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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7월 네 번째 일기 (07.22~07.28)

by 킹쓔 202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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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2.월_ 출근이 참 어려운 거였구나

 
 근거리에서 출근한다는 건 엄청난 복지였다. 아침에 엄마가 컴퓨터 설치를 해달래서 시내로 나갔는데 여간 힘이 들더라. 뭐 한 시간 정도되는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대라 그런가? 오랜만에 느끼는 불편함이었다. 

 헷갈리지 않도록 전선별로 이름표도 붙여주고, 윌라 틀어놓고 정리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점심으로는 자주가던 칼국수집을 갔는데 예전보단 맛이 좀 못한 느낌이었다. 면이 텁텁해지고 국물도 덜 시원하달까? 요즘 먹는거 다 맛있게 느껴지는건가 했는데 그건 또 아닌 가보네.

 집에 와선 심지가 일본여행에서 사온 바스크 치즈게이크도 먹었다. 얼마 전 먹었던 치즈인더스트리보다 유지방맛이 더 깊고 풍부해서 맛있었다. 김은진 이거 안 먹은 거 후회할텐데. 정말 아주 맛있다.
 
 항공편 시간이나 출국일에 대해 자꾸 묻는 아빠를 견디기 힘들었다. 못 갈수도 있다고 혹시 그 날 볼일이 있으면 가도 상관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준비했던 걸 돈 때문에 접어야 될지도 모른단 말에 아빠는 아무말이 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맘이 편치가 않네. 그러니 다들 그만 묻기. 


07.23.화_ 뿌염뿌염

 

 드디어 뿌염을 했다. 그거 조금 바꾸긴 한 건데 확실히 인상이 더 깔끔하고 또렷해보였다. 은행에 OTP랑 트래블카드를 발급 받으러 간 김에 대출상담도 또 받아봤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왔다. 건강식을 먹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맘터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은 햄버거는 너무 바삭바삭하고 양추도 신선해서 맛있었다. 근데 감자튀김이 너무 눅눅했고 콜라는 그냥 그랬다. 

 집에 있었는데 너무 더웠다. 벌거벗고 버텨보려고 했는데 못참겠어서 근처 카페로 왔다. 밖을 나서려는 데 못보던 종이 있었다. 아빠한테 물어보니 행복을 불러들이는 종소리라고 한다. 난 밤늦게 나가는 몽지 감시용인줄 알았는데. 그럼 행복을 많이 받으려면 자주 들락날락 해야하나. 

 샌드위치사면 음료 2천원 할인 해준다고 해서 덜컥 샀는데. 빵이 반쪽이 들어있는걸 보면 그리 싼 건 아닌 듯 하다. 집중이 잘 되서 그동안 밀렸던 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일본인 두 명이 큰소리로 떠들었다. 조용하고 유순한 일본사람 이미지는 편견이었나? 버텨보려고 노력했지만 힘들어서 집으로 왔다. 뭐- 그래도 세 시간은 있었으니 한일전 자존심은 지킨 걸로 해주자.

 위대한 아바이 동무께서 드디어 에어컨을 틀어주셨다. 아 - 이것이 천국이구나. 오늘도 판이 어그러져서 심란해죽겠는데 아빠가 출국일날 몇 시에 나갈거냐고 물었다. 눈물이 핑 고여서 뭐라 더 말도 못하고 나왔다.

 어슬렁어슬렁 길을 걷다가 지희가 소개해줬던 타코야끼집으로 갔다. 대파맛 먹을까 치즈맛 먹을까 고민하다 치즈를 시켰는데 너무 소스가 얼벅쳐있고 짰다. 그래도 여전히 바삭한 맛은 살아있어서 좋았다.

 이제는 뭐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그냥 밀항자처럼 일단 가는걸까? 만주벌판에 살던 조상님처럼 그렇게 살아볼까? 모르겠다 나도 이젠. 그냥 모든게 알아서 다 잘 될 것만 같다.


