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1.수 [워홀+22] _알차게 하루 보내기
생각보다 별로였던 납작 복숭아는 의외로 후숙이 되니 맛있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 날 이후로 세인즈버리에 들어오지 않는 납복...
어떻게 이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하나... 정녕 어떤 카페도 나에게 연락을 주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지. 밖으로 나가자 싶어서 폰 하나 덜렁 들고 나왔다.
우연히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TK.MARKS라고 유명한 소매점이었다. 주로 브랜드 의류와 잡화류를 싸 파는 데 화장품이랑 식품도 가끔 판다. 운동화나 옷 같은 거 사고 싶은 게 많았는데, 꼭 필요한거라기보다 그냥 맘에 드는 것들이 많아서 내려놓았다. 나 아직 백수자농...
TK Maxx · 33-35 Gracechurch St, London EC3V 0BT 영국
★★★★☆ ·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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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냥 나오긴 아쉬워서 5파운드짜리 애드거 앨런포 단편선을 하나 샀다. 스벅에 지원한 기념으로 책도 읽을겸 근처 매장에 들어갔는데, 이게 왠일? 주문한 거 받고 자리에 앉자마자 문 닫을 시간이란다. 여기 대부분이 오피스 상가라 출퇴근 시간에 맞춰 운영을 하는 듯 했다. 아니- 그럴거면 주문 전에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4파운드 어쩔거냐고. 어쩌긴 그냥 화장실 쓴 값으로 치자...
Starbucks Coffee · 11 Leadenhall St, London EC3V 1LP 영국
★★★★☆ · 커피숍/커피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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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나왔다가 키가 없어서 집에 못들어갔다. 다행히 옆방 에어비앤비애들이 외출하는 길에 열어줘서 잘 들어갔다. 원래 키박스에 메인도어 열쇠를 넣어두는데, 왠일인지 비밀번호도 바뀌어있고 열쇠도 하나도 없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옆방 아저씨도 문 못 열어서 1층에서 창문 너머로 오픈더도어 플리즈 하고 있었다. 참나- 나도 내 방 창문 모르는데 저 아저씨는 어떻게 알았지?
지난 번 이후로 씨드르 하나씩 먹고 자는 게 습관이 되었다. 말이 사이다지 4%긴 하지만 그래도 알콜이 들었으니 술은 술인데. 달달하기도 하고 적당히 알딸딸해진다. 싸기도 하고. 주희가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면 기분이 좋다고 했는데, 이제 그게 뭔지 제법 알 것도 같다. 물론 그런 거 치곤 조금 빈도가 잦긴 하지만.
쿠말한테 난 크리스피크림도넛처럼 칼로리 덩어리는 안 먹는다고 해 놓고 엠티칼로리의 대표주자인 술은 맨날 먹는 모순덩어리, 나. 사온 책 읽었냐구요? 당근 안 읽음.. 한국에서도 사다만 놓더니 여기서도 이러네.
08.22.목 [워홀+23]_ 한국에서 지내듯 비슷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영국의 체육시설 시스템을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하루하루 그냥 보내기엔 아쉬워서 무료 PT 신청해놨거든요. 간만에 몸풀고 운동도 하고 영국 헬스장도 체험해볼겸 왔지롱.
내가 간 곳은 꽤나 고급진 헬스장이었는데, 시설도 깔끔하고 최첨단이었다. 체형분석도 단순 인바디가 아니라 3D 스캔을 통해서 내 몸의 문제점과 교정포인트들을 과학적으로 파악했다. 오른쪽 골반이 살짝 위로 올라갔고, 무릎 부상의 여파인지 약간 오른쪽 앞쪽으로 몸이 쏠려있다고 했다. 그 외에는 균형도 괜찮고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인바디결과는 체중이 4kg나 빠져있었다. 참나 3주만에 사키로가 빠지다니. 물론 근육도많이 빠지면서 지방양은 조금 오른 것 같긴 하지만. 파운드 쓰는 국가에서 인바디덕에 킬로단위로 편리하게 내 몸의 변화를 확인했다. 옆에 여자 트레이너가 인바디 너네 나라거잖아?해서 오 아네- 우리나라거지 하고 또 뿌듯 히히.
수업도 괜찮았다. 베르게스는 이 짐의 총 책임자처럼 보였는데, 굉장히 매너가 좋고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했다. 덕분에 알아듣기도 쉬웠고 운동도 재밌었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던터라 어학원 등록하는 셈 치고 수업등록할까 고민했는데 꾸말이 그냥 퓨어짐 가서 하란다 깔깔. 그건 그래 백수씨 정신차려요!
