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워홀

25년 6월 두 번째 일기 (06.04~06.08)_ 정착과 부유 그 사이에서

킹쓔 2025. 6. 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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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수 [워홀+309]_ 축 계좌 오픈


 여러분 드디어 기대하고 고대하던 바클레이 계좌를 오픈했습니다! 은행 특성상 신규 입출금 계좌는 저축 계좌 6개월 이후에만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 날 한번 더 행원님을 졸라보니 문제 일으키지 말라 면서 오픈해줬다. 껄껄 너네 정말 엿장수 마음 대로 구나?

 이주민이 많은 런던과 보수적인 영국 은행이 만나 계좌 개설의 어려움을 겪은 나. 그래서 그런지 유독 뭔가 해낸 기분이고 뿌듯함을 느꼈다. 앗- 그리고 몸소 배운 영어 표현 하나!

 ** 킹쓔의 영국 워홀 꿀팁!

 은행 약속은 get appointment, 식당 약속은 have a reservation

06.05.목 [워홀+310]_ 양배추 라페 만들기

 

 오늘은 양배추 라페를 만들어봤다. 요즘 건강하게 먹으려고 식단에 신경 쓰는 중인데, 막상 뭘 먹어야 하나 잘 감이 안 왔다. 그 중 잘 먹고 잘 운동하는 졔쨩의 스토리를 보고 라페 만들기 도전! 

스윗하트 양배추와 화이트 양배추 사이에서 고민

 재료 사러 세인즈버리로 갔는데, 양배추부터 뭘 사야 할 지 난감했다. 심지어 cabbage랑 lettuce중에 뭘 해야 될지도 헷갈려버리는 것...참말로 이 정신으로 영어권 국가에 어떻게 살고 있는 걸 까요...

 쨋든 내 생애 첫 라페 만들기 성공! 맛은 그냥 그랬다... 좀 설탕을 더 넣었어야 했나. 뭔가 심심했다. 다음 번엔 머스타드를 더 듬뿍 넣어야겠다. 그나저나 이거 만들면서 은진이 생각이 났다. 김은진이 옛날에 다이어트한다고 당근라페 많이 해먹었는데. 남은 걸로 샌드위치도 많이 해주고.

 요즘 영국은 비가 자주 온다. 햇볕 쨍쨍하고 따사롭던 그 좋던 여름 날들은 이제 다 갔다 보다. 짐을 들고 집에 가려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조금 막막해졌다. 누군가 우산 들고 와줬으면. 한국이었으면 달랐으려나. 물론 거기서도 우산 들고 튀어와 줄 사람은 딱히 없었던거 같기도 하지만.


06.06.금 [워홀+311]_ 한국이 그립네

 

 그렇게 뱅크홀리데이를 잘 쉬어놓고도, 남의 나라 공휴일까지 욕심 내는 나. 아-남의 나라는 아니구나. 어쨋든 현충일 휴무로 인해 금토일 연달아 쉬는 한국의 친구들이 부러웠다. 

다시금 화창해진 런던 날씨

 

 사실 나도 오늘이 이번 주 오전이 마지막 근무라 딱히 크게 다를 건 없는데. 그냥 뭔가 요즘은 한국이 그리운 것 같다. 막상 가서는 또 여기 생활을 그리워하고, 금방은 적응 못 할 걸 뻔히 알면서도.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 월급 나오면 사 먹어야지.

 

 고향에 못 가는 서글픈 마음은 괜히 불똥이 되어 라피에게로 튀었다. 왜 이렇게 홈리스 차림으로 출근하냐며 타박을 주는 그에게- '네가 나를 홈리스처럼 대하니까 그렇지.'라며 괜히 볼멘 소리를 했다. 며칠 전 그가 먹던 과자가 맛있어서 공유하고 싶다며, 반 쯤 포장이 뜯긴 걸 건내준 적이 있는데. 그게 괜히 먹다 남은 걸 주는 것 같아 심기를 거슬렀다.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하랴. 맛있는 거 먹으면서 내 생각 해준 그 마음이 중요하지. 가져 온 상태도 나쁘지 않았었는데 괜히 그게 너무 대접받지 못하는 기분이라 화가 났다. 수영이랑 심지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애들이 그립다. 한국이 그리워.


06.07.토 [워홀+312]_ 한국 특별마켓에 가다

 

 오늘은 뉴진쓰랑 같이 코리안 마켓에 가기로 한 날. 왠지 저녁엔 안 갈 것 같으니까 아침부터 헬스장 가서 미리 운동 해줬다. 이번 수업은 요가가 결합된 'MIND' 클래스. 수업 특성 상 선생님이 너무 조용조용 얘기해서 알아듣기가 조금 힘들었다. 

