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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4월 여섯 번째 일기 (04.28)_ 순천 조계산 힐링여행

by 킹쓔 202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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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조계산 + 천자암 여행 일정

작성: 킹쓔

항목 시간 활동 비고
0 00:00 대방역 집결, 출발 순천까지 4시간 정도 소요
(오수 휴게소 휴식)
1 04:45
06:10
산행 시작
배바위
보리밥집 근처 주차 후 이동
밧줄잡고 올라가야 함
15분 휴식 후 이동
2 06:45 장군봉 (정상)  10분 휴식 후 이동
3 08:45 선암사  30분 휴식 후 이동
4 11:35 하산, 점심식사 조계산보리밥집 아랫집 식사
5 13:40 송광사  겹벚꽃 다떨어짐 (4월 마지막주 기준)
6 14:20 천자암 쌍향수 (조계산 송광사랑 다른 곳)
7 22:00 귀가 서울까지 5시간 정도 소요

 

0) 00:00_ 대방역 집결, 출발

 

 진짜 한숨도 안 자고 갈 줄은 몰랐다. 아무리 못 잤다해도 최소 한 두시간 정도는 자고 갔었는데, 오늘은 정말 침대에 1분도 못 누워있었다. 재상재화랑 헤어지고 바로 짐싸서 대방역으로 향했다. 아빠가 밤에 무슨 산이냐고 놀라길래, 지금 출발해야 도착할 수 있는 산이라고 하자 혀를 내둘렀다. 간만에 지방산행인데, 몸 컨디션이 좋지는 않아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새벽 4시에 먹는 빵은 아침일까, 야식일까

 차에서 꼭 조금이라도 자겠다고 다짐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만나자마자 태봉이랑 입 터져서 계속 얘기했기 때문이다. 엊그제 만나서 말했는데도 여전히 할말이 많은 우리. 말하는 타이밍도 겹쳐서 서로 먼저 말하라고 할 만큼 거의 토크 분수쇼였다. 그렇게 신나게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차에서 아까 사온 빵을 아침으로 먹고 출발했다. 
 


조계산 최단 + 선암사 코스

총 11km/ 7시간 (휴식포함)  : 보리밥집- 작은굴목재- 배바위- 정상(장군봉)- 선암사- 큰굴목재- 보리밥집 원점회귀

 

1) 04:40_ 산행 시작

 

어쩐지 으스스한 구(舊) 이정표들

 조계산 최단코스는 생각보다 쉬웠다. 그래도 해발이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어렵지 않았다. 작은 보리밥집 근처에 차를 대고 출발했는데, 가는 동안은 잘 포장된 도로였고, 등산로도 거의 둘레길 수준의 흙길이었다. 배바위 전까지는 종아리도 당기지 않고 숨도 차지 않았다. 여태껏 가본 산 중에 제일 수월한 산처럼 느껴졌다. 이럴거면 미진이 데려올걸.

깔끔하고 예쁜 신(新)이정표

 가는 동안 스멀스멀 해가 올라왔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었고, 초록빛이 돌던 잎들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길쭉길쭉한 나무들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출발할 땐 살짝 추웠는데, 일출이 시작되니 금세 따뜻해졌다. 

등산 한 시간만에 도착한 작은굴목재

 

배를 묶어두던 배바위

 작은 굴목재를 지나면, 조계산의 조망터 중 하나인 배바위(선암바위)가 보인다. 먼 옛날 세상 전부가 물에 잠기는 홍수가 일어났을 때, 배를 이 바위에 묶어두어 선암(배 선, 船)바위라고 불린다고도 하고,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갔다고 해서 선암(신선 선仙)바위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몇 주 전만해도 산들이 꽤 거뭇거뭇했는데, 벌써 푸르게 물들었더라. 고독한 그림자는 흔적마저 지워지고 생명의 빛이 싱그럽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달까? 맑고 푸른 잎들이 생기를 터뜨리고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이제 꽃은 많이 진 걸보니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입구에 걸쳐있나보다. 

 

조계산 조망터 선암바위

 
+

 조계산 배바위는 푸릇한 조계산 일대가 한 눈에 보이는 곳. 정상보다도 더 뷰가 좋아서 꼭 올라가보길 추천. 바위가 미끄러우니 안전에 유의요망. 밧줄을 타고 오르내릴 때 장갑과 릿지화는 필수.

2) 06:45_ 장군봉 (정상) 

 
 등산 2시간만에 정상 도착. 배바위를 지나면 돌계단이 나오는데, 그것만 10분 정도 오르면 바로 조계산 정상 장군봉이다. 