Precision Health Gym - Whitechapel, London · 2-12 Cambridge Heath Rd, Bethnal Green, London E1 5QH 영국
★★★★★ · 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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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녘엔 마니를 만나러 소호로 나왔다. 약속시간보다 세시간 정도 일찍 나와서 구경이나 좀 할까 했는데 빅씨가 보이자마자 벌써 못참고 매장으로 들어섰다. 여긴 정말 마케팅을 잘하는 게 직원들이 정말 스위티들만 있다. 아저씨가 쇼핑백 필요하녜서 아뇨 괜찮아요 했는데, 아니- 작은 거엔 작은 게 필요하지라면서 쪼그만 미니백을 꺼내줬다. 거기다 예쁜 분홍 포장지도 넣어서.
작은 거에서 대접받은 기분이라 넘 좋았는데 나중에 영수증 보니 쇼핑백 값 받으셨더라구요 껄껄. 그래도 뭐 1파운드도 안했고 스텝들도 친절해서 만족스러웠다. 돈 많이 벌어서 여기 언니들이랑 하루 종일 놀고 싶다.
나온 김에 리버티도 들렸다.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유명 백화점은 우리나라 백화점들처럼 크고 깔끔하진 않지만 클래식한 세련됨이 묻어나는 곳이다. 곳곳에 예쁘고 정교한 작품들이 많아서 눈이 즐거웠다. 주말에 디온네 빈 손으로 가기 그래서 커틀러리코너에서 선물도 하나 샀다.
리버티 백화점 · Regent St., Carnaby, London W1B 5AH 영국
★★★★★ ·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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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니 비가 왔다. 마니가 소호 앞에 무슨 극장에서 보자고 해서 거기로 갔다. 계속 마니를 찾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가 다가와서 톡톡 인사를 했다. 참나 또 반갑구만. 근데 저번에 세인즈버리에서 윗집 아저씨도 그렇고, 역 지나가던 아카리샤도 그렇고 나는 여전히 누가 지나가는 걸 못 알아채는구만. 요즘 남들이 먼저 알아봐주고 인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 나의 아쉬운 시력이여.
마니는 게하에서 만난 내 첫 런던 친구다. 초반에 오자마자 집을 구할 때, 지랄맞은 루마니아 집주인한테 까이고, 사기꾼 같은 부동산한테 닭장만도 못한 집을 보면서 조금 서럽고 외로웠다. 앞으로 내가 있을 곳이 이런 덴가 싶어서 우울함에 침대에 누워 훌쩍이고 있었는데, 윗 침대에 있던 마니가 오렌지 반쪽을 건내줬다.
그리고 외국생활은 혼자 뭘 하기엔 너무 외롭고 힘든 것 같다며 꿍얼대는 내게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했던 그. 그때 내가 많이 슬퍼보였다나 뭐래나- 참나. Ph.D 중인 마니는 자기도 넉넉하지 않을 형편이면서 나한테 밥을 샀다. 얘 덕에 말레이시아음식을 처음 먹어보네, 리서치때문에 3일 밤을 샜다는 그는 그래도 출국 전에 나를 보러왔다.
시내 나온 김에 이것 저것 사느라 짐이 많아졌는데, 괜찮다며 손사레를 치는 내게 넉살좋게 나눠 짐을 들어주던 그. 성공해서 꼭 갚겠다는 말에 지금도 충분히 좋은 상태라고 건내던 그 말들이 참 많이 고마웠다. 우리는 헤어질 때 다시 보자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엔 자기 약혼녀와 함께 보기를 약속하면서.
Laxsa Soho · 37 Old Compton St, London W1D 5JY 영국
★★★★☆ · 말레이시아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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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쨔잔. 이제 저도 집에서 신발들을 내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프라이막에서 산 매트를 깔았더니 제법 그럴듯 해졌다. 어제 폴리가 원한다면 신발을 밖에내놔도 된다고 했다. 전에 물어봤을 땐 조이한테 물어봐야한다더니- 이젠 먼저 나서서 뭔가 도와준다. 갑자기 자기 일은 아닌데 내가 좋아서 내 방을 닦아주고 싶다고 노크를 하기도 하고 말야.
하튼 여기서도 나는 한국과 비슷하게 지내는 것 같다. 운동을 하고, 쇼핑을 하고, 친구도 만들고, 이웃들과 어울리고. 요즘은 노크소리가 그렇게 좋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내 방문을 두드려주는 사람들이 참 반갑고 기쁘게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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