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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11월 열 두 번째 일기 (11.16~11.17)_ 맥주로 가득 찬 주말

by 킹쓔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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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토 [워홀+109]_내 생애 첫 파티

 

 식당 일을 하다보면 가끔 손님들이 놓고 간 음식들이 남는다. 엊그저께 그렇게 남은 맥주가 생겨서, 비어캔 맥주를 만들어봤다. 이름은 엄청 쉽고 근사해보였는데 그 결과는 결코 쉽지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부어서 닭에서 맥주 냄새가 너무 많이 났다. 잡내를 없애려다 과한 술 내 덕에 안 먹고 싶었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냥 먹었다.

 런던에서 버스를 선호하지 않지만, 또 런던만큼 버스가 다니기 좋은 곳이 있을까. 연착과 교통체증만 없다면. 특히 예쁜 장식이 가득한 센트럴(시내)거리를 지나갈 때면. 마치 놀이공원의 테마파크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떠날 땐 귀찮아도 꼭 이층까지 올라간다.

런던 시내를 구경하고 싶다면 전망 좋은 이층 버스를 추천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한 런던 센트럴

 2층에서는 스페인 여행객들을 만났는데, 옆에 앉은 나를 개의치 않고 사진을 찍어 대길래 그냥 자리를 비켜줬다. 어쩌면 기분 나쁠 수 있는 그 행동들이 이 날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단란해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 없이 즐거워 보이는 그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하차 하기 전에는 사진까지 찍어줬다. 대로변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미소는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저멀리 보이는 빅벤과 나

 저녘은 라이언이 소개시켜준 한국 밋업에 갔다. 밋업은 공통 관심사를 갖고 정기적 만남을 갖는 일종의 동호회인데, 성언니가 영어실력 늘리기 좋다고 추천해 준 적 있었다. 그치만 유료라고 해서 하려다 말았지.

선선한 저녘, 빅토리아역의 야경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런던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을 사랑하는 모임> 정도 되는 이 커뮤니티는 라이언의 친구 크리스와 제임스가 호스트인데, 그가 현재 코펜하겐에 있는 관계로 나 혼자 참석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낯가림이 심한데 혼자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뭐 인생은 실전이니까. 라고 말해놓고 사실은 토할 것 같다고 엄청 징징거렸다.

 약속시간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덕에, 2층에 앉아서 손님 무리들을 지켜봤다. 라이언이 호스트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않은 탓에 한국인을 찾아헤맸는데 잘 안보였다.  마치 잠복근무에 나선 형사가 된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호스트 크리스는 영국인이었다. 

럭비경기가 생중계중이던 이층/ 핸드크림도 있다니

 

 

The Jugged Hare, Victoria · 172 Vauxhall Bridge Rd, London SW1V 1DX 영국

★★★★☆ · 호프/생맥주집

www.google.com

 

Korean meet up

 이 그룹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쿨내 폴폴 나는 크리스부터 에르메스백을 들고 고급 스카프로 멋을 낸 중년의 영국 여성(맥고나걸 교수님 느낌), 흑백요리사를 좋아하는 진저보이, 영국액센트가 매력적인 인도네시안-브리티쉬 조,귀여운 필러워드를 연발하는 포항에서 살았다는 홍콩 여자아이까지.

 

 유럽이나 미국 등 서양 사회에서 한류는 주류 문화가 아니며,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소외됐거나 오타쿠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내가 겪어본 현실에선 아닌 것 같다. 일하는 곳에서 느낀 것도 마찬가지였고. 대개 깔끔하고 단정한- 평범한 사람들도 한국을 좋아하고 우리 문화를 즐기고 있는 걸. 

이젠 제법 흑맥주까지 즐기게 된 알찔이

 그치만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다가와주진 않았다. 라이언이 내가 한국인이라 가면 인기 많을 거라고 했는데...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네 명의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였고. 신입 회원들을 적극적으로 챙겨주던 내가 겪던 한국의 동호회 문화와는 많이 달랐다.

다들 차려입고 온 곳에 나 혼자 추리한 복장

 음주가무와 사교파티에 대한 환상이 있던 나는 파티애니멀(파티광)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그와 반대로...<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스몰토크조차 어려운 한국사람에게 서투른 영어로 먼저 가서 인사를 하고 대화를 이어가고,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막차 핑계를 대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현타가 왔다. 그래도 앞으로는 더욱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바 하나도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받는, 이곳에서는 이런 네트워킹이 필수니까. 뭐 경험을 해본 게 어디야. 다음 번엔 더 잘해봐야지.


