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4년 8월 열 번째 일기 (08.17~08.18)_ 제법 업그레이드 중인 런던살이

킹쓔 2024. 8. 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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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토 [워홀+18]_ 동네탐방의 하루

 

싱그러운 노란빛이 감도는 아침

 아침은 계란 네 개 푼 오믈렛과 복숭아 남은 걸로 대충 차려 먹기. CV 마무리 할까 슬슬 나가볼까 고민하던 중에 누가 노크를 했네. 샹하이남이 체크 아웃 전에 인사하는 건가 싶었는데, 저번에 봤던 열쇠 청년이 동유럽 수리 아저씨랑 같이 왔다.

이젠 알아서 신발벗고 들어오는 착한 아저씨들

 사실 지난 번 이후로 잘 쓰고 있긴 한데, 그래도 새걸로 바꿔주면 좋지. 교체하는 김에 비밀번호는 내가 설정해도 되냐니까 그건 안된단다.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공유되니 걱정말라했지만, 수리공 아저씨랑 판 교체 할 때마다 자꾸 비밀번호를 큰 소리로 말해서 걱정이 안될리가 없었다. 근데 또 나한테 알려줄 땐 조용조용 말하는 거 왜 이렇게 웃기지. 참 순수한 사람들이구만.

 결국 전통 있는 비밀번호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나. 그래 이것이 영국이로구나. 그래도 새 잠금쇠 생겨서 조금 신나기도 해서, 밀레니얼 스타일로 입고 헤드셋으로 뉴진스 노래 빵빵 들으면서 근처 스포츠 용품점으로 갔다.

 어디든 좀 나갔다오고 싶긴한데, 아마존 택배때문에 또 멀리는 못나가겠더라. 동네나 한 바퀴하자고 나와본 데가 여기였는데, 꽤 볼만했다. 매번 공원에서 공 가지고 노는 애가 부러워서, 나도 하나살까 하다가 취직 하고 난 다음 사기로 미뤘다. 참나 만원도 안 하는데 너무- 아껴야지 뭐…

 

Sports Direct · 83-89 Mile End Rd, Bethnal Green, London E1 4UJ 영국

★★★☆☆ · 스포츠용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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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스럽게 보이는 넓은 매장의 마트를 발견해서 놓치지 않고 구경하고 왔다. 스포츠용품, 전자제품,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각각 붙어서 운영되고 있었는데, 시스템을 보니 아마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타깃에서 운영하는 것 같다.
 

 

Halfords - Mile End Road · Anchor House, Mile End Rd, Bethnal Green, London E1 4UJ 영국

★★★☆☆ · 자동차 부품 판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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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a Stepney Green Supermarket · Anchor Retail Park, 123 Mile End Rd, Stepney Green, London E1 4UJ 영국

★★★☆☆ ·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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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경하다보니 잃어버렸던 내 이어폰들도 많이 만나고, 그게 한국이랑 비슷한 가격이란 것도 알게되고. 삼성이랑 엘지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조금은 기분이 요상히기도하고. 매일 또 다른 세상을 배워가는 기분이네. 그래요, 제가 바로 엘지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거든요.

 

Currys · Unit 3, Anchor House, 125 Mile End Rd, Bethnal Green, London E1 4UJ 영국

★★★☆☆ · 전자제품 판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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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공을 사는 대신 캠핑용 칼과 포크, 수저를 샀습니다. 기념으로 맛깔스런 점심을 차려 먹었지요. 이제 프렌치렉까지 먹게되었다네. 점점 풍요로워진 식탁만큼이나 내 영국생활도 발전하길 바라.

 주말이라 텅 빈 플랫. 저녘밥 좀 해볼까했더니 라따뚜이가 나타나셨다. 자꾸 아무도 없는데 부스럭 소리가 나서 보니 작고 검은게 후다닥 자리를 피하는게 보였다. 한번도 태어나서 본 적 없는 쥐를 만났다. 너무 무섭고 소름이 끼쳐서 집 밖을 나왔다.
 