기존 정상석 / 산악회 기증 신정상석

 장군봉에는 정상석이 두 개인데, 작은 것이 이전부터 있던 것이고 큰 게 새 정상석이다. 전에 오기재된 해발(884m)을 수정하기 위해(888m), 2021년 조계산 산악회에서 자체 제작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오랜 고목(木)들이 가득한 조계산은 구수하고 정 많은 전남 사람들의 모습을 닮았다. 정치적 희생양이 되거나 개발에서 밀려나는 등 상처가 많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을 나눠줄 줄 아는 이들.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아따- 일단 밥이나 드쇼!"하면서 상다리 부러지는 밥상을 차려줄 것 같은 그들의 푸근한 모습처럼, 이 산도 그렇게 아픈 이들을 품어줄 것만 같다. 

  정상에서 바로 내려가 원점 회귀를 하려다, 선암사쪽까지 돌아보기러 했다. 태봉이 지금 내려가도 식당을 가기엔 이른 시간이니 살살 가보자고 제안했다. 거리가 얼마냐는 말에 6km 정도라고 해서 기존 거리보다 1km 정도 늘어나는 건 줄 알고 승낙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6km가 추가로 더 늘어난다는 말이었지 뭐야.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지. 미안하다 내 몸들아. 

 

 

 

 그래도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흙길이고, 군데군데 돌계단이 있어서 어렵진 않았다. 키가 크고 잎이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 바람이 없어도 많이 덥지 않았다. 조계산은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인만큼, 정말 다채로운 나무들이 많다. 대체로 길쭉하고 여린 잎의 나무들이 많은데, 그만큼 햇빛이 쏟아지는 숲처럼 보여 맑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났다.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은 파리입니다

 대신 날벌레가 엄청 많았다. 정상에서부터 파리가 엄청 꼬여서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사진 찍으려고 휴대폰을 들면 카메라에 달라붙는 건 물론 코와 입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달겨들었다. 후후 숨을 불거나 고개를 도리도리 돌렸지만 걔네는 끄떡없더라. 양봉꾼들이 왜 잠자리채같은 그물망을 쓰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3) 08:45_선암사

 

 조계산은 동서로 사찰 두 곳을 품고 있다. 우리나라 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근본사찰 송광사와 그 다음으로 큰 태고종의 근본사찰 선암사로, 두 종단이 함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그만큼 지세가 뛰어난 곳이라 그렇다는데, 동의한다.

만개한 홍매화

 그 중 송광사는 동백, 단풍, 밤나무 등 수령이 많은 나무들로 유명한데, 특히 겹벚꽃이 필 때면 그 모습이 장관이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우리도 그들 중 하나였는데, 겹벚꽃은 다 지고 떨어진 꽃잎 밖에 볼 수 없었다. 

꽃비가 내리고 난 뒤의 선암사

 그래도 여전히 예뻤다. 바닥에 흐드러진 꽃잎마저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할만큼, 선암사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체력이 떨어져갈때 쯤이라 곳곳을 둘러보진 못했지만, 절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잔잔한 포근함이 있었다.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아우라부터 다르구만.  

선암사의 귀여운돌들

 

 

  적당히 쉬다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시간도 여유있고, 가는 길은 경사없이 트래킹 하기 좋다고 해서 부담이 없었다. 어느 정도는 정말 그랬다. 숲길 사이로 흩뿌려진 꽃들은 땅에서도 여전히 예뻤고, 귀여운 다람쥐도 만났다. 중간에 길을 잘못들어 돌아가긴 했지만 뭐-걸을만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편백숲길을 지나 큰굴목재까지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있다. 무난한 경사의 트레킹길인줄 알았는데, 끝이 없는 오르막을 보니 조금 지쳤다. 천년불심길에서도 제일 힘든 구간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피로가 누적되서 살짝 졸면서 왔는데, 경사가 있어서 한 걸음 한 걸음이 매우 무거웠다.

 

 숯가마터, 호랑이 턱걸이바위 등 뭐를 지나간다는데 뭘 안내판을 읽어볼 기운도 없었다. 물도 없어서 더 지쳤던 것 같다.  태봉과 기는 큰굴목재만 지나면 수월해진다며 나를 북돋았다. 맘 속으로 어서 그 곳이 나오길 빌었지만 어림 없었다. '조금만 더가면 큰굴목재' 라는 말을 한 열번 쯤 들었을 때쯤엔 그냥 울고 싶어졌다. 그놈의 굴목재는 대체 언제 나오는거야.

 굴목재는 골짜기를 가로막는 줄기에 난 길을 뜻하는 '골막이'가 어원이라고 한다. '갈림길의 지표'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 같다. 사실 정작 그 굴목재는 그냥 지나쳐서 잘 보지도 못했다. 다왔다 다왔어를 외치면서 1시간 정도를 맹목적으로 걸었고, 그렇다보니 거기를 지나는 줄도 몰랐던 거다.