07.24.수_아침점심저녘 바쁘다 바빠

  
 아침 일찍 엄마를 보러 시내로 나왔다. 자주 가던 슈퍼에서 라면도 먹었다. 분식집처럼 식사도 파는 집인데 정말 내 기준 라면집 탑이다. 여기까지 와서 안 먹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 시켰다. 마침 딱 주머니에 3500원도 있었고. 간단히 토마토로 아침을 먹었는데도 여전히 한 그릇을 비워낼 정도로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밥도 주시고 진짜 여전히 끼깔난 집이야.

 점심은 엄마랑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난 라면을 먹고 배탈이나서 샐러드를 시켰고 엄마는 크림파스타를 주문했다. 많이 짜거나 달지않고 깔끔해서 맛있었다. 바나나푸딩이 있길래 태봉 생각도 나고 해서 시키려다 엄마는 안 먹겠데서 말았다.

 하늘은 왜 이리도 푸르를까? 이번 주 다 비소식이던데 또 왜 이렇게 맑은건데? 이럴거면 산에 갈걸 아쉽네. 약속을 너무 주렁주렁 잡아놨다.

 엄마는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 일이 잘 풀릴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이나 그 말을 믿고 싶은 사람이나 모녀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저녘 약속때문에, 점심만 먹고 서둘러 강남으로 이동했다. 사람들 만나기 전에 극징으로 가서 데드풀과 울버린을 봤다. 가기 전에 티 멤버십 다 쓰고 가야되거든. 이것 때문에 청년 요금제 바꿨는데 안 보면 아깝잖아.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영화는 그냥 그랬다. 심지 데려왔음 좀 욕먹었을수도? 엑스맨이 다시 살아돌아와서 좋았지만, 데드풀식 유머도 나쁘진 않았지만, 시간 가는지 모르고 볼 정도는 아니었다.

 극장에 그냥 들어가긴 애매해서 예의상 팝콘도 샀는데 너무 눅눅했다. 몇 번 손이가다 말아서 영화가 다 끝난 후에도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버리긴 아까워서 들고 나왔는데 조금 짐스럽긴 했다.

 약속시간까지 조금 여유가되서 역 근처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춘식이 생파에 갔다가 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잘 참아냈다. 올리브영도 가고 지오다노에서 옷 구경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맘에 드는 옷이 꽤 있었는데 내 사이즈는 없거나 매진이라서 못 샀다. 어차피 이제 떠나는데 짐 더 늘리면 뭐하나, 어쩌면 하늘이 충동소비를 잘 막아준 환경이었을수도.

면세점에서 사려고 했더니 품절

 

 저녘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코코를 마주쳤다. 예전에 상해 있을 때 생각도 나고, 반가워서 쳐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와 불쑥 손을 내밀었다.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를 뻔(혹은 질렀던 것 같기도), 골든 팍이었다.

선물도 준비해 온 그, 제법이구만. 사전예약자들이 많아서  웨이팅 길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담은 금방 들어갔다.

 드디어 요술초를 쓸 날이 왔습니다! 춘식이 생파 다음은 재화생파! 자기 생일 때 들고왔던 거 그대로 가져왔다고 눈치없이 얘기한 박씨 정말 혼내주고 싶었는데 지연님이 대신 잘 혼내줬다. 호호 뿌듯~ 어쨋든 가기 전에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어서 기쁘구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니 떠나는게 제법 실감이 났다. 아니면 이제 뭐가됬든 놔버리고 그냥 가기러 한 마음가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산이 아닌 빵과 함께 가볍고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진 신기한 인연. 우리의 공통점은 빵을 좋아한다는 것 보다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선 지연님의 편지를 읽었다. 밝은 노래도 듣고 있었는데,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야경 덕인지 마음이 간지러워졌다.

