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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11월 열 네 번째 일기 (11.19~11.20)_편리와 편안의 사이에서

by 킹쓔 2024.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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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화 [워홀+112]_ 한 잔 한 것처럼, 매사에 둔감해지기.

 
 아침부터 반가운 미룽씨와의 통화.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했는데 마치 휴대폰 충전 된 것 마냥 마음이 조금 싱그러워졌다. 요즘 뭘 해도 심드렁해진 내게 약간의 생기가 더 해졌달까.

내 마음처럼 점점 더 싱그러워지는 장미꽃

 그 기세를 몰아 아침부터 샤워도 하고 장을 보러 나갔다. 여기서 파는 시판용 크림 스파게티 소스들은 너무 짜거나 밋밋하다. 꾸덕한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 장을 보러갔다.

5분 거리의 마트 가자고 맘 먹는 데 5시간 걸림 / 텅 빈 냉장고

 늘 느끼는거지만 우리동네 세인즈버리는 정말 자유롭다. 저렇게 물건이 비워져있는데 아무도 안 채워넣다니. 한국이라면 까무러칠 이런 무질서가 새삼 놀랍다.

누가 계란 두 개 먹었나요

 그리고 계란 샀는데 마치 모자라서 어디서 빼온 거 마냥 두 개만 색깔이 달랐다. 휴... 나 제대로 된 곳에서 산 것 맞지? 그래도 다른 센트럴에 비하면 물가가 싸긴 하다. 일하는 곳 근처에서는 물이 2L에 1파운드인데, 여긴 0. 88파운드 정도 된다. 그 외에 다른 것도 조금씩 싼 것 같고. 
 
 그렇게 비를 뚫고 사온 더블크림으로 인터넷을 뒤져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봤다. 더블크림에 노른자를 휘저어 녹였는데 덩어리도 안 지고 제법 잘  만들었다. 요리 솜씨가 나날히 늘고 있구만. 

신선식품은 고품질의 막스앤스펜서에서, 공산품은 저렴한 세인즈버리에서!

 그리고 술도 늘었다. 사이다가 왜 이렇게 맛있을까. 심지어 이거 10도짜리라 한 잔만 먹었는데 알딸딸했다. 그래도 달지않고 깔끔하게 맛있었다. 그리고 얼굴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계속 술을 먹은 탓일까. 조금 후회스러워졌다. 2개 살걸. 2+1 할인 하던데. 빨리 월급 날 됬으면 좋겠다.
 
 술이 너무 안 시원해서 얼음 타먹으려고 부엌에서 와인잔을 꺼냈는데, 슈룹이 지나갔다. 또 괜히 시비 털릴까봐 잔을 등 뒤로 감췄다. 약간 기숙사 사감 만난 학생이 된 기분. 내 나이 30이 넘어 술을 눈치 봐가면서 먹습니다. 짜식이 말야 담배 피는 애한텐 뭐라고 안 하고. 왜 나한테 난리여. 부딪히기 싫으니까 참는다.
 
 맨날 술 먹고 있으니까 파딘이 일요일 저녘에 같이 바에 가자고 했다. 한국이라면 남자랑 단 둘이 술 마시러 간다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파딘은 내게 너무나 작고 어린 소년인걸. 그것보다 너 술과 여자를 멀리하는 무슬림 아니었니? 여러분 나 무슬림이랑 술 먹으러 가요. 
 
 근데 사실 난  얘가 그네들 같지 않아서 싫지 않다. 정서적으로 좀 맞는 느낌? 적당히 술도 즐기고, 나름 낭만적이고, 내가 좋아하는 팝송도 많이 듣고 해서 좋다. 그렇다고 사갈 때처럼 친구라는 이름으로 애틋하게 정 주고 마음 주는 건 못할 것 같다. 자동적으로 정말 담백하게- 대하게 된 달까?
 
 그리고 뭐 약속도 그냥 가면 가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 부쩍 모든 관계에 심드렁해진 내가 느껴진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할 일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바로 하랬다. 그리고 나서 맘 편히 쉬라고. 근데 그게 진짜 안된다... 그니까 오늘 하루도 계속 이력서 쓰기를 미뤄가며 다른 일을 했다. 그리고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네 호호. 잘 쉬었다고 치자. 


11.20.수 [워홀+113]_생각은 많지만 감정은 요동치지 않는 날


 니브 만난 날. 런던으로 출장 온 니브, 근데 하필 내가 오늘 근무가 있어서 고작 15분 만났다. 그것도 가게에 포장해 놓은 음식 가지러 잠깐.

 런던에서 나 밥 사주려고 온 건데 또 얻어먹고 가서 미안하다는 우리 니브. 참나 한국에 있을 때랑은 다르구만 껄껄. 다 컸다 다 컸어. 이젠 어엿한 직장인이 된 그녀와 알바생이 된 나. 한국에서 만났을 때랑 서로 정 반대로 됐네. 

 니브 음식 싸서 보내는데 에상 외로 지출이 크긴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갑군. 그동안 묵혀뒀던 디온네 선물들도 다 주고. 속이 후련하면서 너무 금방 보내서 아쉽기도 하고. 

 오늘은 진짜 관두고 싶은 마음이 울컥 울컥 들었다.. 피곤한 그녀가 평소보다 더 까칠하게 대했고, 그건 일 못하는 을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피로감처럼 느껴졌다. 그만 하고 싶을 정도로 짜증은 나는데 뭐 그렇게 심각하게 못 이겨낼 정돈 아니였다. 그래도 뭐 일은 일이니까. 먹고 살아야되니까.

꾸러기 파딘의 선물 꾸러미

 퇴근하고 발견한 까까. 나 웃게 만드는 건 파딘 밖에 없구만. 아침마다 알람 울려서 한 마디 했더니 알람 아예 없앤단다. 덕분에 수업 하나 날렸다고, 미안한 마음에 몇 시에 깨워주면 되냐고 물었더니 이런 쪽지를 남기고 갔구만. 하튼 꾼이야 짜식.

달이 떠오르고 꽃이 핀, 가득한 밤

 파딘이 준 꽃은 나날이 활짝 피는 중이다. 창밖의 달도 아주 가득 차오른 보름달이다. 나는 언제쯤 피고 가득 차려나.

한국에서 삶이 아주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이라면, 영국에서의 삶은 마음이 편안한 삶 인 것 같다. 어디서나 이루어지는 빠른 일 처리나 체계적인 행정, 효율적인 의료 제도, 높은 사람들의 수준에 맞춰진 고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들은 굉장히 편리한 생활을 용이하게 한다. 그만큼 나도 그 기준에 맞게 살기 위해 뛰어야 하고.

그에 비하면 영국은 매우 여유롭다. 사회적으로 획일화된 기준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치가 높지 않는다. 그래서 비교적 쫓기는 게 없는 맘 편한 생활이 가능하다. 개인 간의 거리를 항상 존중하기때문에 딱히 서로 맘 상할 일이 없고,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기깨문에 타인의 시선 비교적 자유롭다. 대신 그만큼 나도 남의 영역과 행동, 그리고 그에 맞는 여유를 존중해줘야 되고.

 장단점이 뚜렷한 두 나라에 걸쳐서 나는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우고 있다. 물론 오랫동안 생활한 곳이 내겐 더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과정도 나름 흥미롭다. 어느 쪽이 더 내게 맞는 곳인지는 좀 더 경험해봐야 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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