 

 뭐-어쨋든 그래도 하긴 다했다. 처음으로 10km가 넘는 등산이라니. 멋지다 나 자신, 많이 성장했구나! 태봉과 기가 보채지않고 도와준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웠다. 생각보다 잘 버텨준 내 무릎에게도.

 


4) 11:35_하산, 점심 식사(조계산 보리밥)

 

  드디어 산행 일곱시간 만에 식사! 무엇보다 물을 먹을 수 있어서 기뻤다. 여느 식당들처럼 여기도 물은 셀프인데, 약수터에서 직접 떠마시거나 숭늉을 먹는 시스템이다. 다만 약수물에서 살짝 모래가 나오고, 식사하는데 파리가 많아 위생에 민감한 사람은 못 올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만큼 음식은 맛있고, 옛날 시골느낌이 나서 좋았다.

 

+

조계산 보리밥 원조는 아랫집. 카드결제 불가. 결제는 현금, 계좌이체만 가능.

 

 

 


5) 13:40_송광사

 

 아직 우리에겐 일정이 하나 더 남았다. 송광사에서 쌍향수를 보는 일. 무소유길을 지나 절에 들어서는데 선암사랑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선암사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곳이라면, 송광사는 싱그럽고 활기찬 곳처럼 느껴졌다.

생기를 더해주는 송광사의 내천들

 안타깝게도 우리가 찾던 쌍향수는 여기 없었다. 송광사 산내 암자 중 하나인 천자암에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같은 송광사라 써있어서 헷갈렸는데, 분점 같은 건가 보다. 

 

 

 

+

* 송광사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불일서점

* 쌍향수를 볼 수 있는 (송광사) 천자암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천자암길 105

6) 14:20_ 천자암

 

 분명 차에서 내리면 바로 코 앞이라고 했는데, 그냥 또 산이었다. 천자암에 가기 위해선 민둥산만큼이나 경사진 포장도로를 올라야했다. 나 또 속은거지? 망할 블로그들. 얼마 안 걸린데서 선크림도 안 바르고 나왔는데, 아스팔트가 하얘서 해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무릎보호대는 잘 차고 온 것 같다. 아주 잘했어.

 길 중간쯤 무덤이 있는데, 그 뒤에 나무 두 개가 있었다. 긴 산행에 지쳐있던 터라, 이걸 보고 다 도착한줄 알고 좋아했지. 그런데 천자암은 여기서 10분 정도 더 가야한단다. 아아 웃어도~ 눈물이 난다~.

천자암으로 가는 길

 

송광사 천자암 정자

 산 중턱에서 보니 절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암자라 그런지 경치는 정말 좋은 곳이다. 등산 안하고 왔으면 산책처럼 더 잘 올수 있었을텐데. 

 

 쌍향수는 생각보단 그냥 그랬다. 그리고 흔들어야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접근금지라 만질 수가 없었다. 멀리서 손을 들어 소원을 빌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단 말이 있다. 예전에 그 말을 들었을 땐, 그만큼 별똥별을 보기 힘들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별똥별이 떨어지는 찰나에도 말할 수 있을만큼 간절한 마음이라면 다 이루어진다는 뜻 같다. 요즘은 딱히 구체적으로 빌고싶은 소원이 없다. 그냥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빈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걸까, 아니면 간절함이 사라진걸까?

멀리서 소원을 손을 내밀어 소원을 빌어본다.

 

절에 가지런히 놓인 스님들의 신발

 

  절에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트럭이 들어왔다. 운전 중이던 스님이 다급하게 창문을 내리시더니 우리를 불러세우셨다. 나는 뭘 시키려나 보다 했는데, 태봉이는 뭘 주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태봉말대로 스님은 불경을 선물로 주셨다. 마음이 따뜻하신 분. 산 아래까지 태워다 주신다면 그게 더 선물이었을텐데…

 

 


7) 22:00_ 귀가

 

연양갱-연양갱이야~

 휴게소에서 십원빵을 샀다. 얼마 전 경주를 다녀온 성임이가 생각나서 먹어봤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시간상 저녘을 못 먹을 것 같았는데, 다들 트렁크에서 주섬주섬 간식을 꺼내줘서 잘 먹었다. 태봉이 일정이 생각보다 늘어져서 미안하다며 차를 샀다. 힘들긴 했지만 덕분에 즐거웠는데 미안해하기만 그녀. 

 

 서울에 오니 9시가 다됬다. 오는 길에 스토리를 만들면서 왔는데도 여전히 올릴 게 많았다. 집중하느라 길에서 잠깐잠깐씩 멈춰서 집에 오니 11시였다. 씻고 나서 바로 자고 싶었는데, 빨래들이 쌓여있어서 다 접고 커버도 씌웠다. 드디어 이틀 만에 잘 수 있네. 오늘은 정말 하루를 꽉 채워보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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