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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10월 네 번째 일기 (10.09~10.12)_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

by 킹쓔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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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수 [워홀+71]_ 긴긴 하루를 보내고

 
 시월 구일 오늘은 엄마의 생일날. 우리 엄마는 잘 있으려나...남들 생일은 잘 챙겨주면서 정작 가족 생일은 제대로 못 챙겨준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딸래미. 

풀근무도 가능하게 한 이모님의 매운가지볶음밥

 그리고 오늘은 정말 하루 종일 근무했다. 오전 근무 하고 브레이크 타임은 외부 촬영 나가고, 저녘 근무하고 집 돌아오니 거의 열 두 시. 아쉬워 벌써 열 두 시~. 정말 긴 하루였다. 
 
 그 와중에 아마존 택배 찾으러 다녀왔다. 내가 사는 곳은 우편함도 없고 경비실도 없어서 택배받기가 워낙 힘들다. 번번히 택배를 잃어버리거나 기사님과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잦다 보니, 이번엔 그냥 록커(locker)에서 찾아가는 수령방식을 선택했다. 
 

 택배는 라코스테 시계랑 록시땅 아몬드 바디 워시오일. 내 첫 월급으로 산 나에게 주는 선물. 한국에서 가져온 시계는 물 때문인지 스트랩이 자꾸 떨어지는 바람에 실리콘 시계로 하나 샀다. 둘 다 몇 년 전부터 눈 여겨 보고 있었던 건데, 아마존 프라임 세일 하길래 얼른 구매했지.

 옆옆방에 슈분에게 새 시계를 자랑했더니, 시계랑 내 피부가 둘 다 하얘서 잘 어울린다고 했다. 본인은 칭찬이었는데 정작 웜톤 누렁이인 나에겐 와닿지 않았지 뭐야. 어쨋든 또 의미 있는 새 시계가 생겼구만. 5년 전 유럽 여행 했을 때 산 스카겐 시계처럼, 이 시계도 나에게 행복하고 뜻 싶은 날들을 선사해주길. 

 

 지친 몸으로 집에 와서 주방에서 무릎 찜질 하고 있는데 사갈이 현관에 내 택배 있단다. 맞다 세탁세제 스몰 체험판 시켰지. 휴- 3층 다시 내려갈 생각하니 아찔해서 한숨 쉬었더니, 자기 진짜 피곤한데 너를 위해 가져다주겠다며 그라운드 플로어(GF Ground floor, 한국기준 1층)로 내려가는 그. 참나 생색내려는 거 귀엽네, 그래 네가 짱이다. 
 
 이제 내일이랑 모레 하루만 일하면 된다. 이번 주 스케줄 너무 맘에 들어. 하루 일 하고 쉬고, 반 씩 일하면 주말 내내 쉴 수 있음! 다음주도 사장님이 이렇게 근무 잘 짜줬으면 좋겠네. 제발요 제발. 


10.10.목 [워홀+71]_ 설레서 잠이 오지 않는 밤

 

 오랜만에 너무 기분이 좋다. 잠이 안 올 정도로. 내가 제시했던 조건을 최대한 맞춰주시겠다는 사장님의 답변을 듣고서 한 동안 마음이 너무 설렜다. 아직 완벽히 마무리 된 건 아니니까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내 자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구나.
 
 어제 사장님이 릴스 만드는 데 5분이면 되지 않느냐고 하고, 외부 촬영 간 것도 별도 언급이 없으시고, 아이스크림 하나로 퉁 치시는 건가 싶고, 혹시 열정페이로 쓰이다 마는 건가 걱정이 되었다. 유튜브 프리미엄도 쓰지 않는 사장님의 절약 정신을 보고 내 자리를 만드는 건 글러 먹은 건가 싶어서 비탄에 빠졌었다.
 
 그래도 또 집고 넘어가야 할 건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겠다 싶어서 어렵사리 말씀드렸는데, 다행히 잘 해결이 된 것 같다. 한 달에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냐고 물으시더니 최대한 근무시간 맞춰서 도와주시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주방에 올라갔더니 파르토가 있었다. 쥐 얘기를 하다가 본인도 방글라데시에서 있을 땐 큰 집에서 살아서 이런 걱정이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도 그렇구나. 하긴 영국이 어떤 나라인데, 살인적인 집세에 엄청난 물가, 차가운 날씨까지. 그냥 오긴 힘들지. 다들 자기나라에선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이 왔지 뭐. 


10.11.금 [워홀+72]_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중

 

 점심 메뉴는 미역국. 며칠째 위염 증상으로 고생해서 순한 걸 먹고 싶기도 했고, 이미 지나버린 엄마의 생일을 이렇게 축하해보고 싶었다. 엄청 보고 싶은 건 아닌데 괜히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존재. 만나면 또 지지게 싸울 거 면서. 가족이란 정말. 때마침 연락 온 은진이 때문에 괜히 눈물이 나네. 가을이라 그런가, 호르몬이 돌 때라 그런가.

