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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주짓수

[주짓수] 내이름은 주짓쑤 : 화이트 벨트_0그랄 (21.05.30~21.09.27)

by 킹쓔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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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그랄

"누구나 한번쯤 강해지고 싶을 때가 있잖아?"


 

⬛️⬛️⬛️⬛️    
화이트_ 0그랄1그랄2그랄3그랄4그랄
21.05.30
21.09.27
21.09.28
22.03.31
22.04.01
23.04.01
23.04.02
23.09.09
23.09.10~

 
0. 시작: 강해지고 싶어


 그때의 나는 상실감에 젖어있는 상태였다. 일련의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당연하게만 여기던 일상은 파괴되었고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삶이 텅 빈 기분이었고, 물에 젖은 휴지처럼 너절 거리고 무력감이 가득했다. 늘 내 곁에서 함께하던 그 아이를 지워내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그때는 더 심했다. 그리움은 냄비 밖으로 끓어 흘러넘치는 국처럼 내 마음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

  그건 어쩔 수 없고 인정해야 내 모습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또 나 자신의 그런 나약함이 싫었다. 밀려오는 파도 같은 감정들에 잠식당해 버리는 게 아니라, 거친 파도 앞에서도 담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이상 이렇게 슬프고 아파하기만 하는 건 싫어. 초연하고 단단해지고 싶었다.

 강함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를 때쯤, <강철부대>를 보게 되었다. 특수부대원들이 나와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프로듀스 101의 밀리터리버전' 같았다. 다들 군인정신으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멋졌는데, 그중 UDT의 김상욱 대원이 인상 깊었다.

출처: 강철부대 / 오늘부터 운동뚱

 불리한 상황에도 초연한 모습,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게임을 풀어나가는 그. 운동 수행능력도 좋았고 그만큼 자신감도 넘쳐 보였다. 우연히 친구가 보내준 운동뚱 영상을 보니, 이종격투기 선수인 그가 주짓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걸 하면 나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



1. 첫 수업 그리고 등록: 무섭지만 재밌다


 그날 당장 근처에 주짓수를 가르치는 곳을 알아봤다. 역 근처 매일 지나다니던 곳에 체육관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으러 갔다. 살면서 운동은 거의 안 해본 데다 무릎 때문에 가능한지 걱정됐다.

 3년 전 '왼쪽 전방십자인대 90% 이상 파열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연골판까지는 훼손되지 않아서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관절경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등 후유증을 겪었다. 그렇다 보니 움직임은 제한되고 체중은 늘어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다.

 관장님은 가동범위만 어느 정도 나오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수업하는 걸 한번 보라고 했는데, 사실 그땐 봐도 뭔지 모르겠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내일 노기수업이 있으니 편한 옷을 입고 와서 한번 해보고 결정하라고 하셨다.

다음 날 나는 목까지 늘어난 티셔츠와 펄럭이는 와이드 팬츠를 입고 갔다. 편한 옷으로 입고 오라고 해서. 그게 나한텐 편한 옷이었다. 당연히 스트레칭할 때부터 불편했다. 입기 편한 옷과 운동하기 편한 옷의 차이를 모를 정도로 나는 경험이 없었다.

P사범님이 도복을 빌려주셔서 갈아입고 왔다. 배에 힘을 줘서 위에서 덮치는 사람을 막는 법을 배웠다. 앞 구르기도 했다. 중학생 때 체육시간에 하던 건데 겁이 났다. 왠지 목이 꺾여서 불구가 될 것만 같았다. 같이 수업을 듣던-지금은 사범님이 된-여자애들 두 명이 괜찮다며 잘 알려주고 응원해 줬지만 그래도 두려움을 떨칠 순 없었다.
 
 내가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도 걱정됐다. 혹시 운동 중에 남을 다치게 할까 봐. 첫 수업 P사범님이 나와 롤링을 지시하자, 왜소한 중학생 남자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섭다고 했다. 마음이 움츠러들고 더 조심스러워졌다. 몸싸움 중에도 살포시 붙고, 스트레칭을 할 때도 내 무게를 전부 싣지 않았다. 그래도 꽤 재밌었다. 고민 끝에 그 다다음 날 등록을 했다.



