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4그랄
" 그래도 할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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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0 | 21.09.28 | 22.04.01 | 23.04.02 | 23.09.10 |
21.09.27 | 22.03.31 | 23.04.01 | 23.09.09 |
0. 대기
드디어 찾아온 대망의 승급, 그리고 시합 날. 일어나자마자 발부터 무릎, 손까지 꼼꼼하게 테이핑을 했다. 어제 새벽배송으로 산 텀블러도 챙겼다. 지난번과 달리 가까운 곳에서 열려서 많이 편했다. 체육관으로 가다가 만난 ㅈ은 잠을 설쳐서 2-3시간 밖에 못 잤다고 했다. 5시에 일어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평소 흥분하는 모습 없이 운동하는 모습만 봐서 그런가, 불안해하는 그 애의 모습은 잘 상상이 안된다. 아침에 만난 ㅅ에게도 응원을 하려다 말실수를 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블루벨트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 내 이름은 주짓쑤, 킹쓔의 주짓수 대회 당일 Tips!
1. 준비물 : 테이프, 개인 물병, 간식, 여벌 래쉬가드 (여자의 경우만)
- 키네시오 테이핑은 미리 해가는 것이 좋습니다.
- 반창고로 감는 건 압박이 심하니 도착 후에 하셔도 됩니다.
2. "기대주", "유망주" 같은 단어로 부담을 주기보다 "잘할 수 있다" 같은 응원의 한 마디가 적절!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멀었나 했는데 밖에서 조금 대기하니 10분 만에 시합장 완성되었다. 진짜 뚝딱이네. 대기 중에 만난 ㅇ이 혼자인 것 같아 챙기러 갔더니, 부모님이랑 함께였다. 관람석에서 환호하는 초등학생들은 플랭카드도 들고 있었다. 나도 이런 날은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좋았을 걸이란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1. 세미나
날렵하지만 강인해 보이는 몸. 세미나를 주관하시는 브라질 관장님은 뱅골 호랑이를 연상시켰다. 관원 중 한 분이 통역을 맡아주셨는데, 브라질 마스터는 목청이 워낙 좋아서 오히려 마이크를 든 통역이 묻힐 정도였다.
영어로 세미나를 진행해 주셨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전적인 의미는 잘 들어오는데 머릿속에서 흡수되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빠져서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휴, 수업 때나 지금이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마찬가지네.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 내 이름은 주짓쑤, 킹쓔의 주짓수 세미나 Tips!
: 파트너를 지원받을 경우 꼭 도전해 보자!
세미나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
잠깐 용기를 낸다면, 많은 걸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그래도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유튜브에서만 보던 주짓수 세미나를 이렇게 보다니. 그것도 브라질사람에게. 마치 찐 한국 정통숙수가 와서 알려주는 전통김장기법 강의 같은 느낌이랄까? 새롭고 신기한 시간이었다.
2. 승급식
이젠 좀 덤덤할 줄 알았는데, 관장님 앞에 서니 미소부터 번졌다. 그랄이 감기자 입이 귀까지 찢어지게 웃고 있던 나. 만 그랄이 주는 느낌인가. 내년이면 블루벨트네. 삼그랄때와 달리 좀 뿌듯했다. 이제 룰도 어느 정도 익히고, 기술들도 폭넓게 알고 확실히 전보다는 한 단계 발전했다고 자부한다. 어디서 주짓수 한다고 말할 때, 조금 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자신, 수고했다.
3. 점심
세미나가 예상보다 늦게 끝나서 점심 먹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매점에 가기도 애매해서 단백질바 하나 가져온 걸 ㅈ과 나눠먹었다. ㅊ이 아싸김(아빠가 싸 온 김밥)을 나눠줘서 먹었는데 깔끔하니 맛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랑 나눠먹게 간식 을 챙겨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 내 이름은 주짓쑤, 킹쓔의 주짓수 대회 식사 Tips!
1. 소화가 잘되는 죽이 베스트.
2. 시합번호가 초반 대라면 단백질 바 같은 간단한 식사도 적당.
3. 여분의 간식도 챙겨 와서 관원들과 나눠먹자.
다 시합번호대가 초반이라서 밥도 거의 못 먹고 테이핑부터 했다. 끝번호인 나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긴장했는지 옆에 있던 ㅅ이 손을 떨었다. 어제 저녁 내 불안함과 초조함을 달래던 말들로 그 애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걱정 마. 잘할 수 있을 거야.