 만난 지 두 번 밖에 안되는 내게 이렇게 한 자 한 자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주다니, 조금 감동인걸. 값비싼 선물보다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 귀한 정성을 또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골든팍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건 그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주변에 늘 사람들이 많아 좋은사람들도 배로 많아보이는 걸까? 청담대교를 따라 아득해지는 서울의 모습을 보며 이런 저런 아쉬운 마음을 보내본다.


07.25.목_ 소원성취, 타이거버스!

 
 왔다 왔어 드디어 왔다, 내 새로운 귀가 되어줄 이어폰. 버즈 3년 째 잘 쓰다가 버즈 플러스로 바꾸자마자 반 년을 못 가고 연 달아 잃어버렸지.

이거 때문에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나왔잖아? 재화픽 광화문 샌드위치맛집 커피원. 알고보니 주희도 아는 유명맛집이었네. 근데 딱 마감시간 맞춰서 도착해서 마감 중인 알바 분한테 제발 팔아달라고 사정사정 했다. 오늘이 마지막이고 나 다음 주에 출국한다고. 뭐-틀린 말도 아니잖아?

 불쌍한 나를 보우하사 알바분이 서비스도 주셨다. 샌드위치 속 진짜 짱짱하고 쫀득빵까지 최고. 커피원 많은 광화문 직장인들을 먹여살려주고 계셨군요. 다음에 귀국하면 또 올게요.

이순신 장군님 더위로부터 지켜주세요

 그런데 생각보다 안 더워서 밖에서 주희를 기다렸다 흐흐,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그녀. 또 봐도 반갑구먼. 후딱 가서 줄선 덕에 2층 버스 루프탑 좌석에 탈 수 있었다.

 

 

 출발 전엔 더워 죽더니 그래도 좀 달리니까 꽤 시원해졌다. 주희가 말하는 파묘 속 플라자호텔도 보고, 그냥 다닐 땐 몰랐던 서울 구석구석을 보니 특별하고 신기했다. 버스 천장이 높아서 나무가 닿거나 이정표가 움직이면 아찔해졌지만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여우의 허리를 끊고..?

 

드디어 보는 일몰과 한강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먹는 샌드위치

 

한동안 그리워질 것 같은 서울야경

 


07.26.금_ 가장 바쁜 날


 출국 마지막 평일. 진짜 너무 바쁘고 정신없고 비지비지 환장데이. 새벽까지 고민하던 노트북 주문하고, 은행 인증서 상담전화하고, 트래블월렛 설치하고, 토스도 깔고, 짐 다시 정리하고, 무게 맞춰 빼내고.

늦게 보내는 판매업체 조지고 고속도로 타기 싫다는 퀵 아저씨 달래주고, 배고픈 내 속도 달래주고, 더러운 방 치우고.

은행 고객센터 전화받고 처리해주고, 연락 오는 데 답장해주고, 저녘약속 나갈 준비한 나 정말 대단보스다. 발 미끄러워져서 꽈당할까봐 <나는 다음 주에 출국하는 사람모드로 조심조심 움직였다.

 얄밉게도 내가 지하철을 타자 거짓말처럼 비가 사라졌다. 1호선을 타고 쭉 오니까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 성임이가 얼마나 먼 길을 항상 달갑게 와주었던 건가 생각이 들었다.

 부천역은 매우 커서 출구로 나가는 계단도 거대했다. 큰 맘먹고 계단 다 내려왔는데 눈 앞에 보이는 이마트오 연결되있던 에스컬레이터. 참 나,,, 이럴 줄 알았어.

 다시보니 사회 초년생 때 왔던 곳이었다. 어쩐지 익숙하던 풍경이 보이더라, 저 쪽 맥도날드에서 회사 다니기 싫다는 25살의 내 자신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날씨가 너무 습해서 그런지, 아까 데오티슈를 써서 그런건지 목이 가렵고 따끔따끔 했다. 내일이 당장 주말이라 마음이 급해서 병원으로 갔다. 데스크에서는 환자가 많아서 한 시간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밥 먹고 다시 올까 싶어 성임이에게 연락했는데 진료 보고 있으라더니 병원으로 찾아왔다. 두바이 쵸콜렛과 함께!

