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수 [워홀+106]_ Allegro non roppo e molto maestoso
오랜만에 맛 보는 여유로운 아침. 밀린 작업도 없고 청소나 빨래 거리도 없고 아주 평화롭네. 시간 난 김에 밥 하기. 현미쌀로는 은근 어려운 냄비밥. 밑에 좀 태워먹었지만, 누룽지 해먹지 뭐 캬캬캬.
밥 소분하러 갔다 만난 파딘. 작지만 매력적인 그는 얼마 전 이사간 일리앙 대신 들어온 친구다. 라슈랑 같이 내 옆방을 쓰고 있는데, 워낙 똘똘하고 싹싹한 친구라 라슈가 상대적으로 띨빵해보인다 껄껄. 그림도 잘 그리고 제법 예술가 같은 그는 밥도 창가에 걸터 앉아 먹는 모습이 귀엽더라구.
어제 부츠에서 주문한 물건이 매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하러 가는 길에 픽업해가려고 일찍 나섰다. 날씨가 좋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어서 버스를 탔는데, 확실히 대낮에, 그것도 맑은 날의 런던 풍경은 꽤 예뻤다.
일몰이 가까워지자 하늘은 옅은 주황빛에서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유럽은 정말 예쁜 곳이다. 해가 지는 모습 마저도 아름답구나.
버스를 타고 오면 항상 많은 생각이 든다. 바로 앞 지하철을 두고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앉아있노라면 씁쓸해진다. 그깟 일 파운드가 뭐라고. 그리고 어렵사리 버스를 타고 길을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서, 정말 이지 나의 처지를 실감한다. 그리고 이게 맞는건가 한번 쯤 또 내 결정을 의심하게 된다.
분명한 건 전보다는 확실히 감정의동요가 적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종종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할 정도로 애달픈 감정이 차오른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이런 시간들이 길어질까봐 두렵다. 이런 날들이 익숙해지고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싫다. 그리고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내 자신이 조금은 안쓰럽고 가엽다.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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