편한 옷 입고 오래서 입고 간 옷

 

 그리고 곧장 해크니로 출발.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 아이템을 파는 벼룩시장, 특별 컨벤션 같은 건데- 규모에 비해 입장료(3파운드. 한화 약 7천원)는 비쌌지만 나름 재밌었다. 시음했던 막걸리가 너무 맛있어서 하나 샀고. 이것 저것 예쁜 것 구경도 하고. 한 감성과 예술성이 넘쳐나는 부스들을 보며, 예술의 도시 런던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다양하고 예쁜 전시품목들

 

넘나 귀여웠던 토끼인형과 신기하게 생긴 쵸콜렛

 

런던에서 만나는 약과와 쑥인절미

 이 머나먼 타국에서 우리나라 디저트들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또 자기가 만든 제품들을 열심히 홍보하는 사람들을 보니 좋은 자극이 됬다. 역시 어딜가나 열심히 사는 한국인들이야.

점심으로 먹은 라멘도 정말 맛있었다!

 

 

 

Yume Ramen · Unit 3, 143 Mare St, London E8 3RH 영국

★★★★★ · 음식점

www.google.com

 

영국판 달인 아주머니! 어색한 표정이 너무 귀여우심

 생각보다 전시가 일찍 끝나서 근처 마트를 구경했다. 한번도 안 가본 리들도 가봤는데, 라피가 좋아하는 다이제 PB 상품을 싸게 팔았다. 꽃도 꽤 싸길래- 오랜만에 카네이션 한 다발을 샀다. 

그녀가 찍어준 꽃을 든 킹쓔

 

 집에 와서는 건강하게 먹겠다며 연어 스테이크와 양배추 라페, 방울 토마토를 먹었다. 그리고 생리통 때문에 몸이 안 좋아서 조금 잤다. 

클린하게 먹는 척 해봤습니다

 

 저녁엔 라피가 보고 싶다고 해서 또 그의 일터로 출동했다. 저번 주 한 번은 안갔더니 엄청 투덜대던 녀석. 그가 일 자리를 구하기 전에는 매일 내 일터로 마중을 나왔었는데, 이젠 내가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 간다. 

오늘은 서프라이즈 성공! / 브라우니 맛있다

 점심을 깔끔하게 먹으면 뭐하나. 저녁은 치킨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먹고 난리 났거늘. 그런데 남의 업장 가서 뭘 안 먹기도 뭐하잖아요? 호호호.

 밤에는 미루고 미루던 마스크팩 하기. 영국도 마스크팩 파는데 왠지 한국게 더 좋아보이고 정감가고 그렇잖아요. 역시 케이뷰티가 짱이다.


06.08.일 [워홀+313]_ 여유를 가져봅시다

 

 아침은 정혜쓰가 알려준 사과 샐러드. 민트는 무럭무럭 자라고, 창고 한 켠에 피넛버터, 냉장고에는 사과가 쌓여서 골치 아팠는데. 덕분에 알차고 맛있게 먹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주방 캐비넷에 짐이 너무 많은 가 싶었는데, 다 이렇게 쓸 때가 있다구요.

여러분도 해 먹어보세요!

  어제는 라피에게 내가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 같다고 투덜댔다. 우리 티남친씨는 정말 정직하게 ''맞다''고 대답했다. 자기가 너처럼 그 일을 1년 했으면 지금 쯤 수퍼바이저를 했을 거라며, 정말 네가 하는 일에 대해 열정이 없는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췟. 

해를 따라 예쁘게 피어난 카네이션

 사실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여기 온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나는 무엇을 해냈나. 바쁘다, 적응하기 힘들다는 핑계 아래 하루 하루 할 일을 미루며 살아 왔던 건 아닌 지 생각이 들었다. 라피도 그렇고 주변을 둘러보면 대충 사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열정을 갖고 본인이 원하는 바를 쟁취해 가는데, 나는 여기서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하고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마음은 괜히 한국으로 가고 싶게 만들었다. 막상 돌아가면 다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테고, 지금 이 시간을 한참 그리워 할 걸 알면서도, 그냥 모든 걸 접고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가고 싶다고 펑펑 울었다.

 

 얼마 전엔 우연히 커머셜스트릿에 다시 갔다. 일년 전 처음 집을 구하러 왔을 때, 처음으로 여기 왔었던 생각이 났다. 그 땐 첫 영국 땅을 밟아 모든 게 낯설고 걱정됬었지. 끼니를 굶을 까봐 누가 주는 건 가리지 않고 먹을정도였으니. 이젠 냉장고에 음식이 남아 버릴 때가 더 많을 정도로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해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일까? 이곳에 잘 정착했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당장 떠나버릴 만큼 미련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일까? 요즘 막연하게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아마 그런 것 같다. 성과 없이 보낸 1년에, 남은 1년도 그렇게 허송세월이 될까봐, 아니면 그저 다가올 실패가 두려워 도망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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