4. 시합
기다리다 매트로 미리 내려갔다. 상대방을 확인하자마자, 속에서 구렁이 100마리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상대는 체구가 꽤 크고 인상이 매서웠다. 내가 이 구역 제일의 탑 덩치인 줄 알았는데. 힘도 훨씬 셀 것 같고, 여태껏 나보다 큰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무서웠다. 게다가 우리 관원들은 다 한 번씩은 이긴 상태라 부담도 컸다. 여기서 나만 찍소리도 못내보고 지면 어떻하지? 너무 얼어서 몸이 굳어졌다. 주변에선 어깨를 토닥이며 잘 할 거니까 괜찮을거라고 했다.
나도 내 자신에게 괜찮을 거라고 달래면서, 계속 마음을 다 잡으려고 노력했다. 머릿속으로 괜찮을 근거를 생각해 냈다. 작년에 오픈매트 동호회에서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남자들이랑 스파링 해봤잖아. 적당히만 긴장하면 오히려 좋지 더 잘할 수 있어. 물론 연습 충분하지 않았지. 그래도 계속 그거 극복하려고 노력했잖아. 운동일기로 복습한 거 기억하지? 떨지말고 최선만 다해보자.
** 내 이름은 주짓쑤, 킹쓔의 주짓수 시합 전 Tips!
1. 나도 무섭지만 상대도 내가 무서울 터, 쫄지 말자.
2. 안 해본 거 해보려고 하기보다는 그동안 했던 거에 집중
3. 내 번호보다 10번 대 정도 먼저 내려가서, 열이 살짝 오를 때까지 스트레칭으로 몸 풀기
우려와 달리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모든 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한 방에 바로 털릴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꽤 해볼 만했다.긴장이나 두려움 같은 거 느낄 새 없이 이기고자 하는 본능 그 자체로 변했다. 전략이 뭐냐고 묻는 질문들에 "글쎄요...?"라고 버벅였는데 그 때 그때 상황에 맞춰 잘 대응했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았다. 가드풀 까지는 좋았으나, 연습했던 클로즈가드 관련 기술은 상대의 흉통이 커서 쓰기 힘들었다. 계속된 근접전에 트라이앵글을 할 여유가 없었다. 기억 나는 건 스윕만 두세 번 정도 였다. 서로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게임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 내 이름은 주짓쑤, 킹쓔의 주짓수 시합 Tips!
1. 체력 안배 잘하기 : 초반에 힘을 너무 몰아 써서 나중에 힘이 빠졌다. 흥분하지 말고 체력 분배 잘할 것.
2. 적절하게 탭 치기 : 승부에 대한 마음은 공감하지만 적절한 탭만이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3. 다른 팀원들 케어 : 나만 끝났다고 집 가는 게 아니라 다른 팀원들 경기도 함께 보고 케어해 주기
마지막에 걸린 초크. 지고 싶지 않다는 집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꽤 버틸만하다고 생각했고 탭을 칠 생각은 없었다. 점점 등불이 깜빡거리는 것처럼 의식이 희미해질 무렵, 심판이 시합을 중지시켰다. 여전히 어지러웠다. 심판이 상대편의 손을 들어준 순간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다. 졌구나. 결국 지고 말았구나. 분한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다.
5. 이후
울면 안되지. 체육관 사람들과 있어서 감정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 시합을 참관하느라 바빠서 얼결에 잘 회복했는지도 모른다. 본관답게 다들 좋은 성적을 냈다. 끝나고 같이 뒤풀이도 했는데,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잘했다고 말해줘서 그나마 좀 위로가 됐다. 집에 오니 온 삭신이 아프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한 시간도 아니고 딱 몇 분 뛰었는데 온몸에 기운이 다 빠졌다. 정말 사력을 다해서 임한 하루였다.
이제는 미뤄왔던 치료를 하면서 좀 쉴 예정이다. 마음은 바로 다음 날 가서 모자랐던 부분을 채우고 연습해보고 싶지만, 오래오래 운동할 거니까. 손, 발, 무릎 모두 극복해서 다시 운동해야지. 빨리 블루벨트를 따고 싶다. 점점 더 멋질 나를 기대하며.
+ 마치며
저는 주짓수를 특출 나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엄청난 경력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이 전까지 운동을 해본 경험도 거의 없고, 남들보다 늦은 30대 중반에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많이 다치고 그래서 더 고민이 많고, 잘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그럴 것 같고요.
그래도 좋아합니다. 열정에 비해 실력은 모자라고, 때로는 이 감정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고, 시작할 때 꿈꾸던 것처럼 강해지진 못했지만 한 가지 결론은 얻었습니다. 이런 저라도 할 수 있다는 것.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뭔가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기꺼이 "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 분들께 바칩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하시는 분들 외에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은 분들, 이제는 놓아야 하나 고민 중인 분들께 제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내 이름은 주짓쑤는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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