나. 역시 건강은 중요하다. 이 작은 손가락 하나 다쳐도 뭘 할때마다 불편한데. 어렸을 땐 당연한 거였지만 지금은 절대 당연하지 않은 건강. 잘 지키자. 아프지 않아서 할 수 있을 때 열심히하고 아프면 아쉽더라도 푹 쉬자, 다음을 위해서 길게보자.
뭐 그런저런 다짐들과 이런 저런 추억들과 함께 걸었다. 신설동 다닐 때 걷던 길이라 많은 생각이 들었나보다.
여전히 여기는 예쁘고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먼 옛날엔 10km 걸어다닌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6km도 버겁다. 하지만 요 최근에 500m도 기피하고 헉헉 대던 나를 생각해보면 또 많이 성장한 결과지.
좋았고 잘나갔던 날들과 비루하고 숨겨버리고 싶은 하루하루가 모인 지금의 나. 어찌됬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하자.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12.28.목_ 어쨋든 수고했다
Be nice to 수진. 고던이 보낸 일러스트.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그게 쌓여 지금의 내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 일년동안 수고했다 내 자신.
12.29.금_23년 마지막 퇴근과 평일 야등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보다 일찍 퇴근했고, 일몰이 보고 싶어서 산에 가기러 했다. 혼자 갈 줄 알았는데 일행이 생겨서 같이 가게됬다.
용마-아차산을 오르면서 작년 생각이 났다. 등산 동호회를 들어가서 여기 저기 동네 산을 뿌수고 다니던 나. 늘 뒤에 서서 사람들 쫓아가는게 익숙하던 내가 이젠 다른 사람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시간도 오다니, 참 시간이 많이 흘렀네. 연말이라 그런가, 한 해를 되돌아보니 서로의 얘기가 허심탄회하게 오고갔다.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다. 관계는 지치고, 고민이 점점 많아지고, 명확하게 답을 모르는 내 자신이 비루하게 느껴지는, 생기 없고 의욕 없는 그런 날. 모두를 아우르는 사람일수록 그런 기분을 더 자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 고독함의 시간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 지에 따라 다음 날들이 달라진다.
그럴 땐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사실 힘든 마음을 공감받고, 지금 껏 잘해왔다고 위로 받는 것 만으로도 조금 나아지기도 하니까. 과거의 나 역시 그게 필요했듯이. 시련은 사람을 황폐하게 할 수 있지만, 단단하게 만들 수 도 있으니까. 행복해보이고 즐겁게만 사는 것 같은 이들도 다 각자의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항상 친절히 대하려고 노력하자. 별거 아닌 것 같아보이는 그게 큰 힘이 될 수 있으니,
가볍게 살살 산도 타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니 우리 둘 다 기분이 좋아졌다. 아쉽게도 날이 흐려서 일몰은 실패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산행이었다. 곁에 있는 사람이 기분 좋아지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더 좋아진다. 그게 내 덕분이라고 하면 더더욱.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고, 나는 또 사람을 좋아하니까.
23년의 수진이가 뿌려놓은 씨앗덕에 받은 선물, 베라 기프티콘. 과거의 나 덕분에 이렇게 아이스크림도 얻어먹고 뿌듯하네. 생각보다 그저그랬던 베라 고디바맛. 그런데 파인트가 만원이라니 말이 되나? 이런 고물가시대에 살고있다니 정말. 옛날에 오천원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세가지맛 이 째깐한 거에 만원...어이가 없다.
술도 먹었겠다- 비록 바닥에 살짝 깐 막걸리가 다지만, 단 게 땡겨서 산 아이스크림인데. 막상 집 오니 흥미가 떨어져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내일 먹어야지.
12.30.토_친구란 그런거지
멀다 멀어. 이 정도면 차라리 핀란드를 가는 편이 낫겠어. 대중교통으로 가야하는 광주는 경기도지만 너무 멀다. 특히 짐 많은 사람에게는. 차 끌고 다니던 습관이 있어서 짐을 주렁주렁 싸버렸고, 당연하게 고생도 배가 되었다.
짐이 너무 무거워 걷기 싫은데, 택시는 타기 싫다는 심지랑 역에서 실갱이를 했다. 만났을 땐 반가워서 신났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또 투닥투닥 하고 있다. 요즘 들어 만나기만 하면 자주 싸우는 것 같다. 내 입장에선 심지가 먼저 성질 내서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인가 싶은데, 걔 입장에선 또 내가 그러는 것 같아보이나보다. 십년 넘은 친구 사이에도 존재하는 입장 차.