 정말 대기한 지 시간이 다 되어서 들어갔다. 다행히 큰 일은 아니라서 약을 타서 식당에 왔다. 성임이가 가는동안 덥다고 택시타고 가재서, 난 걸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근데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서 타길 잘 한 것 같다.

 국가대표 레슬러가 운영하는 국가대표 쪽갈비. 성임이가 자주 말해서 진짜 궁금했는데 기본 반찬인 미역국부터 김치 수제비, 갈비까지 다 맛있었다. 너무 맛있는데? 내일 여기 또 와야되나…?

 

 주변사람들이 가끔 흘려가듯 한 말을 기억했다 챙겨줄 때가 있다. 필요하다던 약이나 보고 싶다던 책, 먹고 싶다던 음식 등. 그럴 때 마다 얼마나 귀한 마음들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감사하게 된다.

사랑이 넘치는 성이미룽의 하트하트들

 사실 두바이 쵸코렛은 거의 삐라 폭탄급으로 좀 자주 언급했던 아이템이긴 하다 깔깔. 어쨋든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었다. 남들은 고급진 크런키맛이라고 특별할 거 없다는데  개인적으론 꽤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요즘 워낙 유행이라 여기 저기 다 만드는 것 깉은데, 재료도 그렇고 어디서 만드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근처 카페에서 흑임자랑 팥이 낭낭한 케이디저트도 먹어주고. 얼마 전에 주희가 가기 전에 케이 디저트 먹어야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먹네. 토핑을 꽉꽉 담아주셨지만 반만 담았으면 오히려 담백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부천은 정말 번화가였다.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우리동네랑은 달리 유행과 트렌드가 넘치는 동네랄까? 이런데서 살아야 성임이처럼 트렌디하고 유행을 잘 아는 사람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꼭 비행기에서 보라는 편지를 전해주고, 우리는 헤어졌다. 애틋해지며 아쉬운 작별은 아니었고 내일 또 다시 볼 것 같은 밝은 표정으로. 이런 인사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가볍고 신나는 기분으로 헤어지기.


07.27.토_떠나지 못할 사람을 위한 송별회


 어제 엄마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잠깐 얼굴을 보자고 했다. 나는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예감이 결국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말했던 내 동앗줄은 내려오지 않았음을. 그 사실을 전달받자마자 온갖 원망과 투정을 부리며 엉엉 울었다. 결국은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비는 내리고 우리는 우산도 없었다. 우중충한 하늘보다 더 우울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훌쩍였다. 이건 다 누구때문일까. 매일 내일로 미루는 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엄마만 철썩같이 믿고 있던 나?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원망할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나만큼이나 엄마도 최선을 다했고 간절히 노력해왔다. 그리고 깨달았다면 더 이상의 투정은 멈춰야했다. 또한 어쩌면 이게 엄마와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함에 아무말도 꺼내지 못하는 엄마에게 나는 정말 괜찮다고 달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애들과 저녘을 먹으러 명동으로 갔다. 맘 같아서는 정말 다 취소하고 아무 생각없이 누워있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나를 위해 모이는 친구들을 생각했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나의 마지막을 위해 모이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 마음에 부응하지도 못할 현실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가고싶던 오코노미야끼집, 내가 먹고 싶던 식당들을 마지막으로 갔다. 애들이 빙수를 먹는 동안 노트북에 액정필름도 부착하러 갔다. 일단 준비는 하자 혹시 모르니까,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우와 오코노미야끼 토마토맛/ 오리지널맛

 

우와 야끼소바 바질/ 시오

 

노트북 필름 부착 완성 / 명동피자 최애메뉴 게딱지밥, 치즈피자

 

 


  하지만 억눌렀던 감정은 스멀스멀 기어나왔고 감출 수 없었다. 명동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마칠 때쯤, 너무 힘들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친구들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고 잘 다녀오란 말에 나는 못 그럴것 같다고 엉엉 울어버렸다.

