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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8월 열 세 번째 일기 (08.23~08.24)_ 점점 따분해지는 백수의 하루

by 킹쓔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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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3.금 [워홀+24]_ 조금씩 지루해지는 백수놀이

 
 이제 슬슬 지루해지고 있는 백수의 삶. 이번 달에는 분명 뭐라도 하나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이 땅에선 그 작은 알바 자리 하나 얻는 게 이렇게 힘든가. 심지한테 전화 왔는데 왜 이렇게 반갑지. 마트 좀 돌아다니다 집 와서 꾸말이랑 시장 가려고 기다렸는데,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도 아무 말이 없는 그.
 
 솔직히 그냥 하는 말 인 거 알았는데, 다음에도 또 이러면 곤란할 것 같아서 모르는 척 혹시 오늘 가나 확인 차 연락한다고 했다. 그제야 브리스톨에서 친구가 와서 힘들 것 같다고, 늦게 연락줘서 미안하다는 녀석. 그니까 그럼 진즉 말해줬어야지 짜식이 말이야. 하지만 여기서 나는 순딩이 한국인, 괜찮다며 씨익 웃고 말았습니다.
 
 사실 약속을 가볍게 생각한 그 애보다, 그것만 기다리고 있던 내가 싫었다. 누군가에겐 바쁜 일상으로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일을 나는 하루의 큰 이벤트처럼 여기고 있던 게. 생각해보면 카페 잡 몇 개 넣어놓고 왜 연락이 없는걸까 하고 징징대는 것 같기도 하고.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막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고, 
 

 마냥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서,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손 놓고 있는 내가 싫다 정말. 그런데 그렇다고 또 마냥 걱정 없이 신나게 놀아 제낀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한국에 있을 때처럼 그냥 계속 미루는 습관이 따라왔나 싶기도 하고. 사실 맞지 뭐.  
 
 밤에 부엌이 왁자지껄해서 가보니 역시 쿠말이랑 파힐이 밥을 하고 있었다. 얘넨 왜 밥을 밤늦게 먹지? 그리고 정말 새로운 사람과 함께 있었다. 내가 생각한 친구인 또래 남자애는 아니었고 좀 나이가 남자분이 계셨다. 파힐보다 먼저 졸업하신 선배님이신데 이름 듣고 인사했는데 까먹었다. 
 
 그분은 무슬림답게 내게 무심함과 데면데면함의 중간 정도로 대하셨다. 마치 파힐이 처음 날 대하던 것처럼. 보수적인 문화라 그쪽 남자애들은 여자들이랑 대화하는 거에 익숙치 않다던 마니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도 내 편이 되면 그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없다는 게 그 쪽 세계 사람들이라네.

 어느 정도 공감한다. 지난 번에 올리브 오일을 사다 준 이후로 파힐은 나를 좀 더 친근하게 대해준다. 난 그냥 밥도 몇 번 얻어먹었고 어떻게 신세를 갚아야지하고 고민 하던 중, 요리를 하다 기름이 떨어져 곤란해진 그와 마주친 것이다. 그 길로 테스코를 들러 올리브 오일을 사다줬지. 그게 꽤 인상 깊었는지 그 날 이후로 좀 더 웃으며 대해주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어쨋든 조금 기분이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데 안정적인 쿠말이랑 파힐도 미래를 위해 저리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정작 더 노력해야 될 나는 늘어져서 시장 타령이나 해대고 있었다니. 누가 외국애들은 다 여유롭게 산다고 하나. 다들 한국만큼이나 열심히사는데. 그래서 그놈의 일 자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 런지, 모르겠다 나도.


08.24.토 [워홀+25]_궁핍했다가 풍족해졌다가


 내일 디온네 갈거니까 대충 있는 걸로 때우려고 했다. 그래서 그냥 라면먹고 엥간하문 음식 안 만들려구. 근데 또 그러다보니 너무 빈곤한 밥상이 되더라구. 샐러드나 만들어먹자 싶어서 밖에 나갔지.

 새로 뚫은 식료품점은 유기농 전문점이라 가격이 꽤 비싸지만 물건 품질들도 꽤 좋았다. 세인즈버리에서 품절됬던 납작 복숭아도 보이길래 냉큼 집어왔지.

 한 끼만 먹을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세 끼로 불어났다. 먹고 나서 조금 나른해졌다. 그러면 안되는 걸 알지만 호르몬 때문에 눕고 싶은 마음이 커서 넷플 틀어 놓고 누워버렸다.

오랜만에 보는 화이트칙스

 

내가 쓴 우르드어 "고맙습니다(슈크리아)" / 쿠말이 준 선물

 자려고 누웠는데 쿠말이 자냐고 연락이 왔다. 왜냐고 물었더니 줄 게 있다며 문 좀 열어 달란다. 참나 그냥 노크하면 되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좀 반가웠다. 호르몬 영향도 있고 제법 외로웠나보다.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자 쿠말은 멋쩍어하며 코스타커피에서 산 망고버쳐랑 포리지죽을 건내줬다. 뭔지 확인 안 해봐도 되녜서 니가 주는 건 뭐든 좋다고 했더니, 당황해하는 녀석. 다이어트 중인 것 같아 직원이 추천해주는 제일 저지방 식품을 사왔다고 한다. 지난 번에 바람 맞춘 게 제법 미안했나보다. 

 

 그러면서 일요일날 시장에 가는 거 어떻냐고 다시 묻길래, 그건 또 딱 잘라서 에둘러 거절해버렸다. 월요일은 바쁘냐는 말에 그 때 가서 보자며 대답을 미뤘다. 뒤끝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도 있겠지만- 아니 사실 조금은 맞는데 디온네도 가야되고 나도 마냥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긴 싫었달까? 뭐 이력서도 써야했고.

 

 어쨋든 누구 하나 오지 않을 것 같은 내 방문을 두드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좋고 설레던 밤이었다. 조금은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 걸 보면 나는 정말 단순한 사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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