출근 길에 만난 영국의 교통표지판들

 
 퇴근 후에는 코벤트가든에 갔다. 불금인데 그냥 들어가기엔 조금 아쉽더라구. 벌써 완연한 가을이구만. 세피아톤 대리석에 반사된 따뜻한 햇살이 반짝이는 걸 보면. 나무잎에 단풍이 물들어가듯 런던 곳곳에도 주황빛 가을이 물들어가고 있네.

아이보리톤의 런던 가을풍경

 

코벤트가든에서 만나는 런던의 가을

 

코번트 가든 · 영국 런던

영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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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왔을 때가 여름이었는데, 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 것 같다. 곧 이 노을빛 물결들도 금세 순백의 눈처럼 겨울로 바뀌겠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순간 다른 시간으로 넘어가듯이, 내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에 특히 예쁘다는 채링크로스 거리

 

Charing Cross Rd · 영국 런던

영국 런던

www.google.com

 그리고 정말 요즘 영화 속 인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고군분투하는 청춘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마침내 성공하는 그런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달까.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해서 더듬 거리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억울함과 분노 조차 표현하지 못하던 입국 초기부터, 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차이에 따른 공감부족으로 외로움에 힘들어하던 때, 좌절스럽던 구직과정과 차갑게 와닿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날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시간들.  
 
 마치 10년 전으로 되돌아 간 기분이었다. 열정이 불타오르던 그 대학생 때로. 밤새 공모전 준비하듯 제안서를 준비해서 설득하고, 자료가 부족해 건설용품점 카달로그로 색상 설명을 하고, 제대로 된 연봉협상도 안해봤던 내가 판을 짜서 조건을 제시하고 협상을 시도한 거.
 
 안정적이었던 한국에 삶을 버리고 타지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인생 스토리. 이거 진짜 영화 아니냐고. 물론 그 영화,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인걸. 열심히 사는 주인공은 늘 역경을 딛고 보란듯이 성공하는 클리셰처럼. 여기 생활도 조금 순탄하게 풀렸으면 좋겠다. 


10.12.토 [워홀+73]_ 아침부터 새벽까지 바쁜 주말

 

밤작가님이 선물해준 인생사진

 아침부터 걸려온 콩밤님들 전화에 신났다. 마치 이산가족 상봉한 거 마냥 반갑고 설레고 좋고. 멀리서도 항상 날 기억하고 챙겨주는 사람들. 자네들 덕에 아침부터 뭉클 눈가 초롱초롱, 힐링하는구만요. 
 

 점심엔 승혜가 전화와서 오랜만에 재하보고 둥가둥가했다. 까까머리 애기가 벌써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구만. 엊그제 뒤집는 역사를 쓰는 듯 하더니 벌써 이렇게 발육이 빠를 줄이야. 곧 걷고 뛰고 말하겠지. 가끔 애기가 크게 다치면 본인 탓인 것 같아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내 친구. 걱정말어라 너처럼 성실하고 과학적으로 육아하는 사람 본 적이 없다오.  

장 보러 가는 길에 발견한 예쁨들

 요즘 왜 이리 표지판이 좋을까? 지난 번 도로포장에서 본 <통행금지>판 이후로 계속 안내 판의 매력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보쌈 해먹고 싶어서 세인즈버리에 갔더니 반가운 태극기와 한국제품들. 

한국인의 매운맛과 쓴맛

 

 주말엔 쉬니까 밥 많이 해둬야지. 드디어 베이컨이 아닌 돼지고기 찾았지롱. 없는 재료 모아 앞다리살 삶아서 수육 만든 나. 아주 칭찬해.

김오빠 생애 봄날은 간다...?

 

 내일 새벽- 즉 곧 있으면 우리 김오빠 장가가는 날. 일생에 두 번 다시 없을 행사라는데 또 내가 참석 안할 순 없잖아요?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라 졸음 꾹 참고 기다리는 중. 열심히 식 기다리면서 홍보릴스 만들었다. 휴- 근데 이거 진짜 손 많이 가는구나. 졸립고...피곤하고 기력 떨어지네, 몇 초 짜리 영상 올리는데 몇 시간 걸린거야 내 무덤 내가 팠네. 
 
 어쨋든 요즘은 이렇게 나름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싫다 무섭다 오바 다떨면서도 할 건 다 해내는 나를 보면 조금 뿌듯하기도 하고.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내 안의 열정이 생각보다 꽤 남아있었던 건지, 발등에 불 떨어지니 없던 기력도 뿜어져오는 건지 모르겠지만은. 
 
 몇 번의 역경을 넘어섰던 우리의 주인공씨는 이번 영국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분명한 건 이 도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시도한 거 자체로 꽤 의미가 크다는 거. 더 늦기전에, 더 늦어서 경험했다면 조금 서러웠을,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나의 자력갱생 기르기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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