 버스를 타서도 눈물이 나서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었다. 내가 맘 속에 품고 있는 마음이 단순한 미련인지 이루지 못할 꿈 때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혼자 시간을 좀 보내고 싶다며 정류장에서 따로 걸었다. 하염없이 걷다 잠깐 서서 핸드폰을 봤는데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내 뒤를 따라온 수영이였다.

 엄청 지쳐보이는 수영이가 생각 할 시간은 좀 시원한데서 하면 안되겠냐고 했다. 우리는 파워냉방 중이라고 현수막이 붙은 술집에 들어갔다. 내 얘기는 전혀 안하고 수영이 얘기만 했다. 걔는 그런애다.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으면 묻지 않는 사람. 난 그게 좋았다.

 그리고 술집에 들어왔단 말에 심지가 다시 왔다. 심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담담하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냐는 말에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했다. 심지는 그런 애다.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답을 찾고 들어야 하는 사람.

 서로 다른 두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명쾌한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 결 기분이 나아졌다.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곁을 지켜주는 이가 있어서.


07.28.일_ 기적같은 선물


 밤새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공허한 마음이란게 이런 거 였나 싶었다. 가슴 한 구석이 텅 빈것처럼 마음이 안 좋았다. 비자만 나오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 깟 몇 푼 때문에 이렇게 접어야 한다니.

 출국을 걱정하며 안부를 묻는 연락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  일거다. 나를 향한 관심이 버거울만큼 내 상황이 버겁고 에너지가 딸렸다.

 아무리생각해봐도 달랑 일주일치 생활비만 들고 떠나야 하는 건 꽤나 무모해보였다. 냉정하게 이대로 더 매몰비용을 늘리기보다 어서 꿈을 접는게 현명했다. 내 눈치만 보고 있는 부모님들께 안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 자신도 설득할 수 있도록.

 출국을 하지 않겠단 말에 제일 기뻐했던 건 아마 아빠였다. 안 가는게 아니라 못 가는 거라고 엉엉 울어대는 나를 받아주기에, 아빠는 여전히 공감에 서투른 사람이었다. 화가 나다가도 이럴 수 밖에 없는 나의 무력함에 계속 울기만했다.

 나는 현실에 설득되지 않았다. 아무리 닥친 상황을 일깨우려해도 어떻게든 가고 싶었다. 이게 뭐라고 고작 외국비자일 뿐인데, 간다고 어떤 부귀영화가 보장되있는 것도 아니잖아.

 무거운 마음으로 캐리어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때 수영이가 점심을 먹자고 전화가 왔다. 메뉴는 내가 가기 전에 꼭 먹고싶던 음식인 갈비였다. 사실 입맛도 별로 없었지만 낙심해서 끼니거를까봐 걱정하는데, 거절해선 안된단 생각이 들어서 나갔다.


 새로 생긴 명륜진사갈비로 갔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다. 고기질도 괜찮고 종류도 생각보다 풍부했다. 밥을 다 먹고 빈둥대는데 심지가 카페에 가자고 했다. 짠순이 심지가 카페에 먼저 가자고 한 건 거의 처음이라 의아했지만 따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2년의 시간을 받았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럽고 이걸 받아도 되는 건지 생각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 새벽까지 이렇게 신세를 지면서까지 가는게 맞나 고민했다.

 늘 그랬지만 고민의 끝은 가자였다. 어차피 이럴거면 더 시간낭비 하지 말자는 마음에 결심을 굳혔다. 대체 엄청난 환상에 젖어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비전이나 믿을만한 밑천도 없는 내가 이렇게 유럽에서의 삶을 열망하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변치않는 마음이 있다면 뭔가 운명적인 것을 만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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