 그리고 밖에서 아마존 아저씨를 기다렸는데 왠 흑인이 정말 훅 왔다 지나갔다. 그가 야광조끼를 입지 않았더라면 스쳐지나가는 행인정도로 생각했을 것이지만, 일단 오늘은 부피가 얇아 우체통에 잘 놓고 갔다. 보니까 진짜 던지구 가는구나. 그래도 다행히 이번엔 받았다. 내일 마우스피스도 이렇게 잘 넣고 가셨으면 좋겠네. 
 
 집으로 돌아와 택배로 받은 휴대폰 액정을 갈았는데, 뭔가 조잡스러웠다. 한국에서 쓰던 것 보다 마감처리가 부족했고, 직관적이고 싸긴 한데 좀 어설펐다. 아 한국에서 액정필름 더 사올걸. 
 
 저녘을 위해 용기를 내서 주방에 올라갔는데 파힐이 있었다. 이제 이름을 아니까 제대로 적을 수 있다. 내 옆방에 사는 파키스탄 청년. 항상 인상쓰고 있고 말 걸면 단답형이라 좀 차갑게 보였는데, 의외로 가끔 웃기도 하는 츤데레 스타일.

 

 옆에서 요리 중인 그를 따라 나도 뭔갈 만들어보았다. 친구를 위해 요리한다는 그는 제법 맛깔스러워 보이는 요리를 만들었다.  

 근데 내건 너무 맛이 없었다... 하 코인육수도 넣었는데 왜 이리 맛이 없을까...정말 내 요리솜씨는 별로구만. 앞으로 일취월장 할 일만 남았어.


08.18.일 [워홀+19]_ 배 부른 소리

 

 리버티백화점에 가볼까 싶어서 토튼햄코트로드로 나왔다. 예나랑 저번에 왔던 곳이네, 이젠 휴대폰으로 플랫폼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오지롱요. 인스타에서 봤던 비디오 아트를 보러갔는데 생각보단 허접해서 금방 나왔다. 이것만 보러 왔으면 큰일날 뻔했네.

 

The space in between · The Now Building Rooftop, Outernet, Denmark St, London WC2H 0LA 영국

★★★★☆ · 관광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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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옥스포트스트릿은 대형상점이 많았다. 유니클로부터 프라이막, 미니소까지 들러서 신나게 구경하고 왔지. 확실히 프라이막은 정말 신세계였다. 합리적인 가격에 리빙부터 의류, 문구까지 이것 저것 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아직은 공식 무직상태라 맘 놓고 턱턱 사진 못했다. 제법 내 맘에 드는 로브가 있었는데 삼만원도 안됬지만, 고민끝에 포기했다. 확실히 플랫에 살다보니 훅 걸치고 나가기 좋은 옷이 하나쯤있으면 좋은 것 같다. 영국에서 내 사이즈는 스몰이나 미디움 정도인데, 여기서도 사고 싶은옷은 대부분 사이즈가 없는 슬픈 사실.

 

Primark · 14-28 Oxford St, London W1D 1AU 영국

★★★★☆ · 의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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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티백화점까지 가고자 나왔으나, 프라이막에서 짐이 너무 많이 늘었다. 옷 대신 산 서랍장이며 거울, 그릇 등이 모이니 무게가 꽤 많이 나갔다. 얘를 들고 더 걷는 건 무리겠다 싶어서 그냥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뭐- 오늘만 날인가. 자주 오겠지. 

프라이막에 사로잡혀버린 나/ 옷대신 산 세간살림/ 점심은 인도음식

 

뉴 살림 뉴룸, 셋팅 완료

 사실 아까 먹은 점심이 너무 별로였어서 다시 밥을 해먹었다. 구글평점 최고의 비건식당이랬는데, 글쎄요 저는 비건이랑 안맞나 봅니다. 나름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거의 반 이상 남길정도로 그냥 그랬다. 집밥이 최고구만.