11.17.일 [워홀+110]_김또술

 

 오늘은 정말 술도 안 먹고 이력서를 쓰며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려 했지만, 파딘이 아침 선물로 코로나를 주고 갔다.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귀여운 파딘의 아침선물(근데 러그는 밟지마 제발)

 세르지오가 날이 너무 좋다고 산책이나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근무가 일찍 끝났는데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만나면 또 돈 쓸 것 같아서 힘들 것 같다고 말했는데, 계속 거절하기가 좀 그랬다.

근데 나오니까 또 흐려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스피탈필즈마켓

 

 

Spitalfields Market · 65 Brushfield St, London E1 6AA 영국

★★★★★ · 시장

www.google.com

 

스피탈필즈마켓의 시그니쳐, 코끼리

 

런던에서 가장 비싼 펜트하우스

 

 한국이 어딜 들어가도 예쁜 카페로 즐비한 곳이라면, 영국은 어딜 들어가도 멋진 펍이 즐비한 곳 같다. 맥주맛도 확실히 깔끔하고 깊어서 맛있고.

 

Beer Garden · London E1 6EA 영국

★★★★☆ · 술집

www.google.com

 

스피탈필즈 마켓

 런던에는 게일즈 베이커리라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있는데, 한번 쯤 가보고 싶었지만 가격대가 있어서 좀처럼 시도해보지 못했다. 투굿투고에 있길래 한번 시도해봤는데, 픽업시간을 착각해서 한 시간 더 기다려야했다. 그냥 취소하려고 했는데 세르지오가 그러지말라고 그냥 근처를 좀 더 돌자고 해서 다시 바에 들어가게 되었다.

 

 또 얻어먹기는 뭐해서 내가 샀다. 아- 정말 나오면 다 돈이구나. 월급날까지 긴축정책 유지해야하는데. 소셜라이징을 안 할 수도 없고.

 여기선 뮬 와인을 먹어봤는데, 세르지오말로는 크리스마스 한정 시즌음료라고 겨울이 되면 꼭 먹어봐야 한댔다. 맛은 뱅쇼랑 비슷했는데 조금 덜 달았다. 가니쉬로 올려진 오렌지가 엄청 통통해보여서 먹고 싶었는데 포크가 없어서 못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받은 게일즈 투굿투고. 구성은 나쁘지 않았는데 다시 또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바게트, 샐러드 두 개와 시나몬 페스츄리를 받았는데 만족도가 높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냥 돈 좀 더 내고 내가 먹고 싶은 걸 골라야겠어.

 집에 왔는데 약간 심심해서 아침에 받은 코로나를 먹었다. 그런데 파딘이 저녘 먹으러 올라와서 바에서 받았다고 와인을 줬다. 그래서 또 한잔하고. 더 마실거냐고 물어서 생미구엘도 줘서 또 한잔하고.

 

 와 오늘 맥주만 한 10병 넘게 마시는 것 같다. 웃긴 건 처음 바에서 마시고는 살짝 알딸딸했는데, 좀 지나고 나니 이제 취하지도 않는 것 같다. 화장실도 별로 안 가고 싶고. 확실히 유럽 맥주는 좀 다른 것 같다.

 

 방에 등이 나가서 키친에서 노트북으로 일기를 썼다. 파딘이 한 잔 더 하재서 같이 맥주 한 잔 더 했는데, 사원에서 돌아온 쇼룹이 주방에선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다. 웃기는 자식이야. 아까 사갈이랑 셋이 있을 땐 암말도 안하더니. 지가 안 마시는 거지 왜 남들도 못 마시게 하는거야. 담배처럼 냄새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중에 취해서 고성방가한 사람 아무도 없는데. 

 

 어쨋든 이번 주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다. 맥주독에 빠져 살았다고 할만큼 많이 먹었다. 그렇다고 엄청 취한 건 아닌데. 퇴근 후 가볍게 하는 맥주 한 잔이 좋다던 주희가 생각났다. 주희도 스페인 살면서 갖게 된 습관인가.

 

 한국처럼 죽자 살자 내일 없이 곤드레만드레 마시는 건 아니지만, 장소를 옮겨가며 가볍게 계속 술을 먹는 문화라 술 값이 많이 드는 것 같다. 물론 대화도 하고 네트워킹도 하는데 필요하니까 안 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조금은 줄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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