2. 주짓떼라 : 10살 차이 나는 친구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당시 '언니'라는 호칭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내 친구들은 48살 D, 23살 N, 32살 G였고, 모두 나를 'Su'나 '수진'으로 불렀다. 나이차가 있어도 호칭이나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익숙해져서 까먹었지만, 내가 사는 곳은 한국이었다.

 그냥 한 살 더 많으면 자연스럽게 언니라 불리는 건데, 그 호칭 하나만으로 마치 엄청난 책임감과 리드를 해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나이라는 바운더리 빼고 있는 그대로 친해지고 싶었다. 어쩌면 내 나이를 말하는 순간 어린 친구들이 나를 어려워할까 봐 걱정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몇 살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을 둘러댔다. 20대 중반 친구들이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얼마차이 안 난다고 말 편하게 하라고 권했다. 뭐, 앞자리는 얼마 차이 안나잖아? 그리고 이 때는 그게 먹혔다. 코로나 시기라 마스크 때문에 서로 얼굴은 반쯤 가리고 운동했으니까. 그렇게 꽤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남친 대신 동생에게 도복 입히고 기술 걸던 나

 나중이 되어 내 나이를 알게 된 몇몇은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미 친해진 터라 상관없었다. 수업시간에 비운 기술을 남자친구한테 했다가 창피하다고 핀잔들은 얘기, 사범님 장난쳤던 얘기, 새로 배운 기술 얘기. 체육관 밖에서 치맥도 먹고, 이사 간 후에도 동네를 찾아와 카페에서 만나기도 했다.

입사 동기처럼 같은 날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강한 동질감을 가진 신기한 인연. 우리는 그렇게 주짓수를 통해 만나고 즐거웠다.



3. 그리고 일어난 변화들


체중감량

운동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돼서 4kg가 줄었다. 원체 많이 나가는 편이라 잘 빠진 거겠지만, 먹는 것도 그대 로고 따로 크게 뭘 한 건 없었다. 그냥 주 3회 한 시간 반씩 꾸준히 수업에 갔다.
보호대 덕인지 몰라도 시작하는 며칠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통증이 없었다. 초반에는 크게 뛰거나 급격하게 각도를 트는 일이 없어할 만했다.
 

운동복 천국
실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면 돈이라도 바르겠어

 그전까지는 그 흔한 레깅스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신체의 굴곡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 볼썽사납다고 생각했고 내 몸이 민망했다. 주짓수는 도복 안에 래시가드를 입어야 했다. 예쁜 모습이 아닌 더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해 스포츠 브라도 사고 레깅스도 샀다.
큰 맘먹고 첫 도복으로 20만 원짜리 아디다스 콘테스트용을 장만했다.(엄밀히 말하면 당근마켓에서 산 삼만 원짜리 판데믹이 첫 도복이긴 하지만, 뭐 그건 임시용 같은 느낌이었으니 논외로 치겠다.) 내 이름을 새긴 띠도 구매했다. 그렇게 옷장에는 평상복보다 운동복이 더 많아졌다.
 

도파민 샤워
회사보더 더 빡쎄게 꾸몄던 체육관 출근길

 시작하고 몇 달은 주짓수 생각만으로 기분 좋아졌다. 수업 날이 기다려졌고 설렜다. 운동할 때는 기분이 좋아지는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데, 그때 나는 시간마다 자동분사되는 방향제처럼 행복 호르몬이 뿜어져 나왔다.
앞 구르기도 성공했다. 관장님이 도와주셨을 때도 못했는데 혜가 머리를 받쳐주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남들에겐 당장이라도 가능한 그 작은 움직임이 35년째 뚝딱거리는 몸으로 살던 내겐 너무 큰 의미였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첫 운동, 주짓수를 통해 하루 하루 커가는 기분이였다.
 


ㅡ 내이름은 주짓쑤 : 화이트 벨트_1그랄에서 계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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