내가 만든 점심 최고/ 역에서 만난 귀여운 키키

 집에만 있다보니 너무 심심해서 캐치볼세트를 샀다. 근데 혼자하니까 진짜 너무 재미없어서 부엌에서 놀고있던 플메를 잡아왔다. 공원에 가서 공 놀이 하는게 어떻냐고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꿈왈. 컴퓨터 관련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는 휴학하고 4개의 소매점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근데 한 10분 놀아주더니 계속 휴대폰을 했다. 옆에 있던 아줌마가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글러브를 건내주더니 저 쪽가서 휴대폰을 했다. 짜식이 안 바쁘대놓고 참나 하기 싫으면 말로 할 것이지. 사실 뭐 나도 한 10분하니 좀 물리긴 했다. 

요리옹 파힐과 요리하는 아빠

 그래도 몸을 움직였더니 배가 좀 고팠다. 라면이랑 밥을 먹었는데 진짜 배불러 죽는 줄... 원래대로 계란 네 개 넣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밥 다 먹고 내려가려는데 꿈왈이 장을 봐와서 요리를 시작했다. 신기해서 구경해도 되냐니까 흔쾌히 승낙하길래 옆에 앉았다. 곧 파힐이 올라와서 요리를 했다. 그는 꽤 수준급의 칼질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양파나 토마토 등을 굉장히 얇게 저몄다. 결혼할 약혼자가 있다는 그는 정말이지 일등 신랑감이 분명했다. 

 

 아랫층의 아카리사네 가족들이 저녘을 먹으러 올라왔고, 주방은 곧 가득찼다. 그녀의 아빠인 필립이 괜찮다면 저녘을 같이 먹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저번에 차 마시자고 한 것도 거절했는데, 또 거절하기뭐하기도 했고. 호주 사람들 음식은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게 저녘을 세끼 먹게 되었습니다.

 맛있다 연발 하면서 먹었는데 사실 난 너무 배가 불렀다. 맛이없는 건 아니었는데 세 입 먹고 나니까 좀힘들었다. 그런데 파힐이 이것도 먹어보라고 줬고,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는 그렇게 저녘을 세끼를 먹게 되었다. 그래도 조금 즐겁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서적 지지가 중요한 내게, 오랜만에 느껴보는 풍요로운 밥상이었다. 

 

 사실 몇 주전만 해도 내가 생각한 영국생활은 빈곤과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불을 가한 따뜻한 음식이 그리웠고, 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았으며 외식보다는 값싼 레디밀을 선호했지. 그러나 오늘은 밥을 세끼나 먹었네. 역시 인생은 길게 볼 일이야. 

돌아온 택배

 그렇게 배 터지게 먹고 있었는데, 아랫층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 그는 커다란 상자를 들고 혹시 이 물건 주인이 나냐고 물었다. 나는 뭔지도 모르면서 본능적으로 맞다고 대답부터 했고, 아까 콘센트를 주문한 게 벌써 왔나 싶었다. 그러기엔 너무 큰 상자였고, 뜯어보니 전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햇반과 김이었다. 

 

 알고보니 식당주인이 분실될까봐 우려해서 맡아뒀다가, 또 다른사람에게 그걸 맡기고, 그러다보니 택배가 조금 겉돌았나보다. 흑흑 영국 치안 안 좋다고 무시했는데 그래도 잘 찾았네. 환불까지 다 받았는데. 참나- 그래도 좋다좋아.

 

 선반에 자리가 없어서 박스를 갖고 방으로 내려왔다. 한국에서 였다면 더러운 택배박스를 어떻게 집에 들일 수 있겟냐며 난리 쳤겠지만, 이젠 뭐 아무렴 어떠랴-. 잃어버린 줄 알았던 녀석들이 돌아와서 기분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나 정말 한국에서 작은 걸로 불평 많이 하며 살았네, 돌이켜보면 풍족한 삶에서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였어. 

 

 저녘을 세 번 먹어서 매우 배가 찬 지금, 이 불편함이 조금 행복하다고 하면 우습게 들릴까?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을 수 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왠지 모를 그리움을 안고 오늘도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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