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금 [워홀+108]_ '삶이란 뭘까'와 '삶이란 이런 거지' 사이에서
요즘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사는 건 대체 뭘까. 현저히 낮아진 생활환경에서 과연 진짜 '사는 건 무엇일까' 라는 생각.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건가 싶은 그런 때.
그런 잡생각 때문인지 출근하기가 좀 싫었다. 그래서 일 하는 곳 까지, 늘 가던 길 대신 안 가던 길을 택해서 갔다.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런 선택을 내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가던 길도 꽤 재밌었고.
몰랐는데 오늘 외부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다음' 촬영을 '다음 주' 촬영으로 착각한 나는 교통 카드도 안 가져와서 또 내돈내산 버스를 탔다. 휴 머리가 나쁘면 지갑이 고생이구요. 브레이크 때 작업한다고 태블릿도 가져왔는데 들고 온 보람없이...몸도 고생했네요.
그래도 늘 외부 촬영 가는 길은 즐겁다. 런던 이 곳 저 곳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지리도 익히고 예쁜 것도 많이 보고. 그러면서 용돈 번 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늘 행복하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면 기분도 환기되고, 내가 있는 곳이 런던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대개 나는 K pop이 가득한 한식당이나 방글라데시인들의 동네에 살고 있으므로 종종 잊고 있던 그 사실을.
그리고 바깥에 있다보면, 담아두고 싶은 찰나의 순간을 많이 만난다. 스토리를 가득 메운 멋진 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 물론 계속된 버스 연착문제로 지각의 불안함은 항상 생기지만. 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버버거리던 내가 영어로 인터뷰를 하다니, 그리고 그걸로 돈을 벌다니.
저녘 근무 끝나고 집 가는 길이 트럭에 싣혀가는 외노자 같다면, 촬영 마치고 돌아갈 땐 황홀감으로 가득 해진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거지,' 하면서. 감사하게도 이런 예쁜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생각해보면 나는 무던히도 '보통의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개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의 예쁜 옷이나 매력적이고 헤어져나오기 힘들만큼 빼어난 얼굴보다. 이렇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한적한 거리나 고즈넉한 사람에게서 뿜어져나오는 매력적인 아우라,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자아내는 그런 풍경.
늦는다는 말에 걱정말라며 오는 길에 '달 구경'이나 하고 오라는 슈퍼바이저님. 퓨 나이만 먹고 일은 못하는 부족한 부하직원이라 늘 미안합니다 껄껄. 그래도 달을 보며 나를 떠올려 주는 누군가 있다는 건, 좀 좋은 기분이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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