그래도 친구라고 말 몇 마디 섞다보니 금방 마음이 풀렸다. 으유 정말. 해보고 싶었던 핀란드식 사우나는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나무가 진짜 히노끼(편백)가 아니라 유독가스가 나올 것 같만 같았다. 증기때문인지 자재때문인지 호흡이 약간 답답해지고 피부가 붉그락 거리는 기분이라 사우나에서 나와있다가 쉼터 카페로 갔다.
그리고 고민하던 대둔산 일출산행에 참석하기러 결정했다. 하, 이럴거면 그냥 처음부터 간다고 할 걸. 어차피 나는 나 하고 싶은대로 하니까 앞으론 그냥 고민하지말고 가자 왔다갔다 하지말고.
저녘은 심부장네로 갔다. 부장님이 퇴사하고 차린 식당이랬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히 엄청 맛있지도 않았다. 되게 맛있는 술집에 가고 싶었는데...식사 후 간 카페는 완전 옛날 개인 카페 같았다. 거기서도 심지랑 케이크같고 투닥거리다 못먹게 하길래 새로 하나 샀다. 그게 장난인지 진심이었는진 모르지만 그냥 막 짜증이 났다. 막상 사놓고 또 다 못먹어서 나머진 포장했지만.
다행히 올 때는 수영이가 태워줬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왔다. 오예, 역시 자차가 짱이다. 오늘따라 매일 집 앞에 내려주던 그 마음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역시 내가 친구복은 있어 호홓.
12.31.일_ 지극히 평범하게 바쁜, 마지막 날
한 시간에 한번씩 깰 정도로 잠을 설쳤다. 거의 산책에 가까운 일정이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거니까 좀 신경쓰였나보다. 일어났는데 준비하기 귀찮아서 대충 롱패딩하나 걸치고 준비도 안하고 대충 나갔다가 제대로 혼쭐이 났다.
동네 작은 산이라고 무시했는데, 눈은 녹아서 길이 질척거리고 걷기가 힘들었다. 아이젠 없이도 갈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약간 미끄러워서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 같았다.
날이 흐려서 해를 보는 건 꿈도 못꿨다. 아 최근 일몰, 일출 산행 다 망했구만. 비가 계속 내려서 옷이 흠뻑 젖었고, 안에 있는 옷까지 축축해져버렸다. 외투를 벗자니 춥고 입고 있자니 축축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입술이 또 파래졌다고 하는데 함백산 때도 같은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고어텍스 등산복을 입고 온 옆 사람은 뽀송뽀송 물 한방울도 안 묻었고, 나는 홀딱 젖어있었다. 인터넷 쇼핑 페이지에 <자사옷과 타사옷 비교>실험 중 비교군처럼 아주 최악의 복장이었다. 뭐, 만만하게 봤던 내 탓이지.
그 와중에 하산까지 잘못했다. 아주 뒷 쪽 중랑구청 방향으로 하산하는 바람에 망우역과 신내역 근처로 애매하게 떨어졌다. 비는 계속 오고 사람들이 추워해서 결국 택시를 타고 스타벅스로 갔다.
새해 결심이나 한 해 되돌아보기 보다는, 역시 그냥 사람사는 얘기가 재밌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집에 도착했다. 와서도 쉴 틈이 없었다. 밀린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짐을 싸다보니 점심 때도 놓쳤다. 연말정산 릴스도 올리고 새해인사 메시지도 돌리다보니 금방 오후가 됬다. 어제 잠을 설친 탓인지 머리가 멍하고 피곤했는데 잠이 안왔다.
아까 먹은 녹차라떼 탓일까? 아마 녹차 파우더 속 카페인 때문이겠지. 다른 걸 먹기엔 주문가능한 게 없었다. 쪽잠이라도 자려고 저녘도 안먹었는데. 수면에 대한 압박감때문인지 잠이 더 안왔다. 내일 일출산행도 좋은 컨디션으로 가긴 글렀구만.
불끄고 눈감고 누워봤다. 자보려고 이것 저것 해봤지만 결국 실패, 그냥 출발하기러 했다. 얼레벌레 카운트다운도 놓치고 새해가 지나가버렸다. 뭐랄까, 새해의 설레임이 점점 무뎌져간다. 이젠 해의 마지막 날도 그냥 하루 중에 하나가 되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년 1월 첫 번째 일기 (01.01~01.05) (4) | 2024.01.05 |
---|---|
24년 새해 계획_0번째 일기 (4) | 2024.01.03 |
12월 네 번째 일기 (12.18~12.24) (2) | 2023.12.24 |
12월 세 번째 일기 (12.11~12.17) (5) | 2023.12.18 |
12월 두 번째 일기 (12.03~12.10) (4) | 2023.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